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2018년 08월 13일 출간
국내도서 : 2017년 12월 0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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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8539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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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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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놀라운 작품을 쓴 예브게니 자먀찐(YEVGENY ZAMYATIN, 1884~1937)은 러시아 레베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교회 성직자로 지역 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치고, 어머니는 실력이 탁월한 피아니스트였다. 1902년에는 페테르부르크 종합기술대학에 입학하고, 재학 중에 볼셰비키에 입당해, 러일전쟁 패배와 ‘피의 일요일’로 시작한 1905년 러시아혁명 당시에 체포되어 자택연금을 당하다 유배되었다.
혁명 이후, 러시아는 문화예술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자먀찐은 여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당시는 정말 엄청난 모순의 시대였다. 오랜 전쟁과 혁명과 계속되는 내전으로 러시아는 황폐했다. 경제 자체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운송과 통신 시스템은 마비되고 도시와 농촌은 단절되고, 식료품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추위와 굶주림이 맹위를 떨쳤다. 그런데도 자먀찐을 비롯한 문화예술 그룹은 러시아 문화를 보존하는 건 물론 대중에게 인류 문화유산을 보급하느라 영혼을 불태웠다. 시대는 가혹해도, 작가, 학자, 예술가 등 다양한 조직이 생겨나며 러시아 문학은 꽃피웠다. 문화예술계를 살리자는 대중운동도 일어났다.
예술계에서 다양한 학파와 운동이 나타났다. 일부는 과거에 집착하고 일부는 새로운 걸 찾아 나갔다. 상징주의, 미래주의, 구조주의, 형식주의, 신고전주의, 상상주의, 신현실주의 사이에서 끝없는 논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건 프롤레타리아 작가와 비평가 그룹으로, 이들은 문학을 혁명과 사회개조 수단으로 바라보았다. 자먀찐은 여기에 저항하며 자유롭게 창작할 권리를, 작가 스스로 다양하게 실험할 권리를 주장했다. 프롤레타리아 작가들이 주장하는 사실주의는 19세기 사실주의에 불과하다고,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 작가가 19세기 사실주의에 구태의연하게 집착하며 진정으로 혁명적인 실험과 표현기법을 거부하는 건 언어도단이며 퇴보라고 주장했다. 소비에트 사회에 열정적으로 동참하던 기대감이 혐오감과 불안감으로 바뀌는 순간, 볼셰비키 혁명가는 교조주의와 관료주의 비판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1921년에 ‘나는 두렵다’는 수필에서 선언한다.
‘진정한 문학은 성실하고 믿음직한 관리가 아니라 미친 사람, 은둔자, 이단자, 몽상가, 반역자, 회의론자에게서 나온다……해로운 문학이 유익한 문학보다 훨씬 유익하다. 문학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철학적으로 드넓은 지평이다…… 가장 궁극적이고, 가장 무섭고, 가장 용감하게 “왜?” 그리고 “다음은 뭔가?”를 묻는 거다.’
당이 요구하면 작가는 따라야 한다는 공산주의 비평가에 대해서는 ‘목표’라는 수필을 통해 정면으로 공격한다.
‘혁명에 필요한 건 떡고물이라도 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 혹은 채찍이라도 날아들까 두려운 마음에 “똑바로 앉는” 개새끼가 아니다. 개새끼를 이렇게 훈련할 조련사도 필요하지 않다. 혁명에 필요한 건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다…… 혁명이 진실에 눈뜨도록 채찍질하는 작가다.’
혁명 초기에 정부가 지원하는 언론매체는 자먀찐 작품을 거부했다. 그래도 자먀찐은 자신이 보고 느낀 대로 수필과 희곡과 소설을 용감무쌍하게 써나가고, 독재정권이 가하는 압박은 꾸준히 늘어났다. 이런 상황은 자먀찐을 위축시키기는커녕 풍자문학을 최고도로 완성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분야도 방대했다. 어린 시절에 체험한 러시아 신비주의를 놀랍게 부활한 작품도 나오고, 민요처럼 경쾌한 작품도 나오지만, 초현실주의 관점에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고 풍자와 슬픔을 오가며 엄중한 현실을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도 나온다. 그리고 ‘우리들’에서 정점을 찍는다.
