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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치백

이치가와 사오 지음 | 양윤옥 옮김
허블

2023년 10월 31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10월 2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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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53.16MB)
ISBN 9791193078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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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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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9일에 열린 제169회 아쿠타가와상 시상식.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답게 현지 언론들은 앞다퉈 시상식장으로 몰려들었고, 수상자가 무대에 오르자 평소와 다른 풍경에 기자들은 홀린 듯 플래시를 터트렸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기자들 앞에 선 수상자. 바로, 이치카와 사오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목에 꽂힌 기관절개 호스를 누르며 기자들의 질문에 유머러스하게 답했고, 수상 소감을 밝히는 순서가 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째서 2023년에 이르러서야 중증 장애인이 최초로 수상하게 됐는지 모두가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장애인을 배제한 종이책 중심의 일본 출판계를 비판하면서 전자책과 오디오북 추가 보급 등 ‘독서 배리어 프리’를 호소하는 그의 모습은 실시간으로 보도되었고,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국내 언론과 SNS 커뮤니티에서까지 화제를 일으켰다. 이러한 화제의 열기는 온라인상에서 그치지 않고 판매로까지 이어지면서, 출간 당시부터 화제작이었던 『헌치백』은 출간 한 달 만에 20만 부가 판매되는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이치카와 사오가 수상 소감에서 밝혔던 것처럼, 중증 장애인 작가가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최초이며 이 역사적 사건이 『헌치백』을 뜨거운 감자로 만든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화제의 크기를 본격적으로 키운 요소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수상작의 파격적인 줄거리와 작품성이다. 『헌치백』은 중증 척추 장애인 샤카가 남성 간병인에게 “내가 임신하고 중절하는 걸 도와주면 1억 엔을 줄게요”라고 제안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심사위원 일부가 난색을 표할 만큼 위악적인 상상력을 숨김없이 표출하는 작품이다. 이렇듯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작품이지만, 9명의 심사위원 모두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헌치백』을 만장일치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약자인 작가가 약자의 이야기를 썼을 터인데도 이곳에는 털끝만큼의 약함도 없다.”
_ 요시다 슈이치(소설가)

“상식적인 사고를 휘저어 버리는 언어의 전개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소설이 소설로서 낳아준 것이다.”
_ 호리에 도시유키(소설가)

위 두 심사평을 비롯한 심사 경위를 살펴보면, 일본 문학계가 『헌치백』에 주목하는 이유는 작가의 장애가 아닌 작품의 파격성과 문학성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아쿠타가와상 발표 당시 생방송으로 진행된 서평가 좌담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서평가들은 이치카와 사오의 장애 당사자성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그것과 무관하게 『헌치백』의 문학성은 가히 압도적이라며 입을 모았다.
중증 장애 당사자가 중증 장애인 주인공을 진실하고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는 점만으로도 『헌치백』은 당사자 문학으로서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이 작품이 선보이는 문학적 실험은 그 훌륭한 문학성을 배가시킨다. 파격을 과감히 도전하는 작가를 발굴함으로써 문단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기로 정평이 난 아쿠타가와상의 수상작답게, 『헌치백』은 시사성 넘치는 풍자적 표현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인터넷 밈과 은어를 과감히 차용해 뛰어난 문학적 실험성을 보여준다. 전반부에 등장하는 주인공 샤카의 액자소설이 후반부엔 현실의 층위를 전복하면서 메타픽션에 대한 실험으로까지 발전해 나가는데, 이에 『헌치백』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자 양윤옥은 “특히 마지막 부분의 짧은 글로 소설 전체를 뒤엎는 또 다른 세계가 입체적으로 변환하면서 전혀 다른 가정을 펼쳐갈 수 있다는 게 대단합니다. (…) 기적의 명작이 아닌가 싶습니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한국어판에 부쳐 ✽ 5

헌치백 ✽ 11

제169회 아쿠타가와상 수상 인터뷰 ✽ 108

옮긴이의 말 ✽ 132

임신과 중절을 해보고 싶다.
내 휘어진 몸속에서 태아는 제대로 크지도 못할 텐데.
출산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물론 육아도 어렵다.
하지만 아마도 임신과 중절까지라면 보통 사람처럼 가능할 것이다. 생식기능에는 문제가 없으니까.
그래서 임신과 중절은 해보고 싶다.
평범한 여자 사람처럼 아이를 임신하고 중절해 보는 게 나의 꿈입니다.
- pp. 27~28

