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봄 2
2025년 08월 3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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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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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진정으로 유럽 전역을 아우른 유일한 혁명이었다.”
《몽유병자들》 저자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새로운 주저
《혁명의 봄》은 1차 세계대전 원인에 대한 표준저작이라고 평가받는 《몽유병자들》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신작으로, 짧은 기간에 유럽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간 1848년 혁명의 불길을 쫓는다. 1848년 혁명은 단수의 ‘혁명’이 아니라 복수의 ‘혁명들’이었다. 이를테면 프랑스에서, 독일에서 외따로 발생한 일국적 현상이 아니라 혁명가들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국제적 현상이었다. 혁명가들은 이주, 망명, 여행, 공동 투쟁, 비밀결사 등을 통해 여러 나라와 장소에서 활동하면서 국제 공조를 추구했다. 그런 이유로 1848년 혁명의 무대로 익히 알려진 파리와 베를린뿐 아니라 스위스, 시칠리아, 나폴리, 이탈리아 북부, 로마, 독일연방, 오스트리아, 왈라키아와 몰다비아, 헝가리, 이베리아반도 등지에서도 연쇄적으로 정치적 변혁이 일어났고, 이후 유럽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장소가 되었다. 용케 정변을 피한 곳일지라도 혁명의 강력한 영향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크리스토퍼 클라크는 공시적 역사서술의 대가답게 유럽 전역을 넘나들며,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전개된 전대미문의 격동을 명료한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사회주의·급진주의·자유주의·민족주의 등 다양한 사상과 이를 공유하는 인물·집단이 서로 부딪치고 검증받으면서 어떻게 유럽에 심대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다각도로 그려낸다. 이를 통해 ‘실패한 혁명’이라는 오명 아래 각국 역사에 파편화되어 있었던 혁명들의 수많은 갈래를 하나의 큰 흐름으로 되살려내어 1848년 혁명의 진정한 의미를 통찰한다.
노예제 폐지론자의 날 | 검은 1848년 | 창가에서 손 흔들기 | 자유와 위험 | ‘집시 노예들’의 해방 | 해방의 시간
제7장 엔트로피
방랑하는 주권 | 급진파의 이탈 | 도시와 시골 | 민족 문제 | 스스로 중단한 혁명 | 세기의 열기 속에서
제8장 반혁명
여름의 나폴리 | 제국 반격하다 | 철망이 내려오다 | 아주 작은 장소에서의 반혁명 | 제2물결 | 지정학 | 반혁명의 정신에서 탄생한 현실주의 | 죽은 자들
제9장 1848년 이후
현재는 낯선 나라다 | 전 지구적 1848년 | 새로운 세력 구도 | 순환의 시대 | 물질적 진보 | 혁명 이후의 도시 | 검열에서 홍보로 | 결론
결론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주
도판 출처
제6장 해방
그러나 여성의 해방, 아프리카계 노예의 해방, ‘집시 노예’의 해방, 유대인의 해방이 19세기에 부풀려진 이 단어의 함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서로 고결하게 어우러졌던 것은 결코 아니다. 다양한 집단들의 운명은 특정한 역사와 사회적 논리에 아주 깊이 뿌리박고 있었다. 인종이나 종족의 차이, 성별의 차이, 그리고 유대인의 특수한 곤경─신학, 종말론, 외국인 혐오, 사회적 불안이 뒤섞여 회복력이 강한 형태의 의심과 증오가 생겨났다─은 제각기 차별의 이유였고, 서로 환원되지 않았으며, 서로 함수 관계도 아니었다. 세 종류의 차이는 저마다 근대 유럽 문화에 아주 깊이 자리잡은 토대였기에 원시적인 것, 자연스러운 것, 신이 정한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자유의 문을 열어젖힌 격동은 그에 대항하는 힘들, 예컨대 경쟁하는 듯한 분노, 외국인 혐오, 여성 혐오, 무질서에 대한 우려, 규율하고 통제하려는 열의 등을 속박에서 풀어놓았다. 이를 인정한다고 해서 1848년 사태를 ‘실패’로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이루어진 전진, 특히 해방 옹호 영역에서의 전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당시 해방 과정의 양가성과 변덕스러움은 예나 지금이나 인종적 · 성적 불평등을 놓고 다투는 정치적 행동 영역의 독특한 반발력을 상기시킨다.
제7장 엔트로피
마르크스는 6월의 폭력으로 인해 2월에 시작된 꿈, ‘보통선거’의 기치 아래 단결하는 혁명 전선의 꿈이 이제 끝났다고 말하고 있었다. 6월 사태는 1848년 혁명을 불러오는 데 일조했던 사회적 요구를 보류하는 방법으로만 2월 신화(어떻게 보면 1830년 7월 신화의 신판이었다)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더 중요한 점은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6월의 유혈 사태로 말미암아 2월 신화의 효력이 궁극적으로 핵심 이념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적나라한 폭력의 위협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자유, 재산, 질서의 승리는 하나의 무력이 다른 무력에 거둔 승리였다.
