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내가 원한 것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6.23MB) | 약 8.3만 자
- ISBN 9791172133290
- 지원기기 교보eBook App, PC e서재, 리더기, 웹뷰어
-
교보eBook App
듣기(TTS) 가능
TTS 란?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술입니다.
- 전자책의 편집 상태에 따라 본문의 흐름과 다르게 텍스트를 읽을 수 있습니다.
- 이미지 형태로 제작된 전자책 (예 : ZIP 파일)은 TTS 기능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쿠폰적용가 12,960원
10% 할인 | 5%P 적립이 상품은 배송되지 않는 디지털 상품이며,
교보eBook앱이나 웹뷰어에서 바로 이용가능합니다.
카드&결제 혜택
- 5만원 이상 구매 시 추가 2,000P
- 3만원 이상 구매 시, 등급별 2~4% 추가 최대 416P
-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추가 최대 200원
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고선경, 시인
여름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지금, 이 계절을 색다르게 감각할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첫 산문집 《사 랑의 은어》 출간 당시 동료 작가들로부터 “또래 중에 가장 말맛 있게 쓰는 작가”라는 평을 들었던 서한나 작가의 신작 《여름에 내가 원한 것》이 그 주인공이다.
이 책에서는 금방이라도 데일 것처럼 작열하는 태양, 땀으로 흠뻑 젖은 외출복, 불쾌지수로 인류애 마저 사라져버릴 듯한 현실 대신 ‘여름’이라는 이미지에 열광하는 작가만의 낭만과 만나게 된다. 작가는 “여름은 모든 것을 실제보다도 부풀리고 없는 것을 상상하며 현실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사라진 것이 내 곁에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지나간 여름 의 사랑을 이야기하거나 돌아갈 수 없는 여름의 한때를 좋아하는 것, 그런 여름을 노래한 음악이 나 영화를 찾아 몇 번이고 다시 틀고 더운 나라의 젊은이들을 그리워하며 권태로운 현재를 사는 것이 여름의 매혹이다. “무언가를 향한 안달복달과 그 후에 오는 소강상태는 이 계절의 것”이라는 말과 맞닿아 있다. 이 책을 추천한 고선경 시인의 말처럼 그는 “우리 모두의 숨을 틀어막으려 온 것이 틀림없다. 이제 우리가 사랑한 여름의 장소마다 그가 서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짐승처럼 노래하는 사람의 음악을 들었다. 땀 흘리는 영화를 보았다. 테니스코트에서, 수영장 에서. 동시에 서로를 원하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영화를 보았다. (…) 나에게는 그런 것이 여름의 상태다. 권태 와 매혹이 모두 하루에 있고, 한낮과 한밤중이 그렇게 다를 수 없다. 어느 여름날 행복했던 시간을 묘사하는 것보 다도, 어떤 시간을 살든 여름의 상태로 산다는 것에 관해 이🅓기하고 싶었다.”(8쪽)
“이 책은 여름에 관한 것이니만큼 온몸으로 노래하는 사람처럼, 왕중왕에게 덤볐다 처절하게 패배한 선수처럼 그 렇게 쓰려고 했다. 무언가를 향한 안달복달과 그 후에 오는 소강상태는 아무렴 이 계절의 것이다.”(8쪽)
1부 연인들
나는 도울 거야 당신의 지옥을
여름의 연인
선배
통조림 체리
하필 오늘 거기
해로운 즐거움
펀치드렁크러브
우리는 서로에게 최면을 걸어줄 수도 있다
완벽한 디저트
첫 키스는 사과 맛
순정
사랑에 빠진 사람이 견딜 수 없는 것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는
여름 산책길
내 것이 아닌
먹다 남긴 오차즈케
서정이 하는 혁명
짧은 영상
오리지널 러브
더워지고 싶어서 그 시집을 샀다
학교 운동장
애인을 만들고 싶은 여자
모든 걸 저에게 알려주세요
유성 시장
언니는 한국어로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
2부 감각들
여름의 상태
집에서 음악 듣기
호사
여름에 대한 생각
카밤
가히 여름의 물건
옷장 안의 포부
여름 양파
수박
여름 오이
1954년의 여름
여름에 음식을 먹는 한 가지 방법
