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뇌 변호사
2024년 01월 19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1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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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57403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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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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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라다니는 소문은 무성하다. 인간도 아닌 주제에 변호사 행세를 한다거나 상대의 생각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기괴하다거나…….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내 머릿속 해파리는 인간의 속마음이나 기계의 신호를 읽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무뇌 변호사’라는 이유로 안드로이드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처럼 기억을 갖고 감정을 느끼며 마음으로 소통하지만, 하루에도 수백수천 대의 안드로이드가 부당하게 폐기된다. 인간의 명령을 따라서, 인간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 인간 같지 않아서, 지나치게 인간 같아서.
내가 그들을 변호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같은 생존 욕구를 감각하지 못하므로, 그들을 창조해낸 우리가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 흘리지 않는 제물
복종하는 뇌
기억과 유전자의 밤
작가의 말
그녀도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인공두뇌를 머리에 넣고 다니는 사이보그 변호사. 요즘 세상에 사이보그야 흔한 것이지만 뇌를 기계로 대체한 사람, 그러니까 무뇌 변호사는 눈앞의 남자 외에는 없을 것이다. (11쪽)
ALP가 사회에 스며든 지 오십 년, 슈퍼 인공지능들이 지구라는 벌집의 여왕벌이자 관리자가 되었다면 안드로이드 노동자들은 시스템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일벌들이다. 인간은 관리자도, 노동자도, 완벽한 방관자도 되지 못한 회색 지대에서 우왕좌왕하는 중이고. (32쪽)
내 머릿속의 이 투명한 해파리 놈은 여느 뇌와 마찬가지로 내 몸에 열심히 먹어라, 자라, 똥을 싸라 등의 전기신호를 전달해준다. 불편함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내 부모님은 늘 내게 감사하라고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내가 구석에서 목 뒤에 전극을 꽂고 있는 모습까지 감사하지는 못했다. (42쪽)
안드로이드는 사회 전반에서 인간을 대체하고 있다. 사회는 그들의 노동력과 그들이 벌어주는 부가가치는 신뢰하지만 그들의 말은 믿지 않는다. (44쪽)
나는 열세 살에 영영 잃어버린 내 진짜 엄마에 대해 생각했다. 그날, 인간들이 나의 기계 엄마를 끌고 가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 김유미의 변호를 맡는 인간이 되었을까? 이 모든 것이 저들에 대한 복수인가? 지난 십칠 년 동안 그랬듯이 스스로에게 답했다. 아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복수라고 할지라도 나는 저런 살인자들과는 다르다. 그러자 해파리가 속삭였다. 정말 달라? (90쪽)
안드로이드는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이 지구 위에서 무엇이든 그렇지 않겠는가. 완벽한 주인공을 위한 무대에서는 조연에게 복수할 기회조차도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연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 (118쪽)
기계들에게는 인간들이 누리는 모든 것이 과분할 뿐이다. 사랑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사랑을 구걸하는 것도 그리고 사랑으로 인해 고통 받는 것도. (198쪽)
어머니는 그 밤에 처음으로 저를 사랑한다고 해주셨거든요. 본인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고 덧붙이긴 했지만요. 안드로이드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저를 사랑한다고요. 저는 그날 밤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날도 많습니다.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기억이 있기에 죽지는 않죠. (227쪽)
저는 인간의 장기를 하나씩 교체한다면 어디까지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 따위의 오래된 SF 질문을 매우 좋아합니다.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기억을 갖고 있다면 그 기억의 원 소유주로 간주할 수 있는가, 기계가 자의로 사람을 죽인다면 기계를 ‘처벌’해야 하는가 등등. …… 저는 이 질문들에 답하기 어려운 이유는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들이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비춰주기 때문입니다.
- 「작가의 말」 발췌
기계로 환원되는 세상에서 환원되지 않는 존재들
신조하 작가의 『무뇌 변호사』는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어느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대부분의 인력을 대체한 인공지능부터 인간처럼 행동하고 감각하는 안드로이드, 기계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사이보그까지. 더는 ‘인간’과 ‘기계’만으로 이분화할 수 없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데이터와 전기신호로 환원된 세상에서, 마음까지 환원되지는 않은 존재들이 있다. ‘법과 질서’의 김호인 변호사는 태어날 때부터 인공두뇌를 이식받은 사이보그다. 안드로이드를 주로 변호하는 그에게 간혹 변호사로서의 소임이나 신념을 묻는 이들이 있다. 김호인 변호사는 자신이 사이보그이기 때문에 기계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약자’들 편에 선다는 평판 때문에 안드로이드만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김호인 변호사는 인공두뇌 속 해파리를 통한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존중받아 마땅한 이들의 곁에 설 뿐이다. 인간에게 부당한 억압을 받고 무력하게 폐기되는 안드로이드를 변호해 구하는 것. 그것만이 ‘무뇌 변호사’ 김호인의 유일한 소임이자 신념일 것이다.
인간이 창조한 기계의 ‘발전’과 ‘반란’
인간은 필요에 따라 기계를 생산하고 그들에게 의무를 부여하지만, 그들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곧 폐기해버린다. 기계는 유기 생명체와 달리 생존 자체를 최상위 목적에 두지 않기에, 자신이 폐기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살고자 하는 ‘목적’을 갖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지키고 싶은 ‘존재’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생긴다면. 인간은 아니, 그 무엇도 기계의 삶에 대해 쉽게 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강제로 주입된 기억 때문이었으나 한 인간을 위험으로부터 지키려 한 「피 흘리지 않는 제물」의 안드로이드 김유미처럼, 제 주인에게 너무나 복종해 한 몸이 되어버린 「복종하는 뇌」의 로봇들처럼, 육십 년간 한결같이 딸을 키우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자각한 「기억과 유전자의 밤」의 오혜성처럼. 기계는 인간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기계는 발전함과 동시에 인간을 보호하고 지키고자 애틋한 반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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