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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접근성 강화 도서)거침없이 우아하게 젠더살롱

박신영 지음
바틀비

2024년 07월 11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12월 2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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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0.43MB)
ISBN 9791191959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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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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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감칠맛 나는 스토리텔링으로 역사를 유쾌하게 전달하는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가 이번에는 가부장제가 어떻게 이야기로 약자를 지배하는지, 차별과 혐오가 어떻게 일상에 스며 있는지를 역사와 문화와 실제 있었던 사건을 통해 풀어냈다.

역사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 당연한 듯 전해지는 여성 혐오에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알아내고, 명확하지 않았던 차별의 구조를 선명하게 밝혀낸다. 역사와 이야기의 유래를 추적하다 보면 지금의 잘못된 현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여성들의 의식은 급격히 깨어 앞서가는데, 다른 세대와 성별의 의식은 아직 이에 미치지 못한다. 구조적 성차별을 개인의 인성이나 성격적 결함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순간, 문제는 더욱 위험해진다. 외부에 있는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 들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는 이들에게 이 책이 비상 구급약이 되길 바란다.

당장 구조 자체를 바꿀 수는 없으니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정리할 관계는 ‘거침없이’ 정리하고 자신의 인생에 ‘우아하게’ 집중하라고. 가부장제의 역사가 반영된 이야기를 통해 차별과 혐오가 작동하는 구조를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라고. 여기 젠더살롱에 모두 모여 다른 시대를 열어갈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들어가며| 다른 시대를 열어갈 이야기, 젠더살롱 4

1부
결혼할 때 남자가 집 장만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 차별? 13
일하는 여성은 관기가 아니다 21
딸처럼 여겨서 그랬다고? 29
쇼트커트 하면 페미라고? 39
사랑하는데 표현만 거칠 뿐이라고? 47
낙태권을 주장하면 ‘페미나치’라고? 56
오빠가 허락하는 낙태는 합법, 그 외는 불법? 63
왜 여자라 재수 없다고 말할까? 71
가성비 좋은 혐오와 차별의 정치 78
가해자에게는 미래가, 피해자에게는 과거가 있다? 88

2부
부풀린 코드피스와 실체도 없는 메갈 손 소동 97
어린 남성에게 성추행할 자유를 주려는 이유 106
차별은 할머니, 어머니 세대가 받았는데 왜 젊은 여성들이 불만일까? 113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고? 121
흙수저 남성만 불쌍할까? 129
왜 어린 여성에게만 위문할 의무를 강요할까? 137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씌운 ‘여적여’ 굴레 145
남성들은 왜 어머니를 욕하는 말에 흥분할까? 154
일부러 굽은 솔로 만드는 이유는? 162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에 가려진 헬렌 켈러 169

개인을 미워하거나 자신을 탓하느라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정리할 관계는 거침없이 정리하고 자기 인생에 우아하게 집중했으면 좋겠다. 내가 앞서 길을 내준 선배 여성들 덕을 보았듯, 나 역시 그런 언니가 되고 싶다. 뒤에 오는 여성들이 꽃길을 걸을 수 있도록 꽃씨를 심는 마음으로 이 책을 낸다. _6~7쪽

이상한 일이다. 결혼한 후 여성만 아늑한 방에서 자고 남성은 난방 없는 베란다에서 자는 것도 아닌데, 혜택은 남성도 누리면서 결혼할 때 남자가 집 해 오는 것을 왜 남성 차별이라고 외치는가? 집을 며느리 명의로 해주는 것도 아니고 이혼할 때 시부모가 해준 집을 여성이 가져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지금의 결혼 제도에서 남성이 집 해 오는 것은 여성 차별이 맞다. 남성은 배우자인 여성이 일하는 대가로 여자 형제들보다 미리, 더 많이 상속받는다. _19~20쪽

