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고 싶은 동네
2025년 11월 11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10월 1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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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94087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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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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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답게 나이 들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타인과 관계 맺고 서로를 잘 돌보며 더욱 건강하고 풍요로운 노년을 보낼 수 있다고 말한다. 혼자 살든 누군가와 함께 살든, 아프든 아프지 않든, 돈이 많든 적든 관계없이 말이다. 나이 듦과 취약함, 혼자 됨을 긍정하며 살아가기 위한 대안이 담긴 책 『나이 들고 싶은 동네』가 출간되었다. 안심하고 나이 들기 위한 안전망을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이라는 현실로 구축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살림은 비혼 여성주의자인 두 저자의 개인적인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부모를 비롯한 원가족으로부터 독립은 했지만 당장 몸이 아플 때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텅 빈 돌봄의 자리를 목도하고” 만 것이다. 혈연가족 중심으로 돌봄이 구성되어 있다는 현실과 맞닥뜨린 이들은 새로운 돌봄의 관계와 문법을 모색한다. 그렇게 여성주의 활동가 유여원과 여성주의 의료를 꿈꿔온 의사 추혜인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여성주의 의료협동조합’ 살림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한다.
2012년 창립한 살림은 어느새 조합원 수 5000명을 넘기며 서울시 은평구에 자리 잡았다. 조합원의 출자금으로 세운 의료기관(살림의원, 살림치과, 살림한의원)을 운영하고, 정직하고 믿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를 지역 주민에게 제공한다. 조합원들은 함께 여성주의를 공부하기도 하고, 돌봄장과 유언장을 쓰며 내가 바라는 돌봄과 죽음의 상을 그려본다. 등산, 풋볼, 달리기, 뜨개질 등 다양한 소모임을 꾸린다.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손을 뻗어줄 사람들이 있고, (……) 언제든 무엇이든 작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권김현영) 살림에는 있다.
들어가며
1장 이대로 나이 들어도 괜찮을까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우리의 노후 준비
연결되고 싶어서
이상한 환자들: 멀리 살아도 탈퇴하지 않는 조합원
2장 돌보는 힘을 키우는 마을
일주일 동안의 미니 호스피스 병동
서로가 있어 나다운, 돌봄장 같이 쓰기
살림의 함께돌봄 어벤저스
질병만이 아니라 사람을
삶을 바꾸는 공부, 여성주의학교
기계가 아니라 관계로 건강해집니다
근육 부자가 찐 부자야!
산소 같은 모임, 오투
맑은 눈의 광인들, 살림FC
불광천을 달리는 사람들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임종을 준비하기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제대로 쓰이려면
돌봄에 대한 공적·사적·인간적 대화, 돌봄살롱
살림이 꿈꾸는 돌봄의 미래
3장 병이 아닌 사람을 돌보는 의원
한글을 배우니 혈당 수치가 좋아졌다
차별과 혐오가 없어야 건강하다, 여성주의 의료
질적으로 다른 사이
약은 먹고 다니냐
숫자가 보여주지 못하는 것들
왕진 가방을 들고 찾아가는 진료실
주민 1024명의 주치의가 알려준 것
주민과 함께하는 약제 심의
골다공증약 하나를 도입하기까지
HIV 감염인 치과 진료 세팅기
성소수자 친화적 클리닉
모두를 위한 화장실 만들기
4장 돌봄과 의료 사이에서
건강한 나, 건강한 이웃, 건강한 마을
중간집, 케어B&B라는 실험
토요일엔 서로돌봄카페
신기한 처방
진료실에서 이뤄지는 제안들
팀주치의로 함께하는 돌봄
돌보는 사람을 돌보기
의사의 수가 늘어난다면
5장 이제 우리가 만들어간다
PPT의 시작은 넘어지는 사람
우리는 3을 좋아해
애벌레가 나비가 되면
불법 의료생협들과의 악연
이름을 정하던 날
이름을 정한 후의 걱정들
명물 간호사의 입사 면접
조직도의 변천
6장 협동으로 지속 가능해지는 우리
협동조합을 하는 사람들
이름만 파티?
선거 투표권을 갖기까지
협동조합이 돈을 모으는 방법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의 조화
노동의 협동으로 해석하는 속담
자기방어 자경단
직원들의 자기방어훈련
아가씨라 불리기 싫다
명랑하게 안녕
직원들도 명랑하게 안녕
접으려고 해도 힘이 필요해
나가며
“왜 이렇게 살기로 했나요?” 혹은 “어떤 이유에서 살림을 같이 만들었나요?”라는 질문에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답했다. 이건 우리의 ‘노후 준비’예요. (29쪽)
당시 우리를 비롯한 젊은 비혼 여성들의 목표는 ‘독립’이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또 결혼을 해야만 부모를 비롯한 원가족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커뮤니티를 꾸릴 수 있던 때다. 결혼과 관계없이 독립하는 것이 우선의 목표일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인 가족 테두리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친 것까진 좋았는데, 그렇게 빠져나오자마자 텅 빈 돌봄의 자리를 목도하고 말았다.
