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제국 연구
2025년 10월 24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10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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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88994606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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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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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연구는 경제, 재정, 사회 조건 같은 물질적 요인에 집중하면서도 월트 휘트먼, 마크 트웨인, 에밀리 디킨슨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지성사적, 문화적 해석에도 관심을 쏟는다. 특히 “남부의 면화는 비아프라(Biafra)에 석유가 미친 영향과 같다.”, ‘존 퀀시 애덤스와 자와할랄 네루의 연설 비교’, “알제리는 워싱턴의 하와이였다.” 등 시공간을 넘나드는 다양한 비교 서사가 생동감을 더한다.
미국사를 국가사 중심으로 보는 내재적 접근을 비판하며 외부에서 내부를 바라보는 방식을 택한 저자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사의 궤적은 결코 ‘예외적’이지 않았다. 저자는 기존의 통념을 넘어 영국과 유럽에 대한 미국의 의존적 관계가 19세기 후반까지 지속되었음을 밝힌다. 또한 미국을 전형적인 제국으로 제시하면서 공화국의 독특한 일탈이 아닌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라는 일반적 범주 안에 자리매김한다. 한편 1945년 이후 탈식민 세계화 국면에서 미국은 전례 없는 글로벌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권력과 여건 등 여러 면에서 영국, 프랑스와 같은 제국에는 비할 수 없이 제한적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다른 국가를 병합하는 대신 군사기지를 설립에 열중하며 국제 질서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재조정했다.
저자는 이 시점에 왜 제국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했는지 묻는 것이 현재 미국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까워지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관점을 세우는 것이라 강조한다. 탈식민화된 세계에서 미국은 새로운 로마도 새로운 영국도 아니었다. 사실상 대제국의 시대는 이때 끝났다. 탈식민 세계에서는 제아무리 초강대국이라도 작은 나라조차 원하는 대로 굴복시킬 수 없는 새로운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미 제국 연구』는 탈식민 과정에서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도 민족자결을 지켜내며 오늘에 이른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지구적 맥락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앤서니 홉킨스가 1915년 대영제국의 이라크 침공 일화로 이 책의 문을 열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점령으로 대미를 장식한 이유은 세계화의 새로운 국면과 권력의 본질적인 변화를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국제사회에 막대한 결과를 초래한 이라크 쿠트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불행히도 미국은 타협보다는 대결을 선호하는 전통이 있다고 지적하며, 2025년 트럼프의 당선으로 촉발한 국제 무역에 대한 급진적 도전에 대해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영토 제국 건설과는 다른, 공세적인 경제 제국주의의 한 예로 볼 수 있다.”며, 그렇다고 중국을 쿠바처럼 다룰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재는 장기화된 무역 전쟁과 높아지는 국제적 긴장으로 특징지어지는 긴 겨울의 시작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 제국 연구』는 미국이 어떻게 될지, 현재와 곧 다가온 미래를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서문
프롤로그 해방의 교훈: 이라크, 1915~1921
1장 세 번의 위기와 그 결과
대안 가운데서 선택하기
‘미국 예외주의라는 국가 이데올로기’를 넘어
제국: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장미…?’
세계화와 제국들
시간과 변화
길어진 여정의 커져 가는 노고
1부 | 탈식민지화와 종속 1759~1865
2장 군사-재정 국가의 발전과 후퇴
인간관계와 연대기
거대한 수렴?
명예혁명과 예외적인 군사-재정 국가
영국 군사 -재정 국가의 발전
새로운 세계 질서
전쟁, 재건, 개혁
영국: ‘영속성과 변화의 결합’
‘결코 해가 지지 않는 광대한 제국’
‘미지의 안개에 투영된 과거의 이미지’
3장 혁명에서 헌법으로
해리 워싱턴과 떠오르는 세계 질서
‘새로운 식민 체제’를 향하여
존 컴퍼니의 활동
기대가 꺾인 혁명
‘하나의 연방 정부 아래 분리될 수 없는 주 연합’
‘격동과 갈등의 장엄한 광경’
‘제국이 아니라 제국을 향한 기획’
4장 독립을 위한 투쟁
자정의 아이들
혁명의 수사와 현실
종속적 발전의 딜레마
문화적 지속성
‘황야의 숲을 자유의 이상이 깃든 터전으로 개간하기’
5장 합병 전쟁
‘미래의 위대한 국가’
‘재산이라는 빛나는 발상, 배타적 권리라는 개념’
1812년: 두 번째 독립전쟁인가?
