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2024년 06월 24일 출간
국내도서 : 2017년 02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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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89716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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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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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는 그가 가장 활발하게 평론 활동을 펼치던 시절 〈라 르뷔 블랑슈〉, 〈라 뮈지카〉, 〈르 피가로〉, 〈르 주르날 드 파리〉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엮은 음악평론집이다. 1921년에 처음 출간되어 그보다 3년 전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8년에 사망한 작곡가 본인은 정작 이 책의 탄생을 지켜보지 못했지만, 책 속에 담긴 이 비범한 작곡가의 정신은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광채를 잃지 않았다.
1부 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1 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2 로마대상과 생상스에 대하여
3 교향곡
4 무소륵스키
5 폴 뒤카스의 소나타
6 비르투오소
7 오페라극장
8 니키슈
9 마스네
10 야외음악
11 회상
12 장 필리프 라모
13 베토벤
14 민중극장
15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16 리하르트 바그너
17 지크프리트 바그너
18 세자르 프랑크
19 망각
20 그리그
21 뱅상 당디
22 리히터
23 베를리오즈
24 구노
25 글루크 기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2부 그 밖의 글들
나는 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만들었나
취향에 대하여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에밀 뷔예르모즈가 지적했듯이 우리가 크로슈 씨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그는 “전통적인 훼방꾼, 미학 선생을 자처하면서 자기가 쉽게 이기려고 고의로 딴죽을 거는 악마의 변호사가 아니다. 그는 그릇된 이론들을 끌고 가려 하지 않는다. 결국 그 이론들을 멋지게 반박하는 것은 저자의 몫이다. 드뷔시의 태도 자체는 이러한 대화에 부응하지 않는다. 크로슈 씨는 오히려 제2의 드뷔시, 하고 싶은 말을 과감하게 하려고 일부러 자기모순적인 인물로 설정한, 실제보다 더 신랄하고 냉소적인 드뷔시다. 크로슈 씨는 정감 어린 희화(caricature)다. _ p.10 로런스 길먼(음악평론가)
이 책의 유익은 여기서 주제들을 조명한 방식보다 오히려 그 주제들에 대하여 저자가 드러낸 마음에 있다. 짐짓 걱정스러운 경박한 태도, 작정하고 구사한 반어법, 공들여 연출한 따분함은 무시해도 된다. 그보다는 드뷔시가 자기 자신과 크로슈 씨를 망각하고 라모, 바흐, 베토벤, 베버, 무소륵스키,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 세자르 프랑크를 기억하는 대목들에서 터져 나오는 따뜻한 진심과 열광을, 섬세하고 시적인 찬탄을 보라. 일관성 없지만 유쾌하고 때때로 감동적인 이 글들을 통하여 드뷔시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에우리피데스의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사랑스러운 것은 영원히 사랑받지 않겠는가?” _ p.14-15 로런스 길먼(음악평론가)
