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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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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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전부터 꿀이나 식물의 수액을 통해 단맛을 얻어 온 인류는 기원전 500년경 인도에서 설탕 정제 기술이 처음 고안된 이후 지속적으로 설탕 산업을 발전시켜 왔다. 이 설탕은 인류의 욕망을 자극하며 세계사의 다양한 장면을 탄생시켰다. 예를 들어, 오늘날 영국을 대표하는 ‘차(tea) 문화’도 설탕의 확산과 맞물리며 뿌리내릴 수 있었다. 찻잎 특유의 떫고 쓴맛을 중화하는 데 설탕만큼 적절한 것이 없었는데, 설탕은 꿀과 달리 향이 거의 없어 차의 고유한 풍미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고 감미로운 맛을 더해 주기 때문이다. 차 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하자 설탕 수요 또한 급격히 증가했고, 설탕의 대중화는 다시 차 소비를 촉진하며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설탕 전쟁》은 우리 일상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설탕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과정을 따라가며, 그 뒤에 숨겨진 모험과 탐욕의 세계사를 생생하게 포착한다. 저자는 30여 년 동안 사업차 스리랑카, 태국, 앙골라, 쿠바, 유럽 등 많은 국가를 경험하며 역사적 감수성과 호기심을 키웠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서적과 자료를 탐독하며 물자와 인구의 이동, 특히 서구 제국주의의 흔적 등을 탐구해 왔다. 그 첫 결실인 전작 《향신료 전쟁》은 향신료를 두고 벌어졌던 열강의 각축전을 중심으로,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의 탄생 등 세계사의 주요 장면을 흥미롭게 풀어내 큰 호응을 얻었다. 후속작인 이번 《설탕 전쟁》에서는 설탕을 향한 욕망이 유럽 제국주의 팽창과 맞물리며 전 세계로 퍼져 나간 파란만장한 여정을 따라간다. 또한 설탕 산업이 촉발한 노예제로 인해 잔혹하게 희생된 원주민과 흑인 노예의 역사를 조망하며, 설탕의 달콤한 맛 뒤에 드리운 인류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러낸다. 나아가 설탕 산업이 초래한 조선인의 하와이 이민과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되짚으며, 설탕의 세계사와 우리 역사의 교차점을 조명한다. 《설탕 전쟁》은 설탕을 통해 새롭게 바라보는 세계사, 그를 통한 신선한 지적 자극을 선사하는 흥미진진한 교양서다.
1장 차 한 잔, 설탕 한 스푼이 바꾼 세계
스리랑카 찻잔 속의 제국|포르투갈 공주로부터 시작된 영국의 티타임|사탕수수, 대서양을 건너다|콜럼버스와 사탕수수
2장 문명을 넘나든 달콤한 유혹
이슬람 문명사회와 암흑의 서구 사회|십자군, ‘단맛이 나는 갈대’를 만나다|태초에 설탕은 어디에서 왔는가
3장 플랜테이션과 흑인 노예의 눈물
식민 경제의 핵심, 플랜테이션|사탕수수밭으로 끌려간 아프리카 흑인|영국의 해적왕과 자메이카의 육상 영웅|비참했던 흑인 노예의 삶 |어느 노예 감독관이 남긴 끔찍한 기록
4장 채찍 아래에서 함께 이룬 흑인 노예 공동체
아프리카 흑인, 노예에서 전사로 거듭나다|제국에 맞서 싸운 검은 전사들|한 섬에 두 나라, 히스파니올라섬 이야기
5장 아메리카에 세워진 최초의 흑인 공화국
불사신이 된 외팔이 지도자|부두교 의식에서 시작된 아이티 혁명 |투생 루베르튀르와 아이티 공화국의 탄생|나폴레옹이 선택한 ‘달콤한 뿌리’
6장 설탕과 황금의 땅 브라질
포르투갈 식민 모델의 시작, 마데이라|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과 미지의 땅|설탕 왕국 브라질의 탄생|브라질 식민 경제의 확장과 야만적 노동 착취|노예 사냥꾼 반데이라|네덜란드는 어떻게 브라질을 빼앗았나|브라질리언이라 불린 네덜란드인 식민 총독|브라질을 뒤흔든 골드러시|황금의 땅 미나스제라이스
7장 사탕수수와 럼, 시가와 낭만의 섬 쿠바
‘슈거 볼’의 나라|콜럼버스를 사로잡은 ‘연기 나는 마른 풀’|시가 연기와 럼에 담긴 쿠바의 정취|세계인을 매료시킨 바카디 럼주의 향미|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쿠바 독립과 스페인의 몰락, 그리고 미국의 부상
8장 사탕수수밭이 키운 미국의 야망
성조기 이전에 설탕이 있었다|파리 조약과 미합중국의 탄생|신생 독립국의 젖줄이 된 미시시피강|루이지애나는 어떻게 미국 설탕 산업의 핵심이 되었나|나폴레옹의 루이지애나 매각과 ‘신이 주신 운명’의 시작|미국 목화밭의 비극이 만든 것들
9장 하와이, 설탕, 그리고 우리
설탕의 길,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로 이어지다|설탕이 만든 미국의 새로운 땅|조선인이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오기까지|한인 이주 역사의 시작|조국을 위해 기꺼이 몸 바친 조선인 청년들|하와이로 온 ‘사진신부’|설탕 재벌의 섬에서 세계인이 사랑하는 섬으로
“공주께서 마시는 저 음료, 무엇인지 아시나요? 아침부터 줄곧 저것만 드시더군요.”