‘미국은 팽창할 줄도, 짓밟을 줄도 안다’
‘상반된 세력 사이에 지속되는 억누를 수 없는 갈등’
‘제발 부탁이니 가능한 한 우리만이라도 이 일에 휘말리지 맙시다’
전쟁과 평화를 다시 생각하다
2부 | 근대와 제국주의 1865~1914
6장 불균등 발전과 제국의 팽창
‘격동하는 지구, 새로운 시대를 마주하다’
‘돈의 길’: 근대 세계화로 가는 여정
“오, 형제들이여, 조국을 사랑하라”
대규모 디플레이션
세계화와 ‘신’제국주의
사자, 자칼 그리고 제국 쟁탈전
‘새로운 시대, 사회 진보의 시대’
7장 실질적 독립 달성
혼란과 고통의 소용돌이에서
‘직책과 그 희망만 남기고 모두 잃었다’
‘아름다운 신용이여! 근대 사회의 초석이여’
범세계적 민족주의 문화
‘연방’에서 ‘미국’으로
8장 보통의 제국을 익히다
‘세계의 기회, 세계의 의무, 세계의 영광’
1898년 전쟁을 둘러싼 논쟁
돈키호테의 마지막 여정
파괴 수단의 동원
‘막을 수 없는 팽창의 경향이… 다시 작동하는 듯하다’
‘우리는 폭군이 아니라 구원의 천사로 왔다’
‘운명, 신성 그리고 달러’
9장 침범하는 세상에 대한 섬들의 관점
‘거침없이 질주하는 근대 정치의 수레바퀴’
설탕을 입힌 알약
쿠바: ‘명예와 감사가 전혀 없는 타락한 사람들’
푸에르토리코: ‘역사 속으로 소풍을’
필리핀: ‘내가 숭배하는 땅, 내 슬픔의 슬픔’
하와이: ‘빠르게 사라진 민족’
선택된 전쟁
인터미션: 타잔을 통해 본 근대성
3부 | 제국과 국제적 무질서 1914~1959
10장 근대 제국 체제, 정복에서 붕괴까지
‘미국의 세기인가?’
고립인가, 통합인가?
제1차 세계대전과 정상으로의 회귀
근대사에서 손꼽히는 경제 대재앙
제국을 무너뜨리고 재편한 전쟁
두 번째 식민지 점령
식민지 방식의 해방
제국과 식민, 그 끝난 이야기
11장 잊힌 제국의 통치
뒤늦은 후회
더 위대한 영국, 더 고귀한 사명
근대화 사명
제국의 소유: 의회와 헌법
로비와 자유
‘강력한 지도의 손길 아래에서 교습하는 과정’
‘성공의 물결 위에 실패의 잔물결조차 없었다’
전망
12장 카리브의 카니발
향락의 섬들
푸에르토리코: ‘도서령 통치의 모범 사례’
쿠바: ‘저 지긋지긋한 작은 공화국’
“우리는 이제 더는 흔들리지 않는다”
13장 태평양의 낙원
‘푸른 하늘이 나를 부르는 그곳’
‘하와이: 평화의 섬, 행복한 세계’
필리핀: ‘자의적 지배를 대신한 정의롭고 온건한 통치’
“우리 깃발이 휘날릴 때까지 쉬지 않는다”
섬 제국의 회고
14장 혼란스러운 식민주의의 황혼
권한은 넘기고 책임은 떠안다
전 지구적 맥락
제국을 놓지 않다
태평양에서의 방위
카리브해에서 이루어진 강압과 협력
다음 국면으로 나아가며
태평양에서의 진보?
카리브해의 대조
결론: 전 지구를 위한 미국 방식의 빛나는 본보기
4부 | 결과: 탈식민 세계화
15장 탈식민주의 시대의 지배와 쇠퇴
역사에 대한 우리의 유일한 의무는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세계화와 제국
탈식민 세계화
미국: 패권을 지향하는 국가
캡틴 아메리카: 계속될 것인가?
