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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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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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형식으로 서술된 이 작품은 전쟁 게임 《제3제국》의 독일 챔피언 우도 베르거가 연인 잉게보르크와 스페인 코스타 브라바 해변으로 휴가를 떠나 겪는 사건은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국적 휴양지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우도는 수상쩍은 인물들과 엮이게 되고, 그들은 점차 게임 속 세계와 현실을 혼동하기 시작한다.
내 삶도 나아졌는가? 물론이다. 잉게보르크를 알게 됐고 이제 그녀와 함께하고 있다. 친구들과도 깊고 흥미로운 우정을 쌓았다. 콘라트 같은 친구만 하더라도 형제나 다름없으며 그는 이 일기도 읽게 될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고 큰 포부도 있다. 나는 경제적으로 독립했고 이젠 성장기 시절에 흔히 느끼던 지루함도 없다. 콘라트는 지루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건강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 말에 따르면 내 건강은 최상인 셈이다. 솔직히 지금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본문 14면)
「너 대체 뭐야? 그냥 전쟁 게임 게이머야?」
「당연히 아니지. 난 놀고 싶은 청년이야…. 건전하게 말이야. 그리고 독일인이고.」
「독일인이라는 게 뭔데?」
「글쎄, 정확히는 모르겠어. 그건 말하기 어려운 문제지. 독일인이 뭔지 우리도 어느새 잊어 가고 있으니.」
「나도 그럴까?」
「모두가 그렇지. 넌 덜하겠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본문 238면)
케마도는 꽉 끼는 벨벳 재킷을 입고 있는데 너그러운 누군가의 선물일 것이다. 낡았지만 질 좋은 재킷이다. 식사를 마치고 탁자로 향하며 재킷을 벗어 조심스레 침대 위에 개어 놓았다. 그의 사려 깊고 적절한 행동이 마음에 든다. 그는 동맹의 경제적, 전략적 변화를 기록한 메모장(혹시 나처럼 일기를 쓰나?)을 절대 내려놓지 않는다…. 제3제국에서 만족스러운 소통 방식을 찾았다는 듯이 말이다. 이곳에서 지도와 전쟁판을 마주하고 있는 그는 괴물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 수백의 게임말을 움직이는 사람이다…. 독재자이자 창조자이다…. 게다가 즐기기까지…. 복사본만 아니라면 내가 그에게 은혜를 베푼 것 아닌가. 그렇지만 그 복사본은 명확한 경고로서 내가 주의해야 할 첫 번째 신호다. (본문 282면)
「가장 중요한 게 뭔데?」 바다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물었다.
「목숨.」 케마도의 군대가 조직적으로 내 전선을 짓밟기 시작했다.
지는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고? 미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사이 파도는 스페인에서도 그 어떤 곳에서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밀려오고 있었다.
「승자가 패자의 목숨을 취하는 거지.」 케마도가 네 방향에서 내 전선을 깨고 부다페스트를 통해 독일로 침입했다.
「난 네 목숨 원치 않아, 케마도. 허풍 떨지 말자.」 마지막 남은 지역인 비엔나로 이동하며 말했다.
파도가 벌써 제방까지 밀려왔다.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건물 그림자가 대로를 밝히는 희미한 불빛까지 삼키고 있었다.
「게다가 이 전황은 노골적으로 독일이 패하게 만들어졌잖아!」 (본문 318면)
로베르토 볼라뇨의 장편소설 『제3제국』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며 대표작 『2666』과 『야만스러운 탐정들』로 여러 문학상을 휩쓴 볼라뇨는 2003년 간 부전으로 숨을 거뒀다. 『제3제국』은 2008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볼라뇨의 미출간 육필 원고가 있다는 사실이 발표되며 뒤늦게 그 존재가 알려져 2010년 작가의 유작으로 출간된 작품이다. 일기 형식으로 서술된 이 작품은 전쟁 게임 《제3제국》의 독일 챔피언 우도 베르거가 연인 잉게보르크와 스페인 코스타 브라바 해변으로 휴가를 떠나 겪는 사건은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국적 휴양지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우도는 수상쩍은 인물들과 엮이게 되고, 그들은 점차 게임 속 세계와 현실을 혼동하기 시작한다. 『제3제국』은 여타 볼라뇨의 작품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직선적이고 순차적으로 전개되지만, 인간과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정치하게 반영된다는 점에서는 작가의 대작들과 궤를 같이한다.
볼라뇨의 은밀한 열정 - 전쟁 게임 《제3제국》
《제3제국》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축소한 보드 게임의 이름으로, 마니아층이 존재하는 실제 게임이다. 《제3제국》의 독일 챔피언인 주인공 우도는 게임 전문 잡지에 관련 글을 기고하고, 휴양지에서도 게임 전략을 세우는 게임광이다. 집필 당시 볼라뇨가 전쟁 보드 게임 마니아였고 제2차 세계 대전사에 다식했음을 고려하면 《제3제국》이라는 소재를 고른 것은 당연한 듯 느껴진다.
우도는 휴양지에서 만난 미스테리한 청년 케마도에게 게임을 가르쳐준다. 게임 규칙을 따라가기 바빴던 케마도는 배후의 인물의 조언으로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고, 둘의 게임은 점점 추호의 타협도 없는 결투가 된다. 볼라뇨는 이 둘의 대치를 통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들의 게임은 더 이상 유희가 아니며 독자들은 이를 통해 전쟁의 공포와 폭력성을 상기한다. 전쟁 게임의 현실화는 그야말로 나치 독일(제3제국)의 부활이며 공포와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이다. 제3제국이 인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듯, 그것의 환영인 전쟁 게임이 인간을 자폐적 광기로 내모는 것이다.
