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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마음: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한겨레출판사

2023년 05월 26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02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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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6.35MB)
ISBN 9791160405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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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갖고 싶은 물건을 두고 마음속으로 사야 할 이유와 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저울질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저울의 양쪽에는 다양한 고민과 자기 합리화가 올라간다. 이 물건은 내게 얼마나 필요한가,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가격은 얼마고 통장 잔고는 괜찮은가, 내 취향과 요즘 유행은 어떠한가, 소유욕과 과시욕 중 어느 쪽이 앞서는가, 가성비나 가심비를 따질 것인가, 공정과 윤리와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브랜드인가, 환경·노동·젠더·상표권 문제는 없는 제품인가?
오랫동안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도 찜해 둔 겨울 신발을 두고 마음속 저울질을 하던 중 깨달았다. 그저 물건의 유용성과 가격, 내가 쓸 수 있는 돈과 필요성만을 비교했던 예전과 달리,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추억, 환경과 창작물의 가치 보호에 대한 책임감,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느끼는 사회적 압박과 거기서 벗어나려는 몸부림”(6쪽) 등 저울 위에 올라가는 것이 많아졌음을 말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이상 “지겹지만 멈출 수 없고” 갈수록 더 복잡해지는 이 저울질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보기로 했다.
첫 글의 소재는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자신의 번역 스승이었던 아버지 고(故) 이윤기 선생이 물려준 책장의 처분을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느 자식들처럼 이다희 저자도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특히 이윤기 선생이 기획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번역 프로젝트에 번역 파트너이자 애제자로서 참여한 것이 대표적이다(물론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고 고민하며 수락하는 과정, 그리고 결과물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으며 그 자세한 뒷이야기는 책에서 소개되고 있다).
항상 집 안에서 글 쓰고 번역만 하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저자는 커 갈수록 더 넓은 세상과 더 많은 언어와 취향이 궁금했다. 그래서 영어, 불어, 희랍어, 라틴어를 배웠고 30년이 넘도록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으며 주한미국대사관, 영어 독서 학원 등 다양한 직장을 경험했다. 게다가 일대일 영어 강습, 영어 말하기 대회 심사 위원, 영어 자막 만들기, 건축 잡지 번역 등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 번역 노동자로 활약하며 “들어오는 일은 거절하지 않고 들어오지 않는 일은 찾아서”(94쪽) 했다.
이렇듯 ‘이윤기 번역 대학원’ 1기생으로서의 커리어를 다져 왔으니 일상 곳곳에 아버지의 유산이 자리하고 있는 건 당연했다. 버릴지 말지 저울질하게 만든 책장도 그중 하나다. 이렇게 아버지의 책장을 정리하면서 그 소회를 글로 옮기고 나니 오래도록 곁에 두고 애정을 쏟았던 물건, 꼴도 보기 싫어 진즉에 버린 물건, 이런저런 이유로 남에게 팔거나 물려준 물건들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사고 팔고 버리고 아끼는 행위를 통해 만끽했던 여러 감정들, 천착했던 고민과 사유들을 진솔하고 위트 있게 펼쳐 보았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글들을 한데 모으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왜 살며(live) 왜 사는가(buy)?”(194쪽) 물건을 사는 일은 “아무리 감추거나 포장해도, 아무리 겸손하고 은근하게 과시해도 세상과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여실히 드러낸다.”(149쪽) 고로 어떤 물건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떤 삶을 살 것이냐 하는 것과 상통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은밀하게 박장대소하며 맞장구를 치고 싶은 대목들이 넘쳐난다”는 정여울 작가의 평처럼 저자가 털어놓는 ‘사는 마음’에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프롤로그

1부 내가 돌보는 물건, 나를 돌보는 물건

책장: 사랑하는 물건에는 영혼이 깃든다
바이올린: 예술 없는 세상을 견딜 수 있을까
웨딩드레스: 함정에 빠지기 싫었던 철부지의 결혼
찻잔: 물려주는 엄마와 내다 파는 딸
침대 밑: 불안을 파는 산업
트렌치코트: 제약이 아닌, 날개가 되는 옷
누울 자리: 나쁘지 않은 삶과 나쁘지 않은 죽음
책상: 돌보는 존재로서의 나
작업실: 없어도 무방하지 않은 나만의 방

