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리 5: 심연의 리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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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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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리플리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 30대 후반이 되어 엘로이즈와 편안히 살아가던 리플리에게 프리처드라는 미국인 남자가 접근한다. 리플리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자리를 피하지만, 그의 관심은 집요하게 이어진다. 그러던 중에 프리처드는 오래전 리플리가 죽인 사람의 시체를 발견하는데…
“톰도 아주 조금은 아는 척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프리처드가 구두를 신고 있었다. 바구니를 엮듯 가죽을 엮어서 만든 거라 통풍이 잘되는 구두였는데, 톰이 질색하는 스타일이었다. 프리처드의 몸에 닿은 거라면 그게 뭐든 못마땅했다. 차고 있는 손목시계도 꼴 보기 싫었다.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스트랩에 상판까지 황금색인 요란한 금장 시계였는데, 포주들이나 차고 다닐 법했다. 톰은 자기 손목에 찬 앤티크처럼 보이는 갈색 가죽 스트랩이 달린 얌전한 파텍 필립 시계가 훨씬 좋았다.”(『심연의 리플리』, 100쪽)
범죄소설의 고전 ‘리플리’ 5부작, 독점 출간
‘20세기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로 알려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은 이른바 ‘리플리아드(The Ripliad)’로 불리는 리플리 시리즈다. 1955년부터 1991년까지 36년에 걸쳐 완성된 리플리 5부작은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사이코패스” 캐릭터 톰 리플리를 창조하며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르네 클레망 감독,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 앤서니 밍겔라 감독, 맷 데이먼 주연의 〈리플리〉 등으로 영화화되며 화제를 모았고, 스티븐 자일리언 감독, 앤드루 스콧 주연의 넷플릭스 시리즈 〈리플리〉가 연내 공개를 앞두고 있다.
1955년 초판 발행 후 약 70년이 흐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절판되지 않고 계속해서 영상화되는 리플리 시리즈의 매력은 무엇일까? 『워싱턴포스트』 서평 담당 기자로 활동하면서 문학 평론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마이클 더다는 이렇게 말했다. “하이스미스가 창조해 낸 가장 유명한 캐릭터 톰 리플리는 평온하고, 아내와 친구들에게 헌신적이고, 미식가이며, 부득이 킬러일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이 조용한 탐미주의자는 오직 필요할 때만 몽둥이로 내리치고, 목을 조르고, 익사시킨다. 때로는 친한 친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가끔 첫 살인의 추억이 그를 불편하게 하지만 오래 지속되는 죄책감은 느끼지 못한다. 그가 살인을 하는 이유는 자신과 친구들과 사업 파트너들과 집을 보호하기 위함일 뿐이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
톰 리플리는 누구보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취향을 소유한 탐미주의자지만 도덕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기꾼이자 살인마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설이 진행되면서 독자는 리플리에게 공포와 혐오감뿐 아니라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된다. 하이스미스가 독자로 하여금 리플리의 가장 소름 끼치는 면조차 공감할 수 있게끔, 독자가 자기 영혼의 어두운 구석을 마주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하이스미스는 리플리의 머릿속으로 우리를 초대해 그가 왜 그런 기행을 저지르는지를 이해시키고 그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도록 조종한다. 이상 심리를 지닌 범죄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이러한 방식은 당대에 참신한 시도로 평가받았을 뿐 아니라 한니발 렉터와 같은 후대의 연쇄 살인범 캐릭터에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문학사상 독창적이고도 기이한 캐릭터
고아 출신으로 뉴욕 뒷골목을 전전하며 살아가던 톰 리플리가 디키 그린리프를 찾아 먼 길에 나선 이유는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는 일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리플리는 이탈리아에서 만난 디키에 매료된다. 리플리와 비교해 디키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다. 많은 돈, 멋진 외모, 아름다운 여자친구까지. 리플리는 동경과 자기혐오의 굴레에 사로잡힌다. 그는 지루하고 비루한 현재의 삶을 벗어나 ‘내가 아닌 누군가’, 즉 디키의 삶을 가로채려 한다.
