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가는 길
2020년 10월 27일 출간
국내도서 : 2020년 09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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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정보 ePUB (33.04MB)
- ISBN 9788930106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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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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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가 1995년 발표한 소설 『결혼식 가는 길(To the Wedding)』이 새롭게 번역 출간되었다. 그는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은 ‘사람들을 에워싼 게토에서 그 사람들을 내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 소설은 에이치아이브이(HIV)에 감염된 젊은 여인이 사람들의 혐오와 스스로의 절망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오게 되는지를 독특한 화법으로 그린다.
고리노로 향하는 순례길
아테네의 성당 근처 시장에서 타마〔tama, 그리스 정교에서 기적이나 도움을 기원하며 교회에 바치는 편액(扁額)〕를 파는 눈먼 상인이 있다. 그는 ‘양치기’라는 뜻의 ‘초바나코스’라 불린다. 어느 날 몸이 ‘전부 다’ 아픈 딸을 위해 타마를 사려는 장 페레로가 다가온다. 아버지와 여행 중인 딸 니농도 옆에 있다. 그 둘은 점차 소리와 냄새로 속삭이더니, 마치 꿈속처럼 모든 것을 들려준다. 소설은 그들을 지켜본 초바나코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프랑스 쪽 알프스 산맥 모단에서 철도 신호원으로 일하는 장 페레로는 이십여 년 전 즈데나와 결혼해 딸 니농을 낳았다. 프라하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즈데나는 ‘프라하의 봄’ 이듬해인 1969년 파리로 망명했고, 그르노블의 이민자 모임에서 장을 만났다. 니농이 여섯 살 되던 해 프라하 시민들이 인권과 시민권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국으로 떠나 결국 돌아오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 이탈리아 모데나로 거처를 옮긴 니농은 베로나에서 지노라는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입술에 난 상처가 아물지 않아 찾아간 병원에서 에이즈라는 선고를 받고, 몇 해 전 하룻밤을 보낸 남자에게 옮은 것임을 직감한다. 그녀는 자신의 병을 알리고 지노와의 만남을 거부하지만, 그는 곁을 떠나지 않고 오히려 청혼을 한다. 장은 모단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즈데나는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버스를 타고 딸의 결혼식이 열리는 베네치아 남쪽 시골 마을 고리노로의 긴 여정에 오른다. 그 여행길은 우연한 만남과 대화, 깊은 연민과 눈물로 채워진다. 그들과 모든 순간을 함께하는 눈먼 타마 장수는 ‘결혼식 가는 길’의 종착지에서 슬프지만 행복한 사람들의 축제를 밤새 지켜본다.
이처럼 줄거리는 제목 그대로 단순하다. 하지만 존 버거 특유의 화법이 그렇듯, 이야기는 시간 순으로 흐르지 않는다. 화자인 타마 장수의 시선으로 등장인물들(주로 장, 즈데나, 지노)의 과거와 현재가 불규칙하게 나열되고, 중간중간 니농의 목소리가 일인칭으로 들려온다. 어떤 장소에선 지나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끼어들기도 한다. 또 보통 소설이 결말을 나중에 보여주는 것과 달리 시작부터 니농의 불운을 드러내고, 거창한 서사도 인물의 복잡한 심리 묘사도 없다. 그저 처해진 운명을 향해 걸어가는 인물들의 상황과 대화를 있는 그대로 흩뿌려 놓는다. 마치 말하고 싶을 때 말하도록 내버려 둔 것처럼, 목소리가 들려오면 들리는 대로 귀 기울인 것처럼.
실패한 역사의 미래
소설의 배경은 냉전이 끝나고 정치적 긴장감이 완화된 1993년쯤이다. 유럽대륙 양쪽에서 각기 국경을 넘어 목적지로 향하는 장과 즈데나의 여행길에서 존 버거는 인물들의 입을 빌려 세기말의 암울한 현실을 드러낸다. 브라티슬라바에서 『1947년부터 현재까지 정치 용어 사전 및 용례』 만들기에 몰두하는 즈데나는 버스 옆 자리에 앉은 남자에게 자신이 믿었던 역사의 실패를 비판한다. “공산주의는 죽었다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실은 우리가 자신이 없었던 거예요. 두려워할 게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거죠.” 과거 체제에서 ‘슬로바키아 백과사전’의 책임편집자였지만 지금은 택시 기사로 일하는 남자는 새로운 미래로 데려다줄 고속도로라 믿었던 역사가 지난 이 세기 동안 우리를 절벽 끝으로 내몰았다고 말한다. 이제 노예제도 없고 사람들은 훨씬 오래 살고 달까지 가지만 우리가 얻고자 했던 미래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반대편에서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장은 포 강(Po River)을 따라 이탈리아 곳곳을 경유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도시와 자연을 가까이 들여다본다. 토리노 선착장의 한 여인은 포 강을 가리키며 ‘너무 더럽고 오염되었다’고 한탄하고, 도로의 거대한 광고판 글자들은 제품이나 서비스, 즐거움을 약속하며 수 킬로미터에 걸쳐 이어진다. 강가에 아지트를 둔 십대 소년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이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컴퓨터 해킹을 한다며 자랑인지 변명인지 모를 말들을 늘어놓는다. 텔레비전에서는 가난한 소작농 집안의 아이가 납치되어 장기 밀매업자에게 신장을 탈취당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식당의 취객은 고통 받는 사람은 불량품이고 고통을 주는 사람이 주인이니, 살아 있으려면 주인이 되라고 주절거린다. 이십세기가 저물어가는 현대 도시에서 시골 마을로의 여정은
작가정보
저자 : 존 버거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는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처음 미술평론으로 시작해 점차 관심과 활동 영역을 넓혀 예술과 인문, 사회 전반에 걸쳐 깊고 명쾌한 관점을 제시했다. 중년 이후 프랑스 동부의 알프스 산록에 위치한 시골 농촌 마을로 옮겨 가 살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농사일과 글쓰기를 함께했다. 주요 저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기』 『제7의 인간』 『행운아』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벤투의 스케치북』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등이 있고, 소설로 『우리 시대의 화가』 『G』, 삼부작 ‘그들의 노동에’ 『끈질긴 땅』 『한때 유로파에서』 『라일락과 깃발』, 『킹』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A가 X에게』 등이 있다.
역자 : 김현우
김현우(金玄佑)는 1974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비교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역서로 『스티븐 킹 단편집』 『행운아』 『고딕의 영상시인 팀 버튼』 『G』 『로라, 시티』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A가 X에게』 『벤투의 스케치북』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 『그레이트 하우스』 『우리의 낯선 시간들에 대한 진실』 『킹』 『사진의 이해』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초상들』, 삼부작 ‘그들의 노동에’ 『끈질긴 땅』 『한때 유로파에서』 『라일락과 깃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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