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야 : 사랑과 각성의 문턱에서
2025년 11월 0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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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정보 ePUB (1.27MB) | 약 16.5만 자
- ISBN 9791139828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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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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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슈빈, 철학적 성향의 베르셰네프, 이상에 불타는 불가리아인 인사로프, 그리고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옐레나 니콜라예브나. 이 네 인물의 얽힌 관계는 단순한 연애담을 넘어, 낡은 러시아 사회와 새로이 다가오는 변화의 '전야'를 비추는 거울로 작용한다. 투르게네프 특유의 서정적 묘사와 섬세한 심리 탐구는, 개인의 운명이 어떻게 시대의 격랑과 맞물려 있는지를 잔잔하면서도 날카롭게 보여준다.
'전야'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혁명 전야의 긴장과 젊은 세대의 선택을 그려낸 작품으로,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오늘날까지도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목차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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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분량: 약 21.3 만자 (종이책 기준 약 358 쪽)
1853년, 숨 막히는 열기가 대지를 감싸던 여름의 한복판, 쿤초보 인근 모스크바 강변의 거대한 보리수나무가 짙은 그늘을 드리운 풀밭 위에 두 명의 젊은이가 나른하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스물세 살 남짓으로, 큰 키에 다소 가무잡잡한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살짝 휘어진 매부리코와 수려한 이마, 그리고 두툼한 입술가에 머문 신중한 미소는 그의 용모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그는 하늘을 향해 드러누운 채, 가느다랗게 뜬 잿빛 눈으로 아득한 먼 곳을 응시하며 깊은 사색의 늪에 잠겨 있었다. 다른 한 명은 탐스러운 금발 곱슬머리를 두 손으로 괸 채 풀밭에 엎드려 있었는데, 그의 시선 또한 친구와 마찬가지로 현실 너머의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그는 친구보다 세 살이나 연상이었지만, 외모만으로는 오히려 훨씬 어려 보였다. 이제 막 거뭇하게 돋아나기 시작한 콧수염과 턱을 덮은 보송보송한 솜털, 생기로 반짝이는 표정을 담은 동그란 얼굴, 부드러운 갈색 눈동자, 선명하고 아름다운 입술과 새하얀 손에서는 소년다운 순수한 매력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고상함이 흘러넘쳤다. 그의 존재 전체가 완벽한 건강이 선사하는 행복감과 유쾌함으로 충만했으며, 젊음 특유의 근심 없는 태평함과 자신만만함에서 비롯된 약간의 오만함,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는 이따금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엷은 미소를 띠기도 하며, 다시 팔로 머리를 괴는 등, 타인의 시선을 기꺼이 즐기는 소년들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헐렁한 블라우스 풍의 흰 저고리 아래로 드러난 가느다란 목에는 하늘색 스카프가 부드럽게 감겨 있었고, 그의 곁에는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진 찌그러진 밀짚모자가 풀밭 위를 뒹굴고 있었다.
그에 반해, 그의 동반자는 실제 나이보다 더 많은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듯한 인상을 주었다. 각지고 투박한 윤곽의 얼굴을 스치듯 보기만 해도, 그가 지금 이 순간의 안락함을 온전히 누리고 있거나 마음이 평온한 상태라고 짐작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그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위는 넓고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커다란 두상이 긴 목 위에 위태롭게 얹혀 있는 모습은 부자연스러웠다. 그러한 어색함은 그의 팔의 자세, 몸에 꼭 끼는 짧은 검정 프록코트로 감싼 상체, 그리고 마치 잠자리의 뒷다리처럼 기이하게 무릎을 세운 긴 다리의 모습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훌륭한 교양을 갖춘 인물이라는 점은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실함'이라는 기운이 그의 둔탁해 보이는 몸 전체에서 배어 나왔기 때문이다. 잘생겼다고는 할 수 없으나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매력이 있는 그의 얼굴에는 깊이 사색하는 습관과 타고난 선량함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안드레이 페트로비치 베르셰네프였고, 그의 친구인 금발의 청년은 파벨 야코블레비치 슈빈이었다.
"어찌하여 자네는 나처럼 편히 엎드리지 않는가?"
슈빈이 먼저 침묵을 깼다.