볼라뇨의 초기작 - 《볼라뇨 세계》의 진정한 시작
『제3제국』은 볼라뇨 사후에 육필 원고로 발견된 작품이다. 1989년에 쓴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 소설은 시인 볼라뇨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출간하기 이전에 쓴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다. 볼라뇨는 여러 대표작을 통해 현대의 부조리를 추적하며 스스로 창조한 세계에 갇혀 허우적대는 인간의 딜레마에 천착해 왔다. 『제3제국』 또한 그러한 문제의식과 밀접한 상관성을 보인다.
이번 작품에서는 전쟁을 매개로 인간의 편집증과 광기를 이끌어낸다. 주인공 우도는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과 욕망, 그리고 이것이 야기하는 공포로 헤어날 수 없는 악몽의 늪에 빠진다. 이를 통해 볼라뇨는 우리의 내면에 또 다른 제국, 혹은 《제4제국》을 꿈꾸는 파시즘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으며 언제든 개인적, 사회적 현실로 구체화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런 점에서 『제3제국』은 권력과 공포, 폐허화 추락, 범죄와 살인, 광기와 고통 등 현대 사회의 부조리한 병리를 기억과 거울 보기를 통해 그려 내는 볼라뇨 작품의 특질을 그대로 보여 준다.
줄거리
전쟁 게임 《제3제국》의 독일 챔피언 우도 베르거. 연인 잉게보르크와 휴가차 찾은 스페인 코스타 브라바에서 그는 일광욕을 즐기기보다는 호텔 방에 게임판을 펼쳐 놓고 새로운 게임 전략을 짜는 데 골몰한다. 그곳에서 우도는 사춘기 시절에 동경하던 호텔 운영자 프라우 엘제, 독일인 커플 찰리와 한나, 현지 청년 로보와 코르데로, 수상쩍은 페달보트 임대업자 케마도를 만나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들에 휘말린다. 한나를 둘러싼 범죄의 징후와 찰리의 실종, 프라우 엘제와의 은밀하고 위태로운 사랑, 공포와 파멸의 상징적 존재인 케마도와의 위험한 전쟁 게임, 케마도의 배후에 있는 비밀스러운 존재…….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우도는 어느새 강박적인 모습으로 변해 가고, 헤어날 수 없는 악몽의 늪에 빠진다.
언론평
『제3제국』은 고인이 된 작가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이다. 마이클 샤우브 (NPR)
볼라뇨는 시한폭탄처럼 등장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동시에, 우리가 이 작가를 읽을 시기가 올 수밖에 없었음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 같다. 그의 작품들은 글쓰기의 미래를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 - 조너선 레덤
볼라뇨는 미래를 위해 글을 쓰는 보기 드문 작가다. 우리는 그의 이상야릇한 천재성을 이제 겨우 알아보기 시작했다. 뒤늦게 돌이켜 보면, 그리고 그의 때 이른 죽음을 생각하면, 그의 작품에 드리운 운명의 그림자가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작가정보
저자 로베르토 볼라뇨(Roberto Bolano)는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등장한 최고의 작가, 스페인어권 세계에서 가장 추앙받는 소설가, 라틴 아메리카 최후의 작가. 지금은 이 땅에 없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시한폭탄》, 로베르토 볼라뇨에게 바치는 찬사들이다. 볼라뇨는 1953년 칠레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멕시코로 이주해 청년기를 보냈다. 항상 스스로를 시인으로 여겼던 그는 15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20대 초반에는 《인프라레알리스모》라는 반항적 시 문학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이어 20대 중반 유럽으로 이주, 30대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투신한다. 볼라뇨는 첫 장편 『아이스링크』(1993)를 필두로 거의 매년 소설을 펴냈고,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볼라뇨 전염병》을 퍼뜨렸다. 특히 1998년 발표한 방대한 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로 라틴 아메리카의 노벨 문학상이라 불리는 로물로 가예고스상을 수상하면서 더 이상 수식이 필요 없는 위대한 문학가로 우뚝 섰다. 그리고 2003년 스페인의 블라네스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매달린 『2666』은 볼라뇨 필생의 역작이자 전례 없는 《메가 소설》로서 스페인과 칠레, 미국의 문학상을 휩쓸었다. 그의 작품에서는 범죄, 죽음, 창녀의 삶과 같은 어둠의 세계와 볼라뇨 삶의 본령이었던 문학 또는 문학가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암담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상황에 관한 통렬한 성찰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의 글은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중첩되고 혼재하며, 깊은 철학적 사고가 위트 넘치는 풍자와 결합하여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낸다. 작품으로는 대표작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2666』을 비롯해 장편소설 『먼 별』(1996), 『부적』(1999), 『칠레의 밤』(2000), 단편집인 『전화』(1997), 『살인 창녀들』(2001), 『참을 수 없는 가우초』(2003), 시집 『낭만적인 개들』(1995) 등이 있다.
번역 이경민
역자 이경민은 조선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전공했다. 멕시코 메트로폴리탄 자치대학교에서 노마드 문학 개념을 통한 로베르토 볼라뇨 연구로 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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