“‘차이’라고도 하고, ‘차아’라고도 부른다네요. 동방의 어딘가에서 왔다던데, ‘인디아’인지 ‘차이나’인지 확실하진 않지만요.”
“차이나? 거긴 또 어디인가요?”
“무엇보다도 저 잔이며 주전자가 정말 예술이에요. 어제는 새하얀 것이었는데 오늘은 아름다운 꽃무늬가 그려져 있네요. 처음 보는 아름다운 문양이에요.”
“도대체 어떤 맛일까요, 저 ‘차이’라는 것은.” (중략)
포츠머스의 귀부인들이 궁금해하던 그 음료가 나중에 ‘티(tea)’라고 불리며 영국 문화의 한 뿌리가 될 줄을,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 실마리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차에 넣은 설탕에 아프리카인과 중국인, 인도인, 좀 더 이후에는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의 ‘민족 이동’과 아픔이 어려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인 대부분은 영국인, 프랑스인,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들이 운영하는 사탕수수밭에 팔려 왔던 노예들의 후손이다. _21~22쪽
설탕을 뜻하는 영어 ‘sugar’와 사탕을 가리키는 ‘candy’도 고대 인도로부터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설탕을 샤르카라(sharkara)라고 불렀다. 샤르카라는 본래 자갈이나 모래를 뜻하는데, 사탕수수즙을 끓여 정제한 설탕이 마치 모래알 같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샤르카라는 페르시아로 전해지며 페르시아어인 샤카르(shaker)가 되었다가, 이슬람에서는 아라비아어인 슈카르(sukkar)가 되었고 이 영향으로 영어의 ‘슈거(sugar)’가 탄생했다. 또한 ‘설탕 조각’을 산스크리트어로 칸다(khanda)라고 불렀는데, 이로부터 영어의 ‘캔디’가 생겨난 것이다. 설탕은 명실상부 고대 인도인들의 ‘발명품’이다. _44~45쪽
우사인 볼트, 일레인 톰슨, 세리카 잭슨 등 오늘날 세계 단거리 육상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자메이카 선수들의 경기를 보며, 나는 종종 사탕수수밭에서 혹사당했을 그들의 선조들을 떠올리곤 한다. 해적기(海賊旗)를 나부끼며 바다를 누빈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와 두 다리로 트랙 위를 질주하는 자메이카의 육상 선수들, 과연 ‘진짜 영웅’은 누구일까? _58~59쪽
현지 관리인들은 내륙 원주민을 ‘합법적으로’ 노예화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했는데, 원주민을 일부러 도발해 분쟁을 일으킨 뒤 그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이었다. 당시 원주민 사회에는 ‘전투에서 이긴 자가 패배자를 포로로 삼아 부릴 수 있다’는 오랜 전통이 존재했다. 포르투갈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해 원주민들과 의도적으로 전투를 벌이고, 패배한 원주민을 포로로 삼은 뒤 노예화한 것이다. 이 밖에도 원주민을 몰래 납치해 광산이나 농장에 팔아 버리거나, 원주민에게 고리대금을 제공한 뒤 갚지 못하면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등 비열하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원주민 착취가 이루어졌다. _127쪽
플랜테이션과 금광 개발이 겹치며 노동력 부족이 심화되던 시기, 브라질에는 ‘노예 사냥꾼’이라는 직업이 생겼다. 이들은 원주민 사냥을 위해 팀을 꾸려 조직적으로 움직였는데, 이런 사냥 행위 또는 노예 사냥을 위해 꾸려진 원정대를 ‘반데이라(bandeira)’라고 불렀다. 반데이라는 포르투갈어로 ‘깃발’이라는 뜻인데, 노예 사냥꾼들이 깃발을 들고 다닌 것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중략)
원주민을 포교와 계몽의 대상으로 여겨 그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예수회 선교사들과는 달리, 농장주나 광산업자들은 끊임없이 반데이라를 통해 예수회 선교사들이 개척한 내륙 마을의 원주민들을 납치해 노예로 삼았다. 선교사들은 물론 그들의 만행을 막으려 했고, 결국 반데이라와 선교사는 마주치는 곳마다 충돌할 수밖에 없는 적대적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_128~130쪽
