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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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언어 한국어
- 파일 정보 mp3 (1139.00MB)
- ISBN 9791160405842
50분 115.00MB
53분 122.00MB
55분 126.00MB
55분 127.00MB
49분 113.00MB
68분 157.00MB
75분 172.00MB
87분 200.00MB
3분 7.00MB
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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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김혜진 소설가 강력 추천!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불펜의 시간》 작가 신작
“쉽게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정체불명의 미확인 홀이 휩쓸고 간
‘생의 진실’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
도장
오백 원
매미가 울면
죽은 자
빛나고 빛나는
열 개의 파도
미확인 홀
작가의 말
“가로로 한 번, 세로로 두 번 접힌 A4 용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종이를 펼치자 세 글자가 나타났다. 블랙홀. 단정한 글씨체였다.” _8쪽
“잘 봐래이.” 희영이 이마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그리고 신중하게 돌을 던졌다. 납작한 돌이 햇살을 자르며 물 위를 튀었다. 돌이 튈 때마다 희영이 큰 소리로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희영이 여덟이라고 외친 순간 바위에 부딪친 돌이 갑자기 공중으로 떠올랐다. 풍선처럼 둥둥! 그렇게 6초 정도 있다가 모래만큼 가늘게 부서지면서 바위 뒤로 빨려 들어갔다. _38쪽
젊으니까 뭐라도 해보라는 말을 듣던 시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누구를 만나보라는 말을 듣던 시기도 빠르게 지났다. 다시 세상에 나가보자고 마음먹었을 땐 배려가 아니면 새로움을 제안받지 못하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작은 실패를 연거푸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과 인연을 끊고 숨었다. 기어코 찾아내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찾는 사람이 없으면 숨을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이젠 뭘 해야 하는 걸까? _52쪽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것이 아는 건 결국 잃게 마련이라고 생각하며 순옥은 살아왔다. 버리거나 버려지는 것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_112쪽
필성은 자신이 삶에 단단히 박음질 된 사람이란 걸 알았다. (…) 누구에게나 그럴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박음질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어떤 사람은 대롱대롱 매달린 기분으로 평생을 살기도 한다는 걸 몰랐다. _135쪽
정식은 시동을 걸며 결정했다. 오늘처럼 볕이 좋은 가을이나 꽃 피는 봄에 죽으면 선산에 묻히고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에 죽으면 화장하기로. 그렇게 암 환자가 내려야 할 결정 중 하나를 해치웠다. _163쪽
“그런 일을 당하면 따져요, 따져. 살아보면 돈 몇 푼보다 그런 게 더 중요해. 따져야 할 때 따지는 거.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어쩔 수 없지 하면서 하나둘 넘기다 보면 그게 다 곪아서 병나요. 그러니까 억울한 일 당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바락바락 따져요. 분이 풀릴 때까지 따져. 아직 살날이 많잖아. 그래야 살 수 있어.” _271쪽
그러니까 산책은 도시의 습관이었다. _290쪽
희영의 가방 안에는 망원경이 있었다. 다 큰 어른이 망원경을 가지고 다니는 건 좀 이상했지만, 그래도 그건 희영의 시선이 바깥에 있다는 증표였다. 뭔가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자살할 확률은 낮다. 정말 위태로운 사람은 자기 안에서 답을 찾으려는 사람이다. _317쪽
《불펜의 시간》으로 2021년 제26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하나의 주제를 각 인물의 이야기에 걸맞게 직조해내는 균형감이 뛰어나다”라는 평을 받은 김유원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미확인 홀》이 출간된다. 한겨레문학상 수상 당시 윤성희, 편혜영 소설가는 “박진감 있는 서사가 주제를 향해 묵직한 직구를 날리며”, 독자를 “에둘러 독려하는 방식이 믿음직스럽다”라고 평했다. 《불펜의 시간》은 출간 즉시 영상화가 결정되며 특유의 서사적 매력을 피력했다. 또한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 〈의자가 되는 법〉 등을 연출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지닌 ‘선명한 인물과 선 굵은 서사’라는 미점(美點)과 차기작이 기대되는 작가라는 독자의 부름을 증명하듯 《미확인 홀》은 국내에서 발생한 정체불명의 홀과 관련된 여덟 인물의 이야기를 조밀하고 다채롭게 엮어냈다.
작품의 축이 되는 희영, 필희, 은정은 경상남도 시골 마을 은수리의 삼총사로 불리는 동갑내기다. 그러던 어느 날 희영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야 하는데 꽉 막혀서 우글우글한” 얼굴로 자신을 찾아온 필희와 저수지에 올라가게 되고, 그곳에서 새까만 구멍 하나를 발견한다. 블랙홀처럼 무엇이든 던지는 족족 가루로 만들어 빨아들이는 구멍과 그 구멍을 아주 유심히 쳐다보는 필희. 그리고 다음 날 필희가 사라진다. 소설은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르고 희영에게 하얀 종이 위에 ‘블랙홀’ 세 글자가 적힌 의문의 편지가 도착하며 불안과 긴장, 상실과 애도의 서사가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희영을 중심으로 병렬적으로 얽히고설킨 미정, 순옥, 필성, 정식, 찬영, 혜윤의 이야기 또한 세밀하게 설계된 구조적 서사에 아름답게 감응한다. 작가는 무언가를 잃고, 방황하고, 사라지고 싶어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은수리에서 발견된 미확인 홀 위로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다. 그렇게 우리 삶에 실재하는 커다란 ‘홀’ 또한 만들어내는데, 인생에 한 번쯤 겪는 깊은 수렁에 빠진 느낌, 선택을 박탈당한 느낌, 김혜진 소설가의 말처럼 “막막하게 느껴지는 생의 진실”이 그것이다. 작가가 “삶에 단단히 박음질된 사람이 아닌 대롱대롱 매달린 단추처럼 위태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쓴 소설 《미확인 홀》은, 그 공허한 삶의 애환과 공명하며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삶에 단단히 박음질된 것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매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단추처럼 삶과의 연결이 위태로운 사람도 있다.