최고의 바닐라슈 찾기
맥도날드 아이스크림
여름의 설탕
소나기
고등학교의 여름
여름 바람
도피처
여름에 내가 반한 것
여름이면 갖추고 싶어지는 장비
나의 여름 트랙
욕망은 과하고 여름은 허용하고 카메라는 그걸 찍는다
우리 둘을 위해 우리 둘의 미래를 위해서 대화해요
대리기사의 사랑
여름밤을 보내기 위해서는 그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더운 나라의 해이함
가짜여도 좋은 것
감각의 축제
3부 장소들
어떤 여름 휴가에 대한 상상
여름에 감행한 것
하와이에 가자고 말하기
LA
내 여자의 열대
바닐라빈 요거트
목욕
부여
남해에는 족구장이 있다
도시의 감정 지도
밤 공원 산책
저녁의 정글짐
여름방학
성북동의 여름
내가 사랑하는 지하실
돌아갈 수 없는 여름
국립서양미술관 가는 길
비수기의 레몬
에필로그
추천의 말
사랑의 시작은 그와 헤어지고 그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가 이전까지 세상에 남겨둔 흔적을 찾아보는 거다. (…) 그때 그와 잠깐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참 좋지 않았나. 그와 노래를 같이 들은 게 혼자 듣는 것보다 좋지 않았나. 그때 달렸던 버드나무길이 어디였지? 원래 그런 길이었나? 이제 그가 없으면 그 노래가 그렇게 느껴지지 않고, 그 길이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불행하게 느껴지기 시작._32쪽
우리는 서로에게 가진 감정을 말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 이것보다 괴로운 일은 없었다. 나는 모든 것 을 말로 확인한다. ‘나 좋아? 얼마나 좋아?’ 하고…. 그런데 이 사람과의 일은 어떤 것도 말로 할 수 없어서 사랑 이 정말로 우리 사이에 있는지 믿기 어려웠다. (…) 바깥의 불빛이 차 안에 들어왔고 어둠 속에서 그와 내가 무 슨 말을 하다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건 모르는 언어로 하는 사랑 고백 같았다._34~35쪽
그 후 나는 내 삶에서 일련의 일을 겪고, 누구에게나 방어벽이 있으며 그것을 무너뜨리지도, 들여다보지도 않으 며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자신에게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좀 불편하더라도 바뀔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로 살다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방어벽이 있는 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받 을 수도 없다. 그래도 누군가는 사랑을 버리고 자신을 지키는 선택을 한다._67쪽
나는 그가 귀여워 보일 때 그의 머리를 만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잠들었다가 뒤척일 때 그를 끌어안아도 된 다고 여긴다. 그에게 잘 자라고 말하고 방에서 나오기 전에 그의 볼에 손바닥을 대도 된다고 믿는다. 나는 내가 그 애를 영원히 좋아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래퍼 남자친구가 생겨서 그가 공연장에서 제일 감동하는 여자 가 된다고 하면 하루 종일 심란해하다 그 래퍼가 감옥에 가길 바라겠지만 그래도 그 애를 감시하는 일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_108쪽
여름의 무엇을 기다리느냐 하면 단연 밤이다. 여름밤은 아무리 써도 닳아지지 않는다. 공용자전거를 빌려 타고 천변까지 갔다 돌아오는 사람도 전화 통화를 하며 계속해서 같은 길을 걷고 또 걷는 여학생이 있다. 습한 날씨가 싫다고 말하지만 정말은 습기가 좋은 거다. 내가 습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유다._116쪽
엄마 말대로 수박은 한여름이 시작되기 전이 가장 맛있는 것 같다. 파삭파삭하고 물이 터지는 시원한 단맛은 그만 한 게 없다. 엄마 집에 갔다가 생각지 않게 얻어먹은 수박. 큰 칼로 반을 가르고 이걸 다 누가 먹어, 할 만큼 쟁반 가득 썰어서 쓰러진 그 수박을 집어서 아무 생각 없이 씹어먹는 일의 달콤함. 어떤 할 일도 없고 책임져🅓 할 것도 없는, 수박껍질 갖다버릴 일도 없는 그 편안한 상태에서 수박을 얻어먹는다는 점이 특히 달고 시원했다._135쪽
