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무어하우스의 은혜의 영성
2023년 01월 0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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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6914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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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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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무어하우스의 은혜의 영성으로 전하는 메시지
헨리 무어하우스는 이후에 복음전도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 이후에 D.L 무디와 만남을 가졌고, 무디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요한복음 3장 16절을 가지고 7일 동안 설교를 했으며, 무디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 일로 인해서 무디는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즉 이전에 무디는 하나님을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다면, 그 날 후로는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게 되었으며, 영혼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헨리 무어하우스를 통해서 하나님을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게 된 수많은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그를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숫자는 오직 하늘에 가서야 알게 될 것이다. 헨리 무어하우스의 설교는 무디에게 있어서 하나의 계시와도 같았다. D. L. 무디는 그 날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때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그처럼 사랑하는지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 마음은 녹아지기 시작했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과도 같았습니다. 저는 다만 그것을 목마른 사람처럼 들이마셨습니다(잠 25:25 참조).”
“헨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녹여버렸고, 그날 이후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의심해 본 일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죄인 뒤에 서계셔서 양날이 선 검을 가지고 곧 그 죄인을 내리치려 하신다고 종종 설교해 본 일이 있습니다. 또 그런 식으로 여러 번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사랑을 가지고 죄인 뒤에 서계신다고 설교합니다. 그래서 죄인들로 하여금 사랑의 하나님께로 달려오도록 합니다.”
“저는 그 날 밤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복음을 증거해 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날 후부터 저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더욱 복음증거의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1장 모압 여인 룻...
1. 결심하는 룻..........
2. 이삭을 줍는 룻..........
3. 안식하는 룻..........
4. 보상을 받는 룻..........
제2장 그리스도의 대사..........
제3장 선한 목자.........
제4장 하나님의 어린 양..........
제5장 율법과 은혜........
헨리 무어하우스........
제1장 모압 여인 룻
1. 결심하는 룻
나는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이 현재 이스라엘과 그분의 교회를 다루시는 섭리에 대한 매우 놀라운 그림들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확실히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가 살펴보길 바라는 이 모형적인 그림들이 상징에 불과하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예표적으로만 설계하신 것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구약성경에서 어떤 것을 선택한 후 이것은 그저 상징에 불과하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은 그것을 하나의 모형으로만 설정하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신약성경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에 있는 이 그림들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놀라운 교훈들이 확실히 있습니다. 게다가 그것들이 상징이든 아니든 간에, 하나님은 여기에 우리가 배우기를 바라시는 교훈들을 담아 두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룻기가 이스라엘 땅을 떠나 먼 나라로 갔던 한 유대인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나는 이 책의 첫 장을 누가복음 15장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한 유대인이 신앙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등지고 떠난 이야기와 또 그러한 유대인의 일탈행위를 통해서 한 가난한 이방 소녀가 자신이 살던 이방 나라를 떠나 축복의 땅으로 오게 된 이야기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녀는 부유한 유대인 보아스와 결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결혼하는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부자 유대인과 가난한 이방인이 결혼을 통해서 연합을 이루게 되자, 우리는 축복이 다시 유대인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머지않아 다시 유대인들을 다루시는 섭리에 대해서 신약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예언적인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이 물러나고 이방인들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이루고, 그리고 나서 유대인들이 다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이 룻기의 첫 번째 장입니다. 여러분은 각 장이 다른 장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입니다. 이 첫 번째 장에서 우리는 결심하는 룻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장에서는 이삭을 줍는 룻, 세 번째 장에서는 안식하는 룻, 그리고 네 번째 장에서는 보상을 받는 룻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장들이 이렇게 다르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적인 생명 안에서 영적인 진보를 이루어가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는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룻 1:1)
여러분은 유대인들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적인 퇴보가 일어났을 때, 기근이 찾아오는 것이 하나님이 보내신 징벌 중 하나였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읽을 때, 우리는 이스라엘 온 백성이 곁길로 나아간 지 한참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왕하 8:1, 렘 16:3-13, 겔 5:11-17을 보십시오.)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룻 1:1,2)
엘리멜렉은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왕은 백성들이 복종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하지만 기근이 이 땅에 찾아오자마자, 우리는 이 사람이 불순종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되고, 번성하고, 번영하는 한, 그는 왕을 섬기는 일에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근이 닥치자마자, 그는 모압 땅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나는 감히 말하건대 모압 땅에는 기근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에 머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압 땅으로 가선 아니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기근이 들자마자 온 가족이 모압을 향해 떠나갔습니다.