2부 충동이 없으면 지불하지 않는다

건조기: 모든 새것은 결국 허름해진다
택배 상자: 내가 산 물건 뒤에는 노동이 있다
책 1: “왜”라고 묻는 순간 삶은 경로를 이탈한다
책 2: 시련을 극복한 영웅만이 전리품을 얻는다
맥: 돈 버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의자: 명품에 앉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집 1: 충동이 없으면 구매하지 않는다
집 2: 예술가의 작품이자 우리 동네의 풍경
신발: 자기혐오는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3부 살기 위해 사고, 사기 위해 산다

바지: INTJ의 소비 생활
그릇: 왜 살며(live) 왜 사는가(buy)?
가방: 짭 구매가 세상에 끼친 구체적인 피해
블렌더: 잔소리하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다면?
만년필: 특권은 가진 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식물: 살아 있는 것을 가꾸고 돌보는 일의 기쁨과 슬픔
노트: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산수유나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고민하는 봄의 전령
자동차: 예의를 다해서 내 물건에게 말 걸기

에필로그

내가 물건을 살 때, 혹은 갖고 있는 물건을 계속 소유할지 말지 결정해야 할 때 반복하는 이 저울질은 처음에는 단지 그 물건의 유용성과 가격, 내가 쓸 수 있는 돈, 필요 등을 비교하는 데서 시작했다. 그런데 갈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그러니까 내가 나이 들수록 저울 위에 올라가는 것이 많아졌다. 거기에는 추억의 가치도 올라가고, 브랜드의 윤리성도 올라가고, 환경이나 창작물의 가치 보호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감도 올라간다.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느끼는 사회적 압박도 저울 위에 올라가고 그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도 올라간다._5~6쪽

애초의 생각대로 아버지는 빈 공간에 책을 꽂지 않고 비워 둘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다. 책을 만들거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 알듯 책은 자가 증식하고 무한 증식하기 때문이다._15~16쪽

물려받은 것도 많은데 굳이 내팽개치고 내 것으로 그 자리를 채우려는 이유, 굳이 나만의 취향을 다듬고 내세우려는 이유, 그것은 내가 나로서 홀로 서기 위함이다. (중략) 사람이 홀로 선다는 것이 나를 아껴 준 사람의 물건과 작별하는 일이라면 곧 나를 아껴 준 사람의 영혼과 작별하는 일일 터이다. 그래서 단번에 할 수 없고 세월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물건과 오랜 시간에 걸쳐 나날이 작별할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나라는 사람._19~21쪽

세상은 아이에게 물려줄 것보다 물려주지 말아야 할 것으로 가득한 것 같다. 깨끗하고 검소하고 상냥한 신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부지런하고 현명하며 맑은 피부와 적당한 몸매를 유지하는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나아가 당당하고 진취적인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까지도._39쪽

찻잔 세트를 정리하고 정리하다가 몰래 팔아 버리는 딸의 마음과, 내 딸의 딸에게 물려줄 가보라고 생각하고 구입한 귀한 찻잔을 중고 시장에 내놓자고 말하는 딸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훈훈할 리 없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엄마 땜에 내가 미쳐’ 버릴 것 같은, ‘너 땜에 엄마가 미쳐’ 버릴 것 같은 노이로제 직전의 심경이 ‘당근’의 수많은 매물의 이면에 있을 것이다._45~46쪽

30년 전 나의 취향과 선택에 꼭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쓰지도 않는데 과거에 내가 했던 선택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짐을 이고 지고 사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하지만 첫눈에 반했던 추억을 이유로 버리지 못한 물건에 정성을 들이자 이 물건에 다시 반할 수 있었다. 물건과의 인연은 그 물건을 구매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물건을 돌보면서 쌓은 정은 첫눈에 반하던 순간의 짜릿한 희열을 능가하는 마음의 풍요로움, 안정감을 선사했다._82~83쪽

아무리 상쾌하고 흡족해도 늘 새 물건만 사는 삶을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말해 무엇하랴. 일단 돈이 부족하다. 벌이가 나쁘지는 않지만 벌이가 훨씬 많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의 욕망은 항상 내가 지불할 수 있는 선 너머를 향한다. (중략) 돈은 열심히 벌면 되지만 그 속도가 열심히 쓰는 속도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상당히 수고로울 것이다._101쪽

그렇다면 왜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도구를 사용할 때 기분이 좋을까? (중략) 나의 시각적인 취향을 만족시켜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 물건을 곁에 두는 행위는 바로 그 실용성을 증명하거나 수치화할 수 없기 때문에 필수적이다. 기기의 프로세싱 속도나 화질, 가격 대 성능비보다 그 예쁨에 집중할 때 나는 비로소 의식주 같은 기본적인 필요를 넘어선 삶의 면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다시 말해 내가 일하는 기계, 돈 버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상기한다._139쪽