(……) 관습에서 벗어나자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새롭게 세워나가야 하는 법이다. 당연하던 돌봄의 관계도, 돌봄의 문법도 새로 만들어가야 했다. (31쪽)
마주 앉은 의사가 ‘나의 주치의’라고 생각하고 하는 이야기와 당장 오늘 아픈 것만 지나가고 나면 다시 볼 일 없는 의사라고 생각한 상태로 꺼내는 이야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처방한 약이 잘 듣지 않을 때, 혹은 약에 부작용이 생겼을 때, 다시 볼 일 없는 의사는 그런 중요한 정보를 들을 기회가 없다. 어느 환자가 굳이 그 얘기를 하러 다시 진료실을 찾겠는가. 그냥 다른 의료기관에 가고 말지. 오히려 ‘주치의’라서 조금 더 불편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이런 피드백을 주는 것은 환자의 역할인데, 이 듣기 불편한 피드백이야말로 의사들을 성장시킨다. 협동조합 의료기관이라는 특성이 환자의 조합원으로서의 자기 주체성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것이다. (42쪽)
돌보는 사람을 돌볼 때, 돌봄은 계속될 수 있다. 그러려면 돌보는 사람이 다수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돌보는 사람, 그리고 그 돌보는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 다시 그들을 지원하는 사람 등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때로는 깊숙하게 때로는 얕게 돌봄에 연루되어야 한다. 늘 누군가를 돌보거나 돌보고 있는 이들을 돌보며, 숨 쉬듯이 돌봄이 일상에 당연히 스며들어 있는 사회가 되기를, 그리고 나도 돌봄의 자장 안에서 언제나 돌봄 받으며 살아가고 아프고 죽을 수 있기를 바란다. (54~55쪽)
다짐의 벽에는 이런 말이 붙어 있다.
“기계가 아니라 관계로 건강해집니다.”
다짐 출신의 운동 강사가 점점 많아지는 걸 기뻐하고 응원하는 이들. 누군가 운동에 안 나오면 이유가 궁금하고 걱정되어 연락하는 이들. 주치의로부터 운동을 권유받아 이곳에 나왔더니 얼떨결에 주말 대청소까지 참여하고, 거기서 갑자기 결성된 일본어 공부 모임까지 들어가게 된 이들. 폼롤러 모임에서 만났는데 등산도 같이 다니다가 절친이 된 이들. 기계가 아무리 좋은들, 기계까지 오게 하는 건 결국 관계다. (86쪽)
가장 느린 사람의 속도에 맞춰 산행한다는 오투의 지향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각자 자기 속도대로 안전히 산에 오르고 다른 이들을 기꺼이 기다려준다. 그래서 오랜만에 산을 오르는 사람도, 초보자도 부담이 없다. 세 시간 코스를 다섯 시간 동안 가지만, 그 시간만큼은 내내 너무나 재미있고 즐겁다. 그게 바로 오투에서 배운 협동의 맛이다. 그럼에도 모임원 중에 오랫동안 활동해온 준프로 산악인들이 꽤 있다는 것은 놀랍다. 가파른 암벽을 타고 설악산 공룡능선을 달려서 주파하는 이들이, 오투의 느린 산행도 너무 소중하다며 모임 운영에 참여한다. 이들이 없으면 오투의 안전한 산행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95~96쪽)
“끝까지 나답게 살다가 아는 얼굴들 사이에서 죽고 싶다.”
지금도 조합 곳곳에서 회자되고 있는 이 말은 이제는 살림다운 돌봄의 대표 슬로건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묻기 시작했다. ‘나다움은 뭐지? 나답게 살기 위해서 어떤 돌봄이 필요할까?’
대답은 두 가지로 귀결됐다. 하나는 ‘죽음과 돌봄에 있어서의 자기결정권’이고, 다른 하나는 ‘선택지의 다양성’이었다. (139쪽)
돌봄의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서는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절실하다. 한국 사회의 돌봄 위기는 필요에 비해 돌봄을 제공할 사람이 부족한 데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전일제로 돌봄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만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돌봄을 엮어낼 수 있다면? 그래서 살림은 ‘누구라도, 뭐라도, 하나라도’ 할 수 있는 돌봄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돌봄 매트릭스’라고 부른다. (141~142쪽)
여성주의 의료는 여성혐오만 넘어선다고 되는 게 아니다. ‘여성에 의한 의료’나 ‘여성을 위한 의료’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핵심은 의료가 누구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고, 그 구조가 누구에게 불리하게 작동해왔는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155쪽)
환자의 생활 공간을 직접 찾아가다 보면 의료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숫자만으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상상하기 힘들다. 의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건 건강을 위한 아주 일부일 뿐. 방문의료 역시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라서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게 일부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172쪽)
그래도 우리는 계속한다. 제도의 빈틈을 메우고, 없는 제도는 스스로 만들어간다. 마치 조각천을 하나하나 꿰매는 퀼트처럼 커뮤니티 케어의 지도를 짜나간다.