에필로그 자유의 교훈: 이라크, 2003~2011
미주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18세기 유럽의 군사 -재정 국가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스웨덴은 적절한 차입 수단이 부족해 프랑스와 영국의 보 조금에 의존했으며, 재정상 여유가 있을 때는 용병을 고용했고, 여건이 허락하면 타국에 용병을 제공했다. 프랑스의 군사 -재정 국가는 중앙의 통합된 예산이 없었으며, 이른바 ‘절대군주제’에서도 군주들에게 국가 재정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왕실은 여러 가지 편법에 의존해야 했는데, 그중 일부는 절망스러웠으며, 정부의 신용은 지속해서 의심받았고, 자금 부족은 결정적 순간에 프랑스 군대의 역 량을 저해했다. 스페인의 공식 기록은 모든 고정관념을 깨준다. 스페인은 18세기에 절대주의 국가도 아니었고 쇠퇴하던 나라도 아니었 다. 군대 규모는 제한적이었고, 정부는 국채를 불신했으며, 지방 당국과 식민지 엘리트들이 전체 세수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였다. 이러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스페인은 부유하고 역동적인 제국을 통치하였다._114~115쪽
해리 워싱턴은 조지 워싱턴의 노예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740년경 감비아에서 태어나 1760년대 초 대서양을 건너 이송되었고, 1763년 조지 워싱턴이 이름부터 음울했던 디스멀 스웜프 회사에서 일을 시키려고 그를 사들였다. 조지는 1768년까지 그 회사를 관리했고, 이후 그의 형제 존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었다. 해리는 1771년 탈출을 시도했지만 붙잡혔고, 이후 존 워싱턴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했다. 1775년 버지니아 주지사 던모어Lord Dunmore가 영국군에 입대하는 노예에게 자유를 준다는 포고령을 발표하면서 해리는 자유를 얻을 두 번째 기회를 맞이했다._184쪽
남부연합의 패배는 그들의 제국적 야망만 꺾은 것이 아니라, 영국과 남부를 묶는 신식민지 관계도 와해시켰다. 1865년 당파적 논객이었던 헨리 캐리는 비록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그 연관성을 명확히 파악하면서 “현재의 남북전쟁은 영국의 자유무역에 빚을 지고 있다”라고 썼 다. 1865년까지 영국은 미국에 ‘필수불가결한 나라’였다. 과거 미국을 식민 지배했던 영국은 미국의 주요 해외 자금원이고 최대의 해외 시장이었으며, 결정적 위기에서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다. 영국의 막대한 면화 수요는 미국 남부의 경제 번영과 정치 지배 구조를 뒷받침했고, 영국이 노예제 폐지로 전환하면서 이와 같은 구조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빅토르 위고가 ‘진보의 병폐, 즉 내전’이라고 한 남북전쟁은 1865년 이후 두 국가가 오랜 역사의 동반자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할 수밖에 없는 계기를 마련했다._423쪽
미국의 열광적인 제국주의 지지자들이 스페인 제국의 마지막 남은 지역들을 차지한 1898년은 신제국주의가 최고조에 달한 해 중 하나였다. 영국은 수단을 손에 넣었고, 중앙아프리카의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을 파쇼다를 둘러싸고 프랑스와 전쟁 직전까지 갔으며, 프랑스, 러시아, 독일과 연합하여 중국으로부터 영토 양여를 이끌어냈다. 그 전 해인 1897년에 영국은 베냉을 점령했고, 독일은 르완다를 차지했으며, 프랑스는 마다가스카르를 병합했다. 바로 다음 해인 1899년에 영국은 보어전쟁에 깊이 빠져들었고, 프랑스는 라오스에 대한 통치를 굳혔으며, 중국에서는 의화단 봉기가 발발했다.
