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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구이를 논함

반니산문선
찰스 램 지음 | 송은주 옮김
반니

2020년 03월 02일 출간

국내도서 : 2019년 11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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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5.72MB)
ISBN 9791190467186
쪽수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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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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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페이소스로 버무린 영국 산문의 맛!
영국 수필가 찰스 램의 수필집에서 일상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15편의 산문을 가려 뽑은 책이다. 찰스 램은 여러모로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고생했고, 말더듬이로 고통을 받았으며, 이따금 발작하는 정신착란으로 좌절의 늪에 빠지곤 했다. 또 누나 메리 램이 발작 상태에서 어머니를 살해한 일이 있고 나서는 누나의 보호자로서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인지 사랑에도 실패해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하지만 비극적인 삶과 달리 그의 글에는 우울한 서정이 없다. 그보다는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는 작가정신에서 발현된 유머가 흐른다. 이를테면 〈돼지구이를 논함〉은 돼지고기를 구워 먹게 된 역사적 상상력에 절로 미소가 흐른다. 〈기혼자들의 행동에 대한 독신자의 불만〉 같은 글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불만이 실소를 머금게 한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언제나 독신자, 거지, 굴뚝 청소부, 환자, 은퇴자, 아이들, 여성과 같은 약자에 머물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유머와 페이소스의 합주’라는 말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 맛에 고전적 깊이(작가는 산문 속에서 영국의 고전작가나 고전작품의 주인공과의 대화를 서슴지 않는다.)가 더해져 묵직한 클래식 에세이로 다가온다. 이런 글쓰기야말로 비극적인 삶을 산 찰스 램에게 치유의 방편이지 않았을까. 그가 써내려간 치유의 글쓰기는 오늘날까지도 우아한 품격을 지닌 영국 산문문학의 좋은 본보기로 자리잡고 있다.
돼지구이를 논함 7
꿈속의 아이들 - 몽상 21
오래된 도자기 28
은퇴자 39
현대의 여성 존중 풍습 54
기혼자들의 행동에 대한 독신자의 불만 62
회복 중인 환자 75
첫 연극 관람 84
35년 전 크라이스트 호스피틀 학교 92
나의 친척들 116
두 부류의 인간 128
예전 교사와 요즘 교사 139
대도시에서 거지를 쫓아내는 데 대한 불평 155
굴뚝 청소부 예찬 169
섣달 그믐날 182

돼지는 구워야 제맛이다. 우리 조상이 끓이거나 삶아서 먹었다는 것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면 구운 돼지껍질을 먹을 수 없다! 단언컨대 너무 바짝 구워지지 않게 잘 지켜보며 황갈색으로 바삭하게 구운 돼지껍질 맛에는 비할 것이 없다.
- p.14 〈돼지구이를 논함〉 중에서

바스티유 감옥의 죄수로 사십 년을 갇혀 있다가 갑자기 풀려난 것 같았다. 내가 나 자신을 떠맡을 수 없었다.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영원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인간이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일종의 영원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룰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내 손에 놓인 것 같았다. 시간에 쪼들리던 가난뱅이에서 갑자기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된 것이다.
- pp.44~45 〈은퇴자〉 중에서

신혼부부의 얼굴에서, 특히 부인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완전한 만족과 충족감보다 더 꼴 보기 싫은 것도 없다. 그것은 이제 이 세상에서 그녀의 운명이 결정되었으며, 당신은 그녀에 대해 일말의 희망도 가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사실이다. 나는 그녀에 대해 아무 희망도 없고 딱히 바람도 없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런 건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진실들 중 하나지, 굳이 입 밖에 내어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 pp.64~65 〈기혼자들의 행동에 대한 독신자의 불만〉 중에서

아프면 군주 같은 특권을 누릴 수 있다. 다들 살금살금 소리 죽여 걷고 눈짓만 해도 조용히 보살펴준다. 하지만 환자가 조금 나아지면 바로 그 하인들이 인정사정없이 문을 쾅쾅 닫거나 아예 닫지도 않고 드나드는 등 부주의하게 행동한다. 회복 전후를 비교해보면, 옥좌라고 해도 좋을 병상에서 팔걸이의자로 옮겨가는 것이 퇴위와 맞먹는 권위의 추락이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 p.80 〈회복기의 환자〉 중에서