주로 내가 쓰는 방법은 구운 식빵에 마요네즈를 바르고, 얇게 썬 오이를 얹어 후추를 뿌려 먹는 것이다. 하지만 그 런다고 해서 여름에 먹는 오이소박이나 가지나물이 채워주는 영역을 그것들이 완벽히 채워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주일에 라면을 일곱 번 먹게 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밥까지 넣어 먹게 하는, 어금니가 시릴 정도로 시원한 오이소 박이와 무언가 아주 몸이 좋아할 짓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정성이 가득 들어간 보라색 가지나물을 밥보다 더 많 이 떠서 먹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여름은 아직 먼 것이다._138쪽
설탕에 졸이면 모든 것이 맛있어지기 때문에, 나는 오늘 달력에 ‘복숭아 졸이기’를 써놓은 것이다. 복숭아를 새로 하나 깎을 때마다, 이 녀석은 맛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한 입씩 먹어보았지만, 최고의 복숭아는 한 개도 없었 다. 나는 미련 없이 그것들을 냄비에 넣은 뒤 설탕을 부었다. 잼이 끓는 사이 설거지를 하면 시간이 맞을 것 같았 다. 부엌에 설탕 단내가 가득했다._152~153쪽
일행이 곧 그칠 것 같으니 지금 비를 맞자고 했다.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차라리 비를 맞을 때가 더 따뜻 한 것 같기도 했다.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고, 우리는 빙글빙글 돌며 비를 맞았다. “집에는 어떻게 가지? 다 말리 고 가🅓 할 것 같은데, 택시도 안 태워줄 것 같은데?” 내일이 없는 천덕꾸러기가 된 기분에, 젖은 김에 하려던 것을 다 했다. 물에 젖은 잔디 위에 앉기…. 혼자서는 비를 맞을 일도 없고, 비 맞는 채로 그대로 있을 일은 더 없으니까. 이런 것이🅓말로 기억할 일이 아닌지._155쪽
엄마는 무리를 옮겨 다니는 이웃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말은 해🅓 맛이고요, 숙제는 풀어🅓 되는 거예요. 남의 화젯거리만 들먹이지 말고 우리 둘을 위해 우리 둘의 미래를 위해서 대화해요.” 엄마는 가끔 그런 말을 한다. 그 럴 때면 나는 ‘아, 내가 이래서 엄마를 좋아했지? 엄마가 이런 사람이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는 일곱 살이 된 조카가 엄마에게 분위기가 뭐냐고 물어봤다. 어디서 그런 단어를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대답 했다. “놀다 보면 좋아서 더 놀다 가고 싶은 게 분위기🅓.”_179쪽
아, 나는 그 목소리가 좋은 것 같다. 대나무 통 안을 깊게 울리면서 나오는 것 같은 숙성된 소리를 가진 인간이 라서? 아니다, 나는 그가 가진 눈빛이 좋은 것 같다. 내 속을 뒤집어보는 듯 빤하게 보는 눈이면서도 금방이라도 어디로 가버릴 것 같은 눈빛이 좋은 것 같다. (…) 그러면 대체 뭔가. 그가 자기 집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 습도, 오랜 시간 만들어왔을 말투도 아니라면 내가 사랑에 빠진 건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아무래도 나는 그가 거느린, 그가 지나온 시간이 전부 좋은 것 같다._185쪽
나는 지나간 여름의 사랑을 이🅓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돌아갈 수 없는 여름을 좋아하고, 그런 여름을 노래한 음 악이나 영화를 좋아한다. 여름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때 그와 더워하면서 돌아다닌 나무 아래 와 느티나무 밑에서 쉬는 사람을 한동안 바라봤던 것을 생각한다. 개떡 같은 날씨 100번에 끝내주는 순간 한 번 으로 대낮의 더위가 용서되었던 날도 있다. 습기에 습기를 더하는 비도 가끔은 괜찮다. (…) 이렇게 기억하는 것 을 보면 나는 꽤 여름을 좋아하는 듯하다._193쪽