‘우리들’은 자먀찐 인생에도 정점을 찍는다. 하지만 1920년에 완성한 ‘우리들’은 러시아에서 출판할 수 없었다. 1924년에 영어로 처음 번역 출간되고, 1927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체코어로 번역 출간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체코에서 저자에게 통보도 동의도 없이 출간한 ‘우리들’은 2년 후에 소련에서 자먀찐을 본격적으로 탄압하는 계기가 된다. 1929년 여름에 소비에트 작가 동맹에서 본격적으로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친하게 지내던 동료 작가들은
작가소개
작품설명
200년 전쟁을 치르는 동안, 도로는 모두 파괴되고 잡초만 가득 자라서 녹색 정글에 막혀, 모든 도시가 고립된 채 살아가야 한다는 게 처음에는 누구나 불편할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인간도 꼬리가 처음 떨어진 다음, 꼬리 없이 파리를 쫓아내는 방법을 정말 어렵게 배우지 않았겠는가! 처음에는 꼬리가 없어서 정말 아쉽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여러분은 꼬리가 달린 자신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혹은, 옷 없이 벌거벗은 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자신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이 ‘옷’이란 걸 입는다면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녹색 담벼락’에 갇히지 않는 도시를 상상할 수 없다. 모든 걸 시간표에 따르지 않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는 (어쩌면 여러분도) 고대부터 내려온 가장 위대한 문학을, 기념비적인 문학을, ‘열차 시간표’를 모두 읽었다. 하지만 이걸 우리 ‘시간표’와 나란히 놓고 보라. 다이아몬드 옆에 놓은 석탄 같지 않은가! 둘 다 원소는 똑같은 탄소지만,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투명하게 반짝이지 않는가! ‘열차 시간표’를 읽다 보면 누구든 숨이 가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시간표’는! 아아, 우리 ‘시간표’는 우리 한 명 한 명을 강철 같은 존재로 만들어주지 않는가! 대서사시에서 노래하는 ‘바퀴 여섯 개 달린’ 영웅으로 만들어주지 않는가! 매일매일 아침마다 바퀴 여섯 개처럼 정확히, 똑같은 시간 똑같은 순간에 우리 모두, 수백만이, 하나처럼 일어나지 않는가! 똑같은 시간에 수백만이 일터로 일제히 나아가서 작업하고, 일제히 끝내지 않는가! 수백만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똑같은 순간에, 시간표에 적힌 대로, 우리 모두 숟갈을 입에 넣지 않는가! 똑같은 순간에 우리 모두 산책하고, 공회당에 가고, 강당에 가서 테일러 연습하고, 집에 가서 잠자고……
어제 하루는 화학자가 불순물을 거르는 여과지 같았다. 부유물은 모두, 불필요한 건 모두 여과지로 걸러냈다. 오늘 아침은 모든 걸 투명하게 걸러낸 기분으로 아래층에 내려갔다.
아래층 현관에는 여성 관리인이 책상에 앉아, 번호가 들락거릴 때마다 종이에 기록하며 시계를 힐끗 쳐다본다. 이름은 U…… 번호는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 속마음이 그대로 튀어나올까 두려우니 말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꽤 존경스러운 중년 여성이다. 내가 싫어하는 건 딱 하나, 축 처진 뺨이 생선 아가미처럼 보인다는 거다. (그런데 이게 왜 신경에 거슬릴까?)
U가 펜을 끄적이고, 나는 종이에 적힌 나를, D-503을, 그리고 옆으로 번진 잉크 얼룩을 본다.
내가 잉크 얼룩을 지적하려고 할 때 U가 머리를 들어서 잉크 얼룩 같은 미소를 뚝뚝 떨어뜨린다.
“편지가 왔어요. 네, 나중에 받을 거예요, 그럼요, 그럼, 확실히 받을 거예요.”
편지가 오면 U가 먼저 읽은 다음, ‘보호단’ 사무실을 거쳐(이렇게 자연스러운 절차까지 여러분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12시 이전에 내 손으로 들어온다는 걸 나는 잘 안다. 하지만 잉크 얼굴 미소가 신경에 거슬린다. 뚝뚝 떨어지는 잉크 방울이 ‘나’라는 투명한 용액을 뿌옇게 물들인다. 얼마나 심한지, 나중에 ‘완전체’ 제작 작업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계산 착오까지 저질렀다. 예전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12시, 다시 분홍빛이 감도는 갈색 아가미, 마침내 편지가 내 손에 들어온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안 읽은 이유를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걸 주머니에 넣고 방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래서 편지를 꺼내 쭉 읽은 다음, 자리에 앉았다…… I-330이 나에게 등록했으며, 따라서 오늘 21시까지 I-330 방으로 가라는 공식 통지서다. 밑에 주소가 있다.
