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 2
2019년 05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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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대비도 없었다. 상감의 그림자까지 태공 뒤에 감추어졌다. 그들의 앞에 커다랗게 나타나서 빛나는 것은 국태공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광채뿐이었다.
그 광채의 아래 만조백관들은 공손하는 뜻으로 허리를 굽혔다.
잠들었던 사자는 드디어 기지개를 하였다. 그리고 첫 포함성을 질렀다.
산림이 울리어 나가는 그 포함성―그 아래에서 잠 깬 사자는 그의 운동을 시작하였다.
쇠퇴한 국운, 피폐한 국정, 실추된 국권―이 모든 무거운 짐을 한 몸에 뭉쳐지고, 거인은 드디어 그 조리(調理)를 시작하였다.
오랫동안 시정에 배회하여 이 시민의 사정과 고통을 속속들이 다 아는 이 거인은, 시민들을 도의 쓰라림에서 건져 올리고자 그의 커다란 손을 내어 밀었다. 정확히 통찰하는 그의 눈과 든든한 그의 손은, 오랜 학정에 피폐해서 마지막 힘까지 다 사라져 가려는 시민의 위에, 새로운 청량제를 부어 주려고 준비하였다.
이 사자가 출현하기 전에 삼림 속에서 제 세상이로라고 횡행하던 시랑들은 사자의 포함성에 질겁을 하여 그림자를 감추어 버렸다. 이 사자의 구태여 그들을 쫓아가서 필요 없는 살육을 행할 필요가 없이, 시랑들은 스스로 숨어 버렸다.
아직껏 소인들의 장난에 시달리고 시달린 삼천리의 강토는 이 거인의 출현을 혼연히 맞았다.
운현궁은 정치의 중심지며 따라서 이 나라의 중심지로 되었다. 이전에는 비루먹은 개 한 마리 찾지 않던 흥선댁이나, 지금은 팔도강산에서 매일 찾아 드는 수 없는 시민의 무리 때문에, 수십 명의 궁리도 그 응대를 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옛날 흥선이 관직을 내어 던진 이래, 오랫동안 쓸쓸하기 짝이 없던 그 집에도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봄은(오랫동안 쓸쓸하였더니 만큼) 또한 유달리 화려한 봄이었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동인
김동인(1900년 10월 2일~1951년 1월 5일)은 평양 출신의 소설가이다. 1919년 최초의 문예 동인지 <창조> 창간호에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를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사실주의 기법과 액자소설 등 한국 단편소설의 전형을 확립하는 등 한국 문학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하지만 당시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고 유미주의에 탐미했다는 비판적 견해도 많다. 주요 작품으로 <배따라기〉, 〈감자〉, 〈정희〉, 〈시골 황서방〉,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붉은 산〉, 〈광화사 狂畵師〉, 〈김연실전〉, 〈운현궁의 봄〉, 〈수양대군-원제 : 대수양〉, 〈젊은 그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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