나는 종이책을 증오한다. ‘눈이 보이고, 책을 들 수 있고, 책장을 넘길 수 있고, 독서 자세를 유지할 수 있고, 서점에 자유롭게 사러 다닐 수 있어야 한다’라는 다섯 가지의 건강성을 요구하는 독서 문화의 마치스모를 증오한다. 그 특권성을 깨닫지 못하는 이른바 ‘서책 애호가’들의 무지한 오만함을 증오한다.
- pp. 37~38

1996년에는 마침내 장애인도 아이를 낳는 측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는 법이 정해졌지만, 생식 기술의 발전과 생활 필수품화에 따라 장애인 살해는 결국 수많은 커플에게 캐주얼한 것이 되었다. 머지않아 비용도 저렴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죽이기 위해 잉태하려고 하는 장애인이 있어도 괜찮은 거 아닌가?
그걸로 겨우 균형이 잡히잖아.
- p. 60

책을 읽을 때마다 등뼈는 구부러져 폐를 짓누르고, 목에는 구멍이 뚫렸고, 걸어다니면 여기저기에 머리를 쿵쿵 찧으며 내 몸은 살아가기 위해 파괴되어 왔다. 살아가기 위해 싹트는 생명을 죽이는 것과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
- p. 61


본문 중에서


나의 뇌 속은 산소결핍증일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항상 이런 식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젊고 성실하며 과묵한 장애 여성 이자와 샤카釋華 씨로 지냈고, 그렇기 때문에 〈Buddha〉와 〈샤카紗花〉는 지금까지 상스럽고 유치한 망언을 거침없이 공개할 수 있었다. 연꽃 주위의 진흙탕처럼 질퍽한 실을 그리는, 늪에서 태어나는 말들. 하지만 진흙탕이 없으면 연꽃은 살아갈 수 없다.
- p. 67

나를 돈으로만 보는 자에 대해서는 나도 돈을 통해서만 볼 뿐이다.
사회란 게 원래 그렇잖아.
그래서 6일 동안 점잖게 기다렸다가 나는 다나카 씨에게 말했다.
“얼마를 원해요?”
서론 없이도 커뮤니케이션은 정확히 성립되었다. 왜냐면 우리는 둘 다 약자였기 때문이다.
- p. 74

“1억 5,500만 엔은 어때요?”
목을 누르고 나는 말했다.
“다나카 씨의 키만큼이에요. 1센티미터당 100만 엔. 당신의 비장애인 몸에 가격을 매긴 거예요.”
- p. 75

애초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만은 하지 말아주었으면 했다.
다나카 씨가 좀 더 사악해 주었으면 했다.
나는 미워해도 괜찮으니까.
TL이라기보다 BL 같은 대사다. 이런 소설 대사 같은 말로 실제 살아 있는 몸을 가진 남자를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 p. 90

그렇다. 그 연민이야말로 올바른 거리감이다.
나는 모나리자는 될 수 없다.
나는 헌치백 괴물이니까.
- p. 95

척추 장애인의 등뼈처럼 휘어지고 뒤틀린, 육체와 욕망의 목소리
김초엽, 정지아 소설가가 강력 추천하는 헌치백 괴물의 인간선언문

“온몸으로 돌진하는 소설. ‘살기 위해 파괴되어 가는 몸으로, 욕망하는 내가 여기 있다.’ 읽는 내내 그렇게 말하는 주인공 샤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_ 김초엽(소설가)