나는 차갑게 변했다. 22시 반 이후에 거리에서 잡히면 어떻게 되는지 뻔하다. 광기는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 그런 나에게 분명한 건 딱 하나, 나는 I-330을 증오한다, I-330을 증오한다, I-330을 증오한다!
작별인사도 없이 뒤도 안 돌아본 채,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계속 달리면서 배지를 황급히 달고, 승강기에서 누구든 마주칠까 두려워, 비상통로로 계단을 건너뛰며 달려, 텅 빈 거리로 뛰쳐나갔다.
모든 게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너무 단순하고 평범하고 정상이었다. 유리 주택마다 빛이 반짝이고, 유리 하늘은 창백하고, 밤은 꼼짝도 않는 녹색이었다. 하지만 내 몸은 차갑고 차분한 유리 안에서 피가 마구 들끓었다, 새빨갛게, 털북숭이로, 소리 없이 들끓었다. 나는 마구 달렸다, 숨을 헐떡이며, 안 늦도록.
급하게 끼운 배지가 느슨하게 변하는 느낌과 동시에 미끄러지며 인도 유리 판석에 쨍그랑 떨어졌다. 그걸 주우려고 허리를 숙이는데, 순간적으로 정적이 깔리더니, 뒤에서 뚜벅뚜벅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렸다. 뭔가 어깨가 굽은
세계 3대 디스토피아 명작
혁명 이후에 나타나는 파시즘을 온몸으로 고발한다.
‘우리들’은 세계 3대 디스토피아 명작에서 으뜸으로 치는 작품이다. 작품은 주인공이 살아가는 세상을 미지의 독자에게 상세하게 전달하기 위해 일기처럼 기록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전체주의에 흠뻑 빠져든 인물이다. 자유를 갈구하는 시인이 처형당하는 걸 다행스럽게 여길 정도다. 하지만 주인공도 인간이니, 당연히 끊임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정신착란을 일으킨다며, 자신에게 ‘영혼’이란 질병이 생겼다며 저주한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가장 보편적인 인간 유형이다.
작가는 볼셰비키 혁명을 추구한 혁명가나, 볼셰비키 혁명 이후 소비에트 사회가 옆으로 새는 걸 온몸으로 저항하며 다양한 한계와 갈등을 겪다, 주인공을 통해서 자신이 겪은 전체주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리들’에서 전체주의 현상을 집대성하고, 작가 자신이 겪을 미래를, 조국이 겪을 미래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예견한다. 그러면서 확고한 신념을 제시한다. 이 신념은 “혁명은 끝나지 않는다. 혁명은 무한하다”는, “나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사람으로 되고 싶지 않다 - 나 자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되고 싶다”는 여주인공 발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두 가지 신념, 즉, 영원한 혁명, 그리고 개인이 자신의 의지와 욕구에 충실하게 선택하고 창조할 자유는 자먀찐의 생애와 작품 전체를 관철한다. 그래서 여주인공을 통해 선언한다.
“우리는 벽을 ? 모든 벽을 ? 허물어, 녹색 바람이 끝에서 끝까지 ? 지구 전역으로 ? 자유롭게 불어댈 날이 올 것이다.”
‘우리들’은 전체주의가 정체를 드러낼 즈음에 미래를 예언한 놀라운 소설이다. 위대한 풍자소설이 그러듯, 자먀찐 역시 구체적인 현실을 통해 앞으로 나타날 사회를 암시한다. 평소에도 자유와 개성을 주장하는 이단으로, 모든 교조주의, 모든 독재, ‘강제 구원’을 주장하는 모든 세력과 끊임없이 싸우듯, 새롭게 등장하는 전체주의, 거기에 아부하는 세력, 잔인한 통치, 자유롭고 창조적인 정신을 파괴하고 억압하는 행위를 무자비하게 공격하며 비웃고, ‘가장 통쾌한 무기는 웃음’이라고 단정한다. 테러, 배신, 비인간화, 사방에 숨어든 비밀경찰, 사상과 행동 규제, 일상적으로 세뇌한 결과는 살기 위해 거짓말하는 위선자나 의문을 품을 줄 모르는 로봇만 양산하는 형태로 나타나리란 사실 역시 예견했다. 그래서 ‘우리들’ 주인공은 이렇게 자조한다.
