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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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88932423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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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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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해설 향유와 탈주의 시인
판본 소개
에밀리 디킨슨 연보
시계가 멈추었다 -
벽난로 위 시계만 빼고 -
가장 탁월한 제네바 장인도
이제 막 멈춘 -
시계추를 살릴 수 없다 -
그 시계가 갑자기 공포에 사로잡혔다!
숫자들은 괴로워하며 몸을 구부리더니 -
십진법에서 빠져나와 몸을 떨다가 -
정오에 멈춰 버린다 -
(본문 61쪽)
내게는 증오할 시간이 없었다 -
왜냐하면
곧 죽음이 방해할 것이라서 -
남은 생이
그다지 길지 않아서
증오를 -멈출 수 있었다 -
내게는 사랑할 시간도 없었다 -
그래도
애써야만 했으므로 -
조금만 애써 사랑하면 -
내게는
충분할 것 같았다
(본문 108쪽)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
한 시간의 기다림도 - 긴 시간이다 -
결국 사랑이 찾아온다면 -
영원한 기다림도 - 짧은 시간이다 -
(본문 178쪽)
내면으로 침잠하여 지상의 환희로 나아간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대표 시 선집
19세기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 가운데 한 명인 에밀리 디킨슨은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의 교육열 덕분에 당시 여성으로선 드물게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발병으로 애머스트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마운트 홀리요크 여성 신학교에 입학한 지 10개월 만에 고향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후 그녀는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며 시를 썼다. 생전에 발표한 시는 몇 편 안 되지만 1886년 디킨슨이 죽은 후 여동생 라비니아가 그녀의 시를 발견하고 공개하면서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그녀의 시 세계에서 가장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연대기적 시간의 중단으로 영원의 옹호나, 유한도 영원도 아닌 임시적 정지이다. 하지만 아감벤의 관점에서 보면 디킨슨의 시에 나타나는 시간의 중단은 영원이나 임시적 정지가 아닌 새로운 시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시간은 순간적으로 포착하지 못하면 영원히 지나가 버리는 행복한 순간이자 가능성으로 가득 찬 세계다. 디킨슨에게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연대기적 시간의 중단은 영원으로 가는 출발점이 되고, 여기서의 중단은 파괴인 동시에 해방을 가져오는, 완벽한 향유가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이러한 향유의 시간을 디킨슨은 기적이라고 부르며 죽음에서 그 작은 틈을 엿본다. 그에게 죽음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단으로 인해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는 작은 문이 생기고, 인간이 기원의 상태로 돌아가 부활할 수 있는 계기다.
특히 그녀의 문학 세계에서 주요한 주제인 중단에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단절이 파괴인 동시에 구원이라는 것이다. 시는 이러한 중단을 드러내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이며, 디킨슨의 경우 줄표와 행 바꾸기를 사용해 효과적으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
상실과 분열이 아닌
탈주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시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특징은 부재와 상실, 포기의 관념이다. 심지어 자아 분열을 디킨슨 시의 특징으로 보는 비평가도 있다. 하지만 들뢰즈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 디킨슨의 시는 상실과 분열의 시가 아니라 탈주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디킨슨은 시에서 종교와 결혼은 견고한 억압의 상징인데 종교의 억압성은 겨울 오후의 빛으로 표현되고 결혼은 대가가 핵심을 이루는 계약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처럼 영원해 보이는 제도들이 늘 견고할 수는 없다. 견고한 체계에는 유동적인 미시 균열이 생긴다. 그것은 견고한 위계질서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균열을 일으켜 해체하려는 시도를 보여 준다. 그리하여 디킨슨의 탈주는 역량이 증강된 에너지로 나타나고, 그동안 갇혀 있던 영혼은 견고한 배치를 완전히 벗어나 탈주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이 탈주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탈주가 퇴행함으로써 오히려 기존의 제도와 구속을 더 강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침내 탈주에 성공하면 종교와 결혼 같은 제도를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배치를 만들어 낸다.
「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은 시인이 남긴 1,800여 편의 시 가운데 이러한 디킨슨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것들만 엄선해서 실었다. 이 책에 담긴 시들은 매우 간결하면서 이미지즘적이며 추상적인 사고와 구체적인 사물을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시간에 갇힌 인간 의식의 한계에 대한 고통스러운 역설을 일깨우는 디킨슨의 시 세계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으며 향유되고 있다.
작가정보
Emily Dickinson
에밀리 디킨슨은 1830년에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의 명문가에서 에드워드 디킨슨과 에밀리 노크로스 디킨슨 사이에서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로 매사추세츠 하원과 매사추세츠 상원을 역임했고, 어머니는 1850년대 중반부터 1882년 사망할 때까지 병석에 누워 있어 30여 년간 디킨슨이 간호했다. 자녀 교육에 열심이었던 아버지는 아들뿐 아니라 두 딸까지 애머스트 아카데미에 보내, 이들은 이곳에서 7년간 교육을 받았다. 애머스트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마운트 홀리요크 여성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10개월 뒤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결혼하지 않고 집안일을 하며 평생을 보냈다.
디킨슨은 은둔의 삶을 산 것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지만 이런 소문과는 반대로 당대의 명사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1855년 필라델피아에서 유명한 장로교 목사 찰스 워즈워스를 만났고 1882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편지를 통해 우정을 이어 갔다. 1850년대 후반에는 『스프링필드 리퍼블리컨』의 소유주이자 편집장인 새뮤얼 볼스에게 30여 통의 편지와 50여 편의 시를 보냈는데, 그 시 중 일부가 1858년 『스프링필드 리퍼블리컨』에 실렸다. 또 노예 폐지론자이자 유명 비평가이던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에게 편지를 보내 문학적인 조언을 구하면서 우정을 쌓았다. 그리고 1872년경에 만난 매사추세츠주의 대법관 오티스 필립스 로드와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1867년 초부터 디킨슨은 방문객을 직접 대면하지 않고 문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방문객에게 짧은 시나 꽃다발을 선물로 보냈고 은둔의 삶을 살면서도 메모와 편지로 대중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1886년 애머스트의 웨스트 묘지에 묻힌 그녀는 “다시 소환되다”라고 쓰인 묘비명대로 시대를 넘어 미국을 넘어 계속 소환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카이스트(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옮긴 책으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달빛 속을 걷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빌레뜨』, 헨리 제임스의 『밝은 모퉁이 집』,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 레이 브래드버리의 『민들레 와인』, 제인 오스틴의 『설득』 등 다수가 있으며, 저서로는 『성·역사·소설』, 『역사 속의 영미 소설』, 『19세기 영미 소설과 젠더』, 『되기와 향유의 문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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