40대의 나는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중역은 회사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은 임원이라는 뜻이야. 그 사람들이 책상 앞에 앉아서 무얼 하겠니. 결재 서류에 사인이나 하고 아랫사람 불러 면담이나 하겠지. 하루에 최소한 대여섯 시간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너는 용역용 의자, 아랫사람용 의자를 샀어야지._144쪽

‘이왕 사는 거’라는 생각이 들면 어떤 신호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은 어떤 징후다. 내가 곧 사정없이 돈을 쓰는 일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중략) 물론 공중에 떠서 일하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내 몸에 착 붙는 이 의자가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과, 미래의 내가 분명 나를 칭찬하리라는 확신이 들었을 뿐 업무 효율이 크게 향상된 것도 아니다._146~147쪽

왜 사는가? 왜 살며(live) 왜 사는가(buy)? 기본형은 다르지만 어미에 따라 똑같은 형태가 되는 두 동사의 상호 연관성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 것은 그만큼 내가 그 둘의 관계에 민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만 그럴까? 하루는 모임 친구들과 어떤 물건을 놓고 사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친구가 “죽을 때 돈 가지고 가?”라는 말로 도발을 감행했다. 모임의 막내가 받아쳤다.
“죽기 전에 다 쓰고 더 살까 봐 그렇지.”_194쪽

소비하는 행위를 즐거운 행위로 만들기로 한다. 살아가는 데 물건이 필요하고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이상 그 물건을 구매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면 삶이 즐겁기 위해서는 소비하는 행위가 즐거워야 한다. 그래서 나는 즐겁지 않은 소비는 하지 않기로 한다. 삶과 긴밀하게 연관되지 않은 소비라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타인을 살리고 동물을 살리는 소비라면 기쁘게 하고, 타인을 죽이고 동물을 죽이고 지구를 죽이는 소비는 더욱 경계하고 삼가려고 한다. 내가 살고 싶다면 다른 사람도, 다른 동물도 살고 싶을 테고 살 권리가 있을 테니까.
나는 살아야 하니까 사고, 사는 맛에 살기로 한다._198쪽

없어진 산수유나무를 너무 아까워하지 말자고 스스로 위로하던 초봄의 어느 날 나는 아주 행복한 발견을 했다. 내 키보다 큰 산수유나무가 사라진 바로 그 자리에, 내 키보다 작지만 실한 산수유 다섯 그루가 있었다. (중략) 그 자리의 산수유가 없어지는 것을 섭섭해 할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도 공사가 끝난 뒤 식재할 수종에 산수유를 포함시킨 어떤 따뜻한 사람이 있었다고 나는 상상하고 싶다. 그해에는 바로 그 따뜻한 사람이 내 봄의 전령이었다._246~247쪽

추억에 대해 적절한 예의를 차리는 것은 나를 아끼고 내가 걸어온 길을 긍정하는 일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내 추억이 어린 물건을 잘 대접하는 태도, 옛것을 함부로 새것으로 교체하지 않는 태도는 단지 물질이나 사물에 대한 숭배의 태도가 아니라 나를 긍정하는 태도라고 본다. 태도가 곧 그 사람이다._256~257쪽

우리는 왜 살고(live) 왜 사는가(buy)?