제8장 반혁명
당대인들은 이 결과의 더 깊은 의의를 알아차렸다. 1850년 《노이에 라이니셰 차이퉁》을 위해 쓴 일련의 에세이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반혁명의 연쇄를 되돌아보고 1848년 이후의 정치 세계에서 이데올로기─혁명적인 것이든 반동적인 것이든─의 영향력이 얼마나 약해 보이는지 지적했다. 혁명기의 듣기 좋은 단어들─진보, 결사, 도덕률, 자유, 평등, 형제애, 가족, 공동체─은 그저 낱말에 지나지 않았다. 그 단어들은 실제로 혁명의 성패와 아무런 관련도 없었으니, “진정한 혁명”은 “현대적 생산력과 부르주아적 생산 형태라는 두 요인이 서로 충돌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파벌들끼리 “온갖 언쟁”(즉 정치적 논쟁)을 벌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파벌들 모두가 동일한 (부르주아적) 생산체제 안에 단단히 매여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이 정치적 이념화보다 우세하다는 것은 얼얼한 아이러니의 원천이었다. 부르주아지가 승리한 것은 그들이 통제할 수없는 힘을 불러들인 덕분이라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지적했다. 반혁명의 진짜 어머니는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산업 번영”의 귀환이라고 두 사람은 주장했다.
제9장 1848년 이후
1848년에 동란을 겪은 도시 중 다수는 공적 의식에서 반란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합심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혁명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새로운 헌법이었다. 1848년 이전에 아무런 헌법도 없었던 국가들에서 새 헌법은 의회, 정당, 선거운동, 의회 토의 공개 등 근대 대의정치의 기구들 전체를 동반했다. 그리고 거의 어디서나 헌법의 도래 또는 개정은 체제를 안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 이 모든 국가에서는 정치적 분위기와 양상에 깊은 변화가 나타났다. 프로이센, 피에몬테, 네덜란드의 의회에서는 이해관계에 따른 제휴가 이루어져 융통성 있는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개혁 프로젝트를 위해 서로 협력하곤 했다.
결론
혼란스러웠다고 해도 1848년 혁명들은 심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1848년의 충돌실에 들어간 사람들은 거기서 나올 때 달라져 있었다. 도시 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자유주의자들은 새로운 정치 제도를 통해 헤게모니를 강화했는데, 그런 제도는 대부분 혁명 후에도 살아남았다. 의원 총회, 결사, 그리고 무엇보다 의회 토의를 통해 자유주의자와 급진주의자, 보수주의자는 근대 정치의 기법을 속성으로 수련했다. 보수주의자는 헌법 및 의회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대중 동원의 기법을 활용해 사회적 기반을 넓혔다. 가톨릭교회는 교황청을 중심으로 결집해 일종의 종파 정치를 개시했는데, 그 영향이 훗날 20세기에 들어서까지 이어졌다. 혁명 이후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좌파 정치는 음모와 권력 장악보다 사회적 재화의 공급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대다수 급진주의자는 보통선거를 대하는 양가적 태도를 극복하고 1848년 이후 수십 년 동안 가장 확고한 보통선거 옹호자가 되었다. 자유주의자는 우파와 좌파의 잠재적 동맹과 연합하는 법, 그리고 권력과 자유 사이에서 복잡한 절충점을 찾는 법을 배웠다. 보통선거 옹호의 과정은 특히 가부장제의 젠더 정치에 도전하려는 여성들 사이에서 새로운 네트워크와 사상, 주장을 낳았다. 그리고 관료와 정치가가 1848년의 격동을 이해하고, 그 추진력을 활용하고, 또다른 소요를 예방하는 데 가장 적절한 사상과 기법을 흡수하고자 애쓰는 가운데 정부와 행정부의 면면이 바뀌었다.
“강도와 지리적 범위라는 측면에서 1848년 혁명은 유일무이하다.
… 그것은 진정으로 유럽 전역을 아우른 유일한 혁명이었다.”