쿠바에도 한때 노예 무역을 통해 백만 명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가 유입되었지만, 그들이 쿠바의 ‘주인’이 되지는 않았다. 가장 최신 자료인 2012년 기준 쿠바의 인종 분포를 살펴보면 백인 64.2퍼센트, 메스티소(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혼혈) 및 물라토(유럽인과 아프리카 흑인 혼혈) 26.6퍼센트, 흑인 9.2퍼센트, 아시아계는 1퍼센트 미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티와 자메이카와는 달리 쿠바는 백인과 혼혈 인종 중심의 사회인 것이다. (중략)
1998년 사업차 쿠바 엑스포에 참가했을 때, 구름같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 사실을 새삼 체감한 적이 있다. 피부색이 짙은 흑인은 적었고, 혼혈이나 백인처럼 보이는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속에서, 한국 부스를 찾아온 두 명의 한인계 소녀들과 만난 일은 내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소녀들은 20세기 초 쿠바 사탕수수밭에서 일하기 위해 멕시코를 통해서 이주해 온 한인 여성과 현지인 남성의 후손이었다. _156~157쪽
럼은 사탕수수즙이 원료인 술로, 카리브해의 대규모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농장에서 일하던 아프리카 노예들이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사탕수수즙으로 몰래 술을 만들어 마셨던 것이다. 곡물이나 과일을 이용해 알코올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인류가 오래도록 공유해 온 지식이었고, 흑인 노예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중략)
세계 곳곳에는 그 지역의 특산 재료와 문화, 지역민의 입맛이 반영된 유명한 술이 있다. 중국은 수수 등의 잡곡을 원료로 한 백주(白酒)가 유명하고, 프랑스는 포도로 만드는 와인과 브랜디가 대표적이며, 역시 포도를 원료로 하는 튀르키예의 전통주 라크(Laki), 용설란으로 만드는 멕시코의 데킬라, 밀이나 보리, 호밀 등을 발효시켜 증류한 러시아의 보드카 등이 있다. 물론 한국에도 소주, 청주, 막걸리가 있다. 쿠바 사탕수수 농장에서 럼이 탄생했듯, 세계 각지의 술들 또한 삶의 깊은 고단함과 눈물 속에서 빚어졌는지도 모른다. _166~167쪽
북아메리카 동부 연안 항구에는 미국이 독립하기 이전인 1720년대부터 이미 무역선들이 줄지어 드나들었다. 당시 카리브해의 영국, 프랑스, 스페인 식민지에서는 사탕수수를 재배해 당밀과 설탕을 생산하고 이를 유럽에 판매하며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었다. 특히 본국의 최대 수입원이었던 바베이도스와 자메이카(영국령), 생도맹그(프랑스령)는 거리상 가까운 북아메리카 동부 연안에도 설탕을 판매했고 북아메리카로부터 필요한 물품을 공급받기도 했는데, 뉴욕항에 드나드는 선박 중 절반이 카리브해에서 온 무역선이었다. 이 무렵 뉴욕에 세워진 가장 큰 건물이 지금도 관광 명소로 유명한 트리니티 교회와 이에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했던 허드슨강 코너에 세워진 설탕 창고였다. _187~188쪽
보레가 설탕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앞서 설명한 대로 쿠바 기술자들의 도움과 절묘한 사업 시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생도맹그 출신의 자유 흑인 앙투안 모랭(Antoine Morin)이라는 인물 또한 보레에게 무척 큰 도움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노예 출신인지 태어날 때부터 자유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파리의 유명 대학을 졸업한 뒤 뉴올리언스에서 명성을 얻은 화학자이자 식물학자였다. 모랭은 보레가 인디고 농장에서 사탕수수 농장으로 전환할 당시 설탕 결정화 기술 개발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고, 이 기술 혁신 덕분에 보레는 고운 흰 설탕을 성공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레의 손자이자 루이지애나의 역사학자인 샤를 가에르(Charles Gayarré)는 보레 가문의 설탕 산업 연혁을 다룬 책을 쓰며 모랭의 업적을 일부러 기록하지 않았다. _200~201쪽
장인환과 전명운의 스티븐스 저격 사건은 미주 한인들의 독립운동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 산재했던 10여 개의 한인 독립운동 단체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대한인국민회가 창립되었고, 미주 독립운동의 핵심 조직이 되었다.