“우리는 야수 같이 날뛰던 시에 굴레를 씌워서 길들였다. 오늘날, 시는 건방지게 아무렇게나 지저귀는 종달새가 아니다. 시는 공익에 봉사한다. 시는 유익하다.”
문장 스타일에서도 ‘우리들’은 탁월하다. 자먀찐이 “우리 시대의 언어는 암호처럼 날카롭고 빠르다”고 말한 그대로다. ‘우리들’에서는 문장 하나하나가 시어처럼 극단적으로 엄격하고 간소하다. 완벽한 통제사회, 즉, 감정은 모두 사라지고 시간표로 일상생활을 규정하며, 건물은 유리로 지어서 사생활이 없고, 도로는 완벽한 직선으로 효율성을 상징하고, 남녀 역시 시간표에 맞춰서 사랑하는, 완벽한 통제사회를 고발하려는 의도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문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어린 시절에 즐겨 듣던 러시아 민담의 독특한 표현기법을 도입해서 ‘우리들’에 우화 분위기를 더하며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하고 작품에 내적 통일성도 부여한다. 장밋빛 O, 관자놀이로 치오른 삼각형 눈썹 I, 입술이 흑인처럼 두터운 R, 몸뚱이가 두 번 구부러진 S, 뺨이 아가미 같은 U, 종이를 잘라낸 것 같은 의사 등이 좋은 사례다.
심각한 정치 상황은 구성원 사이에서, 그리고 각자에게 심각한 내적 갈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으니, ‘우리들’ 역시 다양한 뉘앙스와 암시와 머릿속 생각이 미묘하게 어우러진다. 작품에서 인간은 이름 대신 ‘번호’로 부르며 독재자가 추구하는 효율성을 상징하지만, 이들 역시 결국엔 다양한 개성을 지니고 나름대로 고민하며 살아가고 감동하는 인간이 아닐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 개인과 사회의 관계, ‘자유 없는 행복’과 ‘행복 없는 자유’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 소외에 대한 유혹과 두려움, 합리성과 비합리성 사이를 파헤쳐, 인간이 지닌 다양한 문제와 갈등을 핵심 주제로 다룬다. 환상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이 부닥친다. 처음에는 순수하고 합리적인 정신에 근거했으나 결국엔 비인간화를 통해 파멸로 치닫는 사회를 고발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한 국가’를 둘러싼 담벼락 바깥에서 털이 부숭부숭해도 다정한 존재를 목격한 다음에 묻는다.
“그들은 누구죠? 우리가 잃어버린 반쪽?”
‘잃어버린 반쪽’은 감정이 살아있는 반쪽, 시간표에 의존하지 않고 비합리적으로 살아가는 반쪽을 의미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잃어버린 반쪽을 되찾는 게 두렵다. 그래서 의사를 찾아가 ‘질병’을 고쳐달라고 사정하나, 의사는 그건 ‘영혼’이란 질병이라고, 고칠 수 없는 거라고 답변한다. 하지만 아아, 국가는 결국 해법을 모색하다, 개성을, 반역 정신을, 인간성을 잘라내는 ‘위대한 수술’을 개발하니, 인간 두뇌에서 상상력을 모두 잘라내, ‘한 국가’ 시민 전체를 언제나 방긋 웃는 멍청이로 전락시키는 작전에 돌입한다.
‘우리들’은 25년 후에 조지 오웰이 엄청난 충격을 받고 ‘1984’를 쓰는 계기로 작용하지만, ‘1984’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나름대로 희망도 있다. 반란이 일어나, “도시 서쪽 지역을 장악”하고 수많은 ‘번호’가 담벼락 너머로 탈출한다. 죽는 자는 인간성을 파괴당하지 않는다 ? 복종하지 않고 싸우다 죽는다. 주인공이 사랑하던 여인은 결국 배신당하고 죽지만, 주인공을 사랑한 여인은, 다정하고 부드러운 여인은, 담벼락 너머에서 안전하게 살다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아기를 낳는다. 게다가 담벼락 자체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작가는 ‘우리들’에 묘사한 끔찍한 사회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도 냉소주의에 빠져서 빈정대는 기색이 없다. 분노하고 풍자하고 반역할 뿐, 자기연민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모든 교조주의자에게, 사람을 가혹한 틀로 집어넣으려는 모든 세력에게 말한다.