1914년 무렵이면 애덤 스미스가 ‘황금의 꿈 golden dream’이라 묘사한 세계가 실제로 펼쳐졌다. 서구 열강은 세계 대부분 지역을 자신들의 통치 아래 두었다. 이미 1880년에 영국은 서구 국가들의 식민지 영역과 인구의 90퍼센트를 차지하여 ‘아마도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지배력에 도달한 상태였다. 이후 식민지 확보 경쟁이 심화되고 다른 강국들의 도전이 이어졌음에도 1913년 당시 전체 식민지 영토의 3분의 2, 식민지 인구의 4분의 3에 유니언잭이 걸려 있었다. 이는 흔히 쇠퇴기로 평가되던 제국의 성과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1913년 미국이 보유한 영토는 식민지 열강이 점령한 영토의 0.6퍼센트, 주민수는 1.8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대열에 합류했고, 곧 제국주의 체제 유지에 상당한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_498~499쪽
미식축구는 특히 남부에서 인기를 얻었는데, 이 지역의 무예적 가치와 혈기 넘치는 스포츠 문화에 호소하면서 남부 특유의 의례적이고 화려한 행사 문화를 되살리는 기회를 만들었다. 경기에서의 승리는 대영제국 내 국가들이 ‘모국’을 물리쳤을 때, 더욱 사기를 진작했던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남부의 자존심을 회복시켰다. 또한 스포츠는 고급문화가 미치지 못하는 사회 곳곳까지 사회 질서를 확장했다. 예를 들어, 야구는 미국식 민주주의의 대표 스포츠였다. 탁 트인 지형과 최소한의 장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야구는 남북전쟁 당시 양쪽 군대가 가장 좋아하는 경기였다._567쪽
1950년에 영국이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한 1815년 이후 지어진 런던 중심부의 낡은 두 건물이 철거되어 식민부의 새로운 넓은 청사를 지을 공간이 확보되었다. 이는 당시 인원이 늘어나고 업무가 확대되면서 필요한 추가 시설이었다. 인도라는 태양이 지고 난 후에도 런던 당국은 새로운 여명이 제국의 하늘을 밝게 비출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1950년대에 이러한 낙관론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건물의 기초는 놓였으나 공사는 1952년에 중단되었다. 1960년 이후 식민부가 관리할 일이 거의 남지 않았고, 결국 1966년에는 영연방관계부Commonwealth Relations Office와 합병되어 영연방부Commonwealth Office가 되었다. 결국 완공되지 못한 식민부 건물의 역사는 1945년 이후 부활하고 개혁되며 재통합된 영국 식민 제국이 1950년대 말 예상치 못하게 급속히 종말을 맞았음을 상징한다. 제국에 자금과 목표가 주어진 지 10년 만에 제국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새로운 로마는 세워지지 않았으며, 새로운 로마인도 필요하지 않았다._806~807쪽
1898년에서 1959년까지 쿠바 역사를 다룬 표준적 설명들은 근대 식민주의 역사학의 익숙한 고정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쿠바 사례는 특별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1959년 혁명이 지난 반세기 동안 역사 서술에 강한 영향을 미쳤고, 때로는 이 혁명에 사로잡힌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공식 통념은 쿠바를 ‘악의 제국’이라는 공포스러운 존재의 앞잡이로 그리고 있으며, 쿠바 역사를 미리 정해진 악마의 각본에 맞춰 왜곡했다. 워싱턴의 시각에서 본 미국의 정책은 자비롭고 진보적이었지만 쿠바의 반응은 불손하고 배은망덕했다. 미국적 가치를 거부하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이 섬은 권위주의와 후 진성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은 고집스러운 역사로 묘사되었다. 회개하지 않은 죄악은 벌을 받아야만 했고, 쿠바의 경우 이러한 벌이 실제로 내려졌다._910쪽
이는 일종의 징벌적 독립punitive independence이었다. 필리핀은 단순히 고난의 바다에 떠밀린 것뿐 아니라, 폭풍의 경로에 놓이게 되었다. 이 나라는 일본의 군국주의적 팽창주의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다. 수출 경제는 적절한 준비 없이 주요 시장과 단절이라는 임박한 상황에 적응해야 했다. 1934년 필리핀인은 미국에서 외국인으로 재분류되어 미국 내 각종 기회에서 배제되었다. 국내에서는 실업률 증가라는 고통을, 국외에서는 인종적 편견이라는 모욕을 겪어야 했다. 미국의 한 저명한 논평가는 “필리핀에 독립을 강요한 법은 정치적 혜안이 거의 없었고, 관대함은 전혀 없었다.”라고 결론지으며 아쉬움을 표했다. 문명화 사명은 그 기반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재정 건전성으로 측정되는 자립 가능성은 의심스러운 회계 조작으로만 간신히 달성되었다._1016쪽
