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사회생활
2024년 02월 0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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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88962620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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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다른 식물, 미생물, 동물, 인간과 맺는
친밀하거나 적대적인 모든 관계
두 식물학자가 그리는
식물들의 거대하고도 경이로운 네트워크!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보호해야 하는 식물의 사회생활
다른 생명체를 이용하는
다양하고도 독창적인 식물의 생존법
202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제니퍼 다우드나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두 과학자는 유전자를 잘라 새로운 작물을 만들거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크리스퍼 카스9’ 원천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곰팡이, 해충, 가뭄에 견디는 식물을 개발하게 했고, 새로운 암 치료법의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과학계는 생화학, 유전학, 계통학 분야 기술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DNA 시퀀싱 기술과 대사물질을 분석해 숨어 있는 돌연변이체를 찾아내는 메타볼로믹스 기술도 눈부시게 발전 중이다. 과학계는 왜 이런 식물을 활용하는 기술에 주목하는 것일까?
식물은 지구 생태계를 만들어낸 기반이다. 식물들은 나름의 사회생활을 통해 경쟁하고, 협력하고, 방어하며 살아남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식물들의 생존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다른 생물과 관계를 맺으며 식물의 내부, 외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알고 있는 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류에게도 분명히 유용한 정보다. 식물에 관한 꾸준한 연구로, 현재 인류는 식물과 여러 생명체가 맺어온 이 관계가 어떤 생화학물질을 분비하는지, 어떤 유전자가 관여하는지, 어떤 진화적 단계를 거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인류는 이를 이용해 새로운 사회생활 방법과 생존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곧 모든 생명체가 조화롭고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힌트를 제공할 것이다.
1부 식물과 이웃 식물의 사회생활
1장 식물들의 협조
식물은 서로 연결되어 돕는다 | 식물은 모두가 병충해의 보초를 선다 | 유모 역할을 하는 식물 | 식물도 친족을 알아본다? | 식물이 친족과 남을 구별한다는 분자적 증거
2장 식물들의 경쟁
빛을 얻기 위한 경쟁 | 빛을 가려서 토착종을 밀어낸 외래침범종 | 식물은 이웃 식물보다 키가 커야 유리한가? | 빛을 얻기 위해 걸어다니는 야자나무? | 식물도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경쟁한다 | 내 옆에 오지 마: 타감작용 | 타감작용으로 토착종을 밀어낸 외래종 | 타감작용의 응용
3장 식물들의 기생
남의 영양분을 빨아먹는 기생식물 | 농업에 큰 피해를 주는 기생식물 스트리가 | 스트리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연구 | 기생식물이 붙지 못하게 하려는 숙주식물의 작전
2부 식물과 미생물
4장 미생물과 공생하는 식물
식물과 미생물의 공생의 기원 | 식물의 생장에 도움을 주는 미생물 | 식물-미생물총의 형성 | 식물과 곰팡이의 공생: 균근의 형성 | 식물이 곰팡이와 공생하며 잃는 것과 얻는 것? | 식물과 질소고정박테리아의 공생 | 뿌리혹의 형성과정 | 식물이 뿌리혹을 관리하는 방법 | 뿌리혹에서 일어나는 물질교환 | 질소고정박테리아를 농업에 이용하기
5장 식물과 미생물의 전쟁
미리 준비하는 기본적 방어 | 병균이 침범하였을 때 식물의 대응 | 식물이 병균의 침임을 알아차리는 방법 | 병균의 침입을 알아차린 후에 시작하는 식물의 방어기작 | 식물에 침입하는 병균의 작전
6장 식물은 어떻게 이로운 미생물과 해로운 미생물을 알아보나
공생이 먼저인가 방어가 먼저인가 | 공생균이 식물의 방어기작을 회피하는 방법 | 공생균과 병원균을 구분하는 벼 | 상처가 생긴 때만 병균 민감성을 올리는 방법
3부 식물과 동물
7장 식물과 곤충의 관계
식물의 번식을 돕는 곤충 | 곤충을 속여 꽃가루를 나르게 하는 절묘한 방법 | 식물과 공진화한 개미 | 식물을 먹는 해충과 식물의 전쟁 | 식물의 곤충 방어작전 | 식물이 곤충을 방어하는 방법들 | 곤충에 대항하는 휘발성물질들 | 해충이 서로 잡아먹도록 유도하는 방법 | 식물이 해충을 방어하기 위해 만드는 화학물질들 | 식물의 해충방어의 분자적 기작을 밝히는 방법 | 곤충에 대항하는 식물 단백질들 | 곤충을 막기 위한 위장술 | 곤충의 침입을 막기 위한 염생식물의 방광세포 | 움직여서 곤충을 쫓는 식물 | 곤충이 낳은 알에 식물이 반응하는 기작 | 곤충을 방어하는 데에 얼마나 투자해야 하나? | 곤충이 식물의 방어를 극복하는 방법 | 식물과 곤충의 관계에 관한 지식을 농업에 응용 |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식물 | 식충식물의 기원과 멸종위기
