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리는 개
2023년 12월 28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11월 20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20.98MB)
- ISBN 9791192638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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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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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원제 ‘le chien couchant’는 사랑을 구하는 개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무방비 상태로 드러눕기보다 엎드려 바라보고 주시하는 조금은 긴장된 복종의 태도는 두 남녀의 불가해한 사랑을 단번에 이해하게 해준다. 선망의 눈으로 누군가를 바라볼 때 비로소 자기 자신과 대면하게 되듯, 이 소설에는 열정적이고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사랑받기를 바랐던 작가 사강의 고독한 삶이 투영되어 있다. 고통 속에서도 자기 자신과 대면해 멈추지 않고 써낸 작품에 담긴 특유의 유머와 재치는 무겁게 짓눌린 우리의 삶을 새로운 성찰의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저자 약력
방에 걸린 거울 앞에서, 그는 냉혹한 표정으로 잠시 동안 자신을 바라보다가 손을 윗옷 주머니에 넣었다.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거울로 향하게 하더니 욕설과 명령의 말을 읊조렸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총을 겨냥했다. 금세 평소의 초췌하고 난감해하는 얼굴로 돌아와, 이 태연한 갱스터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사내에게 말이다. p. 38
이상하게도, 미친 듯이, 그는 이 침울하고 가혹한 여주인의 발아래 무릎 꿇고 싶었다. 그는 그녀에게 피든 목숨이든 보석이든, 무엇이든 바치고 싶었다. 그녀의 시선을 다시 얻을 수만 있다면, 한 번만 더, 존경과 욕망이 뒤섞인 그 기묘한 표정을……. p. 48
마리아는 차갑고 조금은 적대적인 얼굴로 자신을 대면했다. 스푼을 내려둔 손이 턱으로, 머리카락으로 올라갔다. 간단한 동작으로 풍성하게 볼륨을 만들어보았지만, 거기엔 눈에 띄는 흥미도 열의도 없었다. 꼼짝하지 않고 아득히 머물러 있는, 권태와 무관심 그 자체인 얼굴이었다. 그러므로 오만한 눈꺼풀 아래 맑고 단단한 눈에서 너무나 둥글고 응축된 눈물이 아무런 전조 없이 연달아 솟아올랐을 때, 그녀가 느낀 감정은 괴로움이 아닌 놀라움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귓가에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았다. pp. 131~132
그가 당황했다. 그리고 그녀는 어떤 안도감과도 같은 기분을 느끼며 당황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게레의 수상쩍고 위험스러운 면모, 그녀가 존경하고 거의 사랑하기까지 한 살인자나 싸움꾼으로서의 모습은 사라져버렸고, 선량한 시민이자 근면한 4년차 회계원의 면모가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초라한 야망은 그녀가 스스로에게 증명할 필요가 있었던 얼핏 본 이 사랑의 어리석음과 부질없음의 증거이기도 했다. pp. 142~143
복종과 사랑으로 바라보는
서로의 눈에 투영된 눈부신 환영과 상처
탄광회사 회계과에 근무하는 4년차 직원, 스물일곱 살 게레에게는 굴욕이 일상이지만 어느 날 담배를 피우기 위해 찾은 광재 더미에서 고가의 보석 주머니를 발견하는 것으로 인생 역전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곧 신문에서 보석의 주인이 열일곱 번이나 칼에 난자돼 살해됐다는 것을 알게 되고, 무미건조하던 삶은 누아르로 전개된다. 한편 한때 마르세유 갱 두목의 여자로 살았지만 낡은 주택에서 작은 정원을 가꾸며 지리멸렬하게 사는 마리아는 어리숙하게만 보였던 자신의 하숙생이 잔인무도한 살인자라고 믿게 된다. 게레는 자신의 삶이 변한 순간과 거의 동시에 마리아라는 여자를 새롭게 인식하며 사랑에 빠지고 그녀에게 집착하게 된다. 게레에게서 젊은 시절 자신의 눈부신 환영을 발견한 마리아가 일순 다른 사람처럼 매력적으로 웃어 보이는 순간 게레는 자신을 향한 선망의 눈빛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향한, 서로의 눈에 비친 복종의 감정이 사랑이 아닐 수 있을까.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서로에게 반하게 되는 순간은 상대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기에 결국 가장 사랑한 순간에도 이들은 자신만을 마주하는 진정한 혼자가 된다. 소설 속 등장하는 개 파샤는 게레 주변을 맴돌며 따라다니지만 때로는 겁을 먹고 때로는 피하며 온전히 배를 드러내지 못하는데, 이러한 개의 속성은 상처받은 소설 속 인물들을 한눈에 형상화해내고 있다.
고독으로 남겨진 가장 쓸쓸한 결말의 소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엎드리는 개》를 번역하며 소설가 김유진은 사강의 나이 든 모습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잘 그려지지 않았다. 무려 2000년대를, 69세까지 살았던 작가이지만 사강은 영원한 젊음으로 기억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김유진에 따르면 “이 작품의 긴장감은 우연한 행운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스물일곱 살 청년의 욕구와 한때 마르세유 갱단 보스의 정부로 이름을 날리던 여자의 노스탤지어적 욕망이 부딪치면서 증폭”되는데 “그 긴장감은 게레가 마리아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 처절함으로 뒤바뀐다”. 마리아를 향해 애정을 갈구하는 게레나 게레를 지켜봄으로써 그를 향한 자신의 복종을 표현하는 마리아의 사랑은 결국 사랑, 동경, 연민과 같은 감정적 동요의 극단에서 역설적이게도 “결국 자신으로 수렴”되는 “고독으로 완성”되는 가장 쓸쓸한 결말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김유진은 이 소설을 번역하는 내내 ‘복종’이니 ‘순종’이니 하는 단어를 떠올렸다. 무엇에 대한 복종이냐고 물어보면 사랑이 아닐까, 대답하려 했지만 서로의 눈에 투영된 자신의 욕망과 상처를 대면하는 일이었기에 이 소설의 결말을 가장 쓸쓸한 승리라 명명하고 있다.
마리아는 문지방에 서 있는 것으로, 길 한가운데 미동 없이 머물러 있는 것으로 자신의 복종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런 때의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늘 혼자다. 그녀는 삶이 결국 자신으로 수렴된다는 것을 안다. 그녀의 복종은 고독으로 완성되기에,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결말은 가장 쓸쓸한 승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_ 김유진, 〈옮긴이의 말〉에서
작가정보

(Françise Sagan, 1935~2004)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Françise Quoirez다. 당시 프랑스 최고의 인문대학인 소르본 대학교에 입학한 후, 19세에 발표한 장편소설 《슬픔이여 안녕》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으며 이 작품으로 1954년 프랑스 비평가상을 받았다. 그 뒤 《어떤 미소》, 《한 달 후, 일 년 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신기한 구름》, 《해독 일기》, 《패배의 신호》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인간의 고독과 사랑의 본질을 그려낸 사강의 작품들은 자유로운 감성과 세심한 관찰력, 담담한 문체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도박, 자동차 경주, 약물중독 등 자유로운 사생활로 ‘사강 스캔들’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말년에는 재산 몰수로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으며, 2004년 사강이 병환으로 별세하자 당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프랑스의 가장 감각적인 작가를 잃었다며 직접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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