“비장애 여성처럼 임신과 중절을 꼭 해보고 싶다는, 이치카와 사오를 꼭 닮은 주인공 샤카의 고백 앞에서 나는 차마 울지 못했다. (…) 연민에 맞서는 그녀의 위악에, 타락을 꿈꾸는 발칙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_ 정지아(소설가)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헌치백』은 수많은 매력을 가진, 양윤옥 번역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학의 보물 창고” 같은 작품이다. 그 수많은 보석 중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보석은 의심의 여지 없이 당사자 문학. 그렇기에 이 작품을 가장 온전히 읽는 방법은 소설 속 주인공 ‘이자와 샤카’에게 ‘이치카와 사오’를 투영해 읽는 것일 터다.
주인공 이자와 샤카는 작가 이치카와 사오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인물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작가의 〈수상 인터뷰〉에 나오는데, 작가는 『헌치백』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 30퍼센트 정도 들어갔다고 설명하면서, “『헌치백』은 거의 단번에 써 내려간 작품이라서 의식할 만한 시행착오라는 것도 없이 제 감각과 머릿속 이미지를 그대로 출력해 낸 느낌이에요”라며 자기 자신과 작품이 얼마나 밀착돼 있는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작가는 중증 장애인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 소설 집필을 20살부터 시작해서 지난 20여 년 동안 라이트노벨을 비롯한 각종 문학상에 해마다 빠짐없이 응모해 온 이력을 가지고 있다. 즉, 양윤옥 번역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작가의 타고난 재능이 오랜 세월 독서와 집필의 단련을 거쳐 고통스러운 몸의 언어와 결합했을 때, 마치 둑이 터지듯이 단숨에 쏟아져 나온” 작품이 바로 『헌치백』이다.
작가와 작가가 투영된 주인공은 공통적으로 ‘중증 척추 장애’와 그 장애를 발생시키는 요인인 ‘근세관성 근병증’이라는 난치병을 앓고 있으며, 그로 인해 하루 종일 5평 남짓의 좁은 방 안에서 침대 위에 누워 시간을 보낸다. 펜조차 제대로 쥘 수 없는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태블릿을 엄지로 눌러가며 글을 쓰는 것뿐. 그리하여 작가는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소설 속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두 사람이 쓰는 글의 성격은 서로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주인공 샤카가 쓰는 글이란 다른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다시 태어나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 “비장애 여성처럼 임신과 중절을 하고 싶다” 등과 같은 패륜적 망언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패륜적 망언을 작가인 이치카와 사오가 소설의 문장으로 쓰고, 그걸 30만 명 이상의 독자 앞에 선보였다는 점은 굉장히 아이러니하다) 샤카가 창부가 되고 싶고 임신과 중절을 하고 싶어하는 건 그녀가 몰상식하거나 반사회적인 인간이라서는 아니다. 그녀 또한 작가인 이치카와 사오와 마찬가지로 와세다대학교라는 명문 사립대에 다니고 있을뿐더러, 심지어 작가와 달리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덕분에 상류층에 속해 있다. 게다가 일할 필요가 없는데도 성인 소설과 양산형 기사를 써서 돈을 벌고 그 전액을 불우 이웃에게 기부하는 등 건실하게 살아가는 여성이다. 이토록 건실한 그녀가 남몰래 망언을 일삼고, 결국 막대한 재산을 이용해 남성 간병인의 몸을 사서 ‘임신과 중절’을 시도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이에 그녀는 ‘건실한 여성 이자와 샤카’로 남기 위해서, ‘헌치백 괴물’이 아닌 ‘인간’이 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휘어지고 뒤틀린 등뼈 때문에 인공호흡기와 담을 빼내는 흡인기 없이는 살 수 없는 육체.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선 식사와 목욕이 불가능할 뿐더러 당연히 평범한 연애도 섹스도 불가능한 삶. 강제로 장애를 가진 아이를 중절하거나 장애인에겐 임신할 권리를 주지 않았던 이전의 역사. 그리고 지금까지도 책을 읽을 권리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지금의 현실. 이 모든 것 앞에서 그녀는 아래와 같이 독백한다.

“(…) 실제 생활에서는 젊고 성실하며 과묵한 장애 여성 이자와 샤카(釋華) 씨로 지냈고, 그렇기 때문에 〈Buddha〉와 〈샤카(紗花)〉는 지금까지 상스럽고 유치한 망언을 거침없이 공개할 수 있었다. 연꽃 주위의 진흙탕처럼 질퍽한 실을 그리는, 늪에서 태어나는 말들. 하지만 진흙탕이 없으면 연꽃은 살아갈 수 없다.”
- 본문 p. 67

소설 속 인물인 이자와 샤카가 남성 간병인의 몸을 사서 ‘임신과 중절’을 시도하는 것은 당연히 허구이지만, 그 행위를 욕망하고 결국 행동하게 만든 근간인 휘어지고 뒤틀린 육체는 이치카와 사오의 몸으로서 실제 존재하기 때문에, 『헌치백』의 이 진실하고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는 결코 허구처럼 읽히지 않는다. 샤카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일매일 살아가기 위해 육체와 정신이 파괴되어 가는” 중증 장애인의 삶. 정지아 소설가가 추천사에서 말한 것처럼, 이치카와 사오는 “살기 위해 파괴되고 살아낸 시간의 증거로서 파괴되어 가는 삶”을 “위악을 떨면서, 타락을 열망하면서, 치열하게 견디고” 있으며, 그렇기에 그가 쓴 『헌치백』은 “몸조차 제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의 치열한 생존기가 아니라 발칙하고 도발적인 인간선언문”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이 헌치백 괴물의 인간선언문은 김초엽 작가가 추천사로 쓴 것처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해방감을 느껴지게” 하면서도, “재미있다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고, 그런 혼란까지도 샤카는 ‘저쪽의 오만’이라고 비웃어 버릴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만들어 끝까지 마음 편하게 읽지 못하게 한다. 『헌치백』은 장애인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의 기만을 비평하고 해체하고 재구성을 촉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대한 촉구와 질문 앞에서 우리는 결코 편해질 수 없다. 그 이유는, 심사위원인 히라노 게이치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책이 우리에게 들이미는 질문의 기백은 독자에게 안이한 대답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장벽을 부수고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한 위악과 타락의 고백
장애인과 여성의 인권 운동 역사를 뒤잇는 중증 장애인의 글쓰기

