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미라
2019년 02월 20일 출간
국내도서 : 2018년 02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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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정보 ePUB (5.28MB)
- ECN 0111-2020-800-00031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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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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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심상』으로 등단한 김영준 시인이 등단 35년을 기념해 세 번째 시집 『물고기 미라』를 현대시세계 시인선 088번으로 펴냈다.
김영준의 시를 이해하는 데에 주요한 키워드는 ‘무심함’과 이끌림‘이다. 시속이 요구하는 삶을 거부하는 것이 무심함과 관계하는 거라면, 이끌림은 어떤 본질적인 것에 대한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 ‘안’(상징계)에 대한 무심함과 ‘바깥’(실재계)으로의 이끌림, 이것은 블랑쇼가 지적했듯이 진정한 예술가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제목만 일별해도 자연의 심상으로 가득하다. 시적 화자, 시인은 숲이나 강, 바다 등에서 계절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자연물의 움직임을 포착해낸다. 인간의 인식 영역을 ‘안’이라고 칭한다면, 자연은 ‘안’에 속하면서도 ‘바깥’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자연은 우주 무한과 연결되어 있다. 유한자로서의 인간이 닿을 리 만무하다. 따라서 자연과 함께하는 것은 그 무한의 세계, 즉 바깥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김영준 시인은 표제시 「물고기 미라」에서 물고기 미라는 “도약의 몸짓”을 품고 있으며, 죽은 것이 아니라 “고행 중”이라고 말한다. 물에서 하늘로 가는 길목, 뭍에서 물고기는 “우화의 꿈”을 꾸고 있다. 가을볕에 더 마르고 말라, 종잇장처럼 가벼워졌을 때 그것은 정말 철조망을 벗어나 하늘을 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김영준 시인의 흰 머리와 눈썹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는 우화등선(羽化登仙)한 신선 같기도 하다. 어성전 그의 집 마당에는 복사꽃이 만발하는 것만 같고, 그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가는 도끼자루가 몇 개나 썩어나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의 시집 곳곳에는 오랜 관조의 힘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절창의 시들이 산재해 있다. 그에게 시쓰기는 긴 시간 오랜 공력이 들어가는 농사와 같은 것이다. 그는 “누군가 무슨 농사를 짓느냐고 물으면 칡과 쑥을 재배한다며 능청 떨”며 시를 쓴다. 이번 시집 『물고기 미라』를 읽다보면, 잘 가꾸어진 텃밭 하나가 떠오를지 모른다. 그 한가운데에서 뒷짐 진 채 딴전 피듯 먼 저녁의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모습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병꽃나무·13
물고기 미라·14
인면상·15
겨울새·16
잠몽(蠶夢)·18
십우도(十牛圖)·19
가을 하늘·20
봄은·21
봄밤·22
배꽃, 배꼽·24
추분·26
허물·28
늦가을, 남대천·30
망사버섯·31
얼음 시비(詩碑)·32
제2부
딴전·35
자작나무·36
보노보(Bonobo)·38
운석·40
12월, 두 개의 문·42
체 게바라, 그리고 리어카·44
늑대·46
당랑거철(螳螂拒轍)·48
빈집·49
어떤 봄·50
몬스터 달팽이·52
겨울 바다·54
물고기도 날고 싶다·56
노루잠·57
겨울밤·58
제3부
강가에서의 하루·63
환한 날·64
도롱뇽·65
폭설 다음날·66
달밤·67
나비의 날갯짓만큼만 흔들리는·68
겨울나무·70
한계령, 첫눈·71
물안개·72
겨울 가뭄·74
어떤 저녁·76
독백·77
한계령·78
저녁·79
집어등(集魚燈)·80
제4부
저녁에 대한 이해·83
산벚나무·84
귀가·85
겨울 풍경·86
폭설·87
가을 강가에서·88
노각·90
여름밤·91
늦은 편지·92
봄나무·93
새벽 바다·94
새똥·95
길·96
세한(歲寒)·97
발문 무심함과 이끌림 / 김개영·98
[대표시]
겨울새
--
저물녘 하늘 높이 나는 새를 본다
배경은 날카로운 사금파리 스쳐간 흔적뿐
울컥이는 바람에도 새는 마치 정지 화면인 양
서슬 퍼런 하늘 한 자락 꽉 붙들고 놓지 않는다
-
저게 어떤 소식이기를 바라는 것은
몸이 너무 무겁기 때문일까
기다려도 닿을 수 없다는 게 저런 것인가
나무 그림자 하나
이곳까지 길을 내지 못하고 안간힘 쓴다
새는 제 힘으로 날지 않는다
바탕의 힘이거나 바탕을 이루는 바람의 힘일 거라 생각한다
하늘이 늘 제 힘으로 빛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듯
나의 삶이 언제나 내 발걸음으로 밟아온 것이 아니듯이
-
사랑아 차디찬 바람 속이라도 좋으니
사람아 막막한 배경이어도 괜찮으니
훌쩍 뛰어올라 와락 박혀버리고 싶구나
--
자작나무
--
자작나무 숲에 들어서면 술 마시고 싶다
고리키와 푸시킨이 왼편에
백석과 동행하는 나타샤가 오른편에 앉았으면 좋겠다
나타샤가 백석의 애인이어도 좋다
-
눈밭에 모닥불을 피우리라
흰 불꽃의 모닥불이길 바라지만
자작자작 타들어가는 소리면 꽤 괜찮다
한기와 취기가 하나 되니 더 좋다
-
자작을 한다
그들은 없다
백석이 마련한 흰 당나귀를 타고 유랑 길에 나섰다 한다
술잔 속으로 불 같았던 젊은 날도 스며들고
불인지 물인지 가늠 안 되는 치기도 드나들고
그날의 어리석음도 불쑥 끼어든다
-
어느 마을 사람인지 모르지만
귄터 그라스가 술동무하러 온다는 전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술잔은 두 개 놓으련다
-
뉴칼레도니아로 유형(流刑) 떠난 루이즈 미셸의 소식이 듣고 싶은
자작나무의 밤
--
[표제시]
물고기 미라
--
햇살 밝은 가을날
바닷가 철조망에 물고기 한 마리 매달려 있다
잘, 바싹 마른 몸짓이다
햇살 가운데 누우면
곧 하늘로 달려 올라갈 그런 태세로
도약의 몸짓까지 포함하고 있다
-
부처의 고행상을 보면서
꼭 미라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뼈 위에 거죽만 씌운 그 모습은
마치 오래된 낡은 목어를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
빈곤의 극단까지 간
마른 울음을 기억나게도 한다
-
저 물고기도 지금 고행 중이다
결국 도달해야 할 곳이 하늘 밖이라는 듯
결가부좌의 결연한 사유로 우화羽化의 꿈을
꾸고 있다
-
지느러미가 말갛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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