“연주회 청중들의 적의를 실감하신 적 있습니까? 권태, 무관심, 심지어 어리석음마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표정을 보셨나요? 그들은 교향악적 갈등을 통해 전개되는 순수한 드라마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소리의 건축물 꼭대기에 올라가 완전한 아름다움을 호흡할 가망은 그러한 갈등에서 엿보이는 법이지요. 이봐요, 선생. 연주회 청중은 언제나 가정교육을 잘 받은 손님 역할만 합니다. 그들은 따분해도 꾹 참고 제 역할을 연기해내지요. 그들이 중간에 자리를 뜨지 않는 이유는 연주회가 끝나고서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면 애당초 왜 왔겠습니까? 인정하십시다, 음악에 치를 떨 만한 이유는 분명히 있잖아요…….” _ p.21-22(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나는 비평보다, 솔직하고 성실하게 느낀 인상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비평은 동일한 주제를 화려하게 변주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그 주제란 ‘당신은 나에게 동의하지 않으니 틀렸습니다’ 아니면 ‘당신은 재능이 있지만 난 재능이라고는 쥐뿔도 없습니다. 길게 얘기할 필요 없겠죠’와 같은 것이겠죠……. 나는 작품들 속에서 그것들을 탄생시킨 다채로운 움직임을, 작품들의 내적인 삶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신기한 시계를 분해하듯 작품을 뜯어보는 작업과는 자못 다른 재미가 있지 않겠어요?” _ p.23-24(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음악은 흩어진 힘들의 총합입니다. 그런 힘들로 사변적인 노래를 만드는 거죠! 나는 이집트 목동이 피리로 불어대는 음들이 더 좋습니다. 그는 풍경에 협력하고 당신들의 평론에서 다루지 않는 화음들을 듣습니다……. 음악가들은 교묘한 손으로 쓴 음악에만 귀를 기울이고 자연에 아로새겨진 음악은 들을 줄 모릅니다. 〈전원 교향곡〉을 듣는 것보다 해가 뜨는 광경을 바라보는 게 훨씬 나아요. 거의 이해할 수도 없는 당신네들의 예술이 무슨 소용 있답니까? 그 예술에 기생하는 온갖 복잡한 수작들을 없애야 하지 않겠어요? 음악을 쉽게 열리지 않는 금고 자물쇠처럼 기발하게만 만드는 수작들……. 당신들은 음악밖에 모르기 때문에 제자리걸음을 하고, 희한한 야만의 법칙을 따릅니다. 당신들은 거창한 미사여구로 칭찬받지만 실상은 잔머리 굴리는 사람들에 불과해요! 원숭이와 하인의 중간쯤이랄까.” _ p.27(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아름다운 관념도 배아 상태일 때는 어리석은 자들의 웃음거리가 될 만한 구석이 있어요. 확실히 합시다, 숙명이 마련해놓은 도살장으로 유순히 끌려가는 양 떼보다는 차라리 웃음거리가 되는 사람들 쪽에 아름다움의 소망이 있습니다. _ p.27-28(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b>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프랑스 음악의 한 정신
“사실, 음악은 진정으로 존재하지 않을 때마다 ‘어려워졌다.’
여기서 ‘어려움’이란 음악의 빈곤을 감추려는 병풍에 지나지 않는다.
음악은 하나뿐이요, 그 음악은 존재의 권리를 자기 안에 품고 있다.”
_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 드뷔시가 자신의 분신
크로슈 씨의 입을 통해 전하는 음악의 정수
드뷔시가 하지 못한 말, 크로슈 씨가 대신 전하는 말</b>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1862-1918)는 비록 56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이 땅에 머물렀지만〈야상곡Trois Nocturnes〉, 〈목신의 오후 전주곡Pr?lude ? l'Apr?s-midi d'un Faune〉,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as et M?lisande〉와 같은 작품으로 음악사에 매우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당시 유럽을 휩쓸던 바그너의 장대한 음악과 구별되는 또 다른 음악, 프랑스 음악의 기치를 내걸었으며, 작품뿐 아니라 다양한 음악 평론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피력했고, 스테판 말라르메(1842-1898)의 살롱에 드나들며 상징파 시인, 인상파 화가 등 당대의 인물들과 교유했다.
《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Monsieur Croche, Antidilettante》는 그가 가장 활발하게 평론 활동을 펼치던 시절 〈라 르뷔 블랑슈〉, 〈라 뮈지카〉, 〈르 피가로〉, 〈르 주르날 드 파리〉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엮은 음악평론집이다. 1921년에 처음 출간되어 그보다 3년 전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8년에 사망한 작곡가 본인은 정작 이 책의 탄생을 지켜보지 못했지만, 책 속에 담긴 이 비범한 작곡가의 정신은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광채를 잃지 않았다.