장인환은 1876년생으로 당시 32세, 전명운은 1884년생으로 겨우 24세였다. 두 사람 모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온 이민 노동자 출신으로 장인환은 1904년, 전명운은 1903년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두 젊은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철도 노동자와 어부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 가던 중, 조국의 독립을 향한뜨거운 가슴을 안고 거사를 감행한 것이다. _236쪽
제국주의를 부추긴 설탕의 달콤한 유혹
15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필두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열강들이 앞다투어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바스쿠 다가마 같은 역사적 모험가들도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 이들의 목숨을 건 항해는 후대에 종종 낭만적인 모험담으로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단순한 모험심이나 영웅심만으로 감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당시 원거리 항해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던 만큼, 열강이 주도하고 후원한 대항해는 신대륙 정복과 자원 수탈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띠고 있었다. 《설탕 전쟁》은 그 중심에 바로 설탕을 향한 욕망이 있었음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사탕수수는 고온다습한 열대 기후에서만 재배가 가능한 작물이었기에 유럽에서는 생산이 불가능했다. 이에 여러 유럽 국가가 사탕수수 재배에 적합한 기후를 갖춘 아프리카 연안, 카리브해 섬들, 아메리카 대륙 등지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대규모 농장을 조성했다. 대표적으로 포르투갈은 마데이라제도와 브라질을, 스페인은 카나리아제도를, 프랑스는 히스파니올라섬을, 영국은 자메이카와 바베이도스를 설탕 산업의 거점으로 삼았다. 식민지에서의 플랜테이션을 바탕으로 설탕 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해 갔으며,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럽 내 설탕 수요의 90퍼센트가 카리브해 섬들로부터 충당될 정도였다.(23쪽) 신대륙은 점차 설탕을 향한 유럽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설탕 기지’로 변모해 갔다.
《설탕 전쟁》은 히스파니올라, 자메이카, 브라질 등의 식민화 과정을 설탕 산업의 역사와 유기적으로 연결 지으며 유럽 열강에 의한 식민 착취의 상흔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유럽인은 원주민을 위협해 농장에서 거의 노예처럼 부렸음은 물론, 내륙 탐사 등을 이유로 원주민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무참히 파괴했다. 이에 더해 원주민들은 유럽으로부터 들어온 병원균에 면역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 비극의 흔적은 현대 브라질의 인구 구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브라질은 백인과 혼혈 인구가 각각 전체 인구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원주민은 1퍼센트 미만에 불과하다. 수백 년 전만 해도 포르투갈 본토 인구에 필적하는 수의 원주민이 브라질에 살고 있었지만, 이들의 흔적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설탕을 향한 열강의 탐욕이 한 국가의 인구 구성마저 바꾸어 놓은 셈이다.
한편, 브라질은 열강들이 설탕 생산지를 차지하기 위해 벌인 각축의 무대이기도 했다. 대항해시대 후발주자였던 네덜란드는 향신료 무역으로 해상 패권을 확보한 뒤, 브라질 북부 페르남부쿠 지역에서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한때 통치를 시도했다. 이 시기 총독으로 부임한 요한 마우리츠는 브라질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며 수도 헤시피를 집중적으로 개발했는데, 당시 건설된 인프라는 네덜란드 본국조차 놀랄 정도로 선진적이었다. 지금도 헤시피에는 요한 마우리츠가 조성한 도시 계획의 흔적이 남아 있다.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남미 유일의 국가이면서도, 곳곳에 네덜란드 식민 통치 흔적 또한 남아 있는 브라질은 설탕을 둘러싼 제국의 탐욕과 식민 착취의 역사를 보여 주는 생생한 사례다.
