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
2023년 12월 04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11월 2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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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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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의 출구를 닫아버리는 것은 누구인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한국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진실,
“그들은 우리의 이웃, 우리의 아이들,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NO EXIT, 출구 없는 미로? 이의 있습니다!”
대검찰청이 발간하는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국내 마약류 사범은 2017년 1만 4,123명에서 2022년 1만 8,395명까지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60%가 30대 이하다. 매년 1만 명 이상의 젊은이와 아이들이 마약 범죄로 구속될 만큼 마약은 일상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좀먹어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최근 경찰청과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는 마약 범죄 예방 릴레이 캠페인을 진행하며 “NO EXIT, 출구 없는 미로”를 구호로 채택했다. 취지는 분명하다. ‘한번 빠져들면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다’는 말로 사람들에게 마약의 위험을 경고하고 투약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여기에 공감한 여러 유명인과 공직자, 기업들이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출구가 없다”고 선언하면, 이미 한 번이라도 마약을 투약한 사람들은 어찌 되는 것일까? 그대로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힌 채 버려지는 걸까? 그들은 더 이상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걸까? 가족과 친구들은 국가조차 포기한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저 구호에 이의를 제기하는 한 변호사가 있다. 변호사 안준형은 10여 년 전 어느 마약 투약자의 변호를 맡은 것을 계기로 마약 사건과 처음 연을 맺었다. 그는 요즈음 1년에 100여 건의 마약 사건을 수임하는 마약 전문 변호사다. 지금껏 그가 목격한, 마약 사범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수사기관, 사법부, 언론, 일반 대중에게 마약 사범은 ‘불가촉천민’ 그 이상이었고, 그들을 다시 사회로 복귀시키려는 시도는 사실상 고려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이제 그는 투약자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그들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단지 그들을 처벌하고 격리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단약과 재활을 도모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죽음에 다가서는 그들의 발을 우리가 함께 돌려세워야 한다고, 이 책 『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를 통해 이야기한다.
Part 1. 사건의 지평선: 경계선 위를 서성거리는 사람들
뽕방에서 온 편지
일탈의 대가
약하면 악한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마약
마약 밀수, 과정과 말로
마약남녀
차라리 죽고 싶어요
Part 2. 포기하지 않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약한 그들을 위한 출구
우리 아이가 약쟁이라고요?
죄보다 사람이 미워진다
인권수사의 사각지대
가족도 뿌리치는 마약 재범의 손
내 딸이 아니고 괴물입니다
그들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최후 진술의 날
Part 3. 사람이 사람을 먹이로 삼다: 마약 사회의 먹이사슬
마약에 취약한 연예인
연예인을 잡아라
우리들의 일그러진 언론
텔레그램의 마약왕
마약왕의 성공방정식
이상한 나라의 미국인 농부
마약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Part 4. 마약 전문 변호사로 사는 법: 법과 마약
법에도 감시가 필요하다
아무튼 유죄
나는 억울합니다
변호사는 의심해야 한다
3%의 기적
결문 - 나는 왜 마약 투약자를 변호하는가
Q&A - 마약 전문 변호사에게 궁금한 것
평화롭다고 해야 할까, 스산하다고 해야 할까. 한여름이었음에도 서울구치소의 공기는 무척 차가웠다. 빛이 들어오는 모든 창문엔 쇠창살이 달려 있고, 창 너머에서는 나무 냄새를 가득 품은 숲 바람이 불어왔다. 구치소는 늘 서늘하고, 좋은 바람이 불고, 아주 느리게 시간이 간다. _21쪽
변호사가 하는 일이란 결국 누군가의 뒤처리를 해주는 것이다. … 형사사건을 많이 담당하다 보면 반듯한 사람보다는 살짝 비뚤어진 사람을 자주 만나고, 정직한 사람보다는 거짓말에 능한 사람을 많이 본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가진 밝은 구석, 좋은 에너지, 긍정적일 수 있는 미래를 들여다봐주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를 지지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_38~39쪽
필로폰이 무서운 점은 단 한 번의 투약만으로도 우리 뇌의 도파민 체계가 망가진다는 점이다. 단약 후에는 두 번 다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될 수 있다. 이처럼 필로폰의 엄청난 부작용과 중독성이 밝혀지자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필로폰을 마약으로 지정하고 엄격하게 금지했다. 그럼에도 필로폰은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마약으로 유통한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이다. _59쪽