누구나 소비에 대한 자기만의 취향과 기준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삶에 대한 취향과 기준을 말해 준다. 이 취향과 기준은 어느 쪽이든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완성된다. 예를 들면 외투를 고를 때 주로 ‘예쁜가, 편한가, 사이즈는 적당한가, 좋은 소재를 썼는가, 관리는 편한가’ 등을 살핀다. 하지만 이 옷을 입은 자기 모습이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를 더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고른 옷들은 그 주인을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옭아맨다. 저자는 맘에 쏙 드는 트렌치코트(a.k.a. 바바리)를 구입하면서 “나를 가두고 제한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자각하고 그 제약에 저항하는 일”(65쪽)이라는 평생의 실천 과제를 얻었다. 과연 그 ‘바바리’는 “입으면 멋진 사람처럼 보일 줄 알았는데 이미 멋진 나를 잘 드러내 주었다.”(67쪽) 그렇다면 ‘멋진 나를 잘 드러내 줄’ 옷과 물건은 어떻게 고를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가 바로 취향이다. 일상이나 업무에서 자주 사용하는 제품일수록 특히 그렇다. 시각적 취향을 만족시키는 유려한 디자인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의식주 같은 기본적인 필요를 넘어선 삶의 면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즉, 우리로 하여금 단순히 “일하는 기계, 돈 버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취저’ 제품을 사는 행위는 “인간성을 사수하기 위한 발버둥”(139쪽)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합리적인 소비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소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소비 욕망은 종종 “내가 지불할 수 있는 선 너머”(101쪽)를 향하곤 한다. 또 ‘이왕 사는 거’라는 생각이나(저자에게 “이왕 사는 거”는 “곧 사정없이 돈을 쓰는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신호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내 선택을) 칭찬하리라는 확신”(147쪽)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저자도 외면할 수 없는 강력한 ‘지름신’을 만나 충동적으로 파주의 한 타운 하우스를 질렀다. 입주 당시에는 집 주변에 편의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고, 집 청소와 관리가 힘들었으며, 거액의 대출금을 상환하느라 허덕여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대부분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미래 가치를 고려하기보다 취향에 따라 마음 가는대로 선택한 경험 덕분에 취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소비 기준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159쪽)
이처럼 소비는 내 욕망과 마주하는 일이자 나를 더 잘 알아 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사는’ 행위는 나 자신이 삶의 중심이 되어 ‘사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기왕이면 즐거운 소비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래야 삶도, 일상도 즐거워지니까. 반대로 즐겁지 않은 소비, “타인을 죽이고 동물을 죽이고 지구를 죽이는 소비”(198쪽)는 경계하고 삼가자고 말한다.

사고 팔고 버리는 데에는 취향이 필요하다

취향과 기준은 물건을 살 때에만 필요할까? 아니다. 다른 이에게 팔거나 물려주거나 버리는 것처럼 물건과 작별하는 경우에도 중요하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찻잔 세트를 ‘당근마켓’에 내다 파는 저자의 친구들처럼 말이다. 저자 또한 찻잔은 아니지만 엄마에게 무려 여덟 벌짜리 은수저 세트를 받았다. 하지만 친구들의 찻잔 세트와 마찬가지로 “처음 샀을 때의 모습 그대로, 주방 도구들이 잠자고 있는 서랍 밑바닥에 누워”(42쪽) 있다. 저자를 사로잡은 미스터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왜 엄마들은 살림살이가 많고, 그 살림살이를 딸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할까? “엄마도 딸과 마찬가지로 소비 욕구가 있다. 하지만 엄마들의 소비가 허용된 영역은 넓지 않았다. 찻잔은 허용된 범위 안에서 취향에 따라 고르고 구입하고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품목”(44쪽)이라는 것이 저자의 추리다. 또 “딸에게 물려주겠다는 목적”은 “엄마의 소비 욕구를 정당화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렇게 구매한 제품에는 엄마의 취향이 오롯이 묻어 있을 수밖에 없다. 당근마켓에 올라온 수많은 세간 매물의 이면에는 엄마와 딸의 취향 차이라는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당근마켓에 팔아 버린 엄마의 찻잔처럼 내 취향에 맞지 않는 물건과 작별하는 일은 일종의 ‘홀로서기’다.(19쪽) 저자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총 무게가 1톤에 달하는 40개의 책장을 어떻게 처분할지 고민하다가 이를 깨달았다. 심지어 이 책장에는 (책을 만들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다 알듯) “자가 증식하고 무한 증식한 책들”(16쪽)까지 꽂혀 있었다. “우리가 사랑한 물건에는 영혼이 깃들고, 버릴 수 없는 생명체처럼 바뀐다”는 철학자 페피노 루소의 말처럼, 저자는 “나를 아껴 준 사람의 물건과 작별하는 일은 곧 나를 아껴 준 사람의 영혼과 작별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 물건과 오랜 시간에 걸쳐 나날이 작별할 때” 나라는 사람이 비로소 홀로서고 완성된다고 강조한다.(21쪽)
이처럼 오래도록 함께한 물건을 다른 이에게 팔거나 물려주는 일은 어쩌면 새 물건을 사는 것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 거기에는 주인의 소중한 추억과 취향이 담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물건들은 우리가 지양해야 할 가치관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차라리 버리는 게 낫다. 이베이에서 저렴하게 낙찰받은 저자의 웨딩드레스가 그랬다. 이 웨딩드레스는 검소하고 착한 아내이자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17년 동안 보관하고 있던 이 웨딩드레스를 “깨끗하고 검소하고 상냥한 신부, 부지런하고 현명하며 맑은 피부와 적당한 몸매를 유지하는 아내, 당당하고 진취적인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39쪽)과 함께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이 외에도 책에서는 노동자의 권리, 소비 윤리, 동물권과 기후 위기, SNS와 부조리한 특권 등 소비 이면에 도사린 “곤란한 질문, 피하고 싶은 질문”이 계속된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겨야 할까?