이건 정체감에 대한 갈망일지도 모른다. 내가 좀 더 진해졌으면 좋겠다는 느낌. 절에 다녀온 게 무색할 만큼 나 의 자아는 더 강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하루치의 느낌이 부족한 것을 종종 배고픔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럴 때 수영장에 뛰어들 수 있으면 배달 음식을 조금 덜 먹게 될 텐데. 그럴 때 맨발로 흙바닥을 밟으며 시속 8 0킬로미터로 달리는 개를 보고 혀가 저만큼이나 나왔어, 하고 웃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_195쪽
살면서 알게 된 것은, 감정에 따라 사는 것은 미지를 감수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모험의 원형이다. 호기 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나 장소에 그냥 가버리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주는 상처를 직격으로 맞는 것이 다. 아주 길고 느린 변화가 수반된다. 지금까지 쌓아온 나에 대한 생각은 해체돼버리고, 우리는 깊은 무력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감정과 행복의 주도권을 이미 상대에게 넘겨버렸으니._203쪽
그러니까 꼭 하와이일 필요는 없다. 연인에게, 혹은 곧 연인이 되어버릴 것 같은 사람에게 나랑 여기서 빠지자, 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뿐이다. 가서 속옷도 안 입고 돌아다니자, 사람들 시선은 신경 쓰지 말자, 휘청거리면 서 걷자, 신호를 기다리면서 입을 맞추자, 나랑 놀자, 같은 말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_206쪽
아무것도 읽지 않아도 그 시간은 끝내줬다. 몸에는 불편감이 없었고, 멀리서 차가 지나가는 정도의 소리가 들려 올 정도였으며, 물놀이의 노곤함은 시간이 흐르며 나른하고 자유로운 기분을 만들어주었다. 바람은 풀장에 떠 있 는 나뭇잎을 움직이게 하고 바깥의 풀냄새를 실어 오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었다. 내 앞에는 발을 걸칠 수 있 는 작은 테이블도 있고, 커피도 향긋하게 내려진 데다 얼음도 많았다._213~214쪽
우리의 모터보트는 크림에 레몬즙을 한 방울 섞은 듯한 색이었다. 바다와 모래는 물감을 뚝 떠서 펴 바른 듯했 다. 엄청난 소음과 물길을 일으키며 배가 떠가기 시작할 때, ‘낡은 흰색은 예쁘구나’ 생각했다. 사람들의 맨발, 찰박찰박한 물, 몸에 달라붙는 티셔츠와 바람에 젖혀지는 셔츠, 따뜻하게 젖은 몸. 지금 나는 한국보다도 추운 나라에 와서 눈이 쌓인 도시를 걷고 있다. 거리를 다닐 때는 떨어지는 간판에 맞아 죽지 않도록 주의한다. 세상 에는 좋은 것이 많기 때문에._216쪽
나는 가끔 공간에 얽혀 있는 기억이 너무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든 그곳에 가면, 그곳에 자주 드나들던 시 절이 한꺼번에 딸려 나오기 때문이고, 그맘때 자주 어울리던 사람을 다시 그때처럼 소중히 여기게 되기 때문이 다. 그럴 때는 현재라든가 지금의 여건이라든가 그런 게 하나도 중요하지가 않다. 오로지 과거의 기억과 그때의 감정만이 중요해진다. 장소가 없어지는 것도, 장소가 그대로 있는 것도 전부 큰일이다._232쪽
여름이 아닐 때도 여름밤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향수를 찾아다녔지만, 향수는 좋기만 해🅓 해서인지 그 냄새를 구현하지 못했다. 플랑크톤과 세균과 안 좋은 것이 섞인 냄새. 흙먼지 냄새. 불운한 기운…. 그 모든 게 합쳐져🅓 그리운 냄새가 되는 것인지. 나는 여행에서 돌아와, ‘피크민블룸’이라는 게임을 켰다. 레몬을 주웠다. 가져오는 데까지 24일이 걸린다고 했다. 노랗고 싱싱한 레몬이었다._258~259쪽
★ 《사랑의 은어》 서한나 작가 신작
★ 《샤워젤과 소다수》 고선경 시인 강력 추천
“여름의 연인들·여름 감각·소나기·밤 공원 산책 아이리시 카밤·비수기의 레몬·더운 나라의 해이함…”
온갖 감각이 뒤범벅되어 아찔하게 현기가 일고 마는 계절
1부 ‘연인들’에서는 작가가 여름에 함께했던 사랑에 관한 단상들이 펼쳐진다. 작가는 자신이 “어떤 순정도 없는 부정뿐인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모든 순간 그가 해왔던 사랑은 지독하게 뜨거운 여름을 닮은 순정이다.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상대로 인해 자신이 애써 만든 일상이 깨지고 모든 신체 감각이 그에게로 집중되며, 사랑이 끝난 뒤에는 “자기 내면과 혼자 남는 지옥이 펼쳐진다”.