사탕수수밭에서 자행된 인류 최악의 ‘흑역사’
식민지에서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과 설탕 산업의 발전은 아프리카계 흑인의 대규모 유입을 초래했다. 사탕수수 재배와 수확에서부터, 사탕수수즙을 끓이고 정제해 설탕으로 만드는 모든 과정에는 막대한 일손이 필요하다. 초창기에는 원주민을 동원해 이를 충당하려 했으나 곧 한계에 부딪히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대륙으로 눈을 돌렸다. 이후 설탕 산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노예 무역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설탕 산업에 수반된 흑인 노예 착취는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가장 끔찍했던 폭력 중 하나다. 1519년에서 1867년까지 노예선에 실려 대서양을 건넌 아프리카 흑인은 약 125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질병, 기아, 학대 등으로 항해 중 목숨을 잃어 최종적으로 약 1070만 명이 카리브해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인류 역사상 이보다 더 큰 규모의 강제 이주는 없었다.(55쪽) 이들 노예는 백인 농장주나 감독관에게 극심한 학대를 당했는데, 자메이카의 한 농장에서 노예 감독관으로 일했던 토머스 티슬우드가 남긴 기록을 보면 그 잔혹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할 수 있다. 한 노예가 동료를 초대해 식사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귀가 잘리고 수십 번의 채찍질을 당했다는 기록이나, 몰래 사탕수수를 먹다 들킨 노예의 입에 다른 노예가 배변을 보게 했다는 기록은 그 잔혹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게 한다.(67쪽) 《설탕 전쟁》은 티슬우드의 기록 등 당시 서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흑인 노예에 대한 잔혹한 학대의 단면을 생생히 보여줌으로써, 인류가 결코 되풀이해서는 안 될 역사를 깊이 성찰하게 한다.
한편, 농장에서의 끊임없는 착취와 폭력은 흑인 노예들의 분노를 자극했고, 카리브해 섬들을 중심으로 각지에서 저항의 불씨가 타올랐다. 그중에서도 아이티 독립은 노예 해방 역사 가운데 무척 독특하고도 중요한 한 장면이다. 아이티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생도맹그’라 불렸던 지역으로 한때 세계 최대의 설탕 생산지였다. 이곳 노예들은 혹독한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 ‘마룬’이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식민 당국에 맞서 약 13년간 독립 전쟁을 이어 왔다. 그런데, 이 시기 흑인 민중을 이끈 지도자였던 투생 루베르튀르는 프랑스군과 치열하게 싸우던 도중 스페인으로부터 연합을 제안받는다. 스페인은 투생의 저항군을 이용해 섬에서 프랑스를 몰아내고 당시 설탕 산업의 핵심 거점이었던 생도맹그를 차지할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전세가 불리해지리라 판단한 프랑스군 혁명 판무관 송토나는 돌연 노예 해방을 선언해 버린다. 상황은 급변했고, 갑작스레 해방을 맞은 흑인 저항군은 중대한 기로 앞에 서게 되었다. 프랑스의 해방 선언을 믿을 것인지, 약속한 대로 스페인과의 연합을 이어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했던 것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투생과 흑인 저항군은 자신들을 오랫동안 착취해 온 프랑스군의 손을 잡았다. 그 결과 스페인뿐 아니라 전쟁에 뒤늦게 가세한 영국군까지 히스파니올라섬에서 몰아낼 수 있었고, 세계 최초의 흑인 노예 독립국인 아이티 공화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처럼 아이티 독립은 흑인 노예 착취와 그에 맞선 저항, 설탕 생산지를 둘러싼 열강의 탐욕, 송토나의 전략적 노예 해방, 그리고 자신들을 억압해 온 프랑스 백인들과의 연합을 택한 흑인 저항군의 선택 등 여러 역사적 모순이 교차한 결과였다. 《설탕 전쟁》은 이런 아이티의 사례를 넘어, 다른 설탕 생산지들에서도 흑인 노예의 운명이 유럽 열강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떻게 좌우되었는지를 다양한 이야기로 풀어내며 설탕을 향한 욕망이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낳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설탕의 세계사’ 위에 새겨진 우리의 발자취
설탕 산업은 대규모 인구 이동과 디아스포라를 촉진한 주요 동인 가운데 하나였다. 생도맹그와 함께 주요 설탕 생산지였던 자메이카의 흑인 노예 이주 과정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자메이카에서는 영국 식민 당국에 저항하는 두 차례의 마룬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600여 명의 흑인이 영국에 의해 북아메리카의 노바스코샤로 강제 이주되었다. 평생 열대 기후에서 살아온 흑인들에게 노바스코샤의 겨울은 너무나 혹독했고, 결국 이들 중 많은 수가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중 겨우 살아남은 이들은 자신들을 ‘선조의 땅’인 아프리카로 보내달라고 청원해,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지역으로 재차 이주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때 시에라리온으로 옮겨 간 이들 중 일부가 계약 노동자 신분으로 또다시 자메이카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손은 자메이카에 정착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영국에 의해 아프리카에서 카리브해, 북아메리카를 거쳐 다시 카리브해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자메이카 흑인 노예의 고단한 여정은 설탕 산업이 초래한 디아스포라의 비극적 일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20세기 초중반에 이르러 미국의 영향 아래 설탕 산업의 또 다른 주요 무대로 부상한 하와이는 한인 최초의 공식 이민이 이루어진 곳으로, 설탕으로 인한 디아스포라의 현장일 뿐 아니라 우리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하와이에도 대규모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조성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미국 출신 백인이었던 농장주들은 노예제 폐지 이후 더 이상 흑인 노예를 고용할 수 없게 되자 값싼 노동력을 찾아 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이후 일본과 중국에 이어 조선에서도 노동 이민을 받기 시작해 1902년 고종의 허가 아래 한인의 하와이 이민이 시작되었다.