제목의 ‘딜레탕트’는 비직업적인 (음악) 애호가를 지칭하는 말로, 드뷔시가 자신의 분신으로 내세운 ‘크로슈 씨’는 속물스러운 예술 애호가(딜레탕트)의 ‘안티’를 자처한다. 크로슈 씨는 드뷔시가 한때 가까웠던 폴 발레리의 《테스트 씨와의 저녁》으로부터 착상한 것으로 보인다. 출간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눈치 채지 못했지만 위대한 지성 발레리는 이를 알아보고 한 친구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나의 옛날 작품을 음악평론이라는 형태로 다시금 읽으면서 위안을 받는다.” (p.159)
크로슈 씨가 책 속에서 실제로 등장하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의 이름을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가 음악평론가 드뷔시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직접 본인의 입을 통하지 않고 가상의 인물을 창조해 그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글을 써나가는 이런 방식은 독자에게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음악의 역사Histoire de la Musique》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음악학자인 에밀 뷔예르모즈의 말을 빌리자면, 드뷔시는 “하고 싶은 말을 과감하게 하려고 일부러 자기모순적인 인물로 설정한, 실제보다 더 신랄하고 냉소적인 드뷔시”를 만들어내 “그가 차마 하지 못하는 과격한 말을 이 분신은 신나게 쏟아낸다.”
<b>음악계를 향한 애정 어린 질타와 격려</b>
책의 1부는 위에서 언급한 단행본 《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를 번역하여 1928년에 발간된 첫 영문판의 서문(로런스 길먼)을 추가하였으며, 2부는 1971년에 발간된 《크로슈 씨 외 여러 글Monsieur Croche et Autres ?crits》에서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흥미롭게 다가올 만한 글 두 편을 뽑아 엮었다.
1부에는 라모, 베토벤, 베를리오즈, 바그너, 무소륵스키, 마스네 등 당시 이미 전설이 되었거나 드뷔시와 동시대를 살던 음악가에 대한 글부터, 로마대상大賞, 오페라극장, 야외음악 등 기타 음악 관련한 글까지 다양하다. 2부는 1902년 드뷔시가 오페라코미크 감독인 조르주 리쿠의 요청을 받아 어떻게 해서 그가 걸작으로 남은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취향’을 주제로 쓴 글 두 편으로 구성된다.
드뷔시가 음악가들에 대해 쓴 글을 살펴보노라면 그의 호불호가 분명하게 감지된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이야기하면서는 작곡가와 작품에 대해 한껏 찬양한다. 그러다가 드뷔시가 한때 우러러보았다 결국에는 단호하게 돌아선 인물인 바그너와 베토벤을 비교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쏟아낸다. “최근에 〈합창 교향곡〉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숙성된 걸작들과 나란히 연주되었다. 탄호이저, 지그문트, 로엔그린은 다시 한 번 라이트모티프를 큰 소리로 주장하고 나섰다! 실질적 권한도 없이 감투만 쓴 이 허망한 작품들 곁에서 베토벤의 엄격하고도 충실한 솜씨가 쉽사리 돋보였다.” 바그너에 대한 이야기가 단골로 등장하는 가운데 드뷔시는 또다시 그를 바흐와 비교하며, 청중들이 바그너의 연주를 듣고 바흐의 연주 때와 달리 휘파람을 불며 환호를 보낼지언정, 그것이 반드시 ‘영광’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가 바그너를 무턱대고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옛 우상과 다른 길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우리는 바그너의 천재성을 부정하지 않고도 빅토르 위고가 자기 이전의 모든 시를 통합했듯이 바그너는 자기 시대의 음악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따라서 우리는 ‘바그너를 따라(d’apr?s Wagner)’가 아니라 ‘바그너 이후(apr?s Wagner)’를 연구했어야 했다.”(‘나는 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만들었나’ 중 p.148)
한편 크로슈 씨를 내세운 이 작곡가의 안티 딜레탕트 기질은 ‘오페라극장’ 같은 글에서 뚜렷이 감지된다. 드뷔시는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 가운데 과격하거나 수위 높은 표현들을 단행본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삭제하거나 정제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고 날선 감정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오페라극장을 ‘철도역’, ‘터키탕’ 등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차라리 극장에 화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음악을 들으러 와서는 권태, 무관심 등의 표정으로 일관하는 연주회 청중들, 즉 음악을 진정으로 듣지 않는 겉만 번지르르한 애호가들이 앉는 호화판 박스석(loges ? salon)을 ‘수다를 떨기에 안성맞춤인 최신식 살롱’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그렇지만 행간을 잘 들여다보면 자국의 음악 기관, 정책, 관습 등에 대한 이러한 비난 이면에는 문화 강국인 프랑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지는 애정과 자부심이 묻어난다. 영국의 코번트 가든 극장을 소개하면서 프랑스의 극장도 이에 버금가도록 예산을 늘려 좋은 작품을 제작하고 눈 밝은 예술총감독을 두어 프로그램들을 잘 선별하고 구성하며, 공연의 횟수를 늘리고 무엇보다 청중의 무관심을 깨뜨려야 한다는 충고를 잊지 않는다.