8장 식물과 척추동물의 관계
식물이 먹이고 부리는 초식 척추동물 | 초식동물에 대한 식물의 방어기작 | 초식동물들이 식물의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 | 식물,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삼자관계 | 기후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식물과 초식동물의 관계
4부 식물과 사람
9장 사람이 재배하는 식물인 농작물
식물이 농작물이 되면서 변화한 것 | 농사를 하려면 농약을 쳐야 하는 이유 | 농사를 하려면 비료를 줘야 하는 이유 | 농약과 비료의 문제점 | 농작물에 물을 많이 줘야 하는 이유 | 관개와 관개시설의 문제점
10장 농작물로 개량된 식물에 일어난 유전적 변화
농작물화 과정에서 변화한 유전자들을 찾는 방법 | 농작물화 과정에서 변화한 유전자들의 예시 | 농작물화에 기여한 유전자를 이용하는 방법
11장 농업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
12장 사람들이 만든 지구환경의 변화와 식물
지구온난화와 농업 |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에 따른 식물의 성장 변화 |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와 농업 |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와 식물의 다양성 | 식물의 멸종 속도 | 농작물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 전체 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 대체육은 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될까?
13장 미래의 식물과 사람의 관계
우주에서 식물을 재배할 수 있을까? | 미래에는 어떤 식물을 재배하게 될까? | 외래 유전자를 이용한 우수한 농작물 개발 | GMO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지나친 염려 | 유전자가위 기술과 그 기술의 장래성 |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하여 개량한 작물 | 작물의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연구사례 | 수직농법은 미래농업의 대안인가? | 환경에 좋은 농업이 가능한가?
맺음말
감사의 말
부록: 최근에 발달한 생화학, 유전학, 계통학 분야 기술
참고 문헌
그림 출처
■그러한 실험들의 결과로 이제 우리는 한 식물이 병에 걸리거나 곤충에게 먹히는 경우 그 식물이 주변의 식물들에게 경계경보를 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경계경보의 화학적 정체는 식물이 병충해로부터 공격을 받아 상처가 났을 때 발산하는 여러 가지 방향족 화합물들이다. 이 방향족 화합물들이 공기 중에 퍼지면, 주변에 아직 공격을 받지 않은 식물도 냄새를 맡고, 성장모드에서 방어모드로 전환하여 병충해 피해를 줄인다. 식물 사회에서는 보초가 따로 없고, 모두가 보초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식물 실험을 하는 사람들은 향수 뿌리는 것을 조심하기도 하는데, 향수에 들어 있는 방향족 화합물을 식물이 이웃의 상처 신호로 잘못 인식해서 방어반응을 일으킨다면 실험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30쪽
■자연에서 식물이 빛을 못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옆이나 위에 있는 다른 식물들이 빛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물들은 다른 식물이 위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릴까? 식물들에게도 눈이 있는 건 아닐까? 우리 눈이 빛을 감지하는 것은 눈에 빛을 흡수하는 색소가 있기 때문인데, 식물의 잎에도 빛을 인식하는 여러 가지 색소가 골고루 퍼져 있다. 그렇다면 식물들은 어떤 색을 흡수하는지에 따라 자신이 그늘에 있는지 아니면 햇빛을 바로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걸까? 식물의 잎은 광합성을 하기 위해서 적색광을 많이 흡수하기 때문에, 위에 있는 잎이 적색광을 흡수해 버리면 아래에 있는 잎은 적색광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게 된다. 적색광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아내면 그늘인지를 알 수 있고, 적색광을 흡수하는 색소가 그런 일을 담당한다. 즉, 파이토크롬이라는 푸르스름한 색의 단백질이 적색광을 흡수해서 식물이 그늘을 인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44쪽-46쪽
■사람들뿐만 아니라 개미들도 식물을 재배한다. 남태평양 피지섬의 열대우림에서 개미들은 스쿠아멜라리아라는 착생식물의 종자를 모아서 숙주식물의 나무껍질 아래 햇빛이 잘 비치는 장소에 심는다. 여기서 그 기생식물이 싹 터서 자라나면 개미들은 그 기생식물이 만드는 덩어리줄기의 흡수기관에 똥을 누어서 기생식물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 그렇게 공들여서 키운 기생식물의 덩어리줄기는 개미들의 집이 되는데, 여왕개미 한 마리와 25만 마리의 일개미들이 하나의 덩어리줄기에 산다. 개미들은 기생식물의 종자를 퍼뜨리고, 비료를 주고, 보호해 주며, 기생식물은 개미들에게 안락한 서식처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 두 생명체의 상호작용은 공생이라고 볼 수 있다. 개미들이 농업을 한다고도 말하는데, 이것은 개미들이 식물의 씨를 뿌리고 비료를 주고 음식물을 얻고 살 곳으로 사용하는 형태가 사람들이 농업을 하는 것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개미들 중에서 37종, 식물 종으로는 200종이 이런 공생 및 재배관계를 형성하여 살고 있다. ■156쪽