이민자들 또한 흑인 노예가 그러했던 것처럼 농장의 비인간적 노동 조건과 차별적 대우를 감내해야 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이민자 일부가 조국으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악착같이 살아남아 하와이 사회에 점차 뿌리내렸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사진결혼’이라는 제도는 무척 흥미롭다. 사진결혼이란, 1910년부터 1924년까지 하와이 한인 사이에서 통용되었던 혼인 방식이다. 하와이에 있는 조선인 남성이 중매인을 통해 자신의 사진을 조선의 여성에게 보내면, 사진 속 남성이 마음에 든 여성이 자신의 사진을 하와이로 보내며 결혼이 성사되었다. 사진결혼 제도로 조선 여성들이 ‘사진신부’로서 합법적으로 하와이에 건너올 수 있게 되면서 한인은 점차 가족 단위로 하와이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이들을 기점으로 훗날 멕시코나 쿠바의 농장으로도 이민이 이루어졌다.
하와이에 정착한 한인들의 삶 역시 나라를 빼앗긴 조국의 상황만큼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하와이 한인들은 공동체를 꾸리고 서로를 보듬었으며, 피땀으로 번 돈의 일부를 기꺼이 독립운동 자금에 보탰다. 머나먼 땅에서 식민지 조선인 못지않은 고초를 겪었던 미주 한인 이민자들은, 열정적으로 구국의 뜻을 이어 간 이방의 독립운동가들이었다. ‘스티븐스 저격 사건’으로 잘 알려진 장인환과 전명운 또한 하와이에서 사탕수수 노동자로 일하다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조선 독립을 위해 활동한 청년들이었다. 두 사람은 1908년 친일 외교관 스티븐스를 저격함으로써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이 사건은 미주 한인 사회는 물론 국내외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 세력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이후 항일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하와이로의 첫 한인 이민과 그로부터 시작된 미주 한인의 역사는 설탕의 세계사와 한민족의 역사가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며 만나는 중요한 교차점이다. 《설탕 전쟁》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궈낸 삶이야말로, 제국주의와 식민 착취가 휩쓴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힘으로 또렷이 남긴 발자취였음을 묵직하게 일깨운다.
인물정보
사업가 겸 여행가로서 30여 년간 약 80개국을 넘나들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다. 그러던 중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이 서구 강대국의 지배에 의한 식민 착취, 노예 무역, 강제 이주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그 흔적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지적 호기심을 느껴, 현지 주민들과 활발히 교류하고 해외 서적이나 자료를 찾으며 독자 연구를 이어 왔다. 또한 수원문인협회 정회원으로 현재 시인으로도 활동 중이다. 해외에서의 오랜 경험이 길러 준 탐구심, 그리고 문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세계사를 다채롭게 풀어 내는 글을 써 왔다.
그 첫 결실인 《향신료 전쟁》에서는 향신료를 둘러싼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탐욕과 각축전이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소개했다. 두 번째 책인 《설탕 전쟁》에서는 오늘날 세계가 형성되는 데 설탕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소개한다. 또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조선인 노동자를 통해 우리 이민의 역사를 돌아보고, 그 의미를 독자와 함께 나누고 싶어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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