나는 이 사실이 당신에게 충격을 주었는지 잘 모르지만, 인간의 본성은 본래 어디에 사나 다 똑같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책에서 매우 훌륭하고 출중한 인물들에 대해서 읽어보았을 것이고, 모압으로 가는 것은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도가 하나님이 금지하신 장소에 가거나 아니면 금지하신 일을 해선 결코 안됩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한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에 축복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저주가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가나안에 머물러 있으면 복이 될 것이고, 만일 이집트로 가면 저주가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역사를 살펴보십시오. 기근이 오자, 그는 즉시 이집트로 갔습니다. 여러분은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이삭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동일한 일이 일어났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가 기근 속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모든 것을 풍족히 누릴 때에는 신뢰가 많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나 기근이 오자마자 그들은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들이 갔던 곳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동안 어떤 해악을 당해야만 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룻기에 고스란히 나와 있습니다.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들 속에 이렇게 악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서 크게 낙담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도 이러한 경향들이 있기 때문에, 혹시 내가 크리스천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지금 당장 나에게서 그런 성향이 나타나지는 않을지라도, 그런 육신성이 우리 속에서 작용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성경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내 자신이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을 겪곤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자주 하나님의 길을 떠나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는 자연스러운 경향이 있기 때문에, 만일 하나님의 선하심이 없다면 우리는 항상 길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얼마 전에 아일랜드에 있는 케리 카운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양을 소유하고 있는 한 신사와 함께 들판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우리는 아주 귀여운 어린양 세 마리와 함께 있는 어미 양 한 마리에게 가까이 가게 되었는데, 나는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 아닙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신사는 “그래요. 하지만 나는 어미 양이 새끼 양들과 함께 있도록 두지 않을 겁니다. 나는 그 중 한 마리를 데리고 갈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양에게 무슨 일을 하시려구요?”
“나는 그 양 한 마리를 염소가 기르도록 하겠습니다.”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까?”
“그럼요. 2년 전에도 그 어미 양은 세 마리를 낳았습니다. 나는 그 중 한 마리를 염소가 기르도록 했지요. 머지않아 어린 양이 자라났고, 스스로 풀을 뜯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염소에게서 그 양을 빼앗아 다시 양들 사이에 두었습니다. 그러자 그 어린 양은 염소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그 소리에 반응하려는 모습을 나타내곤 했습니다.”
“이유가 뭐지요?”
“그 양은 염소의 젖을 먹고 자랐고, 따라서 염소의 본성을 습득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양들과 어린 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염소 젖을 먹고 자랐고, 염소가 우는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염소를 쫓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선한 목자가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양과 어린 양을 돌보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이제 나오미가 모압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악인 것은 “거기서 계속 살았다(she continued there)”(2절)는 것입니다. 어쩌면 나오미는 처음엔 그곳이 어떤 곳인지 보러 갔을 것이고, 의심의 여지없이 특히 기근이 든 상황에서 그곳이 가나안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3절)
한 가지 악이 다른 악을 낳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 의하면, 히브리인은 모압 사람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곳, 즉 모압 땅으로 옮겨갔고,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녀의 두 아들들이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4,5절) 남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오늘날의 이스라엘을 자식이 없는 과부에 비유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런 일이 나오미에게서 일어났습니다.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6절)
나오미는 모압에서 10년 이상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이곳에서 몹시 가난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떠나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가지고 갈 것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결심한 듯 “이제 나는 집으로 돌아갈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하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참된 자녀는 결코 먼 나라에서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 백성들을 다시 돌아오게끔 하십니다.