이라크에서 수렁은 쉽게 빠져들지만 헤쳐나오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며, 이는 역사가 곧 ‘통치에서 탁월함을 획득하는 데 필요한 실천적 학문’이어야 한다는 이븐 할둔의 신념에 따른 통찰력을 다시금 확인해준다. ‘역사의 교훈’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정책이 증거를 외면하지 않고 객관적 사실에 기반하여 수립되도록 하려면 그 타당성과 한계를 논의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더는 자국 정부를 위해 직접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이는 이븐 할둔이 활동하던 시대와 달리 이제 그들이 권력의 중심에서 한층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확한 지식이 잘못된 정책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역사학자는 여전히 필요한 순간이 오면 자신의 대표자를 성벽에서 밧줄로 내려보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며, 권력자들의 장막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_1186쪽
저자는 ‘미국 예외주의라는 국가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야 한다고 역설하며, 프랑스의 ‘위대한 국가la grande nation’, 러시아의 신성한 사명, 독일의 ‘특수한 길Sonderweg’ 등 여러 강대국이 저마다의 예외주의 신화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미국의 예외주의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강대국이 보편적으로 나타내는 특징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_1431쪽
미국의 탈식민지화와 비공식적 종속
『미 제국 연구』는 미국사를 전 지구적인 더 넓은 맥락에서 조망한다. 책의 목차는 이러한 구조를 명확히 보여준다. 1부는 초기 세계화의 위기(미국 독립), 2부는 근대 세계화(미국의 국가 건설과 제국화), 3부는 제국의 위기, 4부는 탈식민 세계화를 다루며 결론에 다다른다. 각 단계는 제국의 운명과 진로에 심대한 영향을 미쳐 제국의 정치, 경제 구조를 바꾸고 통치의 지리적 범위를 변화시켰다. 미국의 역사는 탈식민 종속 상태에서 산업국가로, 다시 영토 제국으로, 그리고 마침내 탈제국 시대의 패권 국가로 변모하는 과정을 겪으며 저자가 제시한 세계화의 세 국면과 조응한다.
세계화의 첫 번째 단계인 초기 세계화는 18세기 후반에 가장 높은 발전 단계에 이르렀는데, 이 시기에는 유럽의 주요 군사-재정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 전 세계에 파급되어 대규모 상호 파괴로 귀결되었다. 위기는 본질적으로 재정에서 비롯했다. 군비 경쟁과 그에 따른 공공재 지출로 재정 압박이 심해지자 유럽 각국은 새로운 세원의 창출과 증세 방안을 적극 모색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1776년 미국혁명은 세수 수요의 증가와 내륙 정착지 확장을 억제하는 달갑지 않은 규제에 항의한 것이었다. 즉 18세기 후반 유럽의 군사-재정 국가에 닥친 위기가 식민지주변부로까지 확장된 사건이었다. 앤서니 홉킨스의 연구는 이처럼 미국의 독립을 유럽과 세계적 맥락을 연결하는 데서 빛을 발한다. 독립 시기부터 미국에 대한 연구가 국가사 전문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강력하게 형성된 이른바 ‘미국 예외주의’ 전통에서 벗어난 연구라는 이유이다.
1783년 이후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부상한 역사라기보다는 혁명 이후 새로운 국가의 성격을 둘러싼 남부와 북부의 갈등, 보수파와 개혁파의 투쟁의 연속이었는데 이는 1815년 이후 유럽에서 전개된 진보와 보수 세력 사이의 대결을 반영한 것이었다. 북부의 이익집단들은 관세 보호와 문화적 독립에 대한 야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발전 구상을 옹호했다. 그러나 남부의 이익집단들이 정치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영국에 종속된 자유무역 체제와 이에 부합하는 문화적 친밀감이 강화되었다. 서부로의 대륙 확장은 영국이 제한하려 했던 토지 수요를 해소했으나, 동시에 북부와 남부 이익집단 간 경쟁을 강화했다. 남북전쟁은 이러한 긴장감이 정점에 달하면서 발생했으며, 이는 20세기 다른 많은 신생 독립 국가들의 역사에서 나타날 유사한 분리주의 운동의 전조였다. 이 전쟁은 또한 1848년 혁명과 186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를 통합한 군사 작전으로 촉발된 유럽 내 갈등과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노예 제국을 수립하고자 했던 남부가 만약 승리했더라면 그 시점 명실상부한 제국으로 자리잡았을 것이다. 가장 장기 관점에서 보면, 남북전쟁은 18세기 말 유럽의 군사-재정 국가를 강타했던 위기가 미국에서 최종적으로 해결된 사건이자, 기존의 국가를 붕괴시킴으로써 비로소 국민국가를 구축한 사건이었다.