시리즈 속에서 톰 리플리는 ‘자기방어’가 최우선이며, 그래서 살아남는다. 리플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저질렀던 살인들은 노력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고 불친절한 사람들, 세계를 향한 자신의 심미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지식한 이들에 대한 복수였다. 무엇보다 외부로부터 끝없이 가해지는 공격 속에서 리플리가 진심으로 지키고 싶어 하는 건 가족의 인정, 타인의 평가, 개인의 양심 같은 거대한 기준이 아니다. 그는 아내 엘로이즈와 가구, 옷, 하프시코드, 정원, 그림 같은 소유물을 지키고자 한다. 특히 그 모든 소유물을 집약하는 ‘집’이라는 공간이 중요하다. 디키를 죽인 다음 리플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로마에 아파트를 구입한 것이다. 그는 그 아파트를 자신의 취향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치장한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재능 있는 리플리』를 집필하던 1955년에 남긴 메모에서 “리플리가 글을 쓰는 것 같았다.”라고 적으며 자신이 “약간 사이코패스적인 면이 있다.”라고 고백했다. 하이스미스의 전기 작가인 조안 쉔카는 그의 소설이 “독자를 도덕적 상대성, 전이 가능한 죄책감, 불안정한 정체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아들인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리플리 캐릭터, 나아가 하이스미스 본인에 대한 설명으로도 읽힌다. 20세기 문학사상 독창적이고도 기이한 캐릭터를 창조한 하이스미스는 사후 약 30년이 지난 지금 유럽에서 도스토옙스키, 콘래드, 카프카, 지드, 카뮈 같은 위대한 심리소설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2008년에는 『타임스』 선정 역대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 50인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이스미스의 대표작이자 범죄소설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리플리 시리즈를 하이스미스 탄생 100주년(2021년)을 기념하며 새로운 번역과 디자인으로 선보인다. 김미정 역자가 옮긴 새 번역은 하이스미스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를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경우에는 상세한 각주를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또한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의 심도 깊은 해설을 함께 실었고,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워크룸의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특색을 살린 박스 세트는 500세트만 한정 제작하여 소장 가치를 높였다.
ㆍ 거짓말을 진실로 믿는 사람들, ‘리플리 증후군’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만을 진실로 믿으며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한다. ‘리플리 병’ 또는 ‘리플리 효과’라고도 불리는 이 증상은 공식적인 질환이 아님에도 실제로 소설 속 리플리와 유사한 행동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20세기 후반 정신 병리학의 연구 대상으로 떠올랐다. 리플리 증후군은 개인의 사회적 성취 욕구는 크지만 그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통로가 막혀 있을 때 자주 발생한다. 마음속으로 강렬하게 꿈꾸는 것을 현실에서 이룰 수 없으면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그곳에서 살고자 하는 것이다. 2022년에 공개되어 화제를 모은 수지 주연의 〈안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등 리플리 증후군을 소재로 한 작품이 꾸준히 제작되는 배경에는 이러한 사회적인 병리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ㆍ 영화 거장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작가 하이스미스의 대표작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50년 이상 작품 활동을 하면서 22편의 장편 소설과 수많은 단편 소설을 발표했는데, 그중 20편 이상이 영화로 각색되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앨프리드 히치콕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1959), 클로드 샤브롤의 〈올빼미의 울음〉(1987), 토드 헤인즈의 〈캐롤〉(2016) 등이 있다. 리플리 시리즈 역시 『재능 있는 리플리』를 원작으로 한 〈태양은 가득히〉(1960), 〈리플리〉(1999) 이외에도 여러 차례 영화화되며 화제를 모았다. 『지하의 리플리』는 로저 스포티스우드 감독, 배리 패퍼 주연의 〈지하의 리플리〉(2005)로, 『리플리의 게임』은 빔 벤더스 감독, 데니스 호퍼 주연의 〈미국인 친구〉(1977), 릴리아나 카바니 감독, 존 말코비치 주연의 〈리플리스 게임〉(2005)으로 영화화되었다.
작가정보
저자(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Patricia Highsmith)
‘불안의 시인’으로 불리는 우리 시대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 1921년 1월 19일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태어나 바너드대학에서 영문학과 라틴어, 그리스어를 공부했다. 트루먼 카포티의 지지 속에 1950년 데뷔작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출간해 큰 주목을 받았고, 이 소설은 히치콕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는 등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1955년 발표한 『재능 있는 리플리』는 하이스미스의 명성을 가장 널리 알린 작품으로, 르네 클레망 감독,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 앤서니 밍겔라 감독, 맷 데이먼 주연의 〈리플리〉 등으로 영화화되며 화제를 모았다. 1955년부터 1991년까지 36년에 걸쳐 완성된 리플리 5부작은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사이코패스” 캐릭터 톰 리플리를 창조하며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중년에는 자신을 카프카, 지드, 카뮈 같은 위대한 심리소설 작가로 인정해 준 유럽으로 건너가 집필에 매진하다가 장편소설 『소문자 지(g)』를 마무리한 뒤인 1995년 2월 4일 스위스 로카르노에서 세상을 떠났다. 에드거 앨런 포 상, 오 헨리 상, 프랑스 탐정소설 그랑프리, 미국 추리작가협회 특별상, 영국 추리작가협회 은상 등을 받았으며, 사후인 2008년에는 『타임스』 선정 역대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 50인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리플리 5부작을 포함하여 『캐롤』, 『레이디스』, 『유리 감옥』, 『이토록 달콤한 고통』, 『아내를 죽였습니까』, 『심연』, 『올빼미의 울음』 등이 있다.
서울여자대학교 영문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MBC, EBS 등 영상 번역가를 거쳐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살며 사랑하며 기르며』, 『천로역정』, 『사랑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 『유리 감옥』, 『어둠을 먹는 사람들』, 『이토록 달콤한 고통』, 『아내를 죽였습니까』, 『캐롤』, 『칼리의 노래』, 『테러호의 악몽 1, 2』, 『크래시』, 『여왕 페기』, 『사람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서른 살의 여자를 옹호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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