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너머의 기록자

이지수 지음

루미너리북스 2025년 09월 03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지하 3층 깊숙한 곳에서 15년째 근무하는 역무원 박미선의 일상이 서서히 균열나기 시작한다. 어느 화요일 아침, 평소보다 10분 일찍 출근한 그녀가 목격한 것은 벽면을 바라보며 서 있는 흐릿한 윤곽의 중년 남성이었다. 물속에 있는 것처럼 불분명한 그 형체는 미선이 다가가려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이는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자세로 나타나 벽을 응시하다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이 반복되기 시작한다. 노인, 아이, 중년 여성, 청년들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이 광경 앞에서 미선은 자신의 현실감각이 흔들리기 시작함을 느낀다.

그들이 바라보던 벽면에서 미선은 작은 균열을 발견한다. 세로로 길게 뻗은 1센티미터 폭의 이 균열에서는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육안으로만 감지할 수 있는 이 빛은 카메라나 다른 장비로는 포착되지 않는 신비로운 성질을 지니고 있다. 미선이 기록을 시작하자 놀라운 패턴이 드러난다. 흐릿한 형체들은 모두 3번 출구 방향으로 이동하며, 그들이 사라지는 지점은 항상 균열 근처였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흐릿한 사람들의 정체였다. 작년에 실종된 김영숙, 6개월 전 사라진 대학생 최민준, 한 달 전 행방불명된 노인 박종철까지, 이들은 모두 신당역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흔적을 감춘 실종자들이었다.

균열은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 그 빛은 점점 강해진다. 미선이 야간 순찰을 자원해 밤에 목격한 광경은 더욱 경이로웠다. 실종자 김영숙의 형체를 따라간 미선은 그녀가 벽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을 목격한다. 균열에 손을 대자 손가락 끝이 사라지는 기적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이 균열은 단순한 벽의 금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문이었던 것이다. 거울을 이용해 균열 너머를 들여다본 미선과 동료 준호가 본 것은 신당역과 똑같지만 미묘하게 다른 반대편 세계였다. 그곳에서 실종된 사람들은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었고, 그들의 표정은 평온했다. 마치 그곳이야말로 그들이 진정 원하던 곳인 것처럼.

하지만 두 세계 사이의 경계는 점점 무너져가고 있었다. 균열에 오래 노출된 미선과 준호의 윤곽도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미선은 자신도 곧 저쪽 세계로 넘어가게 될 것임을 직감한다. 균열이 완전히 열리면 두 세계가 하나로 합쳐지거나, 이쪽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저쪽으로 넘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과연 어느 쪽이 진짜 현실인지 알 수 있을까. 이지수 작가가 선사하는 이 마법적 현실주의 걸작은 일상 속에 스며든 초현실적 공포와 아름다움을 통해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목차

1. 오전 6시 47분의 관성
2. 10분의 차이가 만든 균열
3. 같은 시간, 같은 장소의 법칙
4. 야간 근무 후유증이라는 진단
5. 다양한 얼굴들의 퍼레이드
6. 벽 속에 숨겨진 비밀
7. 관료적 무관심의 벽
8. 육안으로만 포착되는 신비
9. 시야 끝의 방문자들
10. 체계적 관찰의 시작
11. 동료의 예리한 관찰
12. 기억 속 얼굴의 등장
13. 실종자들의 집합소
14. 은밀한 연결고리의 발견
15. 심야의 추적자
16. 거울 속 세계의 발견
17. 흐려지는 경계선 너머로

작가정보

저자(글) 이지수

이지수. 한국 출생.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