《몽유병자들》 저자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새로운 주저
《혁명의 봄》은 1차 세계대전 원인에 대한 표준저작이라고 평가받는 《몽유병자들》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신작으로, 짧은 기간에 유럽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간 1848년 혁명의 불길을 쫓는다. 1848년 혁명은 단수의 ‘혁명’이 아니라 복수의 ‘혁명들’이었다. 이를테면 프랑스에서, 독일에서 외따로 발생한 일국적 현상이 아니라 혁명가들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국제적 현상이었다. 혁명가들은 이주, 망명, 여행, 공동 투쟁, 비밀결사 등을 통해 여러 나라와 장소에서 활동하면서 국제 공조를 추구했다. 그런 이유로 1848년 혁명의 무대로 익히 알려진 파리와 베를린뿐 아니라 스위스, 시칠리아, 나폴리, 이탈리아 북부, 로마, 독일연방, 오스트리아, 왈라키아와 몰다비아, 헝가리, 이베리아반도 등지에서도 연쇄적으로 정치적 변혁이 일어났고, 이후 유럽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장소가 되었다. 용케 정변을 피한 곳일지라도 혁명의 강력한 영향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파급력에도 불구하고 1848년 혁명은 실패한 혁명이라는 오명을 쓴 채 과소평가되었다. 종합적으로 해석되지 못하고 각 민족국가의 역사에 파편화되면서 부정적으로 인식된 탓이다. 그러나 저자 클라크는 1848년 혁명들의 수많은 갈래를 하나의 큰 흐름으로 되살려내면서 이 혁명이 1789년 프랑스 대혁명, 1830년 7월 혁명, 1870년 파리 코뮌, 1917년 러시아 혁명보다도 더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미친, 유일무이한 범유럽적 혁명이라고 재평가한다. 특히 혁명을 불러일으켰던 문제의식과 이 혁명이 가져온 심대한 변화에 주목하면서 1848년 혁명의 진정한 의미를 통찰한다.
시간축과 공간축을 넘나드는 역사서술의 대가 크리스토퍼 클라크
거대하고 복잡한 주제를 선명하게 풀어내다
크리스토퍼 클라크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역사학 흠정교수로, 유럽 대륙 전역을 아우르는 특유의 거시적인 시각으로 근현대사를 조망해오고 있다. 역사가로서 그의 돋보이는 점은 아주 넓은 시야로 수백 년의 시간축과 수천 킬로미터의 공간축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면서 망원경과 돋보기를 적절하고도 능숙하게 겸용한다는 것이다. 《강철왕국 프로이센》에서 프로이센 지방을 중심으로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독일사를 통시적인 시각으로 조망했다면, 《몽유병자들》에서는 19세기 말부터 고조된 유럽의 양극화가 사라예보 암살사건을 계기로 비등점을 넘어 세계대전으로 치달은 단기간의 위기를 공시적인 시각으로 조망했다. 이러한 클라크의 역량은 울프슨 역사상, 독일역사학계 상, 로라섀넌 상 등으로 그 진가가 여러 차례 증명되었다.
《혁명의 봄》에서 다루는 ‘1848년 혁명’은 단기간에 광범한 영역에서 폭발하듯 일어나는 사건들의 동시다발성, 수많은 세력들의 예측 불가능한 상호작용, 원만한 이행이 아닌 급작스러운 분열 등이 특징이다. 이런 주제는 사건들을 선형적 연쇄로 추적하기가 어렵고, 하나의 물줄기처럼 흘러가던 서사가 둑을 터뜨리고 범람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기 때문에, 역사가의 입장에서 서술하기에 매우 힘겨운 과제다. 그럼에도 클라크는 공시적 서술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몽유병자들》에서처럼, 그런 갈래들 각각을 다중 시점으로 따라가면서 전반적인 양상 안에 자리매김하는 대가다운 솜씨를 드러낸다. 또한 인습적인 평가나 비판을 경계하고 행위자들의 역동성과 주체성, 고유성에 주목하면서, 당대의 행위자들이 무엇을 경험했는가, 눈앞의 상황에 어떤 판단과 예측으로 대응했는가, 어떤 변화와 미래를 만들어가려 했는가에 중점을 둠으로써 1848년 혁명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혁명 이전의 배경부터 이후의 파급력까지
1848년 혁명에 대한 총체적 서술
책의 전반부에서는 혁명 이전의 배경을 살핀다. 1장에서는 기근 문제, 노동 운동, 민족주의자들의 국권 회복 요구 등 사회적 분위기를 파악하고, 2장에서는 자유주의, 급진주의, 보수주의를 비롯해 종교, 민족주의, 노예제폐지론 등 다양한 사상을 분석하며, 3장에서는 유럽 각국의 정치·사회·경제적 상황과 동요를 들여다본다.
중반부에서는 혁명들 자체에 집중하면서 혁명의 강력한 힘과 성취뿐만 아니라 실패의 원인이 되는 구조적·사회심리학적 취약성을 종합적으로 밝힌다. 4장에서는 1848년 2월 이탈리아 팔레르모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 걸쳐 혁명의 발발과 정권 교체의 과정을 보여주고, 5장에서는 새롭게 정권을 잡은 혁명 주체들이 의회와 정부를 수립하는 모습과 그 진통을, 6장에서는 당시 억압되어 있었던 아프리카의 노예, 여성, 유대인, 집시의 현실을 추적하며 혁명의 성취와 한계를 가늠한다.
