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옷깃을 잡고

유준화 지음

불교문예출판부 2023년 08월 10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유준화 시인은 능숙한 비유와 상징을 구사하는 스토리텔러다. 삶의 숨겨진 비의와 세태를 풍자적으로 드러낼 때 그의 시는 빛을 발한다. 이것은 물론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비평의식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욕망의 “진흙탕”이며, 사람들은 누구나 “미운 나무”를 한 그루씩 곁에 두고 살아간다. 이 나무는 애욕과 갈애의 나무이며 미련과 집착의 나무이다. 화자는 이것 때문에 우리의 삶이 무거워진다고 말한다. 익숙해진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낙타와 사자의 고통스러운 이행과정을 거쳐 마침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자유와 ‘새로운 시작’과 ‘거룩한 긍정’에 이를 때, 우리는 진정한 삶의 기쁨과 주이상스, 그리고 창조적 놀이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 고명수(시인 · 전 동원대 교수) 

목차

차례

시인의 말

1부
천상에서 보면
山門에서
해후
어느새
바람의 옷깃을 잡고
소나무 스님
대가리 타령
비정非情
낙엽
왕관
동물의 왕국
이사짐 싸기
3을 삶,이라 읽는다
나비 1
나비 2
길을 가다가
빅뱅 실험


2부
일터
밥
소금
강가에서
화음
하늘 노트
달리기
사랑해
입원실에서
빛나는 날
들고양이
밟히다
신발을 털며
노제
귀
나는 광대다
자화상


3부
나비 날갯짓 보다
연분홍 시절이 강물에
쌀꽃
철쭉꽃 1
철쭉꽃 2
원추리꽃
나리꽃
아카시아꽃
오월의 엽서
꿀맛
나팔꽃
소식
만월
비 오는 날의 수채화
하늘붕어
하늘붕어에게 답하다
살고 싶다
한 번쯤


4부
씨앗
미운나무
대화
껍데기
A의 무게
격려
나도 춘래불사춘
제민천 길
환청
유리컵
할미꽃의 노래
찔레꽃
너와 나
요통
깃발
소원꽃
밤
나이테

■ 해설
은유와 풍자로 그려낸 삶의 비의 | 고명수

책 속으로

천상에서 보면


사람도
짱뚱어도

진흙탕 위를
기어다니며 산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핀다



해후


쓰다가 말고 편지를 쭉쭉 찢어버린 적 있었다

붉은 복사꽃 이파리에 달빛이 눈 시리게 쌓이는 밤이었다

마음 건넬 곳 없어 바들바들 떨던 밤이었다

반백년 훌쩍 지난날, 우연히 지하철 경로석에서

그의 눈매가 몹시 닮은

구부리고 앉아있는 노파를 보았다

부끄러워 가슴 태우던 새 두 마리는 어디로 날아갔나

총알처럼 흐르는 창밖의 풍경을 보다가

던지고 싶은 말 “우리 어디선가 만난 적 있지 않나요”

입안에서 맴돌다가

쭉쭉 찢어버린 편지처럼 창밖에 날려버리고 내렸다



바람의 옷깃을 잡고


어디 갔냐고 물었더니
그냥 왔다 갔나보다, 말한다

보고 싶어 미치겠다, 했더니
네 옆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 말한다

안 보인다 했더니
간 것도 아니니 온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소나무 스님


눈밭에 서 있던
늙은 소나무가 눈 쌓인 팔 하나를
싹둑 잘라 발밑에 던진다

팔뚝만큼 쌓였던 눈의 무게를
과감하게 잘라낸 나무
그의 피가 바닥에 얼룩진다

해가 뜨면 녹아서 실체도 없을
그것을 보며
소나무 큰스님 홀가분하게 서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유준화

충남 공주 출생.
2003년 《불교문예》로 등단.
퇴직 후 2년간 계룡산 절집에서 밥 먹었다.
시집 『초저녁 빗소리 울안에 서성대는 밤』
『네가 웃으면 나도 웃는다』
『어린 왕자가 준 초록색 공』 『바람꽃』
『붉은 오로라가 펼쳐지는 새벽』 등.
2015 충남지사 예술창작 공로상,
2021 공주 올해의 문학인으로 선정.
충남시인협회 작품상, 충남문인협회 작품상,
충남펜문학상, 공주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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