“『헌치백』이 문학상을 타기까지 일본 사람들은 그 장벽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헌치백』은 우리 사회에서 그 존재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사람의, 하나의 작은 목소리입니다.”
_ 〈한국어판에 부쳐〉 중에서

“제1세대로서 평생 장애인 인권보장과 여성운동에 헌신해 온 요네즈 도모코, 리프로덕티브 라이츠(임신 출산 피임 등에 관해 개인, 특히 여성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이끌어 낸 아사카 유호와 그녀의 딸 우미, 그 이름을 이 자리에 기록해 두고자 합니다.“
_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치카와 사오는 〈수상 인터뷰〉에서 “(장애인 표상 역사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정형적인 분석, 장애인 표상의 가능성을 논하는 내용의) 졸업논문을 쓰는 동안에 장애 당사자 작가나 중증 장애인이 주인공인 순수문학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 『헌치백』으로 이어졌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창작 동기가 문학계와 출판계에 남아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장애인을 묘사하는 일이 드물뿐더러 그렇기에 언제나 스테레오타입의 역할만 맡기는 기존 문학작품, 지성인을 자처하면서도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스포츠계보다 못한 문학계, 그리고 중증 장애인은 읽기 어려운 종이책만을 고집한 출판계. 위 세 가지 부분에 대한 비판과 풍자는 작품 내내 드러나며, 이는 곧 주인공 이자와 샤카의 위악과 타락의 고백을 탄생시키는 토대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 장벽을 부수고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한 이치카와 사오의 노력이 위악과 타락의 고백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과 여성 인권 운동사에 잠들어 있던 여성 장애인 활동가 ‘요네즈 도모코’ ‘이와마 고로’ ‘아사카 유호’ 등의 목소리를 다시 불러내서, 우리 사회에서 그 존재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사람인 ‘이자와 샤카’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굉장한 노력을 쏟는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지점은 그가 〈한국어판에 부쳐〉에서 “『헌치백』을 쓸 수 있었던 건 한국문학이 가진 현실 사회를 이야기하는 임파워먼트 힘 덕분”이라고 밝힌 만큼, 이자와 샤카의 목소리에 장애인 여성 인권을 위해 내질렀던 한국문학의 목소리도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듯 서도 다른 나라의 여러 목소리가 힘을 나눠준 덕분에 등장한 『헌치백』이 한국 독자에게 전달되어 그들의 창작 원천이 되는 현재. 중증 장애 여성의 글쓰기가 만들어 낸 이 진보의 선순환은 책 한 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아득히 뛰어넘는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작가정보

(市川沙央)
1979년생. 와세다대학교 인간과학부 통신교육과정 인간환경과학과 졸업. 「장애인 표상과 현실사회의 상호 영향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졸업논문은 오노 아즈사 기념학술상을 수상했다. 2023년 중편소설 「헌치백」으로 제128회 《문학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나아가 이 작품의 제169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으로 문학계는 물론 사회적 대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일약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선천성 근세관성 근병증의 중증 장애인으로 인공호흡기와 전동 휠체어 등에 의지하고, 집필에는 태블릿을 사용한다. 아쿠타가와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으로 전자책과 오디오북 추가 보급 등 ‘독서 배리어 프리’를 호소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편한 일로서 20대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지난 20여 년 동안 해마다 각 문학상에 SF, 판타지 등의 장르소설과 라이트노벨을 응모해 왔다. 절박한 심정으로 집필한 첫 비장르소설이 「헌치백」이었다. 존경하는 작가로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일본문학 대표 작가 시마다 마사히코, 라이트노벨 작가 와카기 미오 등을 꼽았다.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 2005년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으로 일본 고단샤가 수여하는 노마 문예번역상을 수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송』 『한 남자』 『본심』, 사쿠라기 시노의 『호텔 로열』 『빙평선』,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악의』 『유성의 인연』 《라플라스 시리즈》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이치카와 사오의 『헌치백』 등 다수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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