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기심의 권력으로 읽는 세계사: 한중일 편
2023년 12월 05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12월 0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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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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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도대체 중화사상이 뭐야? : 중화사상의 시작
제2장 고구려도 조공을 바쳤다 : 고대 한반도와 중국대륙
제3장 중국 역사 절반은 이민족이었다 : 분열과 통일의 연속
제4장 왕이 되고 싶으면 머리를 조아려라 :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
제5장 고래 싸움에 조선 등 터진다 : 명청교체기
제6장 중국대륙의 새로운 주인 : 청나라의 부흥과 몰락
제7장 중화민족의 탄생 : 국가를 위해 창조된 민족
제8장 일본 천황의 탄생 : 쓸모 있는 허수아비
제9장 전국시대와 임진왜란 : 동아시아를 흔들어놓은 계기
제10장 메이지유신과 천황 : 허수아비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마치는 글
참고문헌
그런데 주나라의 왕은 자신을 ‘하늘신의 아들’, 즉 ‘천자天子’라고 주장했습니다. 주나라의 왕이 천자 드립을 치기 시작한 건 주나라 이전에 존재했던 상나라 때문이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주나라는 상나라의 제후국이었지만, 중국대륙의 주인이 되고자 쿠데타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상나라의 왕은 자신을 ‘하늘신의 아들=천자’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주나라 왕 입장에서는 상나라를 치는 순간 신의 아들에게 덤비는 꼴이 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주나라 왕은 자기도 하늘신의 아들이라는 소리를 한 겁니다. … 여기서 나오는 천자, 즉 하늘신의 자손은 진짜로 하늘신과 혈연으로 연결된 존재로서, 하늘신의 명령을 받아 지상세계의 인간들을 다스리는 신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다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 하늘신 곁으로 가서 지상에 있는 자기 아들과 하늘신 사이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맡죠. 그래서 중국에서 하늘과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게 중요한 겁니다. 혹시나 하늘신께서 화가 나셔서 달래드려야 하는 경우, 하늘신과 직통으로 연결된 천자가 제사를 지내야만 한다고 만백성을 상대로 가스라이팅했죠.
-제1장 〈도대체 중화사상이 뭐야? : 중화사상의 시작〉(21~23쪽) 중에서
중국의 몇몇 역사학자들은 중국인들이 고대시대부터 우수했고, 우월했으며, 자신들에게 주변국들이 조공까지 바쳤으니 조공국의 영토가 마치 중국의 영토였던 것처럼 주장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2017년 중국 시진핑 주석은 한국이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는 발언까지 하여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죠.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일부 한국인들은 모욕감을 느끼면서 ‘한국은 항상 독립국이었으며, 조공은 우리에게 오히려 이득을 주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선택해서 행한 것’이라는 식의 주장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이 역사를 왜곡하듯 한국도 과거 한반도 역사를 과장하고 비틀어버린 겁니다. 효기심은 과거 역사를 두고 너무 자존심 싸움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한반도 국가들은 실제로 중국대륙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았으며, 이게 자존심을 굽히는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힘의 논리로 굴러가는 국제정치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벌어지는 일이죠. 부정할 필요도, 그렇다고 긍정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한반도가 누군가에게 또 고개 숙이지 않도록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제2장 〈고구려도 조공을 바쳤다 : 고대 한반도와 중국대륙〉(91~92쪽) 중에서
조선은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 끼여서 이러기도 뭐하고 저러기도 뭐한 정말 난감한 국제정치적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문제는 인조가 광해군을 끌어내렸던 명분 중 하나가 ‘명나라를 멀리하고 오랑캐 후금과 가까이했었다’는 겁니다. 즉, 인조가 뒤늦게 후금을 달래거나 친하게 지내는 게 더 이득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도, 후금과 가까워지려는 순간 자기가 집권한 것에 대한 정당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인조는 책봉을 받기 위해서라도 명나라의 말을 잘 들어줘야만 했습니다. 명나라도 아마 인조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1623년에 책봉을 무기로 삼아 조선을 압박하여 후금을 공격하게 만들려고 했죠. “야, 조선왕! 너 책봉 받고 싶댔지? 맨입에 해줄 순 없고 조선에 지금 모문룡 있잖아? 걔 도와서 열심히 후금 때려주면 책봉해줄게. ㅎㅎ.” 사실상 명나라 대신 조선이 피를 흘리라는 거였죠. 명나라한테 완전 약점이 잡힌 인조는 거절하기 매우 어려웠을 겁니다. 명나라를 가까이해야만 했던 인조 입장에서는 후금을 배척해야만 했던 거죠. 바로 이게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웠던 인조의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입니다.