후자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다. _작가의 말에서
“때로는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상실을 막아주기도 한다”
함부로 잃고, 섣불리 서러워하는 이들을 향한
섬세하고 다정한 위로와 회복의 손길
필희를 잃은 희영, 언니를 잃은 필성, 엄마의 임종을 마친 미정, 삶을 놓치려 했던 정식, 딸을 버리고 도망친 순옥, 일상의 안온이 무너진 찬영, 해고를 당한 혜윤…… 소설 속 인물은 모두 상실의 쳇바퀴 안에서 살아간다. 《미확인 홀》에서 이 지지부진한 상실은 다른 층위로 각별하게 이야기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것이 아닌 건 결국 잃게 마련이라고 생각하며 순옥은 살아왔다. 버리거나 버려지는 것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다르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살다 보면 모든 걸 한순간에 잃는 것 같아도, 살아보면 어떤 걸 완전히 잃기까지는 여러 단계가 존재한다고. 그러므로 완전히 잃지는 않을 기회 또한 여러 번 있다고. _본문에서
세 번째 장인 〈오백 원〉에서 사라진 필희와 필성의 엄마 순옥은 어린 두 딸을 버리고 은수리를 떠나 대구에 정착한다. 세월이 흐른 뒤 순옥은 친손녀 같은 이든이 수학여행비를 모으고 있다는 말에 자신의 슈퍼에서 아르바이트할 것을 제안하고, 어느 날 이든이 몰래 담배와 오백 원짜리들을 빼돌려 화단에 묻어두는 장면을 목격한다. 빠르게 찾아온 서러움과 배신감에 이든을 내치려던 순옥은 화단에 묻힌 동전들을 세어보고는 사춘기 소녀 이든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마음먹는다. 너무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로, 함부로 잃지 않기로.
순옥을 비롯하여 이미 상실의 아픔이 한밑천인 소설 속 인물들은 이렇듯 중요한 무언가를 잃을 것 같은 기분을 “앞당겨 느낀 불안”으로, 버리고 버려질 것만 같은 상황을 “지레짐작”으로 감각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럼으로써 상실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리고 그들의 몸짓은 살아가며 잃게 되는 수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 모든 게 과연 일순 잃게 된 것일까도 함께 골몰하도록 한다. 어쩌면 무언가를 잃게 될 것 같은 기우에 등 떠밀려 함부로 손을 놓아버린 것은 아닐까, 너무 쉽게 서러워하지는 않았을까를 곱씹어 본다. 그러므로 더는 잃지 않겠다는 의지, “어떤 것을 완전히 잃기까지는 여러 단계가 있다”라는 순옥의 말이 얼마나 따뜻하고 다정한 위로인지도.
“살아보니 이해 없이 그냥 받아들여지는 일도 있었다”
긴장감 있게 질주하는 작가만의 리얼리즘을 무기로
내면의 문제를 바깥에서 바라보는 이완의 기술
개인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삶은 단단하게 응축된 긴장 상태에 돌입한다. 잔뜩 부푼 공처럼 제멋대로인 인생에 걷어차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굴러다닌다. 그러나 《미확인 홀》은 그 긴장 안에 머물지 않는다. 각 인물이 가진 아픔의 초점을 바깥으로 맞추며 조금씩 천천히 문제를 이완시킨다.
블랙홀이라는 편지를 받고부터 내면을 가득 채운 불안에 더는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없게 된 희영은 망원경을 들고 다니며 타인을 관찰하고 돌보기 시작한다. 〈죽은 자〉의 굴착기 기사 정식은 마음에 뚫린 우울의 구멍을 흙으로 메꾸는 상상을 반복하고, 대표의 치부를 목격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열 개의 파도〉의 혜윤은 “살아보면 돈 몇 푼보다 따져야 할 때 따지는 게 중요하다”라는 네일숍 직원의 충고를 실행해보기로 결심한다. 이혼한 뒤 고향 은수리로 내려온 〈미확인 홀〉의 은정은 홀로 된 노인들의 생사를 살피며 무미한 일상에 유의미한 과업을 부여한다.
“나는 거의 모든 걸 이해받으며 살았어. 내가 잘나거나 좋은 환경을 타고나서는 아니야.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말하고 살아서 그래. 이해받는 건 내 문제가 아니더라고, 상대의 문제지. 그러니까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어. 알아. 이해받지 못해도 뱉어내야 살 수 있는 말도 있단 거. 그래. 내 삶엔 행운이 따랐어. 반드시 이해받아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 상대의 이해 범위 안에 있었거든.” _본문에서
“정말 위태로운 사람은 자기 안에서 답을 찾으려는 사람”이라는 은정의 말처럼 일상의 영점을 밖으로 조준함으로써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더 선명하게 바라본다. 아주 사사롭고 내밀한 아픔과 고독이 한데 모이고 섞이며 더 넓게 이완되고 치유되는 순간을 마주한다.
《불펜의 시간》에서부터 《미확인 홀》까지 김유원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이해 없이 그냥 마음으로 받아들여지는 아픔도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이내 “커다란 감동과 위로로” 바뀌어 우리 삶 한쪽에 자리 잡은 불분명한 공동(空洞)을 채워주리라는 것을 믿게 된다. 모든 이야기가 그간 노련한 감독으로서 카메라에 진정성 있게 담아온 우리 모습이라는 것을 알기에, 힘차게 도약할 작가의 내일을 더욱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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