“너희는 이길 수 없다. 인간은 파괴당하지 않는다.”
인간이 행복과 자유를 추구한 결과는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으로 나타나고, 그 실험은 소비에트 사회로 나타났다. 역사라는 좁은 틀로 국한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실험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대한 실험’에서 다양하게 나타난 한계를 파악하는 거다. 그 한계를 우리 사회에 대비하며 교훈을 얻는 거다. ‘우리들’이 소중한 이유다.
우리 사회는 일제 이후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를 거치며 끊임없이 왜곡 당했다. 독재세력은 역사 왜곡과 진실 왜곡을 통해 우리 사회를 ‘우리들’이나 ‘1984’에서 말하는 끔찍한 사회로 몰아가려 애쓰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영혼이 왜곡 당했다. 지금이라도 그동안 쌓인 적폐를 청산하는 건, 뒤에 숨어서 진실을 왜곡하는 적폐세력까지 모두 까발리고 청산하는 건, 우리들 내부에, 자신의 머릿속에, 숨어서 진실을 교묘하게 왜곡하는 내적 파시즘까지 자각하고 극복하는 건, 우리가 진정으로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자먀찐은 ‘우리들’을 “무엇보다 익살스러우면서도 무엇보다 진지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우리들 사이에서도 현실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익살스럽게 풀어나가는 지혜가 꽃피우길 바란다.
[편집자의 말]
번역은 원문에 담긴 내용과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글로 옮기는 과정이어야 한다. 찰스 디킨스 작품은 다양한 인물을 풍자와 유머와 화려한 문장으로 재미있게 묘사하는 특징이 탁월하다. 따라서 문장은 어렵고 복잡한데, 지금까지 번역한 작품은 한글 어법을 무시한 영어 사대주의에다 오역까지 넘쳐서 극히 어렵고 난해했다.
고전문학은 다양한 경쟁과 도전 속에서 독자에게 다양한 즐거움과 감동을 주며 백 년 이상 살아남은 작품이니, ‘재미와 감동’은 물론 ‘술술 읽히는 느낌’ 역시 어느 작품보다 탁월할 수밖에 없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는 기능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엉터리로 번역해서 독자를 괴롭히며 쫓아낸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문학은 독서가 시작이다. 고전문학을 제대로 해석해서 한글 어법에 정확히 담아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가꿀 원형을 제시해야 한다. 광복 35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우리는 ‘일본어 중역 몰아내기 운동’을 했다. 35년이 또 지났다. 이제는 ‘우리말 살리는 번역운동’을 할 때가 왔다.
‘도서출판 비꽃’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한국어 어법에 합당한 번역을 추구하며, ‘찰스 디킨스 선집’을 필두로 고전문학을 새롭게 담아내,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면서 공동체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책속으로 추가]
“아아, 책임자님이 어제 아파서 다행히 여기에 없는 동안, 정말 커다란 소동이 일었습니다.”
“소동?”
“네, 소동! 작업을 마무리할 즈음에 종이 울려, 모두 줄지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상상해 보세요 ? 번호가 없는 사내를 경비원이 잡은 겁니다. 그자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사내는 ‘수술국’으로 끌려갔습니다. 그 이유와 방법을 이제 모두 끄집어내겠지요……”(이렇게 말하는 내내 맛난 미소가 가득.)
‘수술국’은 경험도 가장 많고 탁월한 의사들이 가득하며, ‘은혜로운 선생님’이 직접 관리한다. 여기에는 도구가 다양한데, 효과가 가
작가정보
역자 김옥수는 서울에서 태어나 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저작권 중계회사 ‘임프리마 코리아’ 영미권 담당부장, 도서출판 ‘사람과책’ 편집부장 등을 역임했다. 약 300여 종에 달하는 영서를 번역했다. 학계에서 발표한 다양한 ‘번역방법론’ 및 ‘한글 특징’ 백여 편을 정리하고 25년에 걸친 번역 경력을 접목해,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번역방법론을 강의하며 검증해서 ‘한글을 알면 영어가 산다’로 발표했다. ‘비꽃’에서 천민자본주의를 화려하게 풍자한 ‘찰스 디킨스 선집’을 필두로, 파시즘을 파헤치는 ‘조지 오웰 삼부작’을 우리말 어법에 맞게 새롭게 번역했다. 고전 작품 전체를 새롭게 번역해서 한국사회의 문화토양을 굳건히 다지는 걸 목표로 오늘도 힘차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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