-제5장 〈고래 싸움에 조선 등 터진다 : 명청교체기〉(211~212쪽) 중에서
일본이라는 나라의 성장세는 화려했지만 그 이면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본 국민들은 인플레이션에 허덕이느라 고통받고 있었죠. 1차 세계대전 이후 폭등한 쌀값으로 일본 곳곳에서는 1918년 7월부터 9월까지 쌀값 인하를 요구하는 시위와 폭동이 일어납니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잘나가는 건 모르겠고 당장 먹고 살기가 힘들었으니 너도나도 들고일어난 거죠. 동시에 일본 국민들은 노동권과 참정권을 보장해달라는 사회운동도 시작합니다. 당시 일본은 일정 이상의 재산세를 내는 25세 이상의 남성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었습니다. 1920년 수만 명이 보통 선거권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고 1925년에 재산세 조건이 폐지되죠. 선거권이 확대되면서 일본에 민주주의가 움트고 뭔가 또 한 번 일본인들의 삶이 나아질 것 같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보통선거권이 도입되기 전인 1923년 9월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여 도쿄, 요코하마 등 대도시가 초토화되었고, 1929년에는 세계대공황의 여파로 일본 경제도 큰 타격을 받았죠. 이 와중에 일본 재벌과 정치인들은 서로 붙어먹기 바빴고 일본 서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지기만 했습니다. 이 타이밍에 사무라이 정권 막부 시절을 잊지 못했는지 일본 군인들 사이에서 자신들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제10장 〈메이지유신과 천황 : 허수아비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428~429쪽) 중에서
광개토대왕이 책봉을 받고 조공을 바친 이유
고대 중국은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이라고 일컬으며 동서남북의 오랑캐들을 각각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고 칭했다. 한나라는 이 오랑캐들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조공책봉 전략을 썼다. 고대 동아시아의 조공책봉관계는 단순했다. 힘의 논리에 따라 약소국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강대국에 머리를 숙여야만 했고, 머리를 숙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조공책봉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실례로 한나라조차 흉노에게 조공을 바친 적이 있다. 한반도의 국가들도 다양한 이유로 중국과 조공책봉관계를 맺었다.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광개토대왕은 실리를 위해 후연에게 책봉을 받았다. 당시 고구려는 후연과 백제를 위아래로 상대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후연이 북위 때문에 당장 쳐들어올 것 같지는 않으니 후연과 책봉관계를 맺어두고 백제와의 전쟁에 집중하려 했던 것이다. 실제로 광개토대왕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한강 이남까지 진출해 백제의 항복을 받아낸다. 또한 남연에게 조공을 바쳤는데 사람 10명, 말 한 필, 곰가죽 같은 예물과 사신을 보냈다. 이 대목에서 광개토대왕이 상당히 국제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분석되는데 적은 조공을 보내면서 남연을 통해 중국대륙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려 한 점 때문이었다.