미국 예외주의라는 국가 이데올로기를 넘어
미국에 섭리적 사명이 있다는 신념은 미국 국가주의 성격과 미국사의 맥락을 형성해 왔다. 유럽의 군주제, 신분제, 제국주의에 대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미국의 독립과 신생 공화국을 구세계와 구별해온 것이다.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제국으로 불리지도 않은 미국은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의 성공을 거쳐 냉전 시기 소련에 대한 궁극적 승리로 정점에 이르는 이 표준적인 미국사 이야기의 바탕에 미국 예외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미 제국 연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 제국 연구』는 미국과 서유럽의 역사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간에 걸쳐 매우 유사한 궤적을 따랐음을 논증한다. 1783년 미국의 독립은 영국과의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 경제, 문화적 유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존의 통념을 넘어 미국은 남북전쟁 무렵까지도 옛 식민 모국인 영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산업화와 남북전쟁이란 고통스러운 경험을 바탕으로 비로소 ‘실질적인’ 독립을 쟁취하였음을 밝힌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은 ‘근대 시기 최초의 주요 탈식민 국가’로 재정의되며, 형식적 독립에서 실질적 독립으로 나아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전형적인 사례로 제시된다. 저자는 미국의 독립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여러 국가가 독립 이후 실질적 자립을 위해 겪었던 도전과 유사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근대 세계화의 위기와 미국의 제국주의화
19세기 후반, 세계화의 두 번째 중대한 위기는 이 책에서 ‘근대 세계화’로 명명한 현상에서 비롯했다. 근대 세계화는 산업화와 국민국가의 출현이라는 두 가지 잘 알려진 과정의 산물이었다. 『미 제국 연구』는 미국 제국의 확장에 앞서 영국과 유럽의 제국들 사이에 나타난 불균등한 발전 과정을 추적한다. 미국사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며 단지 공화국의 부상이라는 서술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 이후 첨예해진 보수주의자와 개혁주의자의 경쟁은 19세기를 관통하며 지속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본질적으로 토지 기반 세력과 도시 기반 세력 간의 대결이었다. 영국은 산업화를 선취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금융·서비스 부문을 갖추게 된 반면,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 대륙 국가들은 여전히 농촌 사회에 머물러 있었다. 근대 세계화로 전환하는 것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생산, 유통, 강제 수단의 비용을 절감하는 기술 발전으로 증가한 세계적 통합과 관련되었다. 자유무역은 영국 제국의 영향력을 공식적 제국을 훨씬 뛰어넘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유럽의 군사-재정 국가들이 자유주의적 헌법 체제와 근대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은 큰 압박을 수반하면서 19세기 말 유럽 국가들을 중대한 위기로 몰아넣었다.
미국의 국가 건설은 프랑스,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 오스트리아, 일본의 국가 재편 그리고 영국이 참정권을 확대하고 제국연방 창설의 타당성을 고민하는 것과 동시에 진행되었다. 『미 제국 연구』는 남북전쟁에서 미국-스페인 전쟁까지 미국의 국가 건설, 산업화, 실질적 독립 달성, 해외 제국 건설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재구성한다. 1870년대 시작된 미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은 갑작스러운 경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으로 악화되었으며, 자본과 노동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고 도시 실업이라는 전례 없는 문제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폭력적 아나키즘을 촉발했다. 동시에 해외 시장 상실과 디플레이션에 따른 농촌의 고통은 대규모 포퓰리즘 운동을 촉진하여 지배적 위치에 있던 공화당의 정치 기반과 정책 방향에 도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공화당이 주도한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은 미국의 통합이 최초로 드러난 극적인 사건이었고, 미국 제국의 역사에서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하와이를 식민지나 해외 영토로 확보했고, 바로 이 순간 미국은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하며 열강으로 부상했다. 미국에서 제국주의는 국가 건설의 일부였다. 제국주의는 다시 위협에 처한 공화국의 통합을 공고히 했으며, 그 과정에서 실질적인 독립의 달성을 기념했다. 내부의 긴장은 진정되었고, 자본주의는 스스로 만들어낸 과잉 상태에서 벗어났다.