아무도 그의 투약 사실을 알지 못했다. 혼자 사는 아들이 최근 들어 연락이 뜸해지고 예전처럼 집에 자주 오지 않기는 했지만, 가족들은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했다. 회사 동료들도 몰랐다. 그는 지각 한 번 하는 날이 없었고 일도 열심히 했다. 조금 피곤해 보여도 다들 그가 너무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무도 그가 속으로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_94쪽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그러나 마약 사건은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죄보다 사람을 더 미워한다. 그게 내 가족 중 한 사람이면 더욱 그렇다. 마약 투약자를 자식으로 둔 부모는 어떤 태도로 자식을 대해야 할지 무척 혼란스럽다. 범죄자의 부모가 자식에게 갖는 이런저런 복잡한 감정에 더해, 마약 투약자를 자식으로 둔 부모는 자식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_101쪽
우리나라 구치소나 교도소에서는 약물로부터의 격리 조치 이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해주지 않는다. … 그저 마약 사범들을 형기를 채울 때까지 한 방에 가둬놓는 것으로 끝이다. 바로 그곳에서 마약 사범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현실을 보면, 구치소나 교도소가 오히려 마약 재범을 양성하는 기관이라고 비난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_110~111쪽
자식이 마약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부모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자식의 단약과 치료에 매진했다. … 나는 상담이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앉아서 단약 일기를 읽었다. 마음이 움직였다. J 본인의 단약 의지가 강했다. 그리고 그보다 강한 의지를 가진 가족이 옆에 있었다. 이 정도면 재판부를 설득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사실은 그저 J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의 부모님이 행한 노력이 어떠한 결실을 보아야 한다고 믿었다. _127~128쪽
J는 재판부에 등을 돌렸다. 그는 방청석을 몇 초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방청석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그의 부모님에게 마지막 진술을 했다. 그의 짧은 한 문장은 내 긴 변론보다 묵직했고, 재판정의 어수선한 소음을 뚫고 사람들의 귀에 가 닿았다.
“저를 포기하지 않아주셔서 고맙습니다.” _133쪽
담당하고 있는 사건이 뉴스에 나오길 바라고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길 바라는 수사기관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엄연히 우리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과 이에 근거한 피의사실 공표죄가 존재하는 대한민국에서, 유독 연예인 마약 사건 수사에 대해서만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언론을 통해 공개하는 현실은 법조인으로서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는 행태다. _142쪽
변호사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악한 본성과 공생한다. … 물론 형사 법정에서 억울한 피고인을 위해 무죄를 주장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의사가 착한 사람만 골라서 치료하지 않듯 변호사들도 선한 피고인만 변호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악한 본성과 옳지 않은 행동도 변호해야 하는 것이 변호사라는 직업이다. 그것이 인간이고, 그것이 변호사다. _157쪽
그는 머리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성실했다. 정말 ‘열심히’ 마약을 팔았다. 당시에는 생소하던 비트코인 구매 대행사를 이용해서 경찰의 수사망을 빠져나가는 방법도 고안했다. … 소문에는 이십 대 초반인 그가 몇십 억을 벌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그의 명성이 커질수록 유저들은 더 그를 찾았고, 더 많은 딜러들이 그와 함께 일하고 싶어 했다. 짧은 시간에 그는 텔레그램 마약방에서 거물이 되어 있었다. _166쪽
나는 수십 번이나 기록을 다시 뒤져보며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검찰이 제출한 자료 가운데 M이 해당 건물에 다녀갔다고 지목한 시점과 경찰이 드랍지에 숨겨진 마약을 수거한 시점 사이에 상당한 시차가 있음을 발견했다. 수사기관의 주장대로라면 드랍 장소에 마약이 일주일 이상 보관돼 있었다는 뜻이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이다. _213쪽
훌륭한 변호사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은 바로 의뢰인에 대한 ‘공감과 믿음’일 것이다. … ‘덕목’이란 우리가 꼭 갖추고 굳게 지켜야 한다고 믿는 것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갖추기가 어렵고 지키기란 더욱 어렵다. 신념은 곧잘 부러지고, 초심은 잃어버리기 쉽다. 변호사 생활을 오래 할수록 나는 ‘공감과 믿음’이 무뎌짐을 느낀다. 어떤 날은 의뢰인을 의심하거나 쉽게 평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그러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느낌이 엄습한다. _217~218쪽
실제로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도 유죄의 증거를 탄핵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면 변호사는 갈등할 수밖에 없다. 전적으로 의뢰인의 말을 믿고 무죄를 주장할 것인가, 아니면 의뢰인을 설득해서 죄를 인정하고 선처를 받는 것이 어떠냐고 설득할 것인가. 재판부에서 무죄 주장 자체를 양형에 불리한 요소로 보는 현실에서 변호사의 선택은 대체로 후자가 된다. 그 결과 피고인과 변호인은 적극적으로 변론하는 것을 망설이고 소극적인 변론에만 머무르게 된다. _223~224쪽
약쟁이를 왜 도와줘야 하죠?