조선의 사대주의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한반도 역사를 이야기할 때 명나라와 조선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국가다. 둘은 비슷한 시기에 각각 원나라와 고려를 대체하며 역사에 등장했다. 또한 두 국가 모두 유교를 통치의 기반으로 삼았다. 그런데 조선에는 차츰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가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조선이 명나라의 속국인지 아닌지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조선의 정치와 외교 활동에는 사대주의가 깊이 배어 있었다. 처음부터 조선과 명나라가 사대관계였던 것은 아니다. 조선 건국 초기에는 명나라 주원장의 압박과 간섭으로 인해 요동정벌 이야기가 나오며 전쟁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에서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면서 요동정벌을 추진했던 정도전은 살해되고 요동정벌 이야기는 종적을 감추게 된다. 당시 명나라에서는 영락제가 즉위하는데, 영락제와 태종 이방원은 둘 다 정통성에 문제가 있었다. 영락제는 조카 건문제를 내쫓고 황제가 되었고 이방원은 아버지를 끌어내리고 동생 이방석을 죽이면서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락제가 즉위하자 이방원은 황제 즉위를 축하하는 사신을 보낸다. 조선 덕분에 황제 즉위에 힘이 실린 영락제는 조선 사신이 돌아갈 때 엄청난 양의 하사품을 챙겨서 돌려낸다. 한편 태종 이방원도 명나라 황제가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면서 정당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영락제와 태종은 조공책봉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서로 권력을 안정적으로 가져갔다. 이런 양국 관계 속에서 조선은 명나라를 점점 진심으로 섬겨야 할 국가로 바라보게 된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임진왜란이었다. 명나라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역전되고 일본을 물리치면서 말로만 듣던 ‘중화의 질서’가 바로잡히는 현실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동아시아를 뒤흔든 전쟁, 임진왜란
임진왜란은 한중일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 중 하나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지 살피기 위해 파견된 조선 통신사들은 귀국 후 서로 다른 의견을 낸다. 서인이었던 황윤길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것 같다고 보고한 반면, 동인이었던 김성일은 전쟁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두 사람의 의견이 나뉘게 된 게 ‘당파성’ 때문이라는 설이 많이 퍼져 있다. 그러나 조선 통신사에 같이 따라갔던 허성도 동인이었지만, 서인이었던 황윤길처럼 일본이 쳐들어올 것 같다고 보고했다. 또 당시 동인의 힘이 강했기 때문에 김성일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조선이 전쟁 대비를 하지 않아 일본에게 호되게 당했다는 설도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조선은 을묘왜변(1555년)이 터졌을 때부터 일본이 조만간 다시 쳐들어올 것을 우려해 나름대로 대비를 하고 있었다. 특히 무명에 가까웠던 이순신이 초고속으로 승진해 전라도 바다를 지키게 된 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불과 1년 2개월 전의 일이었다. 『선조실록』 24년 11월 기록에 따르면, 조선 조정이 통신사의 보고를 받은 후 왜란을 대비하기 위해 영남 지역의 성을 보수하고 병사들을 선발했더니 백성들의 원성이 심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에서 승자는 없었다. 조선, 일본, 명나라 모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는 임진왜란 이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조선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국토도 황폐해져서 한동안 국력을 회복하지 못한다. 또 명나라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났다는 의식을 공유하며 외교적으로 보다 명나라에 의존하게 된다. 명나라는 안 그래도 약해져가던 국력이 임진왜란 이후 급격히 떨어지면서 수많은 민란으로 고생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얼마 안 가 이자성과 여진족(청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21세기판 ‘천자’를 경계하라
동아시아의 권력자들은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할 만한 그럴듯한 명분을 끊임없이 제공해왔다. 중국인들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천자, 즉 ‘하늘신의 아들’의 통치를 받는 위대한 민족으로 여겼고,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 믿었으며, 옆 나라 조선 사람들마저 그렇게 믿도록 만들었다. 지금이라고 해서 다를까?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조차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며 살아가는 듯하다. 정치 영역의 경우 극단적인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거의 종교와 같이 추앙하며 그가 당선만 되면 대한민국의 모든 일이 해결될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권력자들은 하나같이 겉만 번지르르한 명분만 앞세울 뿐 뒤에서는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권력을 가진 자들도 21세기 유권자들의 마음을 홀릴 수 있는 새로운 ‘천자’를 앞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지 조심스레 바라볼 필요가 있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작가정보
1991년생 유튜버. 유튜브 채널 ‘효기심’을 운영하고 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다 한창 대학 생활을 이어가던 20대에 우연히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관심 분야인 국제정치와 역사에 대한 콘텐츠를 제작해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단순한 팩트만을 나열하기보다는 역사 이면에 감춰져 있는 인류사 본연의 모습을 풀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현재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더 깊이 파악하기 위해 대학 졸업을 미뤄두고 전공 이외의 학문을 두루 탐구하고 있다. 또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유튜브, 트위치 등의 인터넷 방송과 SNS, 도서 집필 등 다양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효기심의 권력으로 읽는 세계사 : 유럽 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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