“나는 그가 귀여워 보일 때 그의 머리를 만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잠들었다가 뒤척일 때 그를 끌어안아도 된다고 여긴다. 그에게 잘 자라고 말하고 방에서 나오기 전에 그의 볼에 손바닥을 대도 된다고 믿는다. 나는 내가 그 애를 영원히 좋아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래퍼 남자친구가 생겨서 그가 공연장에서 제일 감동하는 여자 가 된다고 하면 하루 종일 심란해하다 그 래퍼가 감옥에 가길 바라겠지만 그래도 그 애를 감시하는 일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108쪽)
2부 ‘감각들’에서는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다채로운 묘사를 통해 여름에 관한 이미지들을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치앙마이에서 마주한 가벼운 단맛의 질깃하고 밀도 있는 수박, 숨 쉬는 것만으로 진득 하고 황홀감을 느낄 수 있는 충동성 짙은 여름밤의 온기, 과잉 자체로 터질 듯한 여름을 주제로 한 영화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다들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을까. 해수욕을 하고 나와 손에 묻은 물기를 티셔츠에 닦은 뒤, 모래사장 위에 뒤집 어놨던 책을 다시 펴서, 햇빛이 너무 과하게, 혹은 너무 없는 채로 잘 보이지도 않는 글자를 읽어내리며 땡볕에서 고생스럽게 독서하는 일 말이다. 그럴 때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에 몸에 남은 물기를 말리는 것 말이다. 그런 것이
🅓말로 여름에 할 수 있는, 아주 거대하고 어리석고 천진난만한 자유가 아닌지….”(120~121쪽)
마지막 장인 3부 ‘장소들’에서는 작가가 그리워한 여름의 공간들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금 방이라도 헤어질 듯한 연인과 함께한 가고시마, 마음에 둔 사람을 우연을 가장한 만남으로 마주치 고 싶어 떠난 남해, 색채가 강한 태국의 어느 섬에서 만난 심드렁하고 매혹적인 미지의 인물 등…. 작가는 숨 막힐 듯 강렬했던 공간에 관한 기억들을 소환하여 독자로 하여금 자신만의 시절과 인연 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꼭 하와이일 필요는 없다. 연인에게, 혹은 곧 연인이 되어버릴 것 같은 사람에게 나랑 여기서 빠지자, 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뿐이다. 가서 속옷도 안 입고 돌아다니자, 사람들 시선은 신경 쓰지 말자, 휘청거리면서 걷자, 신호를 기다리면서 입을 맞추자, 나랑 놀자, 같은 말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206쪽)
“그가 나를 본다면 갑자기 여기 나타난 내가 너무 이상해 보일 것 같았다. 남해 운동장에서 철봉이나 하다가 온 것으로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그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너무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거짓말 을 해🅓 할지 좋은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 주제에 나도 관심이 있어서? 내 꿈이 실은 이쪽이라서? 아무튼 사 랑은 아님. 너를 사랑해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님.”(227~228쪽)
“여름은 어쩔 수 없이 닿고, 섞이고, 서로를 침범한다”
실제보다 더 명징하게 남을 여름의 여운들
서한나 작가의 글을 한 번쯤 접해봤거나 그에 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작가를 두고 가 장 먼저 떠올릴 이미지가 바로 ‘인간 여름’일 것이다. 그에게서 나오는 에너지는 마치 연한 노란색 의 레몬이 산뜻하고 은은한 향을 풍기는 듯하다. 작가는 일상의 평범한 순간도, 자신이 아는 인물 들도 모조리 “조각내어” 기억하는데,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섬세하게 인간의 심리와 상 황을 발골하여 언어적으로 재현한다. 수줍으면서도 충동성과 야성이 가득한 서한나 특유의 역설적 인 문체는 새파랗다 못해 짙푸른 여름의 녹음과 닮았다. 터지기 직전까지 형형하게 고조시키면서 도 끝내 조용히 머금고 속삭인다. 그는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간지럽힌다. 앙증맞고 사랑스 럽게 스며드는 그의 재주는 또래 작가들과 뮤지션들에게 많은 예술적 영감을 주고 있다.