미국은 결코 고립된 관찰자가 아니라 열성적인 참여자였다
『미 제국 연구』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채 방치된 주제, 20세기 미국의 해외 영토 통치 문제를 깊이 탐구한다. 그동안 미국의 국가 서사에서는 스페인과의 전쟁이 공화주의 이념의 꾸준한 성장을 잠시 가로막은 ‘거대한 일탈’로 여겨지곤 했다. 여러 세대의 역사가들은 미국의 섬 제국을 주변화하거나 그 실체를 감추려는 경향도 보였다. 이어서 언급되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가 되어서야 새로운 유형의 미국 ‘제국’으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제국주의가 절정에 도달할 때 미국은 결코 고립된 관찰자가 아니라 열성적인 참여자였다. 미국 식민 통치의 역사는 ‘예외적’이 아니라 다른 서구 열강이 형성한 식민 통치 모델에 부합했다.
미국의 섬 제국들은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영국과 프랑스 제국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유형의 식민지를 대표했다. 식민지 행정가들은 직접·간접 통치 방식을 모두 채택했고, 동화와 연합 정책을 시도했다. 또한 동일한 인종적 편견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설탕과 같은 수출 작물의 확장과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정책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영국과 프랑스 같은 선발 제국과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첫째 초당파적 정책의 부재에 따른 민주당과 공화당이 옹호한 상반된 정책들, 둘째 관세정책에서 여전히 워싱턴에서 국내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다양한 로비 단체의 경쟁 수단으로 기능한 점, 셋째 미국 경제에서 섬 제국이 차지하는 미미한 지위 등이다. 그러나 미국 제국이 전개한 궤적은 유럽 제국들과 매우 유사하게 전개되었다.
앤서니 홉킨스는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시기 이미 ‘미국의 세기’가 되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여전히 영국과 그보다 덜하지만 프랑스가 주요 제국주의 국가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대비보다는 지속성 속에서 이해할 것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제조업과 원자재의 교환이라는 식민지 개발의 근간이 지속되었고, 인종적 편견이 식민지 정책을 이끄는 원칙으로 남아 있었으며, 18~19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식민지 영토를 열강끼리 필요에 따라 이양할 가능성을 외교 행위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 번째 단계인 ‘탈식민 세계화’를 초래할 변화의 징후는 전간기에 이미 나타났다. 제1차 세계대전 중과 그 직후 민족주의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1930년대에는 더 중대한 도전이 발생했다.
“미국은 스스로 발에 총을 쏜 셈이다. 정확히 양쪽 모두에 말이다”
세계 대공황으로 서구 제국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식민 통치에 저항하는 새로운 정치 운동이 일어났다. 식민지의 피지배자들은 문명화 사명에 대한 자유주의적 선전을 정치 진보에 대한 요구로 전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더 많은 혼란을 불러왔지만 단기적으로는 탈식민지화를 1950년대 후반까지 늦추는 효과를 줄 뿐이었다.