방문진료는 단지 한 명의 의사가 환자 집을 찾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돌봄의 재구성이고, 관계의 회복이며, 지역사회가 함께 사는 방법에 대한 모색이다. 누군가를 찾아가는 발걸음에서, 우리가 바라는 커뮤니티의 얼굴이 조금씩 그려지고 있다. (177쪽)
내가 대우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해야 하는 것처럼, 내가 살고 싶은 마을은 타인을 나처럼 여기는 데에서부터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내가 심폐소생술을 배우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다. 치매에 대해 배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물론 나의 치매를 예방하기 위함도 있지만, 치매가 있는 다른 이들을 더 잘 보듬어주기 위해서다. 치매 노인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마을을 위해서고, 결국은 훗날의 나를 위해서다. (227쪽)
우리는 중간집을 시도하기로 했다. ‘케어B&B’! 유명한 숙박 공유 플랫폼 이름을 패러디했다. 침대와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숙박 시설(B&B, Bed & Breakfast)인데, 케어(돌봄)가 제공되는 B&B라는 의미다. 한번 입주하면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요양원 같은 시설이 아니라 호텔이나 펜션처럼 일시적으로 머무는 곳임을 이름으로 명시했다. 아침 식사뿐만 아니라 원한다면 하루 세끼를 모두 제공받을 수도 있고, 스스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병원에 입원할 필요는 없지만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들이 짧게는 한 달에서 반년까지 임시로 머물며, 일상으로의 복귀를 목표로 돌봄 받고 재활하는 중간 정거장이다. (238쪽)
나도 치매가 있다면 카페나 식당에 가기 힘들겠지? 내 친구, 내 가족에게 치매가 있어도 마찬가지일 테다. 그렇다면 우리가 뭔가 해볼 수 있는 게 없을까. 인지기능이 저하된 사람도, 그 사람을 돌보는 이도, 누구라도 마음 편하게 올 수 있는 카페를 열어보자. 의기투합 끝에 부릉부릉 시동을 걸던 조합원들은 동네의 채식식당 밥풀꽃을 토요일마다 대관해 서로돌봄카페를 열기 시작했다. (244쪽)
갱년기 여성에게 댄스를 처방하고,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 연극을 처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활동을 처방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살림에서는 그냥 활동만을 처방하는 게 아니다. 좋은 사람 그 자체를 약으로 쓰는 거다. 살림의원의 진료실은 이런 공간이다. 약도 처방하지만 관계도 엮어주는 곳. 좋은 사람들을 소개해주는 곳. (254쪽)
울고 있는 환자와 가족을 위로하고, 필요한 자원을 연결해주는 건 꼭 의료인만의 일은 아니다. 돌보는 사람과 돌봄 받는 사람이 우리의 팀주치의 제도 안에서는 칼같이 나누어지지 않는다. 언제는 돌봄을 받았던 사람이 다음 순간에는 돌보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나를 돌봐준 그 사람에게 은혜 갚듯이 그대로 되돌려줄 수만도 없다. 여러 방향으로 흐르는 호혜적이고 평등한 돌봄이 있어야 돌봄의 생태계가 가능하고, 그 안에서 마을 구성원들은 누구나 주치의팀의 멤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주치의다. (266쪽)
다친 누군가에게 꼬치꼬치 질문하는 병원이 있대요. 한 사람을 치료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이 다친 원인을 바로잡아 마을을 건강하게 만들려는 병원이에요. 다른 사람은 똑같은 장소에서 같은 이유로 다치지 않도록 예방하는 병원, 그게 바로 의료협동조합이에요. 같이 만듭시다! (282~283쪽)
회의 초반에는 “이걸 우리가 결정해도 될까?” 하며 어리둥절해하던 조합원들이, 의료기관의 이용자로서 ‘내가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라는 기준점을 제시하기도 하고, 협동조합의 소유자로서 의원의 지속성을 고민하는 ‘사장’의 입장에 서기도 하면서 합리적인 가격을 함께 도출했다. 이처럼 사장과 고객, 직원과 조합원이라는 정체성이 꼭 대립항이 아니라는 것이 협동조합의 매력이다. 한 사람 안에 여러 정체성이 혼재되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걸 바탕으로 공동의 이해관계를 따져가며 함께 의사 결정을 했다. (297쪽)
빚. 보통 의료기관은 은행 빚으로 개원 비용을 마련하니, 진료를 시작하면서부터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만약 의료인과 주민의 협동으로 설립되고 운영되는 협동조합 의료기관이 적어도 은행 빚은 갚지 않아도 되는 근무 환경을 의료인에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어떨까? 의료인은 은행에 낼 대출 이자를 구할 구석을 궁리하는 대신 좀 더 양심적으로 진료하고 좀 더 충실하게 상담해주지 않을까? 의료인에게 막연히 좋은 의료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의료인이 적정 진료, 질 좋은 진료를 실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그런 환경을 주민이 같이 책임지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협동을 통해 의료기관을 함께 운영한다는 것의 의미이다. (341~342쪽)
건강한 개인을 넘어 건강한 사회를 향해
진료실에만 머물지 않는 살림의 의료