이는 한 개인의 일탈 문제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너무도 많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해 남성들을 두둔하고 피해 여성을 비난한다. 결국 사회 전체의 집단 심성, 망탈리테의 문제다. 앞서 공군 성폭력 사건에서 상급자들이 “살면서 한 번은 겪을 수 있는 일”이라며 피해자를 회유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그 말을 뒤집으면 남자들 입장에서 성폭력이란 “살면서 한 번은 하는 일”이 된다. 여기에는 남성은 당연히 여성들을 성적으로 이용해도 된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다. _26~27쪽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고대인이고 함무라비의 신민이다. 내가 아무리 선량한 시민으로서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이 시대에 살고 이 문화의 영향을 받는 이상 의식적으로 깨치고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도 모르게 시대착오적인 성차별 언행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함께 이 시대를 종결시켜서 ‘구시대의 마지막 목격자’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_37~38쪽

어떤 사례든 여성인 주제에 남성과 구분이 가지 않는 차림을 하는 것을 문제로 여긴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쇼트커트를 한 여성을 페미니스트로 여겨서 걸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성은 2등 인간이므로 남성과 쉽게 구별되어야 하는데, 구별할 수 있어야 차별할 수 있는데, 그 구별을, 차별을 없애려는 사람들이 바로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다. _45쪽

그래서 사회는 남성이 여성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것을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니까 참으라며, 어려서부터 직접적으로, 혹은 소설이나 드라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여성을 세뇌한다. 여성이 남성의 지배 밖, 가정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막는 한편, 일터나 사회에서 생긴 스트레스를 남성들이 각 가정이나 사적 관계에서 여성을 지배함으로써 풀 수 있게 하려는 의도다. 또한 남성에게 밥과 섹스, 자손 생산, 돌봄 노동, 감정 노동, 노부모 봉양을 제공하는 데다가 돈까지 벌어다 주는 노예를 국가가 한 명씩 배급해주어야 하므로 결혼을 장려한다. 그래야 남성들이 ‘말하는 샌드백’을 두들겨서 스트레스를 풀고, 정작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만들어내는 기득권 세력에게는 죽창을 들고 저항하지 않을 테니까. 가부장 아래에 가족을 조직하면 국가가 각 가정을 관리하기가 쉬울 테니까. _54쪽

이렇게나 막강한 권리를 감히 남성의 소유물인 여성이 누리려고 하는 것은 하극상이며 괘씸죄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유명무실했던 낙태죄가 여성의 인권 관련 지표가 높아지자 각 나라마다 부활한 것이고, 안전한 임신 중단권을 달라는 여성들에게 일부 남성들이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일도 아닌데 맹렬히 반대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생명의 소중함은 핑계일 뿐이다. 낙태를 결정할 수 있는 남성 혹은 가부장의 고유한 권리를 차마 잃을 수 없어서, 여성의 몸을 남성의 소유물로 생각해서다. ‘오빠가 허락하는 낙태는 합법, 그 외는 불법’이니까. _69~70쪽

그러므로 현재 우리나라 여성의 고등교육률이 높아서 사회가 성평등해 보이는 것은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높은 것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이나 성차별 의식이 자연스럽게 사라져서가 아니라, 국가 주도의 강압적인 산아 제한 운동이 성공해서다. 자녀 수가 줄었기에 부모가 딸에게도 노후에 봉양하길 기대하여 가정 내의 자원을 분배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의 차별 구조와 사람들의 의식은 과거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교육의 기회를 얻은 딸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 여성들은 한 세대 만에 급격히 성평등 의식이 깨어 앞서가게 되었다. 그 차이를 사회가, 일반 남성이 못/안 따라가는 것이 현재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_83쪽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임은 물론이고, 계속해서 더 많은 피해자가 생겨나게 한다. 직업(창녀건 성녀건, 강간하면 무조건 유죄다), 음주 여부, 옷차림새 등에 따라 피해자 여성에게 원인을 제공했다고 따지는 것은 가해자에게 면벌부를 준다. 다시 말해 범죄자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고 ‘강간할 권리’를 보장해준다. 이런 사고방식에 젖어 있으면, 선량한 남성들도 어느 순간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_94쪽