20세기 중반 탈식민지화는 오늘날 국민국가를 넘어 초국가적, 다민족적 세계를 형성한 세계화의 성격 변화와 결합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새로운 국면은 영토적 제국의 형성이나 유지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50년대에 들어서자 공산품과 원자재를 교환하는 기존의 식민지 교역 패턴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선진국 간의 무역이 선진 중심부와 후진 주변부 간의 무역보다 더 중요해졌다. 중국이나 인도와 같이 아시아의 옛 식민지에서는 제조업 클러스터가 형성되면서 제조품과 자본의 주요 공급원으로 부상했다.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고 식민 지배를 용이하게 했던 백인 우월주의 신념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인종 평등사상과 민족자결이 확산되었다. 식민지의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흐름을 실질적 정치 운동으로 전환했다. 이러한 진전은 새로운 식민지를 확보할 필요성을 줄였을뿐더러 어렵게 했으며, 심지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탈식민 세계화라는 새로운 국면에서 제국들은 새로운 구조에 맞게 전략을 재조정해야 했다. 기존 연구들은 미국이 냉전을 수행하고 서구 열강의 탈식민지화에 기여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 극적인 전환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럽 열강이 제국의 정당성을 상실하며 식민지와의 연결을 해체한 바로 그 시기에 미국은 섬 제국을 탈식민지화했다. 저자는 “세계사의 아이러니는 미국이 섬 영토를 탈식민화한 후에야 제국으로 지칭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한다. 1950년대 중반 제국은 정당성을 잃었다. 미국은 새로운 구조에 맞게 전략을 재조정해야 했다. 미국의 동기는 경제적이라기보다는 전략적이었기 때문에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는 대신 군사기지를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재정 압력을 포함한 ‘소프트 파워’를 행사했다.
미국이 1945년 이후 세계의 구조 변화와 미국의 목적의 측면에서 제국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 영향력은 과거 서구 제국과 유사한 수준의 통제력을 행사하기에 충분했다는 주장에 대해 앤서니 홉킨스는 생각이 다름을 분명히 한다. 1960년대 이후 미국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펼친 개입 정책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미국의 힘이 정점이었을 때의 베트남전쟁은 미국의 막대한 자원을 소진하며 패배를 경험한 재앙이었고, 1990년대 소련 붕괴 후 단극 시대를 구가하던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공은 수많은 인명과 자신을 잃었고, 이 지역을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혼란에 빠뜨렸다. 미국의 권력은 유럽 제국들의 휠씬 긴 역사와 비교할 때 단기적이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회에 대한 통제력 또한 제한적이었다고 본다. 탈식민 세계에서 다른 국가의 시민들은 그 나라가 아무리 작을지라도, 어떤 유인책이 제공되더라도 자신들의 나라가 침략당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현재에 이르렀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공격적인 관세정책이 국제 분업과 자유무역에 기반을 둔 전후 질서를 뒤엎고 있다. 앤서니 홉킨스는 “경제 위기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그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스스로 발에 총을 쏜 셈이다. 정확히 양쪽 모두에 말이다”며 타협과 협력만이 평화 공존을 향한 유일한 길임을 지적한다. 이는 느리고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다.
인물정보
저자(글) 앤서니 G. 홉킨스
앤서니 G. 홉킨스 Anthony Gerald Hopkins
런던대학교 국제관계학 및 아시아아프리카학 대학(SOAS)에서 「라고스의 경제사(An Economic History of Lagos), 1880~1914」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버밍엄대학교,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와 텍사스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케임브리지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아프리카 경제사, 제국사 그리고 글로벌 히스토리 연구를 선도해 온 영국 역사학계의 거장이다.
초기의 대표작 『서아프리카의 경제사(An Economic History of West Africa)』(1973)에 이어 1993년에는 피터 케인과 함께 『영국 제국주의: 혁신과 팽창(British Imperialism: Innovation and Expansion), 1688~1914』과 『영국 제국주의: 위기와 해체(British Imperialism: Crisis and Deconstruction), 1914~1990』를 썼다. 『세계사: 보편과 지역의 상호작용(Global History: Interactions Between the Universal and the Local)(2006), 최근에는 『식민지의 자본주의: 라고스의 아프리카 상인들, 1851~1931(Capitalism in the Colonies: African Merchants in Lagos, 1851~1931)』(2024)을 출간했다.
작가의 말
현재의 일기예보는 국제관계에서 많은 햇빛이 비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예측은 위험하다. 한 가지 가능성은 우리가 장기화된 무역 전쟁과 높아지는 국제적 긴장으로 특징지어지는 긴 겨울의 시작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반면, 트럼프가 일정 부분 양보를 얻어내고 국내 기업 이익집단의 커지는 반대에 직면하면서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그는 야망을 축소해야겠지만, 여전히 승리를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과거를 이해하려고 고용된 사람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예측 능력을 주장하는 다른 이들이 과거 실적을 개선하여 미래에 더 나은 지침을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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