환자로서 의료기관에 방문해본 누구나 경험한 적 있을 것이다. 북적이는 대기실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가 겨우 진료실에 들어가도 “나의 통증이나 불편함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답답함”을 느낀다. 관료화된 의료 시스템 안에서 환자로서 주체가 되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하지만 살림의 의료기관에 내원한 환자들은 이곳에선 다른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나의 증상과 상태를 의사에게 더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의료진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된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살림은 의사와 환자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를 더욱 평등하게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평등할수록 건강하다는 건강관을 바탕으로 의료의 수혜자와 공급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는다. 비의료인인 조합원들이 약의 도입 여부를 판단한다. 조합원들이 살림으로 실습을 나온 예비 의료인들에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교육을 하기도 한다. 의료인과 비의료인 사이의 지식 위계를 줄여나가며 모두에게 필요한 민주적인 의료를 함께 모색한다.
그렇기에 살림의 의료는 진료실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더 낮은 곳으로, 더 취약한 곳으로 향한다. 환자가 스스로 거동할 수 없다면 의료진이 직접 환자의 거처를 방문해 진료한다. 생활환경이 열악하지는 않은지 파악한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당뇨 환자는 한글 교실에 등록하도록 돕는다. 의료진이 환자에게 맞춤해 짠 식단표를 스스로 읽을 수 있도록 하며, 한글 교실의 다른 학생들과 사회적으로 교유하며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챙기게끔 한다. 누구든 의료기관에 편히 올 수 있도록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한다. 단순히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환경,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속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의료다.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건강해지기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이뤄낸 돌봄의 생태계
돌봄은 의료와 별개이거나 의료의 하위 개념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살림에서 의료와 돌봄은 상보적이다. 상급병원에서 수술을 마치고 퇴원했지만 스스로 생활하기엔 어려운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병동은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로 가득하고,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 돌봐줄 사람이 없다. 살림은 이런 이들이 돌봄 받으며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병원과 집 중간에 위치한 시설 ‘케어B&B’를 시범 운영하기도 했다. 의료와 돌봄을 연결하는 정거장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돌봄은 신체와 질병의 문제만은 아니다. 돌봄은 인간답게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행위다. 그렇기에 살림의 조합원들은 자신을 돌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함께 건강해질 수 있는 길, 안심할 수 있는 공동체를 가꾸기 위한 방법을 도모한다. 노쇠해져 집에만 머무는 어르신의 집에 주기적으로 찾아가 함께 간단한 운동을 한다. 나뿐만 아니라 이웃의 건강까지도 책임지는 ‘건강이웃’이 된다. 인지증 당사자와 그 보호자가 차 한잔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서로돌봄카페’를 자원활동으로 운영한다. 치매가 있는 이웃을 지역사회 차원에서 잘 보살피자는 의도로 ‘치매안심마을 건강이웃’ 강좌를 연다. 돌봄이 나 혼자의 문제가 아님을, 공동체 차원에서 실천해야 하는 일임을 살림의 조합원들은 절실히 안다.
누군가는 이건 살림이라는 조직 안에서만 가능한 이상적인 사례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직에 속해 있지 않거나 속할 수 없는 이들에게도 『나이 들고 싶은 동네』를 권하고 싶다. 생존이 급급했던 비혼 여성주의자들은 “끝까지 나답게 살다가 아는 얼굴들 사이에서 죽고 싶다.”라는 개인적인 바람으로부터 출발해 돌봄이 흐르는 커뮤니티를 실현해냈다. “의료와 돌봄으로 서로를 겹겹이 에워싸고 보호하는”(김희경) 이러한 구조는, 누구보다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일궈냈다. 협동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커뮤니티의 미래가 이미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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