이런 성차별 사회에서는 남성도 피해자가 된다. 벨 훅스는 페미니즘을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입각한 억압, 폭력, 착취를 종식하는 운동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렇다. 페미니스트들은 크건 작건 성기를 놓고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분노한 남성들이여, 의미도 없고 실체도 없는 손 모양에 그만 집착하고, 지금부터라도 페미니스트가 되자. 분노의 방향을 정확히 하여 성기 크기로 우열을 가리는 기존의 남성 문화에 대항한다면, 함께하겠다. _105쪽

어쩌면 “요즘은 성차별이 없는데 왜 젊은 여성들은 불만인가?”라는 질문은 답을 알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그저 “예전의 여성들처럼 참고 복종하라”라고 말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각성해서 힘을 모아 저항해본 경험을 가진 자들은, 점차 해방되는 경험을 해본 자들은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법. 역사가 이를 증명해준다. _119쪽

여성이나 성 소수자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흙수저 남성들의 설움을 외치는 남자라면 기억하시길. 같은 수저 계급 내에서도 젓가락을 받지 못하는 성별이 늘 있다는 것을. 여성 문제보다 계급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남자라면 잊지 마시길. 여성이라는 계급은 없지만 모든 계급의 하층에는 여성이 있다는 것을. 모두 젠더살롱에 초대합니다. 평등한 원탁의 “손님이 되어주세요!” _135~136쪽

결국 시어머니의 폭력 문제는 ‘여적여’ 현상이 아니다. 가해자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여성에 대한 지배와 폭력을 통해 가부장제가 유지되게끔 하는 구조의 문제다. 여성의 범죄를 더욱 엄격히 단죄하는 이 사회가 시어머니의 폭력에는 속수무책 방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어머니의 권력 행사는 가부장제의 유지 및 강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_152쪽

결국 어머니의 신분을 들먹이는 욕은 “너는 여기에서 나와 싸울 자격도 없는, 나와 같은 계급에 속하는 인간이 아니니 썩 꺼지라”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 욕설에 분개하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상관없다.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로 여기는 유아적인 나르시시즘이 상처받은 탓이다. 그게 아니고 진심으로 어머니의 명예 때문에 분노한다면, 어머니를 평소에 밥하는 노예 집단에 속하는 여성으로 여길 리가 없다. 고생한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데 본인이 아니라 아내를 이용할 생각을 할 리가 없다. 밥 안 차려준다고 어머니를 때려죽이는 남성들에 대한 기사가 이렇게나 많이 검색될 리가 없다. _160~161쪽

역사와 일상에 깊이 스며 있는 구조적 차별과 혐오

정리할 관계는 ‘거침없이’ 정리하고 자신의 인생에 ‘우아하게’ 집중하자!

역사 에세이스트인 박신영 작가는 직장 내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소송 끝에 승소한 경험을 담은 미투 에세이 《제가 왜 참아야 하죠?》를 2018년에 펴냈다. 이번에는 5년 만에 이야기를 통해 생각을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하여 약자를 지배하는 방식과, 시나브로 젖어 든 차별과 혐오가 일상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거침없이 우아하게 젠더살롱》에 담아냈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빈번히 자행되는 현실에서, 차별하지 말라고 외치는 여성들에게 자신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말라고 남성들이 대응하는 현상은 매우 흥미롭다. 기득권이 약자 집단을 차별하고 지배하는 방식 중 하나는 차별당하는 대상들을 오히려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서 스스로 언행을 검열하게, 즉 알아서 기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말라는 말은 남성을 2등 인간인 여성처럼 취급하지 말라는 뜻이다.

법적, 제도적 성차별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성차별은 현실에서 일어난다. 차별은 사회 성원의 참여와 묵인 하에 이뤄진다. 일상에서 사람들을 은은하게 세뇌하여 성차별을 문화로 만들어 그 문화에 젖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장 바꾸자고 한들 쉽게 바뀔 리가 없다. 한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사고방식을 지니고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하기에 구조 자체가 바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람들이 모두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을 자유민과 노예의 중간, 인간과 가축의 중간으로 여기는 고대 가부장의 망탈리테를 가진 사람도 지금 21세기 내 옆에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성차별주의자들을 일일이 설득할 필요는 없다. 개인을 미워하거나 자신을 탓하느라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정리할 관계는 거침없이 정리하고 자기 인생에 우아하게 집중했으면 좋겠다. _‘들어가며’ 중에서