우리는 가끔 매우 훌륭한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을 보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혹시 그들이 하늘에서 온 천사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감동을 받습니다. 머지않아 그들이 실수를 하게 되고, 마치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일어나게 된다면, 그들은 결코 먼 나라에서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잠시 창세기 8장 6-8절로 가보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까마귀와 비둘기가 둘 다 방주를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함께 나갔을 것입니다. 비둘기는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해서 방주로 다시 돌아왔지만,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까마귀는 바다 표면에 떠다니는 부패한 시체들에게서 만족을 얻었을 것입니다. 까마귀는 시체들에서 휴식과 양식을 모두 찾을 수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 것이 까마귀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휴식도 먹을 양식도 찾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이 비둘기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두 가지 서로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돌아왔고 다른 하나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선하게 생긴 많은 까마귀들이 교회에 몰래 들어왔을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어찌 보면 까마귀와 비둘기는 둘 다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돌아오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자녀는 세상에서 안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세상은 온통 부패한 시체들만 가득하기 때문에, 비둘기는 그런 것을 먹고 살 수 없습니다. 나오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떠나갔지만,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그녀는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슬픈 장면들 중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젊은 과부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오르바요,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룻입니다. 나오미와 두 며느리, 이렇게 세 사람이 베들레헴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성경은 긍정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7절)
하지만 이어지는 구절에서 나오미는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8,9절)
나는 많은 독자들이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실 나오미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보기 위해 그들의 믿음을 시험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오미가 한 말이 진심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녀가 “돌아가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그녀의 진심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입을 맞추고 또 작별 인사를 할 때에, 그녀는 그들이 다시 어둡고 죄 많은 모압 땅으로 돌아가기를 바랐습니다. 어째서 그녀는 그들을 베들레헴과 그녀의 조상의 하나님에게로 데려가고자 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서 자기 아들들이 이 모압 여인들과 결혼하는 것을 허락했고, 자신의 수치심과 죄의 증거를 자기가 태어난 베들레헴으로 가져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돌려보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나는 오르바를 돌려보낸 일이 나오미의 실책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나와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저주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멀리 쫓아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인님을 위해서 선(善)을 행하거나 해를 끼칠 것입니다. 오르바는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헤어질 때 오르바가 얼마나 소리를 높여 울었는지를 보십시오(14절). 그리고 우리는 10절에서 그들이 모두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모압 땅을 처음 떠나올 때에, 그들은 함께 시어머니의 나라로 가고자 결심했습니다. 오르바를 돌려보내고, 그녀를 다시 모압 땅으로 쫓아내고자 했던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처하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오늘날 하나님을 떠나 방랑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확신하건대, 여러분은 여러분의 집과 친구들과 자녀들에게 저주가 되면 되었지 결코 축복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먼 나라에 있다면, 오직 저주 외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오미는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10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그들을 돌려보내는데 사용할 수 있는 온갖 회유와 심지어 유인책을 사용했습니다. 나오미는 오르바 보다 더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나오미는 오르바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입맞춤을 하며 작별 인사를 했고, 그렇게 오르바는 떠나갔습니다. 이제 나오미가 룻과 또 다른 논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룻이여, 나와 함께 간다면 너는 외로움으로 밤을 지새우게 될 것이야. 네 동서가 돌아갔으니, 너도 그녀와 함께 가야 하지 않겠느냐?” 나오미는 룻도 돌아가길 간절히 바랬습니다. 이제 나오미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15절, 이탤릭체는 저자가 강조하는 것입니다.)
한 이스라엘 사람에 의해서 순전한 이방인이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내몰리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자,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이 있는 곳은 모압입니까, 아니면 가나안입니까? 먼 나라에 있나요, 아니면 하나님의 집에 있나요? 나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모압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많은 오르바들을 그들의 신들과 우상숭배의 죄로 내모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룻은 마음에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룻이 하나님에게 가려는 뜻을 마음에 품은 것은 결코 나오미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처럼 아름다운 보석이 나오미의 면류관을 장식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나오미는 어찌하든지 룻을 쫓아내고자 최선을 다했을 뿐이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룻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룻은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 룻은 이제 베들레헴으로 갈 것입니다. 나오미는 룻이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가길 얼마나 애원했을까요! 룻이 나오미에게 한 말을 읽어봅시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16절)
이 얼마나 감동적인 말인가요! 룻은 “어머니께서 사시는 곳”이 아니라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자신도 머물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다만 이 아래 세상에서 잠시 머무는 곳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그곳이 보아스의 들판 한가운데 일수도 있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16-19절)