"이 자세가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하다네. 특히 두 다리를 들어 올려 발뒤꿈치를 서로 부딪치는 이 동작, 이렇게 말일세. 코앞에 펼쳐진 것이 온통 풀밭이니, 저 멀리 풍경을 감상하는 데 싫증이 나면 풀잎 사이를 기어가는 통통한 장수풍뎅이나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개미들을 관찰할 수도 있지. 정말 이편이 훨씬 낫다니까. 지금 자네의 그 자세는 너무 고전적이야. 마치 발레리나가 마분지로 만든 바위에 팔꿈치를 기댄 채 고뇌하는 포즈 같지 않은가. 여보게, 자네는 지금 충분한 휴식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농담이 아닐세. 쉬시게, 존경하는 나리. 긴장을 풀고, 팔다리를 시원하게 쭉 뻗어 보란 말이야!"
슈빈은 이 말들을 반쯤은 나른하고 반쯤은 익살스러운 콧소리로 읊조렸다(마치 장난기 많은 아이들이 과자를 가져온 친구에게 재롱을 부리듯). 그리고는 친구의 대답을 기다릴 새도 없이 말을 이었다.
"개미나 딱정벌레, 그 외 수많은 곤충들을 보면서 내가 특히 감탄하는 것은 그들의 경이로운 성실성이야. 그들은 저마다 지극히 심각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분주히 오가고 있지. 마치 그들의 삶에도 무언가 심오한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처럼 말이야!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건만, 그들은 인간을 한 번 쳐다볼 여유조차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하찮은 파리 한 마리가 창조주의 코끝에 앉아 그것을 식량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점이지. 이 얼마나 모욕적인 일인가!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보다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가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긴다면, 그들이라고 해서 우쭐대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자, 위대한 철학가시여, 이 심오한 난제를 내게 풀어주시게나! 어찌하여 침묵으로 일관하는가, 응?"
"뭐라고… 했는가?"
베르셰네프가 마치 깊은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되물었다.
"뭐라고 했느냐니!" 하고 슈빈이 투덜대듯 받아쳤다. "자네의 친구가 눈앞에서 이토록 심오한 사상을 펼쳐 보이는데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단 말인가."
"나는 저 풍경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네. 저 들판들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얼마나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지 좀 보게나!"
베르셰네프는 약간 혀가 짧은 듯한 발음으로 말했다.
"실로 장엄한 색채의 향연이로군."
슈빈이 말했다.
"이 모든 자연은 바로 자네를 위한 것이네!"
베르셰네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세. 이런 풍경에는 나보다 자네가 더 깊이 감동해야 마땅하지. 이것은 자네의 영역이 아닌가. 자네는 예술가니까."
"천만에, 이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야."
슈빈은 반박하며 모자를 뒤통수에 걸쳐 썼다.
"나는 그저 조각쟁이, 살점을 다루는 백정에 불과해. 내가 하는 일이란 고작 살, 살덩이를 주물러 어깨와 다리, 팔 따위를 빚어내는 것뿐이지. 이곳에는 형태도, 완성도 없어. 모든 것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을 뿐… 가서 붙잡아 보시게나!"
"하지만 그 속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는가."
베르셰네프가 말했다.
"그런데 자네, 그 양각 작품은 다 끝마쳤나?"
"무슨 작품 말인가?"
"어린아이와 산양이 있는 그것 말일세."
"젠장! 빌어먹을! 그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게!"
슈빈이 노래하듯 외쳤다.
"실물도 보고, 위대한 거장들의 작품과 고대 미술품도 실컷 감상했지. 그러고 나니 내 보잘것없는 졸작은 산산조각 내 버릴 수밖에 없었어. 자네는 자연을 가리키며 '저기에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했지. 물론, 세상 모든 것에 아름다움은 깃들어 있어. 심지어 자네 코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하니까. 하지만 그 모든 아름다움을 일일이 뒤쫓을 수는 없는 노릇이야. 진정한 대가들은 아름다움을 추격하지 않아. 아름다움이 스스로 그들의 작품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지. 어디서 오는지조차 모르게, 아마도 신의 손길을 거쳐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인지도 몰라. 온 세상이 그들의 소유였으니까. 하지만 우리 같은 범인들은 그들의 광활한 세계를 펼쳐 보일 수가 없어. 팔이 너무 짧거든. 우리는 그저 한 지점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지. 무언가 걸리면 행운이고! 걸리지 않으면…"
슈빈이 혀를 쑥 내밀어 보였다.