■요약하자면,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구가 더 좋은 식품과 물건들을 더 많이 소비하게 되면서 농업과 공업의 비중이 계속 더 증가하고 있으며, 그 결과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다. 사람들의 활동으로 인해 배출된 온실가스는 해가 지날수록 더 많이 대기 중에 농축되어 지구온난화를 더욱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다. 1만 년 전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8세기까지 280피피엠 정도이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022년 5월에는 421피피엠까지 올라갔다. 현재 추세로 온실가스가 계속 대기에 배출된다면 2100년에는 대기의 이산화탄소 분압이 1,000피피엠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식물의 성장은 어떻게 변화할까? ■252쪽
■우리나라에서도 이 수직농법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 방법이 미래농업과 정밀농업의 한 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발광다이오드(LED) 기술의 선진국이고 사물인터넷에서도 선두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술들을 활용하는 수직농법 기술에서 앞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에 LG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가정용 식물재배기 ‘틔운’도 일종의 수직농업 기기라고 볼 수 있겠다. 또 '엔씽'이라는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컨테이너 박스형의 수직농법 식물공장 모듈을 만들어서 채소를 직접 길러 먹고자 하는 중동 사람들에게 수출하고 있으며, 식물에서 백신을 생산하는 바이오앱 기업에서도 수직농법을 사용해 식물을 재배하고 있다. ■313쪽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식물의 사회생활
우리는 사람만이 다른 생물과 관계를 맺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식물도 사람들처럼 사회생활을 한다.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은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는 걸까? 생존에 위협이 많은 환경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식물이 생존하고 번식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구 대부분이 여전히 녹색으로 덮여 있는 것을 생각하면, 식물들은 이러한 사회생활을 제법 잘 해내고 있는 듯하다.
먼저 식물은 자신과 같은 식물들과 사회생활을 한다. 그 외에도 식물은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곤충, 동물, 사람과도 관계를 맺는다. 식물은 지구상의 대부분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내고 있으므로 생명체들은 식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식물이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식물도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이용한다. 식물은 박테리아나 곰팡이들과 공생관계를 맺어 영양분을 얻기도 하고, 생식을 위해 곤충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 독성물질을 만들어 병균이나 초식동물의 공격에 대항하고, 이런 식물에 대항해 생명체들은 이 독성물질들을 해독하는 방법을 고안해내기도 한다. 식물은 동물과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자원이다. 사람들은 식물이 만든 환경에서 양식과 주거지를 얻었고, 농업과 산업을 발달시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이 모든 생태계 기반에는 식물이 자리한다. 즉, 식물이 맺는 여러 다양한 관계로 지구 생태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풍요로워진 것이다.
서로 돕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하는 식물들
식물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빛과 물, 그리고 무기영양분이 필요하다. 식물은 다른 식물과 이 자원들을 얻기 위해 경쟁한다. 식물 주변에 다른 식물이 많으면 그 식물이 광합성에 좋은 적색광을 흡수하기 때문에 식물이 받을 수 있을 전체 빛의 양이 감소한다. 식물은 더 충분한 빛을 얻기 위해서 ‘파이토크롬’이라는 푸르스름한 색의 단백질을 생성한다. 파이토크롬은 그늘 인식 외에도 잎 면적이나 꽃 피는 시기를 조절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파이토크롬은 환경을 인식한 뒤 식물 줄기를 길게 자라게 해서 그 상황을 피하도록 한다. 식물은 지하에서도 생존 경쟁을 겪는데 이를 위해 식물은 뿌리에서 타감작용물질을 분비한다. 이 물질들은 이 식물 주변에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타감작용현상을 일으켜 생존에 유리한 방법을 마련한다.
