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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늙은 시인의 사부곡

임상갑 지음
불교문예출판부

2024년 05월 0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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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pdf (4.29MB)
ISBN 9791192139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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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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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갑 시인의 시집 『어느 늙은 시인의 사부곡』이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풍등』 『감포에는 촛불 하나 밝히셨는가』에 이어 세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호스피스 병동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보고 “병동 침대 위에 햇빛이 한 줌 엎질러져 있다”(「상속」)고 희망 한 줌을 애써 발견한다.
그러나 그 긴 시간을 끌고 달리던 아버지는 멈추게 된다. “큰 딸의 양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누워/ 댓잎 같은 소리로 숨을 고른다/ 큰아들은 옆에서 잔잔하게 기타를 연주하며/ 가시는 길 무섭지 마시라며 운다”(「어느 늙은 시인이 사부곡」).
누구나 보내는 사람이 어느 날 가는 사람, 멈추는 사람이 되어 삶이 상속되기 마련이다. 이런 삶의 굴레 속에서 시인은 “죽음과 함께 걸어가는/ 긴 꿈에서 깨어나 허공 되는 날/ 실체가 없고 아무것도 아닌,/ 상상으로도 표상되지 않는,/ 그것을/ 나는 신이라 부르겠네(「허공 되는 날」)”라고 말한다.
임상갑 시집은 전체적으로 삶의 진솔한 면면들을 살펴볼 수 있고, 삶과 죽음 그리고 그 너머까지 생각하게 하는 시집이다.
차례

시인의 말

1부

배추벌레의 서사
거미줄
대놓고 말은 못하겠고
이해 불가
슬픈 것들아!
새벽닭이 울면
종을 알 수 없는 생물에게
하늘이 없다
바람 불고 비 오고 해 나고
갈 곳 없는 영혼
자벌레
종놈
그 분이 거居 할 곳은
살아보니


2부

구안와사 1
구안와사 2
구안와사 3
산지기 그녀
새벽 손님
신비
잃어버린 기억과 시간들
어느 늙은 시인의 사부곡
소멸
몰락
푸석거리는 보리밥처럼
상속
그 집에는 귀신이 산다
묵은 언어와 행위들
달이 빛난다 별이 반짝인다
2023년 그 여름


3부

어느 슬픈 별 이야기
북극성 저 너머 새로운 집을 찾아
구름도 사고 바람도 사고 향기도 사고
기억
달 떠오르면
허공 되는 날
늙었다는 것
비구니 스님의 연정
못자리
농사
무게
가뭄
무지랭이의 부황 뜬 하루
그냥저냥 살 걸 그랬어


4부

小路네 집
벚꽃 핀 봄밤
생명
머리와 가슴이 나누는 대화
도깨비바늘의 편지
구절초
가을 바다
어리연
속노란 고구마
존재
책값
연蓮
개복숭아
시가 오지 않는 날은
여뀌

■ 작품론 | 하늘이 없는 시대 하늘 보기 |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배추벌레의 서사


자잘한 새 소리에도
급하게 물렁뼈를 껴안으며
처마 끝에 잘 못 매달린 달처럼 위태롭다
애벌레가 배춧잎의 파란 피를 빨며
잎사귀에 구불구불 서사를 써내려 가는 것은
나비가 되는 꿈을 우물거리며
기껏 하늘을 나는 자유를 얻고 싶어서였다

알몸으로 푸른 핏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어떤 때는 막 출가한 스님처럼
잠 못 이루며 뒤척인 때도 있었다
으리으리한 것 따르며 살아야만 했던 서사들을
굵어지고 굽어버린 손마디는 알고 있을까
붉은 피를 씹던 젊음은 가고
휑하니 허물어진 헛간처럼 왕따 당한 듯
뒷켠에서 꾸벅꾸벅 졸며
늑골 속 삐걱거리는 뼈 울음소리 듣는다



어느 늙은 시인의 사부곡


그 긴 시간을 끌고 달리던 당신이 멈췄다
큰 딸의 양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누워
댓잎 같은 소리로 숨을 고른다
큰 아들은 옆에서 잔잔하게 기타를 연주하며
가시는 길 무섭지 마시라며 운다

영혼은 몸을 떠난 지 이미 오래
몸속의 마지막 찌꺼기마저 모두 버린 당신은
90년 긴 세월의 여정을 끝냈다

다음 생은 입 열리고 귀 열리셔서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 원 없이 들으시고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시고 답답해하지 마소서
소망합니다
꼭 다시 뵙기를 소망합니다
그때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몇 날 며칠 밤새우며 이야기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귀하고 귀하신 나의 아버지
부디 가시는 길 편안 하소서
아버지
사랑합니다



허공 되는 날


나에게 아무런 감각도 주지 않는
공간과 시간의 연속은 결국
꿈속으로 빨려 들어간
하루의 끝이었다네

죽음과 함께 걸어가는
긴 꿈에서 깨어나 허공 되는 날
실체가 없고 아무것도 아닌,
상상으로도 표상되지 않는,
그것을
나는 신이라 부르겠네

나도 신이 되겠네



여뀌


짓이겨 물에 풀면 물고기도 기절하고
맛이 매워 귀신을 쫓는다고 역귀라고 불렸다지요
잡초라고 무시해도 꿋꿋하게 뿌리박고
예쁜 꽃 피웁니다
어둡고 추웠던 지난밤 모진 비바람에
다리 아래 개울가 여뀌들이 지쳐 누워 있습니다
비 개인 아침이 오면
안개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맞을 겁니다
그리고 또 씩씩하게 일어납니다

삶이 거칠다고 항거하지 않았습니다
오염된 물 묵묵히 정화하며 살았습니다
밟고 짓이기지만 않으면 독을 풀지 않습니다
삶을 방해한 어둡고 무서웠던 지난밤들을
어떻게든 참고 견디면
여뀌는 참 예쁜 분홍 꽃 피울 겁니다

임상갑 시인의 시는 직설적이다. 현란한 수식어로 아름다움을 과장하거나, 중층의 비유나 이미지로 복잡한 사유를 가장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는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사유의 경지를 보여준다. 어찌 보면 조금 투박해 보이는 그의 언어가 가진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 힘은 삶의 진정성에서 온다. 삶의 현장이 그의 언어가 되고 시가 된다. 그렇다고 임상갑 시인의 언어가 이런 삶의 현장을 그대로 옮기는 것에 그치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그 현장에 없는 ‘하늘’을 꿈꾸는 곳에서 시인의 언어가 만들어 진다. 하늘이 없는 곳에서 하늘을 생각하고, 하늘이 아닌 곳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그래서 암울한 현실을 허공으로 만들고 절망을 허무로 승화한다. 바로 이 허무의 경지가 시인의 희망이고 또한 그의 시 그 자체이다.
―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작가정보

저자(글) 임상갑

충남 공주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6년 《불교문예》 등단
시집 『풍등』 『감포에는 촛불 하나 밝히셨는가』
강화 검도 관장

sorol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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