: 마약 범죄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
마약 전문 변호사 안준형이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싸워야 했던 것은 검사가 제시하는 유죄의 증거와 논리만은 아니었다.
“마약 하는 사람을 왜 도와줘요?”
“약쟁이들은 다 잡아넣어야죠.”
여느 범죄와 달리 마약 사건은 시작부터 편견과 억측, 비난이 함께한다. 한국에서 마약 사건은 늘 뜨거운 감자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마약 사건의 주인공은 지금껏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이었고, 이들을 감옥에 집어넣은 수사 담당자는 고속 승진했다. 이제는 그 대상이 일반인까지 확대됐다. 이처럼 수사기관이 공을 다투는 동안 무죄추정의 원칙과 피의사실 공표죄는 유명무실해지고, 없는 일조차 부풀려져 자극적인 소식으로 와전된다. 그 결과 마약 사범은 대중에게 ‘상종 못할 범죄자’로 비난받는다.
형사 사건은 대부분 흑과 백이 정확히 나뉘지 않는 회색 영역의 싸움이다. 그 내막은 가까이서 매우 세밀하게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과 이야기는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의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범죄자는 엄히 처벌해야만 사회 정의가 실현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마약 사범은 누구든 처벌과 격리의 대상일 뿐이다. 마약 사범에게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동안 그들은 억울한 부분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시비를 다툴 수 없고, 단약과 재활을 하고 싶어도 그저 한데 모여 방치될 뿐이다.
그런데 마약 사범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가고, 마약 범죄는 점점 더 우리 일상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언제고 내가, 내 아이가, 내 형제나 자매가, 내 친구가 마약 범죄를 저지르거나 뜻하지 않게 연루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때도 우리는 ‘범죄자는 그저 엄히 처벌하면 그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형사 변호인으로서 겪어온 일들을 바탕으로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세상 사람 누구라도 자기 뜻과는 무관하게 죄를 저지르거나 연루될 수 있다. 그럴 때 아무도 나의 사정과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너무 억울하고 슬픈 일이 아닐까.”
마약은 분명 헤어나기 어려운 미로다. 그러나 그 출구를 닫아버리는 것은 마약이 아니다. 투약자들에 대한 반감과 무관심, 그리고 그들을 이해조차 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마약을 ‘출구 없는 미로’로 만든다.
우리는 마약을 알아야 한다
: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마약과의 전쟁’ 전략
변호사 안준형은 마약 사범을 자녀로 둔 어느 부모를 만나면서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마약에 관해 너무도 모르고 있음을, 그래서 마약 범죄에 너무도 무방비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마약 문제를 정책으로 다루어야 하는 이들조차 마약과 마약 범죄에 관해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약 범죄는 ‘돈’이 중요한 매개로 작용한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공급을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마약 범죄를 근절시킬 수 없다. 국내 마약 유통 가격이 타 국가에 비해 높은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필로폰의 국내 유통 가격은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보다 10배에서 20배 높다. 한국은 마약류 단속이 철저한 편이어서 유통되는 마약의 절대량이 적고, 판매에도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이러한 희소성과 리스크 때문에 유통 가격이 높아진다. 다시 말하면 마약 공급자는 어떻게든 국내에 마약을 들여와서 성공적으로 팔기만 하면 일확천금을 손에 쥘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으로 마약을 밀수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 방법도 기상천외하게 발전한다. 게다가 마약과 관련이 없던 이들까지 돈을 노리고 마약 범죄에 뛰어들 요인으로 작용한다.