성차별주의자 개개인을 일일이 설득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으려 애쓰는 것은 더욱 최악의 상황만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여성을 혐오하는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주변에서 ‘거침없이’ 정리하고 자신의 인생에 ‘우아하게’ 집중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부장제의 역사를 통해 성차별의 구조를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가부장이나 남성의 권력 행사를 당연하게 여기는 고대인의 망탈리테

매일같이 끔찍한 성범죄 관련 뉴스가 쏟아진다. 그중에서도 친족 성범죄는 빈번히 벌어질뿐더러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만다. 저자는 친족 성범죄가 자주 일어나고, 범죄가 그대로 묻히거나, 밝혀지더라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이유를 역사에서 찾는다. 현재 벌어지는 각종 성폭력 사건의 바탕에는 여성에 대한 가부장/남성의 권력 행사를 당연하게 여기는 고대인의 망탈리테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망탈리테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집단적인 사고방식을 뜻한다.

남성의 권력 행사에 대한 역사적 사례는 지금으로부터 3,750년 이전의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법전에 따르면, 범죄를 저지른 남자는 처자식이나 하인, 노예에게 대신 처벌을 받게 할 수 있었다. 식솔은 가부장의 ‘소유’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원칙은 간통죄나 강간죄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강간당한 여성이 아니라 그 여성의 남편이나 아버지였고,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가부장에게 그 ‘손해’를 배상해주어야 했다. 이 오래되고도 낡은 법전이 뒷받침한 논리가 지금까지도 줄곧 살아 내려오는 것은 놀라움을 넘어 끔찍할 정도다.

바로 이런 고대의 법에 기반한 사고방식이 현재까지 이어진다. 친딸, 의붓딸뿐 아니라 학생이나 수용시설 원생, 직원 등 딸과 같은 입장에서 자신의 보호나 지도를 받는 어린 여성을 성폭력하는 남성들에게로. 이들의 머릿속에 박힌 ‘처자식은 내 재산이니까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고쳐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법을 개정하고 형벌을 강화해도 소용이 없다. _33쪽

여전히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에, 나이 든 남자들이 어린 여성을 성추행하고도 “딸처럼 대해줬는데!”라며 분노하는 것이다. ‘비록 죄는 지었지만 내 딸 같은 여자에게 한 짓이니까 큰 죄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은 여전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처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여성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갖길 원한다. 그렇기에 성차별 현실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정작 차별당한 건 앞선 세대의 여성들이지 너희들은 아니지 않냐고, 평등하게 교육받고 법적으로도 차별받는 일은 없지 않냐고 되묻고 있는 것이다. 성차별을 비교하려면 다른 세대 여성이 아니라 같은 세대 남성과 비교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한편 성차별주의자들은 낙태권을 주장하는 여성들을 ‘페미나치’로 몰아가기도 한다. 오, 내가 내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게 나치라니! 나치 독일사를 살펴보면 여성을 단지 인구를 늘리기 위한 출산 도구로 취급하거나 정책과 법률로 정해서 낙태를 금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나치에 가까운데 무슨 소리란 말인가?

‘페미나치’라는 말은 특히 성차별주의자들이 “페미니스트들은 낙태권을 요구하는 살인마 집단”이라는 주장을 펼칠 때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살인 면허권’이 아니다. 자기 몸에 대해 온전한 통제권을 갖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안전한 임신 중단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 2차대전을 전후하여 나치가 저지른 대학살에 빗대는 것은 의아할뿐더러, 역사 왜곡에 가깝다.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과거 나치가 벌인 일과 그들이 내건 명분은, 살펴보면 페미니스트들이 아니라 오히려 성차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같기 때문이다. _56~57쪽

그렇다면 남성들은 왜 낙태권을 공격하는 걸까? 모든 자원을 토지에 의존했던 옛날에는 인구가 늘면 식량을 찾아 이동하든가, 땅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벌여야 했다. 이런 상황을 피하고자 선택한 방법이 바로 피임과 낙태 혹은 영아, 특히 여아 살해였다.
낙태를 법으로 금지하는 이유는 결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국가가 여성의 몸과 생산 능력을 조종하고 가부장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처자식은 가부장의 소유물로, 죽이거나 살릴 수도, 팔 수도 있었기에 당연히 낙태권은 가부장의 권리였다. 여성의 이익이나 권리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막강한 권리를 여성에게 넘겨줄 리가 없다. 여성의 몸은 남성의 소유물이니까.