마치 그들은 “나오미여, 그대가 우리나라에 데려온 이 사람은 누구인가? 정녕 그대가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떠나갔다가, 가련한 한 이방 여자와 함께 돌아온 나오미란 말인가?”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라라는 말은 “쓰다”라는 뜻이고, 나오미란 말은 “즐겁다”라는 뜻이었습니다. 나오미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20절)고 말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전능자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전능자께서 하신 일은 은혜로 그녀를 다시 데려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불순종했고,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었음에도, 그녀는 전능자를 비난했던 것입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많이 있지만, 그들은 그 감미로운 이름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을 떠나 먼 나라로 떠나갔기 때문에 지금은 마라로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가 모압에 들어가면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잃게 됩니다. 왜냐하면 기쁨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모압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겐 쓴 맛을 안겨다주는 고통의 땅일 뿐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저 그곳에서 죽고 또 묻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가 하는 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 나갔더니(I went out).”(21절) 그렇습니다. 나오미는 자발적으로 나갔던 것입니다. 나간 것은 “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 돌아오게 하셨느니라.”(21절) 그녀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데리고 나가셨고 이제 자신이 다시 돌아왔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갔는데 여호와께서 나를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집 나간 가엾은 양에 대한 구약의 이야기입니다. 양은 길을 잃었지만 목자가 그 양을 도로 찾아온 것입니다.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나를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the LORD hath brought me home again)!라고 말했습니다. “집(Home)”이라는 작은 단어에 뭔가 감미로운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이 복된 책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가장 감미로운 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향이여, 감미로운 고향이여(Home, sweet Home)!” 얼마 전에 나는 내 친구 무디 씨와 함께 대서양을 건넌 일이 있었는데, 같은 배에는 이탈리아 음악 밴드가 있었고, 이탈리안 스타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나는 가사를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 나는 무디 씨에게 “그들이 ‘Home, sweet Home’을 연주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무디 씨는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아는 한 신사에게 그것을 부탁했고, 그는 가서 그들에게 “Home, sweet Home”을 연주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남자가 말하길, “우리는 그 곡을 연주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가요?” “글쎄요, 우리는 고향이란 단어의 의미를 모릅니다. 우리나라 말에는 ‘고향’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탈리아어가 감미롭고 아름다운 언어라고 말합니다만, 나는 그처럼 감미로운 단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세상의 어떤 언어보다 “고향”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는 오래된 색슨어를 더 좋아합니다. 이 오래된 색슨어가 바로 성경의 언어입니다. 세상은 그런 단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늘의 본향”이라는 단어를 가진 사람은 크리스천 외엔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21절)
우리가 길을 잃고 방황한다면 주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를 다시 데리고 돌아오실 것입니다. 회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랭커셔에 있는 한 장소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곤 했습니다. 거기서 나는 한 감리교회 성도와 그의 아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와 나는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랑스러운 크리스천으로 보였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아일랜드로 떠났습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그에게 편지를 써서 조만간 찾아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를 역에서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없었습니다. 나는 그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나는 그가 나를 보고 반겨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가게 되면, 결코 크리스천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는 나와 악수를 나누었지만, 너무 냉담한 태도여서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내 말을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자가 되게 하시거나 또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재물을 사용한다면, 부자가 되는 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오로지 재물에만 마음을 쏟을 때, 그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내 친구는 땅을 많이 샀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가난한 감리교회 어부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곳에 더 이상 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신앙을 저버린 자(backslider)가 되었고, 돈, 돈, 돈을 버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치 세상에 돈 말고는 좋은 것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그의 아내가 그와 함께 신앙을 저버렸고, 또한 그의 딸도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신앙을 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의 이름은 존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존과 나는 특별히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항구로 들어오는 존을 만났습니다. “오랜 만이네요. 존, 어떻게 지내나요?”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와 어머니와 여동생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들이 다시 그리스도의 발치로 돌아오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나는 내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일요일 밤, 이 젊은이는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일어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했던 놀라운 말, 곧 “저는 그들이 다시 그리스도의 발치로 돌아오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습니다!”라는 말로 진실한 간증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아내와 어린 자녀에게 입맞춤을 했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바다로 가기 위해 그의 아버지의 배에 올랐습니다. 배에 오르자마자 그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배가 기울게 되었고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매우 훌륭한 수영선수였지만, 무거운 선원 재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급하게 배의 방향을 돌려 돌아오고자 했지만, 배가 도착하기도 전에 그의 손이 높이 올라간 것이 보였고, 마지막으로 그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으라는 복음을 외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장차 바다가 죽은 자를 내놓을 때까지 그는 바다 속에서 잠들게 되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늙은 아버지는 그의 어린 아들 리차드에게 “내려가서 보트에 대한 무슨 소식이 있는지 알아보아라”고 말했습니다. 그 작은 친구는 한 시간 후에 돌아왔고, 그의 얼굴은 창백했으며,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흐느끼며, “오, 아버지, 아버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이니? 그들이 안개 속에서 그물을 잃어버렸다고 하던?” “아, 아버지, 그것보다 더 나빠요. 그들은 형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형은 배에 없어요! 배 밖으로 떨어져 익사했데요!” 그 불쌍한 노인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는 아내를 부르며, “여보, 우리 무릎을 꿇고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존을 우리에게서 데려가셨소. 모두 우리의 잘못이오. 우리는 그를 위해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우리의 존을 데려가셨으니 그 돈은 이제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소. 하나님께 용서를 빕시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고, 나는 그 사람이 나중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 이 얼마나 엄청난 대가인지요!