베르셰네프가 그의 말을 막아섰다.
"그것은 궤변이야. 만일 자네가 아름다움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어디서 그것을 마주하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아름다움은 자네 자신에게도, 자네의 예술에도 아무런 영감을 주지 못해. 만약 저 장려한 풍경이, 저 감미로운 음악이 자네의 가슴에 아무런 이야기도 속삭여 주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자네가 그것들과 깊이 교감하지 못한다면 말일세…"
"오, 위대한 공감자 선생 나셨군!"
슈빈이 즉석에서 지어낸 말로 비꼬며 웃기 시작했지만, 베르셰네프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니, 여보게." 슈빈이 말을 이었다. "자네는 천재야. 철학가이며, 모스크바 대학을 삼등으로 졸업한 학사지. 자네와 논쟁을 벌이는 것은 두려운 일이야, 특히 나처럼 대학 문턱에서 돌아선 사람에게는 말일세.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네. 내 예술과는 별개로, 나는 오직 여인의 아름다움만을 사랑한다고. 젊고 생기 넘치는 여인의 아름다움 말이야. 하긴, 이런 감정을 품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그는 몸을 뒤집어 누우며 두 손으로 뒤통수에 깍지를 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숨 막히게 뜨거운 정오의 정적이 졸음 가득한 빛의 장막처럼 대지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여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다시 슈빈이 입을 열었다.
"어째서 아무도 그 스타호프 영감을 말리지 않는 거지? 자네, 모스크바에서 그 영감을 만나 본 적 있나?"
"아니."
"그 영감,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온종일 그 아브구스치나 흐리스치아노브나라는 여자 곁에 붙어 앉아 있다니까. 지독한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말이야. 그런데 그저 앉아 있기만 할 뿐, 서로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더군. 정말 바보 같아서… 눈 뜨고는 못 볼 지경이야. 한번 생각해 보게나! 신께서 그에게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내려 주셨는가. 그런데도 아니야, 기어코 아브구스치나 흐리스치아노브나가 있어야만 한단 말이지. 그 여자의 오리처럼 생긴 납작한 얼굴보다 더 꼴불견인 것은 세상에 없을 걸세! 얼마 전에는 그녀의 그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단탄(Dantan) 풍으로 조각해 봤지. 결과물은 그리 나쁘지 않았어. 언제 한번 보여주겠네."
"그런데 옐레나 니콜라예브나의 반신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나?"
베르셰네프가 물었다.
"아니, 여보게, 전혀. 그 얼굴을 마주하면 절망감만 깊어질 뿐일세. 언뜻 보기에는 깨끗하고 엄격한 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특징을 포착하기 쉬울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야. 마치 손안에 든 수은처럼 교묘하게 빠져나가 버린단 말이지. 자네, 그녀가 무언가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본 적 있나? 얼굴 근육에는 티끌만한 변화도 없는데, 오직 눈빛만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얼굴 전체의 표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아. 이런 경우, 조각가에게, 그것도 나처럼 재능 없는 조각가에게 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녀는 정말 놀라운 사람이야… 아니, 무서운 사람이지."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덧붙였다.
"그래. 그녀는 실로 경이로운 처녀야."
베르셰네프가 그의 말을 나직이 되뇌었다.
"그런데 그녀가 니콜라이 아르쵸미예비치 스타호프의 딸이라니! 이런 상황을 보면 혈통이니 가문이니 하는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네. 더욱 기막힌 것은 그녀가 바로 그의 딸이며 그를 닮았고, 심지어 어머니인 안나 바실리예브나도 닮았다는 사실이야. 나는 안나 바실리예브나를 진심으로 존경하네. 그녀는 나의 은인이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분은 그저 마음씨 고운 암탉에 불과해. 대체 옐레나의 저 깊고 강렬한 영혼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누가 그 영혼에 불을 지폈을까? 자, 여기 자네를 위한 또 다른 숙제가 있군, 위대한 철학가!"
