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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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60407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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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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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문학적인 순간을 길어 올리는
‘단어 생활자’ 안희연의 따뜻한 허밍
시인은 단어를 ‘산다(live)’고들 말한다.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첫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부터 2020년 펴낸 세 번째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까지 맑고 세밀한 언어로 사랑받아온 안희연도 날마다 수많은 단어들의 안팎을 ‘살아간다.’ 그에게 머무는 단어들은 얼핏 보기엔 시인의 노트에 그다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적산온도, 내력벽, 탕종, 잔나비걸상, 선망선, 플뢰레, 파밍, 모탕…. 8시 뉴스나 신문의 과학·기술 섹션에서 본 듯한, 혹은 학술·전문 콘텐츠에 나올 법한 단어들. 평소 잘 쓰이지 않아 그 뜻이 한 번에 떠오르지 않는 단어들. 신간 《단어의 집》은 이렇게 비(非)시적인, 건조한, 테크니컬한, 아카데믹한 단어들이 시인의 일상에 기습적으로 끼어들어 ‘가장 문학적인’ 사유의 통로를 여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안희연은 “모든 단어들은 알을 닮아 있고 안쪽에서부터 스스로를 깨뜨리는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45편의 글을 통해 “하나하나의 단어들이 발산하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기운을 목격”한다.
“저에게 세상은 양초로 쓰인 글자 같습니다. 이 세상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촛불을 들고 단어의 집으로 들어서면 감춰져 있던 장면이 서서히 나타나기도 해요. 그곳엔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무언가가 있어요. 파닥임과 반짝임이 있어요. 그 마주침의 순간이 좋아서 저는 계속 글을 씁니다.”_프롤로그 중에서
1. 성냥갑에 딱 하나 남은 성냥 같은 말
길항
규모
적산온도
주악
삽수
라페
몰드
버저 비터
휘도
잔나비걸상
버력
피막
블라이기센
2. 홀로 짓는 표정 같은 말
모루
유루
내력벽
루어
흑건
오고오고
가시손
빈야드
구득
홈질
선망선
출몰성
플뢰레
덧장
탕종
꼭두
3. 나의 작은 말들의 놀이터
안료
탁성
벼락닫이
적화
밀코메다
묘실
파밍
기저선
네온
불리언
덖음
시드볼트
모탕
페어리 서클
도량형
끗
용어지만 이 시간만큼은 그 무엇보다 문학적인 영혼이 드나들 길을 열어주는 단어들이다.
“사각거리는 연필소리. 손등에 돋아나는 힘줄. 집중하는 입.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고 있다. 문학의 자장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단단한 결속력을 느낄 때가 많다. 왜 하필 문학인가요. 세상에 재미난 게 얼마나 많은데.”_172쪽
시 쓰는 일을 업으로 삼다 보면 단어가 그저 단어가 아니라 자신을 이루는 피와 살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 쓰는 일을 업으로 삼겠다며 자신을 찾아온 이들과 그러한 감각을 나누는 것도 《단어의 집》에 사는 큰 기쁨이다. 그는 쓸 것이 고갈되어 못 쓰겠다는 학생들에게 “만일 네가 충분한 시인이라면 그런 보잘것없음에서도 시를 불러낼 것”(p.204)이라 말하는 동시에, 정작 자신은 녹화된 영상을 반복 재생한 것처럼 관성적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닐지 수시로 얼굴을 들여다보는 선생이다. 선생이라는 호칭이 종이호랑이처럼 여겨질 때마다 자신을 ‘시인’으로 살게 했던 선생님들의 말씀, 그 말씀으로 백지를 채우며 나아갔던 순간들을 되새기는 마음도 깊고 미덥다.
“장수(將帥)는 태생이 장수인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결심하기에 장수인 것이라는 나의 시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나는 그 말을, 자신감은 영원히 생기지 않을 것 같으니 대신 믿음의 크기를 키워보자는 말로 바꿔 읽는다.”_167쪽
안희연은 〈빚진 마음의 문장〉(《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수록)이라는 시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어의 문을 열어보는 쪽으로 나의 시가 움직였으면 좋겠다”라고 썼었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발견되고 발명되어 자신만의 사전에 등재되는 단어들의 목록을 늘리는 것을, 그는 여전히 목표로 한다. 목록이 늘어날수록 세계의 비밀은 드러나며 우주는 넓어진다. ‘아름다움 쪽으로’ 유영할 가능성이 커진다. 자신이 목격한 세계의 배면이 담긴 《단어의 집》에 안희연이 독자를 초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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