<b>치열하고도 겸허했던 프랑스 음악의 위대한 정신</b>
2부 ‘그 밖의 글들’에 담긴 글 두 편은 드뷔시의 창작 과정과 예술관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 관한 글에서 드뷔시는 1895년 작품의 완성 후 장장 12년에 걸쳐 끊임없는 수정을 가했노라 고백한다. 기존의 극음악이 가진 전개를 뛰어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러한 일화의 진실성은 “나는 다른 어느 것과 구별되는 하나의 화음을 결정하기 위해 일주일 내내 매달렸다”는 그의 유명한 고백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드뷔시에게 있어 음악이란 “자연을 다소간 정확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Nature)과 상상(Imagination)의 신비로운 상응을 추구하는” 예술이었다.
취향에 대한 관점은 또 어떠한가. 그에 따르면 취향과 개성 따위는 오히려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끌려 다니는, 번드레한 허울로 둔갑한 거짓 취향이 아닌 신비를 간직한 ‘우리만의 취향’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드뷔시의 진심 어린 충고는 우리 시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음악은 겸허히 즐거움을 주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했던 클로드 아실 드뷔시. 아마도 이 한 문장은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의 많은 부분을 대변할 것이다. 드뷔시가 안티 딜레탕트를 자처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이 겸허한 것, 그리고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는 것의 대척점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작곡을 할 때는 무엇보다 감각을 중시하며 혁신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글을 쓸 때는 당대의 보수적 분위기에 괘념치 않고 소신껏 자유분방한 필치를 선보였기에 그로부터 거의 한 세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이 예술가의 혼은 시대를 초월한 생명력을 획득한다.
드뷔시의 주요 작품들이 탄생한 시점은 그가 한창 평론가로서 거침없고 활발하게 글을 발표하던 시기와 겹친다. 이런 배경을 알고 이 글들을 읽은 후 듣는 작품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_
‘<b>음악의 글’ 시리즈</b>
‘음악의 글’은 음악전문출판사 포노가 선보이는 새로운 시리즈로, 음악을 좀 더 깊이 읽고 폭넓게 이해하는 통찰이 담긴 글들을 한데 모읍니다. 제1권은 최초의 근대적 음악평론가 가운데 한 사람인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음악과 음악가 _ 낭만시대의 한가운데서》, 제2권은 리트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평생 헌신했던 성악가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리트, 독일예술가곡 _ 시와 하나 된 음악》, 제3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음악가, ‘미국 음악의 목소리’ 에런 코플런드의 음악 사용 설명서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제4권은 프랑스 음악의 위대한 정신 클로드 드뷔시가 자신의 분신 크로슈 씨를 통해 들려주는 음악 이야기 《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제5권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신학자 한스 큉의 《음악과 종교 _ 모차르트, 바그너, 브루크너》(근간)입니다.
책속으로 추가
베토벤 이후로 교향곡이 쓸모없다는 사실은 증명된 것 같았다. 실제로 슈만과 멘델스존은 동일한 형식을 경건히 반복했을 뿐, 박력은 떨어졌다. 그러나 교향곡 ‘9번’은 천재의 증명, 기존의 형식에 프레스코 화畵의 조화로운 균형미를 부여함으로써 그러한 형식을 확장하고 해방시키는 숭고한 욕망에 다름 아니었다.