그러나 철학가는 조금 전처럼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베르셰네프는 본래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고, 어쩌다 말을 할 때면 불필요한 손짓까지 섞어 가며 어색하게 더듬거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특별한 정적감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것은 피로감과도 같았고, 동시에 감미로운 애수와도 같았다. 그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매달려야 했던 길고 고된 연구를 막 끝내고 시외로 거처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터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 부드럽고 맑은 공기, 마침내 목표를 이루었다는 성취감, 친구와 나누는 두서없는 대화,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소중한 사람의 모습. 이 각각의 다채롭고도 어딘가 닮은 인상들이 그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감정으로 녹아들어 그를 안심시키는 동시에 미묘하게 흥분시켰고, 나른한 무력감에 빠지게 했다. 그는 실로 예민한 신경을 지닌 청년이었다.
보리수나무 아래는 서늘하고 고요했다. 그 그늘의 경계선을 따라 맴돌던 파리와 벌들의 날갯짓 소리마저 한결 부드럽게 들리는 듯했다. 금빛 광택 하나 없이 순수한 에메랄드빛을 띤 깨끗하고 연한 풀잎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길쭉한 풀 줄기들은 마치 마법에 걸린 듯 꼿꼿이 서 있었다. 보리수의 낮은 가지에 매달린 작고 노란 꽃송이들 역시 마법에 걸린 듯 고요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달콤하고 짙은 향기가 가슴 깊숙이 스며들었고, 가슴은 기꺼이 그 향기를 받아들였다. 강 건너 저 멀리 지평선까지, 세상 모든 것이 눈부신 빛 속에서 아른거렸다. 이따금 미풍이 불어오면 그 반짝임은 부서졌다가 이내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고, 땅 위에서는 눈을 멀게 할 듯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새들은 한낮의 폭염 속에서는 노래를 멈추는 법이다. 그러나 메뚜기들의 울음소리는 사방에서 끊임없이 들려왔는데, 시원한 그늘에 편안히 누워 그토록 열정적인 생명의 합창을 듣는 것은 실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스르르 졸음이 밀려오고 달콤한 몽상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얼마나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베르셰네프가 손짓으로 자신의 말을 보완하며 불쑥 입을 열었다.
"자연 속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하고 명료해. 내 말은, 모든 것이 자기만족에 깊이 취해 있다는 뜻일세. 우리는 그 사실을 인식하고 또 그것을 향유하지. 하지만 동시에, 자연은 적어도 내게는 늘 어떤 불안감, 일종의 경외심, 심지어는 슬픔까지도 불러일으켜. 이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가 자연 앞에 섰을 때, 그 거대한 완전함과 마주했을 때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과 불분명함을 더욱 강렬하게 의식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연을 충만하게 하는 그 만족감만으로는 우리에게 부족하고, 우리가 갈망하는 다른 무언가, 즉 자연이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우리가 원하기 때문일까?"
"흠, 내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안드레이 페트로비치." 슈빈이 말했다. "자네가 묘사한 것은, 살아있는 교감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외로운 인간의 감정일세. 바라만 본들 무슨 소용인가? 인간은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야 하네. 자네가 아무리 간절하게 자연의 문을 두드려도, 자연은 결코 명확한 언어로 답하지 않아. 자연은 벙어리거든. 현처럼 공명하며 울릴 수는 있겠지만, 노래를 기대해서는 안 되네. 오직 살아있는 영혼만이 응답을 하지, 특히 여인의 영혼이 말일세. 나의 고결한 친구여, 내가 자네에게 진정한 반려자를 찾으라고 충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네. 그러면 자네의 그 우울한 감정들은 눈 녹듯 사라질 걸세. 자네가 말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란 바로 사랑이야. 그 불안감이니 슬픔이니 하는 것들은 실은 굶주림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지. 텅 빈 위에 진짜 음식을 넣어 보게나. 그러면 즉시 만사가 제자리로 돌아올 걸세. 여보게, 이 광활한 공간 속에서 자네가 있을 자리를 마련하게. 육신을 가진 존재로서 말일세. 대체 자연이 무엇이며, 그 자체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들어보게. 사랑… 이 얼마나 강렬하고 뜨거운 단어인가! 자연… 이 얼마나 차갑고 교과서적인 표현인가! 그러니 (슈빈은 노래하듯 읊조렸다) '마리야 페트로브나 만세!' 아니지." 그가 덧붙였다. "마리야 페트로브나가 아니어도 상관없지. 내 말을 이해하겠는가?"