이 책이 ‘여름’을 주제로 한 여타의 책과 다른 점은 단순히 계절적인 개념으로 여름을 한정 짓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가는 자신이 기억하는 여름을 두고 “무더위와 소음 속에 몸을 풀어놓고 지켜 보고 싶은 공간으로서의 계절”이라고 표현한다. 때로 내면의 지질함과 구석진 마음까지도 모조리 뒤집어 꺼내 보여주는 글들은 원류에 가닿고자 하는 그만의 시도다. “비빔밥이든 엘리베이터든 뭐 든 섞이는 것이 싫은” 작가 자신도, 여름날에는 “어쩔 수 없이 닿고, 섞이고, 침범해야” 한다고 말 한다. 이 ‘날것’의 계절이 만들어내는 순간의 기록들을 읽다 보면 실제보다도 더 명징하게 남을 여 름의 여운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아, 나는 그의 목소리가 좋은 것 같다. 대나무 통 안을 깊게 울리면서 나오는 것 같은 숙성된 소리를 가진 인간 이라서? 아니다, 나는 그가 가진 눈빛이 좋은 것 같다. 내 속을 뒤집어보는 듯 빤하게 보는 눈이면서도 금방이라 도 어디로 가버릴 것 같은 눈빛이 좋은 것 같다. 그러면 대체 뭔가. 내가 사랑에 빠진 건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아무래도 나는 그가 거느린, 그가 지나온 시간이 전부 좋은 것 같다.”(185쪽)
“여름이면 노천에서 사람 구경하는 것이 좋다. 몇 번이든 그걸 하고 싶어진다. 그것이🅓말로 뒤섞이는 일인 걸 모 르고, “난 섞이는 건 별로, 닿는 건 별로” 그렇게 말한다. 내가 바라던 맛이 거기에 있다는 것도 모르고, 에어컨 이 나오는 실내를 놔두고 땡볕에 내내 앉아 있는다.”(262쪽)
이 상품의 총서
Klover리뷰 (0)
- - e교환권은 적립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 - 리워드는 5,000원 이상 eBook, 오디오북, 동영상에 한해 다운로드 완료 후 리뷰 작성 시 익일 제공됩니다.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 -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 - sam 이용권 구매 상품 / 선물받은 eBook은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 도서나 타인에 대해 근거 없이 비방을 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리뷰
- 도서와 무관한 내용의 리뷰
- 인신공격이나 욕설, 비속어, 혐오 발언이 개재된 리뷰
- 의성어나 의태어 등 내용의 의미가 없는 리뷰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문장수집
- 구매 후 90일 이내에 문장 수집 등록 시 e교환권 100원을 적립해 드립니다.
- e교환권은 적립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 리워드는 5,000원 이상 eBook에 한해 다운로드 완료 후 문장수집 등록 시 제공됩니다.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 sam 이용권 구매 상품 / 선물받은 eBook / 오디오북·동영상 상품/주문취소/환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구매 후 문장수집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