여전히 동료 여성에게 성폭력을 일삼는
시대를 거슬러 온 듯한 사람들

우리는 여전히 조선 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남성들을 마주하곤 한다. 아직도 뉴스에서는 밥을 차려주지 않는다거나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는다며 아내나 어머니를 때려죽이는 남자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가부장이 처자식의 생살여탈권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남성들이 많은 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직장에서도 동료 여성들을 상대로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는 남성들이 많다. 저자는 이 또한 역사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바로 여성 전문직에 대한 처우다. 조선 시대 여성은 대개는 집 안에 머물러 있었으나, 간혹 전문직에서 일하는 여성이 있었다. 궁녀, 의녀, 관기였다. 이들은 전문직 공무원이면서도 남성들에게 성 노리개 취급을 받으며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근대에도 일하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대하는 의식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

21세기에도 변함없이 동료 여성에게 자행하는 성폭력은 멈추지 않는다. 동료를 기생처럼 취급하는 구태한 사고 때문에, 여성에게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부장이, 지인의 개업식에 회식이라고 데려가는 중사가, 노래방에서 블루스를 추자며 껴안는 과장이, 사귀자며 성폭행하는 사장이 그렇게나 많은 것이다.

어떤 남성들은 한두 사람의 일탈 행위를 전체 남성의 문제로 돌리지 말라고, 전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만들지 말라고 주장한다. 물론 모든 남성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성차별과 성폭력에 관대한 조선 시대 수준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너무도 많으니, 개인적으로도 각성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사회적, 법률적 체계를 갖추는 것만큼이나 개인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런 범죄는 앞으로 더 광범위하게, 대상을 가리지 않고, 더 잔인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일어날 것이므로.

모두 모여 다른 시대를 열어갈 이야기를 나눠보자
여기 젠더살롱에서, 거침없이 우아하게!

자신의 실패를 남 탓으로 돌리고, 그중에서도 만만하고 신체적으로 약한 여성에게 칼끝을 겨누는 소위 ‘묻지 마’ 범죄 역시 여성 혐오의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과거의 잘못된 망탈리테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구조적 차별의 결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은 매우 위험하다.

차별의 ‘구조’를 지적하는 여성들을 인성이나 성격적 결함을 지닌 ‘개인’으로 몰아가고, 반만년에 걸쳐 역사적으로, 사회 구조적으로 끊임없이 은은하게 세뇌당한 끝에 성차별의 원인을 여성 개개인에게서 찾으려 드는 한, 사회적 문제는 개인적 차원으로 환원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개인들 간의 관계와 심신 건강은 나빠지기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차별과 혐오가 작동하는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거침없이 우아하게 젠더살롱》이 구급 처방약이 되길 원하는 이유다.

이제는 그동안 익숙했던 불평등과 여성 혐오의 이야기를 거부해야 너와 내가 진정으로 평등하고 안전한 세상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저자는 거듭 강조한다. 그러니 모두 모여 다른 시대를 열어갈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거침없이 우아하게, 여기 젠더살롱에서.

작가정보

저자(글) 박신영

문학과 역사, 인간에 관심 많은 이야기꾼. 어떤 일이 생기면 그 역사적 유래부터 파고드는 역덕이기도 하다. 작가가 되기 전 겪은 직장 성폭력 사건(이 경험은 《제가 왜 참아야 하죠?》에 썼다) 때문에 성차별주의자의 사고방식이 너무도 후지고 기이하다는 것을 깨닫고 가부장제의 역사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세상이 빨리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절망하지 말고 나부터 변하여 내 주변을 바꾸자고 생각한다.
첫 책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청소년 권장도서)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책은 중국과 대만에도 번역 출간되어 현재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그 외 《고양이는 왜 장화를 신었을까》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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