변호사 안준형은 마약 공급을 단속하고 처벌하는 정책만으로는 마약 범죄를 근절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마약 범죄를 줄이려면 수요를 차단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마약과 마약 범죄를 잘 알고 있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마약을 ‘막연한 무언가’에서 ‘잘 알고 있는 무언가’로 만드는 것, 마약 범죄를 저 멀리 있는 누군가의 짓이 아니라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이 연루될 수도 있는 구체적인 사건과 사고로 인지하는 것, 마약과 마약 범죄의 결과가 쾌락이 아닌 죽음으로 이어질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우리가 스스로 마약을 멀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안준형은 마약 사범을 다루는 정책 역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국가가 마약 사범들을 그저 격리하고 감시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단약과 재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약 범죄는 재범률이 매우 높은 편이다. 마약 사범 가운데 30%가 재차 범행을 저지른다. 이에 전문가들은 마약 중독 문제는 처벌보다는 치료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2024년 마약 중독자 치료 예산은 보건복지부가 요청한 예산에 비해 85%나 삭감됐다. 이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의 의지가 투약자의 치료와 사회 복귀보다는 단속과 처벌에 치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준형은 한국이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지금부터라도 마약 범죄와 마약 사범을 대하는 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NOW EXIT, 공감이 출구를 만든다
: ‘사건’이 아닌 ‘사람’을 이야기하는 마약 전문 변호사
『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에는 변호사 안준형이 지난 10여 년간 맡아 왔던 사건들 가운데 방송이나 언론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은, 일상 속의 마약 범죄와 거기에 연루된 사람들을 담고 있다.
바른 생활의 표본이었다가 한순간의 일탈로 마약 사범이 된 유학생, 대마를 대하는 미국과 한국의 서로 다른 법 체계에서 혼란에 빠진 젊은이들, 마약으로 맺어진 어떤 연인의 진실과 거짓, 투약자인 딸을 한 번만 더 믿어보려 했던 어느 부모의 좌절, 타고난 근면함으로 젊은 나이에 텔레그램의 마약왕이 된 사내, 마약 카르텔에 의해 일회용 운반책으로 쓰이고 버려진 미국인 촌뜨기, 뼈를 깎는 노력으로 단약과 재활을 이어가는 연예인, 단약에는 성공했으나 결국 안타까운 선택을 한 의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안준형은 제삼자의 시선에서 그들과 사건을 바라보고, 거기에서 알게 된 것과 느낀 것을 이야기한다. 변호인으로서 그가 얻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공감’이다. 변호인이 의뢰인의 사정과 이야기에 자신을 이입할 수 없고 스스로가 설득되지 않는다면, 결국 재판에서 검사와 판사를 설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투약자의 사정에 공감한다면, 그들이 마약을 하는 이유에 공감하고 그들이 마약을 하는 것을 납득한다는 의미일까? 이 질문에 안준형은 대답한다.
“마약의 끝은 정해져 있다. 투약이 이어져 몸이 망가진다면 신체적 자살이고, 아직 거기에 이르지 않았다면 사회적 자살 중이다. 나는 구조자의 심정으로 마약 투약자들을 본다. 사실은 당신들도 살고 싶을 것이라는 마음에 공감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변호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안준형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투약자를 범죄자이기 이전에 죽어가는 한 사람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마약’에 대한 책이 아니다. 『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작가정보
한국과 미국에서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국제변호사다. 법무법인 지혁의 대표변호사이며,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관 자문 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민사, 형사, 가사를 가리지 않고 의뢰받은 모든 사건을 처리하지만 형사사건, 그중에서도 강력사건을 변론할 때 가장 가슴이 뛴다. 최근 15년 구형을 받은 마약 밀수 사건에서 무죄를 이끌어내며, ‘변호사의 꽃은 형사 변호인’이라던 지도교수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10년 전 마약 사건을 처음 맡은 이래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덧 마약 전문 변호사가 되었다. 요즘은 1년에 100건가량의 마약 사건을 처리한다.
한 번 실수를 저지른 후 단약을 다짐했지만 소위 ‘뽕방’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나온 후 본격적인 ‘약쟁이’가 되어 또다시 감방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의뢰인, 마약을 끊지 못해 결국 죽음에 이른 의뢰인, 마약을 끊었지만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의뢰인 등을 만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제는 마약 투약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처벌’에서 ‘치료’로 바뀌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이 책이, 마약 투약자와 그 가족들이 기댈 수 있는 작은 언덕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우리 곁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마약과 마약 사범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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