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환상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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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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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으로 점철된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은 사람들과 나라를 버린 사람들이 뒤섞여 살던 대도시 경성. 화신백화점 뒷골목엔 베일에 싸인 채 존재하던 환상극장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1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연극 〈카르멘〉이 또다시 공연되는데….
《경성 환상 극장》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경성은 모던걸과 모던보이로 가득한 화려한 낮의 모습이면서, 조국을 뺏긴 슬픔과 연인을 잃은 절망이 뒤엉킨 낯설고 어두운 밤의 도시다.
10년 전 그날, 경성 뒷골목의 ‘환상극장’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10년 후 오늘, ‘환상극장’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좋아하는 척⦁전효원 077
무대 뒤에서⦁장아미 143
사랑의 큐피드⦁김이삭 189
빛이여 빛이여⦁한켠 241
작가의 말 289
프로듀서의 말 305
아악. 아아악.
나는 벌떡 일어섰다. 오늘이야말로 저 소리를 누가 내는지 꼭 찾고야 말겠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현관문을 나섰다. 조심스럽게 복도 계단을 올라가 3층으로 갔다. 그리고 302호 앞으로 갔다. 우리 집이 202호이니 302호면 바로 윗집이다. 조용하던 복도에 다시 여자 비명 소리가 들렸다. 늘 잠겨 있더니 오늘은 이상하게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나는 302호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비쩍 마르고 긴 머리칼이 쑥대머리가 된 여자 하나가 이 더운 여름날에 다 낡은 모직 스웨터와 긴바지를 입고 엎드려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p. 43 〈경성의 카르멘〉
“이렇게 희수 씨의 품에 안겨 있는 김에 고백하자면, 그 말씀도 아예 틀린 건 아닙니다. 저로 말하자면 희수 씨의 마음을 얻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죠. 골목에서 포스터를 붙이는 모습을 봤을 때부터요. 아니 어쩌면 보헤미안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희수 씨는 어떤가요? 저를 그저 좋아하는 척했을 뿐인가요? 모든 게 연기였습니까?”
“말 좀 그만하세요.”
“아니, 얘기를… 흡.”
희수가 엽에게 입을 맞추었다. 날카로운 쇠 맛이 났다. 희수는 흡혈귀의 영원한 사랑에 관한 전설을 떠올렸다. 긴 입맞춤이 끝나고 엽이 말했다.
“웨딩드레스는 보헤미안에서 맞추는 게 좋겠지요?”
희수가 콧등을 찌푸렸다.
엽이 웃음을 터뜨렸다.
경성의 밤이었다.
p. 136 〈좋아하는 척〉
박도진은 유월회에 무대장치부로 합류했다고 했다. 박도진은 극단 측에서 전하는 몇 가지 지시 사항을 알려 주었고 지설하에게서 무대 뒤에서 준비된 소품을 넘겨받았다. 그들의 재회는 곧 마무리됐다. 모자를 쓰며 박도진이 인사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설하는 묻고 싶었다. 뭘 부탁드린다는 거죠? 도대체 뭘요?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친 손으로 작업대 귀퉁이를 지그시 내리눌렀을 뿐이었다.
지설하는 자신이 무사할 것임을 직감했다. 이 작은 세계에 스스로를 감금시키고 있는 한 무엇도 그를 무너뜨릴 수 없을 것임을. 상처 입힐 수도 없을 것임을.
이 순간 지설하의 마음은 한 가지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사랑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 그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감정일까. 그 답을 지설하는 알지 못했다.
p. 170 〈무대 뒤에서〉
“저기, 란주 씨는 어디로 갔나요?”
“아, 란주 씨요. 란주 씨는 환상극장에서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답니다. 그래서 일을 그만뒀지요. 아무래도 새로운 티켓걸을 찾을 때까지 제가 대신 일해야겠네요.”
“란주 씨가 일을 그만뒀다고요?”
“티켓걸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내 주세요.”
“예? 네, 알겠습니다.”
원경은 속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갑작스레 일을 그만둘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요 며칠 이상하긴 했지만요. 매표소에서 한참을 울지 않나, 앞에는 젖은 신문지까지 수북이 쌓여 있지 않나. 그날 공연을 보러 왔던 관객 대다수가 그녀의 눈물을 보았을 겁니다.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p. 237 〈사랑의 큐피드〉
“우리는 언제라도 죽을 수 있게 의상을 갖추고 분장을 하고. 언제 죽을지 몰라 진심을 말하지 않고. 우리, 연기를 하자. 서로 배역을 바꿔서. 나는 그때의 그. 너는 그때의 나. 나는 주연, 너는 조연. 나는 죽고, 너는 입이 없는 내게 모든 대사를 주고 조명을 끄고 어두운 무대 뒤로 퇴장해. 나를 구해 줘 죽여 줘 구해 줘. 커튼콜이 끝난 후에.”
p. 279 〈빛이여 빛이여〉
“환상극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경성을 무대로 펼쳐지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다섯 편의 미스터리 로맨스 소설
안전가옥 옴니버스 픽션 시리즈 FIC-PICK의 열 번째 책. 《경성 환상 극장》은 1920년대 경성의 한 극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다섯 편의 미스터리 로맨스 소설을 묶은 ‘이어 쓰기’식 앤솔로지다. 장르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최지원, 전효원, 장아미, 김이삭, 한켠 작가가, 연극 〈카르멘〉의 공연을 준비하는 극단 유월회의 단원들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환상극장을 중심에 두고 피카레스크식 구성으로 풀어냈다.