오래도록 사랑한 물건에는 영혼이 깃든다

어느 날, 저자에게 새 바이올린이 생겼다. 아마추어 연주자로 함께 활동하던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이다. 새 물건이 주는 쾌감과 산뜻함은 대단하다. 그것은 마치 최신형 건조기로 뽀송뽀송하게 말린 빨래를 막 꺼냈을 때의 기분과 비견될 만하다. 하지만 새 바이올린의 매력을 발견할수록 옛 바이올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옛 바이올린 앞에서는 되도록 새 바이올린에 대한 칭찬을 삼갔다. 19년 동안 저자를 위해 봉사해 준 자가용 앞에서 ‘새 차’나 ‘폐차’ 같은 말을 입에 올리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250쪽) 아마도 꽤 많은 사람이 저자처럼 물건에게 말을 건네거나 말을 조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와 물건은 소유자와 소유물의 관계를 넘어 친구와 동반자가 된다. 왜 우리는 소중한 물건과 반려 관계를 맺고 싶어 할까? 아니,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그 이유는 오래도록 사랑한 물건에는 우리의 영혼과 추억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주술적인 사고를 아주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애정하는 물건에 영혼이 깃든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영혼을 기억의 집합이라고 가정한다면, 추억이 깃든 물건에는 영혼이 깃든다고 볼 수 있으니까.(255쪽)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음악 동반자인 바이올린과 오래된 자가용 앞에서 예의를 갖추고 조심하는 것이다. 추억이 깃든 물건에 대한 예의는 내 추억에 대한 예의나 마찬가지다. 또한 과거의 나에게 표하는 존중이자, 내가 걸어온 길과 선택들을 긍정하는 태도이다.(257쪽)
현재의 우리는 예전의 “취향과 선택에 꼭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82쪽) 하지만 물건과의 인연은 구매하는 데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물건을 돌보면서 쌓은 정은 첫눈에 반하던 순간의 짜릿한 희열을 능가하는 마음의 풍요로움과 안정감을 선사한다. 우리가 새것이 주는 짜릿함보다 물건과 오랜 관계를 지속할 때 더 큰 만족을 느끼는 이유는 세월이 지날수록 물건이 나라는 존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즉, 나와 물건은 서로를 “돌보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싫증도 잘 내는 존재’다. 그렇다면 관계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여덟 살 때 첫눈에 반했던 뷰로 책상에서 찾았다.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인의 취향과 책상의 쓰임은 크게 변했다. 무엇보다 책상의 짙은 갈색은 집 안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이 책상과의 작별을 고민하던 저자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버섯 크림 스프 색 페인트를 다시 칠해 주었다. 그랬더니 집 안 인테리어와도 썩 잘 어울렸고 마음에도 쏙 들게 되었다. 조금 더 정성을 들였더니 그 물건에 다시 반하게 된 것이다.(82쪽)
우리는 새 물건을 사는 쾌감과 짜릿함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모든 새것은 결국 허름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래되고 낡은 것들을 돌보면서 산다. 또 “오래된 인연, 오래된 몸, 오래된 지구와 살아간다.”(104쪽) 이 책은 그 오래되고 낡은 것들 중에는 새것으로 대체 불가능한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다희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철학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 고전학을 공부했다. 아버지 고(故) 이윤기 선생의 권유로 번역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애제자로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완역했다. 그 외에 옮긴 책으로 토니 모리슨의 《타인의 기원》 《보이지 않는 잉크》,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를 비롯해 《남성은 여성에 대한 전쟁을 멈출 수 있다》 《거실의 사자》 《신화의 역사》 등이 있다.
이 책은 오랫동안 생계형 번역가이자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한 저자의 첫 에세이다. 오래도록 곁에 두고 사랑한 물건에는 추억이라는 이름의 영혼이 깃든다고 믿는 저자는, 가장 소중한 순간을 선사해 준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그리고 소비와 소유라는 행위를 사유함으로써 지속 가능할 수 있는 취향과 가치관을 고민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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