따라서 베토벤의 진정한 가르침은 오래된 형식을 그대로 지키라는 것이 아니다. 그의 초기 행보를 답습하라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창문을 활짝 열고 확 트인 하늘을 바라보아야 했다. 내게는 창문이 영원히 닫힐 뻔했던 것처럼 보였다. 이 장르에서 몇몇 천재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서 우리가 으레 교향곡이라고 부르는 지루하고 경직된 작품들까지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_ p.46(교향곡)
실제로 무소륵스키는 시간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았고, 그를 좋아하거나 앞으로 좋아하게 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지울 수 없는 자취를 남길 것이다. 우리 안의 가장 좋은 것을 그보다 더 다정다감하고 심오하게 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독창적이고, 상투적이고 무미건조한 표현 방식에서 벗어난 예술을 했기 때문에 영원히 독창적일 것이다. 이토록 섬세한 감성이 이토록 단순한 수단으로 표현된 바는 일찍이 없었다. 감정을 따라 한 발짝 한 발짝 옮기다가 음악을 발견한 원시인의 예술이 이런 것일까. _ p.48-49(무소륵스키)
요컨대, 공연을 아주 많이 해야 하고 청중의 작정한 무관심을 깨뜨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부 예술가들은 이 무관심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그들도 한때는 싸울 줄 알았다. 시장에서 한자리 얻기 위해 필요했던 바로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싸웠다. 하지만 일단 장사가 자리 잡히면 그들은 무섭게 퇴보한다. 마치 대중에게 자기네들을 받아들이느라 수고했다고 사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젊은 날에 결연히 등을 돌리고 성공 속에 웅크리고 눌러앉는다. 그들은 복된 영광의 경지에 결코 오르지 못한다. 그러한 경지는 언제나 새로워지는 감각과 형식의 세계를 연구하는 데 일생을 바친 자들에게만 허락된다. 그 사람들은 참된 과업을 완수했다는 기쁜 신념 속에서 생을 마쳤다. 이 사람들은 이른바 ‘마지막에 찾아오는’ 성공이라고 할 만한 것을 누렸다. ‘성공’이라는 단어가 ‘영광’이라는 단어와 나란히 놓여도 천박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_ p.61-62(오페라극장)
어떤 예술가들은 자신이 모방했던 대상을 쓰러뜨리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처사의 기본이라 믿는다. 그들은 이 비난받을 만한 짓거리를 “예술을 위한 투쟁”이라 부른다. 곧잘 동원되는 이 표현에는 뭔가 비열한 구석이, 나아가 예술을 스포츠와 동일시하는 오류가 배어 있다.
예술에서 싸워야 할 상대는 대개 자기 자신뿐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거둬들이는 승리보다 아름다운 것은 아마 없으리라. 하지만 그 무슨 아이러니인지,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기가 겁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안온하게 대중과 한통속이 되거나 친구들 하는 대로 따라 하기를?결국 그게 그거지만?더 좋아한다. _ p.70(마스네)
하지만 순수한 프랑스 전통은 라모의 작품에 있다. 그의 작품에는 섬세하고 매혹적인 정감,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는 표현, 레치타티보에서의 엄격한 낭독이 있다. 무엇보다 독일적인 심오한 척하기나 힘을 잔뜩 준 과장이 없다. 성급하다 못해 숨이 가쁜 설명, 가령 “당신들은 특별한 바보 집단입니다. 애초에 달이 치즈로 되어 있다고 믿지 못하면 어차피 아무것도 이해 못할 겁니다” 따위가 없다. 그럼에도 프랑스 음악이 너무 오랫동안 이 투명한 표현, 이 정확하고도 응축된 형식, 프랑스적 재능의 특별하고도 중요한 특질을 멀리하고 배신의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이 애석하다. _ p.81(라모)
바그너의 예술에는 추종자들에게 돈 많이 드는 순례와 수수께끼 같은 의례를 요구한다는 성가신 면이 있다. 나도 ‘예술이라는 종교’가 바그너에게 특히 각별한 이상 중 하나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대중의 상상력을 분리해내고 붙잡아놓기에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는 점에서, 바그너는 옳았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종교’가 ‘사치라는 종교’ 비슷하게 잘못 돌아가면서부터 돈은 없지만 열의는 차고 넘치는 많은 이들이 소외되었다……. 이러한 배타주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는 프랑스 음악감상회는 결국 가장 혐오스러운 것, 즉 ‘사교계 예술’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_ p.100-101(리하르트 바그너)
예술이 군중에게 쓸모없음을 솔직히 인정하자. 그렇다고 해서 예술이 엘리트?군중보다 어리석을 때가 많은?를 더 잘 표현한다는 말은 아니다. 예술이란 잠재적 아름다움이 자기 때를 만나 은밀하고도 치명적인 힘으로 확 피어나는 것이다. 군중에게 물구나무로 걸어가라고 요구할 수 없듯이, 아름다움을 사랑하라고 명령할 수는 없는 법이다. _ p.135(구노)
무엇보다도, ‘딜레탕트 잡아끌기’에 불과한 체계들을 삼가자.