어둠으로 점철된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은 사람들과 나라를 버린 사람들이 뒤섞여 살던 대도시 경성. 화신백화점 뒷골목엔 베일에 싸인 채 존재하던 ‘환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극장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1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연극 〈카르멘〉이 또다시 공연되는데….
《경성 환상 극장》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경성은 모던걸과 모던보이로 가득한 화려한 낮의 모습이면서, 조국을 뺏긴 슬픔과 연인을 잃은 절망이 뒤엉킨 낯설고 어두운 밤의 도시다. 하지만, 셈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은폐된 거짓 속에서도 기어코 진실을 찾아내는 사람들의 희생과 사랑을 통해 우리는 그 시절의 경성을 새롭게 감각하게 된다.
10년 전 그날, 경성 뒷골목의 ‘환상극장’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10년 후 오늘, ‘환상극장’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사랑 이야기로 가득한 극장, ‘환상극장’
사랑에 대한 의심과 사랑에 대한 회한과 사랑에 대한 황홀과 사랑에 대한 그리움까지. 《경성 환상 극장》은 누가 뭐라 해도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물론, 그 ‘사랑’은 조국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연인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다. 극단 ‘유월회’가 준비 중인 연극 〈카르멘〉처럼 ‘붉은 의상을 입은 여배우가 노란 조명을 받고 푸른 그림자를 드리우는 사랑 이야기’일 수도 있다. 〈사랑의 큐피드〉의 ‘상희’와 ‘재옥’도, 〈좋아하는 척〉의 ‘희수’와 ‘정엽’도, 〈무대 뒤에서〉의 ‘지설하’와 ‘이환희’도, 〈사랑의 큐피드〉의 ‘란주’도, 〈빛이여 빛이여〉의 ‘송혜화’와 ‘비아’는 모두 소설 속에서 저마다의 사랑을 위해 애쓰고 분투한다.
하지만, 《경성 환상 극장》 속 인물들에게 사랑은 여전히 어렵다. “감정에 휘둘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사랑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무대 뒤에서〉)라며 사랑을 애써 부인하기도 하고, “이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동경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박도진일까. 아니면 그가 그린 그림?”(〈무대 뒤에서〉)이라며 사랑 앞에 좌절하기도 한다. “짝사랑이 이렇게 무섭”(〈사랑의 큐피드〉)다는 것도 알게 되고, “사랑에 눈이 멀어 가지구”(〈경성의 카르멘〉) 친구의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다가, “미안하지만, 저는 상희 씨를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경성의 카르멘〉) 같은 못난 남자의 헛소리를 듣게 되기도 한다. 물론, “사랑은 집시 아이, 제멋대로지요. 당신이 싫다 해도 저는 좋아요”(〈좋아하는 척〉) 하고 말하는 게 여전히 사랑이라고 믿기도 하지만.
우리는 조국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 사랑을 위해서 죽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어렵다. 그렇지만, 사랑 소설을 읽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큐피드가 쏜 화살에 맞으면 제일 먼저 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경성 환상 극장》을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환상극장 극장주의 심복인 동구의 말을 빌려 여기에 질문 하나를 적는다. “여러분은 환상극장에서 이루고 싶은 사랑이 없나요?” 답변은 티켓값과 함께 환상극장 매표소에 꼭 제출하시길.
“왜요, 또 무슨 소리가 들립니까?” (최지원, 〈경성의 카르멘〉)
‘상희’는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가정교사 일을 하며 작가의 꿈을 키우던 중 운명처럼 ‘호진’을 만나 결혼한다. ‘호진’은 경성제일고보 3학년 때 등단한 천재 작가이자, 경성제대 법학과를 수석 졸업한 재원으로, 극단 ‘유월회’의 공연에 극작가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선남선녀 부부의 일상에 작은 빗금이 가기 시작한다. ‘상희’는 집에 혼자 있을 때마다 한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듣게 되지만, ‘호진’은 그녀가 너무 예민한 탓이라고만 말해 억울하기만 하다. ‘호진’은 환상극장 극장주의 변덕으로 〈살로메〉에서 〈카르멘〉으로 바뀐 새 연극의 극본을 다시 써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야 된다. 결국, 참다못한 ‘상희’가 비명 소리를 내는 여자를 찾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아팟-토 위층으로 올라가게 되고… 그곳에서 ‘상희’가 마주한 진실은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송두리째 뒤흔들게 되는데….