베르셰네프는 상반신을 반쯤 일으켜 두 손으로 턱을 괴었다.
"왜 비웃는가?"
그는 친구를 쳐다보지 않은 채 물었다.
"어째서 조롱하는 투로 말하는가? 그래, 자네 말이 옳아. 사랑은 위대한 언어이고, 숭고한 감정이지. 하지만 자네가 말하는 사랑은 대체 어떤 종류의 사랑인가?"
슈빈도 몸을 일으켰다.
"어떤 종류의 사랑이냐고? 그 어떤 것이든 상관없네. 그저 사랑이기만 하다면.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 생각에 사랑의 종류는 그리 다양하지 않아. 만일 자네가 사랑을 한다면…"
"진심으로 말이지." 베르셰네프가 말을 이었다.
"물론이지. 마음은 사과가 아니니 여러 조각으로 쪼갤 수 없는 법. 만일 자네가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다면, 결코 잘못될 리가 없지. 나는 결코 비웃으려는 의도가 아니었네. 지금 내 마음은 솜털처럼 부드럽고, 호수처럼 평온해. 단지 나는 자네가 자연으로부터 그런 영향을 받는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 이유는, 자연이 우리에게 사랑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면서도, 정작 그 갈증을 해소시켜 줄 능력은 없기 때문이지. 자연은 우리를 다른 살아있는 존재의 품으로 조용히 밀어 넣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연 자체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하는 걸세. 아, 안드레이, 안드레이! 이 눈부신 태양, 이 드높은 하늘,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도 자네는 비관에 잠겨 있다니. 하지만 만일 이 순간, 자네가 사랑하는 여인의 손을 굳게 잡고 있다면, 그 손과 그 여인 전체가 온전히 자네의 것이라면, 그리고 그녀의 시선과 마주할 수 있다면, 안드레이, 자연은 결코 자네에게 슬픔이나 걱정을 안겨주지 않을 걸세. 오히려 자네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거야. 자연은 환희에 차 노래를 부를 테고, 자네의 찬가를 메아리처럼 따라 부를 걸세. 왜냐하면 자네가 말 못하는 자연에게 혀를 선물해 주었기 때문이니까!"
<추천평>
"이 이야기는 크림 전쟁 직전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며, 계몽된 예술가와 엄숙하고 성실한 학생에게 아무런 결과도 없는 이타적이고 자비로운 엘레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랑 없이 어떻게 살겠는가, 우리는? 사랑과 동지애에 관한 이 이야기에서 행복과 이상주의의 추구가 갈등, 패배, 죽음을 이길 수 있을까, 과연?"
- Hellga, Goodreads 독자
"첫째, 표현력이 너무 풍부해서 산문이 나를 기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쉽게 기절하는 사람이 아니다 둘째, 1860년대 남성 작가가 어떻게 젊은 여성의 생각과 존재를 그렇게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이 작가는? 갈등의 일부로 조국을 걱정하는 불가리아인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향상되었다."
- ElizabethAlaska, Goodreads 독자
"이 소설은 억압적인 사회 환경에 대한 기대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자신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 여성 엘레나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엘레나의 세계는 도덕적 부패와 평범함을 대표하는 기성세대가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조국의 자유를 위해 헌신하는 불가리아 혁명가 인사로프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도덕적 진지함과 성실함의 세계를 소개한다. 엘레나가 자신의 길을 헤쳐나가면서 사랑과 비극이 얽혀 개인의 주체성과 사회적 제약에 대한 가슴 아픈 탐구로 이어진다."
- Alidei, Goodreads 독자
인물정보
저자(글) 이반 투르게네프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Ivan Sergeyevich Turgenev, 1818-1883)는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 희곡 작가, 번역가이다. 특히 러시아 문학 작품을 서구 세계에 널리 알린 것으로 크게 기여했다. 또한 러시아 리얼리즘 사조를 이끈 선구자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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