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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게이하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 임슬애 옮김
휴머니스트

2024년 05월 03일 출간

종이책 : 2024년 04월 2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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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0.96MB)
ISBN 979117087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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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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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적인 지방주의 작가이자 퓰리처상을 수상한 윌라 캐더의 초역 소설. 피아니스트가 꿈인 ‘루시’가 고향을 떠나 도착한 시카고에서 국제적으로 유명한 성악가였던 ‘서배스천’의 보조 연주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얼음층을 깨부수고 나가려는 루시. 깊고 우울한 호수인 서배스천. 날씨는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구는 돌산 같은 ‘해리’의 삼중주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한때 뜨거웠던 삶이 지나가고 그 위에 쌓이는 기억과 망각을 촘촘하게 엮어내며, “동경하기를 그만두고 기억하기를 시작하자 삶이 시작되었다”라는 캐더의 유명한 문장을 곱씹게 한다. 쌓여가는 시간 위로 희미해지는 삶을 기억하는 일의 숭고함을 부드럽게 보여주는 캐더의 마법 같은 능력도 엿볼 수 있다.
제1부 _007
제2부 _149
제3부 _209

해설 | 깨진 빙판으로 가라앉은, 한 시절 뜨거웠던 삶들 _237

부단히 움직이는 자그마한 루시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춤을 추고 스케이트를 타고 앞만 바라보며 발 빠르게 걸어가던 루시, 꼭 둥지로 돌아가는 새처럼.(9쪽)

루시는 마냥 행복하고 천진한 시골 여자애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지향하는 여자였다.(28쪽)

추위를 외투 삼으면 그만이었다. 추위 한복판에서 따뜻한 몸으로 깨어 있는 자기 자신을, 들장미쯤은 한순간에 얼려버리는 찬바람 속에서 식지 않고 흐르는 피를 감각하는 것이다.(43~44쪽)

호수에서 불어오는 날카로운 바람이 루시 안에 뜨거운 생의 열정을 불어넣었다. 불꽃을 마시는 듯했다.(54쪽)

루시는 추운 거리를 걷는 게 이 세상 최고의 기쁨인 것 같은 얼굴이던데.(57쪽)

합창단 사람들은 음악에서 무언가를 톡톡히 얻어내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에게 음악은 삶을 버티게 해주는 동력이지, 그저 대화 소재가 아닌 거야. 배관공이든 양조업자든 은행원이든 재단사든, 노래에서 중한 의미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계속하지 못해요.(75쪽)

세상의 작동 방식이 행복을 반대했다. 행복이 루시에게서 달아났다. 머릿속에 있던 매혹적인 멜로디를 잊어버린 듯, 그 분위기와 그것을 들었을 때 느끼던 기쁨은 기억나지만 정확한 선율은 도통 떠올릴 수 없을 때처럼 루시는 행복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루시는 오늘 같은 삶, 다른 종류의 삶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110쪽)

루시는 어린아이가 띄운 연처럼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바람이 잦아들면 더러운 거리에, 짐마차와 롤러스케이트 옆에 처박히고 마는 것이다.(126쪽)

인생은 짧아. 할 수 있을 때 장미 꽃잎을 그러모아야지. 분명 루시도 조금 모았겠지.”
루시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조금요.”(173쪽)

때로는 사람들이 실망스럽고, 때로는 나 자신이 실망스러워. 어쨌든 중요한 건 계속 살아가는 거란다. 루시는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봄에 힘든 일이 있었다고 낙담하면 안 돼.(173쪽)

루시는 무언가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듯한, 곧 추락하거나 날아오를 듯한 기분이었다.(190쪽)