이처럼 식물이 서로 경쟁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놀랍게도 식물들이 생존을 위해 협조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땅속 세계에서 식물들은 촘촘하게 연결되어 큰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를 돕는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균근균이다. ‘균근균’이란 식물의 뿌리에서 공생하는 곰팡이들로, 이렇게 식물 뿌리에 곰팡이가 들어와서 살아가는 구조를 ‘균근’이라고 한다. 식물은 균근균과 공생하며 다른 식물과 물리적으로 접촉한다. 곰팡이는 가느다란 균사를 만들며 자라는데, 균사는 표면적이 무척 넓어 땅속 곳곳에 있는 질소염, 칼리, 인산 등의 무기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 이런 균근균의 균사가 여러 식물의 뿌리를 연결해 식물 공동체를 만든다. 식물 공동체는 균사를 통해 다른 식물의 상처 신호나 병원균 신호를 공유하기도 하고, 다른 식물로 당을 보내주기도 하고, 성장한 나무는 어린 나무에게 초기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한다. 또, 나무들은 환경조건이 나빠지면 주변 나무와 균근 연결을 더욱 강화해 환경적 스트레스를 이겨내기도 한다. 협조란 식물이 고안한 적극적이고 영리한 생존법인 것이다.
지구 생태계의 기반을
이루는 식물의 사회생활
식물은 종을 막론하고 많은 생물체와 공생했다. 식물과 공생한 역사가 가장 긴 것은 바로 미생물, 즉 곰팡이다. 4억 5,000만 년 전부터 내생균근균이라는 곰팡이는 초기 육상식물과 서로 생존을 도왔다. 많은 미생물은 흙 속에 있는 복잡한 물질을 분해해서 식물이 흡수 가능한 물질로 만들었으므로, 당시 지상에서 영양분을 찾기 어려웠던 식물에게 미생물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식물들은 미생물과 공생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질소고정박테리아다. 식물들은 질소고정박테리아를 길러 미생물이 고정한 질소를 받고 그 대가로 미생물들에게 당과 유기산, 그리고 질소고정을 위해 필요한 산소가 없는 환경을 제공한다. 뿔이끼와 우산이끼, 물고사리과의 일종인 단백풀, 겉씨식물 중 소철류 등은 특별한 조직을 만들지 않고 체내 공간에 질소고정박테리아를 기른다. 한편 콩과식물은 뿌리혹이라는 특수한 조직을 만들어 박테리아가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도 한다. 이 뿌리혹에서 박테리아는 계속 자라고 분열하며 질소고정에 필요한 유전자들을 발현하며 식물과 공생한다.
그러나 미생물과의 공생에 따라오는 부작용도 있다. 식물은 미생물과의 공생을 위해 세포벽을 만드는데 이곳으로 병균도 침입하기 때문이다. 병균이 침입하면 성장에 자원을 투자하던 식물은 이를 중지하고 방어에 집중한다. 병균이 식물을 공격하는 것에 대한 방어반응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활성산소를 많이 만들어 병균을 죽이고, 병균이 침입한 부위의 식물세포도 죽여 병균이 더 이상 퍼지지 않게 하는 과민반응이 있다. 다른 방법은 독성 화합물질인 파이토알렉신을 합성해 식물 자신을 보호하거나, 질병관련 단백질을 합성해 침입한 병원체를 오히려 공격하는 방법이다. 또, 식물의 주요 호르몬인 살리실산과 자스몬산의 합성을 촉진해 면역반응을 일으키고 식물의 다른 부위로 신호를 보내 추가적 병균의 침입을 막는 전신획득저항성을 일으키기도 한다.
먹고 먹히며
살아남고 살아가다
식물은 곤충과도 공생한다. 곤충이 식물의 꽃가루를 옮겨준 것은 약 1억 년 전후부터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시기부터 식물과 곤충을 서로를 도우며 번성했다. 약 20만 종의 동물이 꽃가루를 옮겨주는데, 대부분 곤충으로 꿀벌, 호박벌, 말벌 외에 나비, 나방, 파리, 개미, 딱정벌레 등도 포함된다. 한편, 개미는 사람처럼 식물을 재배하기도 한다. 남태평양 피지섬의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개미들은 스쿠아멜라리아라는 식물의 종자를 모아 햇빛이 잘 비치는 장소에 심는다. 이 식물에게 개미들은 영양분을 공급하고 이 식물의 덩어리줄기는 여왕개미와 25만 마리의 일개미가 함께 사는 개미의 집이 된다.