나는 열성 신자로 신전을 떠났다가 합리주의자로 돌아왔다. 물질적으로는 예전과 똑같았다. 하지만 상징은 사라졌다! 녹색 커튼은, 더는 그것이 오르면 과거로 되돌아가 ‘제왕의 유령’이 등장하게 되는 두 세계 사이에 드리운 베일이 아니었다.
- pp.90~91 〈첫 연극 관람〉 중에서

그대에게서 돈을 빌린 자의 행동을 보면 어찌나 그렇게 경솔한지! 불그레한 그 얼굴! 신의 섭리에 대한 아름다운 신뢰를 얼마나 굳게 보여주는가. 백합꽃 못지않게 생각이 없다! 돈, 특히 당신 돈과 내 돈은 또 얼마나 경멸하는지 개똥만큼도 대단치 않게 여긴다.
- p.129 〈두 부류의 인간〉 중에서

나는 굴뚝 청소부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른 청소부 얘기가 아니다. 나이 든 굴뚝 청소부들은 전혀 매력이 없다. 어머니가 닦아줘도 뺨에서 다 지워지지 않은, 처음 묻힌 시커먼 얼룩을 뚫고 피어나는 상냥한 풋내기들이 그렇다. 그들은 새벽빛을 받거나 그보다 더 일찍부터 전문가답게 청소하시라는 외침을 뽑으며 나온다. 그 소리는 어린 참새가 짹짹거리는 소리 같다.
- p.160 〈굴뚝 청소부 예찬〉 중에서

그 시절에는 한밤중에 울리는 종소리가 내 주위에 온통 들뜬 기분을 돋우는 듯해도 내 상상 속으로 한 가닥 수심에 찬 이미지를 불러왔다. 그때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고, 나와 관련된 결산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만이 아니라 서른 살까지 젊은 시절에는 언젠가 죽어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 p.187 〈섣달 그믐날〉 중에서

작가정보

저자(글) 찰스 램

Charles Lamb, 1775~1834
영국 런던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빈민아동을 위한 학교인 크라이스트 호스피틀에 입학했지만 가정형편으로 자퇴하고 남양상사에서 근무하다 동인도회사의 회계원으로 취직해 1825년 은퇴할 때까지 근무했다. 회사일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습작을 했는데 이때 평생의 친구 S. T.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를 만났고 다른 시인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1796년 누이인 메리가 심한 정신병 발작을 일으켜 어머니를 살해하고 난 뒤, 램은 자신에게도 병이 유전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평생 독신으로 누이를 돌보며 살았다. 1796년 콜리지가 낸 시집에 4편의 소네트를 발표하며 등단했고, 누이와 함께 어린이를 위한 《셰익스피어 이야기들》, 《율리시즈의 모험》 등을 출간했다. 1820년부터 ‘엘리아’라는 필명으로 월간지 〈런던 매거진〉에 에세이를 기고했는데, 이것들을 모아 1823년 《엘리아의 수필》, 1833년 《마지막 엘리아의 수필》을 펴냈고 수필가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35년에는 《찰스 램 서간집》을 펴냈다. 평생 정신병으로 고통받았지만,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유머와 페이소스를 섞어 우아한 문체로 써내려간 그의 글은 영국 산문문학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런던대 SOAS에서 번역학을 공부했다. 이후 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건국대학교 글로컬 문화전략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2018년 한국연구재단의 후원을 받아 인문학 대중화 사업의 일환으로 ‘인간 이후의 인간 : SF로 읽는 포스트휴먼’ 강좌를 진행했다. 옮긴 책으로 《클라우드 아틀라스》, 《블랙스완그린》, 《피렌체의 여마법사》, 《광대 샬리마르》, 《순수의 시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등이 있다. 《선셋 파크》로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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