기억에 관한 소설이자
기억 속에서 전개되는 소설

피아니스트가 꿈인 루시는 고향을 떠나 시카고에 도착한다. 우연히 국제적으로 유명한 성악가였던 서배스천의 공연을 보고 매료되어 그의 반주자가 되는 데까지 성공한다. 그때 서배스천은 생을 향한 열정이 식어 남몰래 무기력과 환멸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생의 기쁨이 발에” 있는 듯한 루시의 빛나는 젊음에 매료되고, 점차 둘은 인간적인 존경을 넘어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한편 고향에서 가장 부유했던 해리 고든은 루시에게 청혼하지만 루시는 “무언가를 지향”하는, 뿌리 박히느니 “뽑혀서 내쳐”지겠다는 마음을 품은 여자였다. 심지어 그때는 이미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바람 같은 장난이라고 여기는 해리를 매몰차게 거절한다. 얼마 후 유럽 투어를 떠난 서배스천이 그곳에서 불의의 사고를 맞닥뜨리고, 실의에 빠진 루시는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마을에는 루시를 향한 이상한 소문이 퍼지게 되는데……. “다른 생과 감정”을 암시하는 별에 손을 뻗으며 압도되었던 루시는 “즐거운 것을 향해 서두르듯” 걸었지만 이제는 “도망치려고, 아니면 그저 몸을 혹사하려고” 걷는다.
루시는 다시 삶을 갈망할 수 있을까? “저 먼 곳의 아득한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어 붙잡으려 하는 열렬함을 되찾을 수 있을까?

만약, 만약 생 그 자체가 연인이라면? (……) 아, 이제는 알았다! 루시는 가져야만 했다. 도망칠 수 없었다.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그의 정체성을 이루는 모든 것을 손에 넣어야 했다.(192쪽)

《루시 게이하트》는 기억에 관한 소설이자 기억 속에서 전개된다. 하나의 사건과 삶을 주도적으로 서술하는 화자가 없으며, 대부분 화자는 과거와 화해하는 데 성공하거나 실패하고,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기도 한다. 이때 발생하는 것이 삶과 이해의 시간차다.
서배스천은 모퉁이만 돌면 생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되살아나리라 믿지만 과거에 매몰되어 있다. 자신이 “무언가를 잃어버릴 운명”이라는 것을 씁쓸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나아가고 있는 루시를 자꾸만 불러세운다. 해리는 먹고사는 문제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쪼그라든 현재를 살아간다. “신변과 재산에 일어난 변화”가 아닌 다른 것으로 인생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루시에게도 자신과 함께 현재에 눌러앉자고 종용한다. 반면 루시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 다른 생과 감정”을 갈망하며 손을 뻗는 사람이다. 잠재적으로 고갈될 수 없는 미래를 헤쳐나간다. 사회적으로 지위를 얻으려면 ‘남자를 통과’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지만 결코 “자신을 짓밟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런 무례라니, 이런 모욕이라니, 상상도 못 했다! 루시는 젊고 튼튼했으며, 세상이 자신을 짓밟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작정이었다.”(205쪽)

날씨와 기억
과거를 기억하려는 태도로서의 미래

이런 인물들을 통해 캐더는 과거를 소거하는 것보다 기억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들의 운명은 날씨에 크게 영향받는다. 루시는 “추위를 외투 삼으면” 된다고 말하며 날카로운 바람이 “뜨거운 생의 열정을” 불어넣는다고 느낀다. 꽁꽁 언 강을 스케이트로 질주할 때 생기가 넘치며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이는 서배스천과 지냈던 시카고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여름은 연습실을 내내 비워야 해서 피아니스트로서 성장하지 못하고, “금방 지나갈 테니까”라고 위로해야 하는 계절이다. 초록빛을 짙게 물들이며 생장하는 여름이 아니라 겨울에 더 강하고 단단한 루시가, 다시 돌아간 고향에서 맞닥뜨리는 것이 꽁꽁 얼지 못해 ‘갈라지는 빙판’이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루시는 “추운 날에는 살아 있다는 감각이 강렬”해진다고 말했다. 이를 서배스천에게 적용시킨다면, 한때 꽁꽁 얼어붙어서 살아 있다는 강렬한 감각을 지녔으나 이제는 생을 향한 열정을 잃어버려 깊고 우울한 호수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배스천은 바닥까지 긁어모으며 과거를 추억하지만 떠오르는 것은 후회뿐이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면 과거의 자신으로서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으리라”라고 생각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자신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렇게 서배스천은 자신이 그토록 오래 들여다보면 호수 그 자체가 되었다.
해리의 삶에 날씨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해리는 바로 그 이유로 날씨와 깊게 연결된다. 날씨에 깊이 감응했던 루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야 했던 그에게 루시는 “수수께끼”이자 “마음속 어둠”이었으며, 종국에는 자신이 “종신형”을 받았다고 믿게 하는 대상이었다. 번역가 임슬애는 해설에서 해리의 삶을 “루시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며 무지를 통과하는 사이 평생의 사랑은 달아나버렸고, 남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자기 청춘의 편린뿐이라는 사실”임을 자각하는 과정이라고 말하면서도 기억하기를 멈추지 않는 태도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캐더 역시 해리가 소설을 끌어가는 대목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과거를 기억하는 과정이 미래라는 것을 깨달은 해리는 비로소 평생의 수수께끼였던 과거와 화해하고 현재로 돌아온다. “동경하기를 그만두고 기억하기를 시작하자 삶이 시작되었다”라고 했던 캐더의 유명한 문장을 상기해야 할 때가 지금일까.