물론 곤충의 50퍼센트 이상은 식물을 먹기도 한다. 곤충은 종류에 따라 잎, 체관액, 뿌리, 식물의 영양분 등을 먹는다. 식물은 큐티클층, 분비모, 표피층, 껍질 등 물리적 장벽으로 곤충을 방어하기도 하고, 방어호르몬을 분비하는 생화학적 방법도 사용한다. 가령 토마토는 시스테민이라는 펩타이드를 분비하는데, 토마토가 상처를 입으면 이 물질이 식물 전체로 퍼지고 단백질소화효소억제제의 합성을 유도해 곤충이 잎을 잘 소화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 방어기작은 식물이 초식동물에 대항할 때도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이렇게 식물이 여러 방어기작으로 대항하고 있지만, 곤충과 동물은 식물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 따라서 식물의 서식환경에 의해 생물체의 개체 종류와 개체 수가 정해지고 이는 또다시 식물의 생장에도 영향을 준다. 가령, 대형 초식동물이 많은 곳에는 가시나 화학물질을 써서 방어하는 식물이 살아남는다. 반면 소형 초식동물은 나무가 빽빽한 숲으로 가지 않고 평야에 있는 작은키나무를 주로 먹기 때문에, 작은키나무가 사라져 생긴 빈자리에는 또다시 큰키나무가 들어오기도 한다. 이처럼 식물은 모든 생명체의 형태와 분포에 영향을 주며 지구 생태계를 이루는 기반이 되고 있다.
식물의 사회생활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
식물은 인간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현재 인류는 약 150종의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재배되는 농작물들은 조상이었던 야생식물보다 종자와 과일이 커지고, 당도가 높으며, 색이 선명하고, 독성이 제거되었다. 떫고, 독성이 있으며, 곁가지가 많으며, 쉽게 종자가 흩어져야만 생존에 유리했던 야생식물을 사람들이 개량하면서 일어난 변화다. 농작물로 식물이 개량되면서 조상식물과 농작물의 유전자 형질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이 연구를 활용해 인간은 또다시 선호하는 품종의 작물을 개발하고 있다. 게다가 인간은 비료와 농약을 사용해 생산량을 높이고, 단일 재배와 관개시설의 설치를 통해 일정하게 농작물의 품질을 관리해 왔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유용한 식물은 기술의 발전으로 더 많이 재배되고 있으나, 이런 농작물조차 사람의 관리 없이는 살아남기 어려워졌으며 다른 야생식물은 서식지를 빼앗겨 다양성이 줄어들어 멸종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인간으로 인해 지구환경은 더 빠르게 변화했고, 이는 식물의 사회생활을 혼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기후위기와 온난화로 인해 지구의 많은 생명은 기존과 다른 생존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는 식물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식물이 멸종되면 인간도 살아남을 수 없다. 이미 지구 곳곳에서는 기후위기와 온난화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위기가 감지되자 인류는 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며 환경을 되살리기 위해 최대한 농지를 줄이고 스마트팜을 개발하거나, 채식 혹은 대체육을 개발해 사료로 사용되는 농작물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또, 신기술을 이용해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새로운 식물이 만들거나 혹은 산업용 원료가 되는 식물을 개발 중이다. 그 외에도 미세조류를 양식해 농작물의 비중을 줄이거나, 외래 유전자를 이용해 우수한 질의 식품 재료를 만들려는 시도도 진행 중이다. 이 모든 시도는 식물이 어떤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작고 사소한 질문일지라도 과학적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인류가 꾸준히 노력하면서 얻은 결과이기도 하다.
식물들은 여러 생물과 협조하거나 자신을 방어하는, 두 가지 사회생활에 성공한 개체만이 살아남았다. 생존을 위해서는 공생하고 변화에 적절히 대응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두운 미래만이 예측되는 현재 지구상에서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역시 다른 생물체와 공생하고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바로 식물의 관계 맺음에 관해 질문하고 탐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작가정보
식물생리학자. 식물이 지닌 여러 기능의 근본 원리를 유전자 수준, 세포 수준, 개체 수준에서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식물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미국 코네티컷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하버드대학교 연구원을 거쳐 1990년부터 2022년까지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고, 한국식물학회 부회장, 《뉴파이톨로지스트》 편집자, 국가과학기술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특히 식물의 생장과 발달에 필수적인 식물 ABC 수송체 유전자들에 관한 연구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어 미국식물학회의 교신회원상, 미국학술원의 코차렐리상을 수상했고, 국내에서도 한국과학상, 삼성행복상 창조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매일 오후 포항 철길숲을 반려견과 함께 산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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