나오미는 다시 돌아왔지만, 그녀가 치른 대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21절)
그녀의 눈에 가득했던 영적 총명의 빛,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형제자매들이여, 하나님이 당신을 다시 데리고 오실 것입니다. 만일 내가 모압 땅으로 떠나갔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오, 그대여 오늘이라도 돌아오지 않으렵니까? 와서 그대의 죄를 주 예수 그리스도께 고백한다면, 그분께서는 그대를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와서 그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놓으십시오. 주님께 모든 것을 고하십시오. 나오미가 그랬던 것처럼,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가나안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을 주실 것이고, 기꺼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셔서 즉시 그분의 발 아래로 돌아오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곳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두고 싶어 하시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작가정보
헨리 무어하우스
(Henry Moorhouse, 1840-1880)
헨리 무어하우스(Henry Moorhouse, 1840-1880)는 D. L. 무디에게 미친 영향으로 인해 “수백만을 감동시킨 사람을 감동시킨 바로 그 사람”으로 불리고 있다.
헨리는 맨체스터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감리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가르치는 일을 했던, 자상하고 일하는데 열심인 그리스도인이었다. 하지만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헨리는 상점에서 일해야 했으며, 나쁜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여러 차례 감옥에 가곤했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헨리는 스스로 도박꾼과 깡패두목이 되었다. 헨리는 필요하면 언제라도 자살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권총을 가지고 다녔다. 헨리는 무모했고, 악했으며, 훔치는 일 뿐만 아니라, 종종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1859년 부흥이 일던 당시 맨체스터에는 리차드 위버가 설교하고 있었고, 먼저 그의 친구가 거듭나게 되었으며, 헨리에게 자신의 구원 간증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자신도 리차드 위버의 설교를 듣고자 그곳에 갔으나, 갑자기 소동이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마을에 무슨 큰 싸움이 났나보다 생각하고는, 싸움에 끼어들려는 마음으로 힘껏 달려가다가 갑자기 설교자가 외치는 “예수”라는 한 단어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그의 양심을 향해 강렬히 호소하는 음성이었다. 수주일 동안 처절한 마음의 번뇌와 투쟁 끝에, 헨리는 마침내 구주께로 나아오게 되었다. 그의 회심은 참으로 극적인 것이었는데, 그의 지난 삶이 너무도 죄악되었기 때문이다.
헨리 무어하우스는 이후에 복음전도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 이후에 D.L 무디와 만남을 가졌고, 무디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요한복음 3장 16절을 가지고 7일 동안 설교를 했으며, 무디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 일로 인해서 무디는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즉 이전에 무디는 하나님을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다면, 그 날 후로는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게 되었으며, 영혼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헨리 무어하우스를 통해서 하나님을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게 된 수많은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그를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숫자는 오직 하늘에 가서야 알게 될 것이다.
엮은이 이 종 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세계경영대학원(MBA),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MDiv)을 졸업했으며, 그리스도인훈련원(CTI)에서 풀타임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영성과 경건훈련을 받았다.
19세기에 일어난 플리머스 형제단 운동의 순수한 정신을 계승하고, 플리머스 형제단의 깊은 영성을 한국교회에 소개하기 위해 2006년 도서출판 형제들의집을 설립했다. 도서출판 형제들의집 대표로, 플리머스 형제단의 영성 깊은 도서들을 100여권 이상 번역 및 출간해왔으며, 유튜브 “다비신학연구원(DTI)”을 운영하고 있다. 플리머스 형제단의 신앙과 영성을 토대로 해서 의정부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학자 존 넬슨 다비 평전>, <사도라 불린 영적 거장들>, <악과 고통 그리고 시련의 문제>, <구원 얻는 기도>, <이것이 그리스도의 심판대다>, <거듭남의 진리>, <죄사함의 진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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