지나간 시대를 부드럽게 재구성하는
캐더의 마법적 능력

《루시 게이하트》를 집필하던 당시 캐더는 자기 삶의 ‘청춘’이 종언을 맞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대표작을 집필하며 14년간 살았던 아파트에서 지하철 공사 때문에 나오게 되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여의었으며, 친한 친구가 신장병을 앓기 시작했다. 덧없는 세월의 무자비함이 지나간 뒤 캐더의 손에 남은 것은 상실이 아니었을까. 이를 움켜쥐고 집필한 소설이 《루시 게이하트》다. 하지만 캐더는 ‘명랑한 마음’이라는 뜻의 ‘루시 게이하트’를 주인공으로, 심지어 책 제목으로 내세우면서 상실을 껴안으며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생 그 자체가 연인”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걸어갈 준비를 하는 루시처럼. 구하고 싸우는 와중에 “그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 루시처럼.
시카고를 활보하던 루시는 그곳에서 자기만의 지도를 갖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길을 찾아갈 수 없는, 루시가 포착해낸 아름다움이 그려진 지도였다.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탁월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문단을 읽고 책을 덮는 순간, 당신만의 빛나는 기억의 편린을 가지게 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윌라 캐더

Willa Cather | 1873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다. 1884년에는 훗날 ‘윌라 캐더’라는 이름과 동의어가 된 레드 클라우드 마을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혹독한 기후와 싸우며 개척 생활을 하는 이주민과 함께 보낸 10년간은 윌라 캐더의 작품에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네브래스카주의 주도 링컨에 위치한 주립 대학을 다닐 때는 학교신문의 편집장, 주립 저널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뉴욕의 《매클루어스 매거진》에서 편집장으로 일했다. 그때도 여전히 많은 소설을 발표했지만 사무실을 떠나 작가로서 고유한 목소리를 개발하라는, 친구이자 소설가 세라 온 주잇의 조언에 따라 서른여덟 살 생일을 앞두고 전업 작가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루시 게이하트》는 기억을 다루며 기억 속에서 전개되는데, 이 책을 집필할 때 캐더 역시 상실의 계절을 지나고 있었다. 지하철 공사로 대표작들을 썼던 집을 떠나게 되었으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여의었다. 그렇게 출간된 《루시 게이하트》에서 캐더는 한 시절 뜨거웠던 삶을 기억하는 일의 숭고함을 섬세한 필치로 다뤘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는 《오, 개척자들!》(1913), 《종달새의 노래》(1915), 《나의 안토니아》(1918),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1927) 등이 있으며, 1923년에는 사라져가는 개척자 정신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우리 중 하나》(1922)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1947년 미국 뉴욕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고려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한영 번역을 전공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숨을 참던 나날》, 《우리가 있던 자리에》, 《영광》, 《더 로스트 키친》, 《가장자리》,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 《두 번째 장소》, 《모든 열정이 다하고》, 《잠 못 드는 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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