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옥타비아 : 2059 만들어진 세계 - 활자에잠긴시
2018년 06월 08일 출간
국내도서 : 2017년 11월 07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16.83MB)
- ISBN 979115992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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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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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더에서 의사들이 인공 수정으로 만든 간병인 율리의 도움을 받으며 남은 삶을 지속하는 모는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던 그와의 나날과, 여성 혐오로 얼룩졌던 과거와, 자유 없는 현재와, 목전에 놓인 자신의 죽음 등에 관하여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디스옥타비아》는 가공된 미래를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의 풍경을 환기시킨다. “그 시절의 삶이 어땠는지를 짐작이나 해볼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는 ‘모’를 통해 우리는 바로 “그 시절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세계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돌아본 지금-여기가 ‘디스토피아’처럼 느껴진다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은 미래로 내딛어야 할 시간, 다시 태어나야 할 시간이 아닐까?
2059년, 여름
I
밤사이 바닷물에 떠밀려 온 커다란 물체가 물살에 이리저리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머지않아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세히 보니 두 팔을 느슨하게 벌린 자세로 엎어져 물에 떠 있었다. 가만히 그것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10쪽)
더 이상 혼자서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그나마 두려웠던 것은 내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순간에 심장이 멈출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변기에 앉아 죽을까 봐 걱정했다. 그들이 내 바지를 걷어 올리게 될까 봐 두려웠다. 몸을 씻다 죽는 것도 싫었다. 그들이 내 주름이 가득한 알몸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싫은 것은 언제나 싫었다. 싫은 것은 좋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15쪽)
율리가 말하는 다른 세상에서 떠나온 사람으로서 나는 율리를 걱정했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살진 않을 거예요. 율리는 자기 자신을 경멸하는 것 같았다. 당장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게 될 거야. 그게 너의 전부가 될지도 몰라. 나는 내가 도망쳐 온 삶에 몸서리를 쳤다. 걱정 말아요. 작가가 되지 않을게요.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율리가 문득 환하게 웃었다. (28쪽)
다른 삶은 없다고 말하는 이에게 다른 삶이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어떤 절망에는 다른 삶을 꺼낼 수조차 없어야 한다. 잦아드는 불씨처럼 타들어가는 숨이 마침내 다 꺼질 때까지. 형체를 간직하고 있지만 이내 주저앉아 바스러질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절망하지 않는 사람이 절망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31쪽)
내가 한창 가임기의 여성이었을 때, 나는 내가 속한 사회가 생산하는 가족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찌감치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왔고, 내가 새로운 가족을 꾸릴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다. 만약 지금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지금 다시 그럴 수만 있다면 아이를 낳아서 함께 살고 싶다. 아이를 낳아서 바다가 무엇인지 모래가 어떤 촉감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 만지게 해주고 싶다. 함께 물속으로 천천히 들어가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 아이가 먹을 것을 만들고 아이 옆에서 함께 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잠이 들면 다른 생각에 빠져 있다가 아이가 깨어나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까맣게 잊고 싶다. 하지만 내 몸은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 (42~43쪽)
나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으면서 자신을 살려두고 있다. 이 세상에는 나를 살아가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삶에 대해 비참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살려두는 것만으로도 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처럼. 한때 나는 만족스러운 삶의 한가운데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53~54쪽)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지구를 떠날 텐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삶의 본연으로 삼는 일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되어버리는 때가 있었다.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는 비참을 견디며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때가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오로지 혼자서만 책임지면서 타인의 요구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은 요구만 할 뿐 책임은 없다. 타인의 요구를 거부하고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는 순간 나는 고립된다. 하지만 본연의 모습대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생계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위험을 택할 자유는 있었다. (62쪽)
옛날에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당신과 내가 만난 건 운명이야. 이렇게.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사라진 말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율리는 한참 후에야 그 말을 이해했다. 율리는 사람이 사람에게 운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신비롭게 여겼다. 그건 마치… 자기 자신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으로 들려요. 내가 살아가는 데 다른 사람이 왜 필요하죠? (64쪽)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만으로 다른 실망스러운 일들을 잊을 수 있었다. 생활비가 걱정돼 울다가도 먹고 싶은 게 떠오르면 눈물을 닦고 그것을 먹었다. 내 앞에는 언제나 안 좋은 일이 도사리고 있는 것만 같은 불안한 날들을 살면서도 내가 밥을 맛있게 먹으니까 유야무야 돼버린 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 것도 내가 밥을 맛있게 먹고 밥을 무척이나 좋아해서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내가 음식에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밥을 맛없게 먹는 사람이었다면 대신 내 앞에 마련돼 있던 모든 불행을 그대로 맛보았을 것이다. (73쪽)
‘남자처럼’ 짧다는 것은 그야말로 옛날식 표현이다. 이제
작가정보
저자 유진목은 1981년 서울 동대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 들어가 7년 동안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고, 졸업 후에는 출판사에 다니며 책 만드는 법을 배웠다. 2009년 ‘목년사’ 를 만들어 단편 극영화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했고, 2015년까지 영화 현장에 있으면서 장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일곱 작품에 참여하였다. 2016년 시집 《연애의 책》이 출간된 뒤로는 글을 쓰는 일로 원고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흘은 시급 노동자로 서점에서 책을 팔고, 나흘은 작가로 책을 쓰는 생활. 여름에는 수영을 하고, 겨울에는 불을 쬔다.
그린이 백두리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 《나는 안녕한가요》, 《혼자 사는 여자》가 있으며, 일러스트레이션에 참여한 책으로 《말하자면 좋은 사람》,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어른으로 산다는 것》, 《감정연습》 등이 있다. ‘아닌 척,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뒤에 숨겨진 진짜 감정에 관심이 많고 그런 것들을 그리고 있다.
작가의 말
나는 먼 훗날 내가 사무치게 그리워할 인생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이다. 살아오는 동안에는 태어날 때 내 몫으로 주어진 불행을 감당하고, 인내하고, 극복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 뒤에는 없어도 좋을 나쁜 일들이 나를 찾아왔다. 불행은 행복이 마련해둔 빈 자리에서 살아간다. 그뿐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글을 쓰다 말고 고개를 들어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내 앞에 살아 있고, 그는 그대로 내 곁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만든 세계에서 나는 혼자였다가 우리가 둘인 때로 돌아온다. 그는 죽은 사람이었다가 죽는 사람이었다가 살아 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거슬러 이 세상에서 나를 없앨 수도 있을 것이다.
_I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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