“사랑은 집시 아이, 제멋대로지요. 당신이 싫다 해도 저는 좋아요.” (전효원, 〈좋아하는 척〉)
‘희수’는 어엿한 극단 ‘유월회’ 소속의 배우다. 비록 앞에 단역이란 수식어를 붙여야 하지만. ‘희수’도 처음 경성에 올라올 땐 알록달록한 환상에 한껏 취해 있었다. 눈부신 조명 아래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서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는 주인공. 하지만 현실에서 ‘희수’는 포스터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단역배우일 뿐이다. 연극 〈카르멘〉의 흥행을 바라며 포스터를 붙이던 ‘희수’ 앞에 주인공 ‘카르멘’의 대사를 읊으며 한 젊은 남자가 나타난다. 십중팔구 주인공 ‘재옥’과 친해지기 위한 징검다리로 자신을 이용하려는 거라고 생각한 ‘희수’는 쌀쌀맞게 남자에게 작별을 고하고 홱 돌아선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환상극장에서 ‘희수’는 ‘미스타 정’이란 예비 투자자와 마주친다. 그런데, 웬걸? 아까 만난 젊은 남자가 아닌가? 게다가 뭐? 〈제국일보〉의 아들내미라고? 설상가상, ‘미스타 정’은 ‘희수’와 함께 다니는 조건을 달아서 투자를 하겠다고 말하는데….
“나는 사랑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 (장아미, 〈무대 뒤에서〉)
‘보헤미안’은 서양식 의복을 취급하는 양복점이다. 규모는 작지만 입소문을 타 일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지설하’ 혼자 가게를 운영한 지도 2년이 지났다. ‘지설하’는 작업대 앞에서 무심코 한 남자를 떠올렸다. 물감이 튀어 있던 소매와 구겨진 손수건, 마디가 굵은 손가락과 숫기 없는 말투, 더없이 다정하던 미소. ‘이환희’가 환상극장에 드나들게 된 건 ‘지설하’가 유월회에서 선보이는 연극의 의상 일을 맡으면서부터였다. 무대 의상을 전달을 끝낸 이환희는 계단 아래 문으로 숨어들었다. 한 남자를 훔쳐보기 위해서였다. 방 한가운데엔 팔뚝에 물감을 묻힌 박도진이 〈카르멘〉의 무대에 걸릴 배경막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때 커튼이 홱 젖혀지며 박도진의 약혼녀인 유현의 얼굴이 이환희를 가로막았다. 하마터면 도둑으로 몰릴 상황에서 박도진이 유현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 순간 이환희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박도진이 입은 셔츠의 가슴 주머니, 거기에는 가장자리에 복잡하고 섬세한 자수가 놓인 행커치프가 꽂혀 있었다. ‘이환희’는 무엇을 본 것일까? ‘지설하’와 ‘이환희’, ‘유현’과 ‘박도진’, 그리고 ‘보헤미안’과 ‘유월회’ 사이엔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사랑에 빠졌다고요?” (김이삭, 〈사랑의 큐피드〉)
‘란주’는 환상극장의 티켓걸이다. 어느 날 극장주의 심복인 ‘동구’가 ‘란주’에게 극장주의 명함을 건네면서 알렸다. “극장주의 명이에요. 앞으로 이 명함을 가지고 온 사람들을 발코니석에 앉히세요.” 그리고 그날부터, 극장주의 명함을 들고 홀로 극장을 찾아왔던 이들이, 같은 날 극장을 찾아왔던 또 다른 이들과 연인이 되어서 극장에서 나갔다. 극장주는… 사랑의 큐피드인 걸까? 물론, ‘란주’에게도 눈과 코에 콕 박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란주’는 〈카르멘〉의 첫 공연 날에 그에게 고백을 하리라 마음먹는다. 하지만, 하필 그날 그가 극장주의 명함을 들고 매표소를 찾아오는데….
“나를 구해 줘 죽여 줘 구해 줘 죽여 줘 구해 줘 죽여 줘….” (한켠, 〈빛이여 빛이여〉)
〈빛이여 빛이여〉는 다른 네 편의 소설과는 시간대를 달리한다. 환상극장의 10년 전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환상극장의 개관작인 연극 〈카르멘〉의 첫 공연 날. ‘카르멘’ 역을 맡은 주연배우 ‘송혜화’는 극 중에서 정해진 각본에 따라 연기를 하다가 〈제국일보〉 정 사장을 암살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리고 ‘송혜화’는 같은 열혈단 단원이자 유월회의 스태프인 ‘비아’에게 자신이 정 사장을 쏘고 나면 이어서 자신을 쏘라고 부탁하는데…. ‘비아’는 정말 사랑하는 ‘송혜화’를 쏠 수 있을까?
작가정보
평범한 시민이자 번역가, 그리고 소설가. 지워진 목소리를 복원하는 서사를 고민하며 역사와 여성 그리고 괴력난신에 관심이 많다. 《한성부, 달 밝은 밤에》, 《감찰 무녀전》,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를 썼고, 여러 앤솔로지에 참여하였다. 《한성부, 달 밝은 밤에》는 드라마화 계약을 체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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