문명이 몰고 온 무질서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아니 아직도, 숨 쉬는 법을 배우듯 자연스럽게 음악을 배우는 매혹적인 사람들이 있다. 바다의 영원한 리듬,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정성스레 귀 기울여 듣는 오만가지 미세한 소리들, 이것이 그들의 음악학교다. _ p.151-152(취향에 대하여)
사실, 음악은 진정으로 존재하지 않을 때마다 ‘어려워졌다.’ 여기서 ‘어려움’이란 음악의 빈곤을 감추려는 병풍에 지나지 않는다. 음악은 하나뿐이요, 그 음악은 존재의 권리를 자기 안에 품고 있다. 그 음악은 왈츠의 리듬을 탈 수도 있고?심지어 카페 콩세르에서 울려 퍼질 수도 있겠다?교향곡의 구조를 취할 수도 있다. 좋은 취향은 대개 왈츠 음악 쪽에 있고 교향곡은 번드레한 허울로 형편없는 알맹이를 힘겹게 감출 때가 많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면 안 되나? _ p.153(취향에 대하여)
작가정보
저자(글) 클로드 드뷔시
저자 클로드 드뷔시는 프랑스의 작곡가. 파리 근교의 생 제르맹 앙 레Saint-Germain-en-Laye에서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1871년, 쇼팽을 사사했다고 알려진 피아니스트 마리 모테Marie Maut? de Fleurville 부인에게 주목받아 본격적으로 재능을 키우게 된다. 이듬해인 1872년, 열 살의 나이로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며 그 당시 프랑스 음악계 유망주의 전형적인 코스를 밟는다. 1883년에는 칸타타 〈전투사Le Gladiateur〉로 로마대상(Prix de Rome) 2등상을, 그다음 해에는 역시 칸타타 형식의 〈방탕한 아들L’enfant Prodigue〉로 1등상을 수상해 이후 4년간 로마에 유학하며 여행과 작곡을 병행하지만, 실제로 드뷔시는 이 제도에 매우 회의적인 입장이었다고 전해진다. 파리로 돌아와 스테판 말라르메St?phane Mallarm?(1842-1898)의 살롱에 출입하며 상징파 시인 및 인상파 화가들과 가깝게 지낸다. 이때의 교류가 바탕이 되어 인상주의 음악의 시조로 우뚝 서게 되는데, 말라르메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관현악곡 〈목신의 오후 전주곡Pr?lude ? l’Apr?s-midi d’un Faune〉이 대표적이다. 1888-1889년경 당시의 많은 음악가들처럼 한때 바그너 음악에 심취해 바이로이트 축제에 드나들었으나, 서서히 이 대가의 음악에 의문을 품으며 반反바그너적 성향으로 돌아서게 된다.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as et M?lisande〉는 바그너의 영향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음악적 표현을 시도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말인 1918년, 직장암으로 사망하였으며 현재 파리의 파시 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역자 이세진은 서강대학교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철학과 프랑스문학을 공부했다. 전문번역가로 일하면서 《내 친구 쇼팽》, 《음악의 기쁨》(전4권), 《음악의 시학》,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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