후반부에서는 혁명의 하향곡선을 따라간다. 7장에서는 혁명 세력들 간의 충돌·분열·분화로 인해 혁명의 에너지가 점차 소진되는 과정을 그리며, 8장에서는 이를 틈타 반혁명 세력이 어떻게 반격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9장에서는 1848년 혁명이 유럽 바깥에 끼친 영향과 1848년 이후 유럽에 가져온 변화를 검토한다.
거대한 입자충돌실 같았던 1848년 혁명의 유럽
다양한 사상, 집단, 인물이 뒤엉킨 실험의 장
유럽 전역에 걸친 1848년 혁명은 입자충돌실과 같았다. 각종 사람·집단·사상이 그 입자충돌실로 흘러들어 서로 부딪치면서 깨지거나 엉겨붙었고, 뒤이은 수십 년 동안 새로운 실체들이 대거 등장했다. 사회주의와 민주적 급진주의부터 자유주의, 민족주의, 보수주의까지 다양한 정치 운동과 사상이 이 충돌실에서 검증을 받았고, 그것들 모두가 변화하여 유럽 근대사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또한 대륙 도처에서 정치 및 행정 관행의 변혁, 범유럽적 ‘통치의 혁명’을 가져왔다.
혁명 당시 주체들은 혁명의 목표와 향후 진로라는 쟁점을 놓고 크게 온건파, 급진파, 보수파로 나뉘었다. 온건파는 정권 교체로 이미 혁명을 완수했고 남은 과제는 혁명의 성과를 안정화하는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대체로 자유주의자였던 온건파는 정세가 급변하는 와중에 떠밀리듯이 혁명에 찬성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양가적인 조건부 찬성이었고, 개인의 재산 수준에 따라 자유와 권리에 차등을 두기를 원했으며, 사회 피라미드의 아래 계층들에 두려움을 느껴 ‘정치 개혁’에서 ‘사회 개혁’으로 넘어가는 격동을 어떻게든 틀어막고자 했다. 반면 급진파는 이제 겨우 혁명을 시작했을 뿐이며 불평등을 낳는 사회구조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민주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비롯해 다양한 성분이 섞인 급진파는 남성 보통선거권이라는 형태로 대의권과 참정권을 얻고자 했고, 사적 자유와 권리보다 평등과 분배를 중시했으며, ‘정치 개혁’과 ‘사회 개혁’을 구분하지 않고 오히려 합치려 했다. 보수파는 혁명과 개혁에 반대했고, 기성의 자연적 질서와 위계적 구조를 유지하고 역사의 폭주를 저지하려 했다.
잠깐의 승리, 그러나 곧 찾아온 분열
그리고 실질적인 힘 앞에 무너진 이념들
클라크는 이들 세 파벌의 갈등과 협력·충돌이 혁명의 발단·전개·절정·결말을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수많은 행위자들을 실례로 들어 세밀하게 서술한다. 클라크가 보기에 1848년 혁명의 특이점은 단결 국면에서 갈등 국면으로 이행한 속도와 진폭에 있다. 무장 봉기를 통해 기존 권력을 몰아내고 새롭게 집권한 혁명 초기에 “사람들은 어지러울 정도의 일체감과 만장일치를 느끼고 대양과 같은 집단적 자아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쌓여온 불만을 표출하며 혁명 대의를 위해 결집한 사람들은 이내 사회적 열망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거니와 그 안에 무수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기획·이념·주장은 서로 맞부딪치며 불협화음을 냈다. 혁명가들의 노력은 분산되었고 어느샌가 혁명의 열역학적 죽음이 찾아왔다.
이외에도 1848년에 혁명파가 거둔 일시적인 승리의 이면에는 혁명 연대를 깨뜨릴 수 있는 여러 균열선이 잠재해 있었다. 우선 민족주의는 현재를 고양하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각오를 불러일으켜 연대의 힘으로 작용했지만, 민족의식의 각성을 통해 “잊힌 역사가 기억 속으로 들어오고 민족의 미래로 통하는 문이 열리는 동안 다른 것들은 시야에서 사라”지게 했다. 또다른 균열선으로는 목숨을 걸면서까지 혁명에 동참했으나 별로 얻은 것도 없이 정치 지형에서 배제되고 주변화된 사람들이 있었다. 남성들과 함께 바리케이드를 쌓고 전투에 뛰어든 여성들은 참정권을 얻지 못했다. 동유럽 집시들의 해방은 반혁명 이후에 철회되었다. 노예들은 지지부진한 해방의 과정과 또다른 차별을 영속화하는 제국주의의 논리에 직면했다. 유대인들은 새로운 반유대주의에 시달려야 했다. 농민들은 시골의 곤경에 공감하지 않는 도시민들에게 혁명 열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멸시당했다. 이러한 차별은 곧 반작용을 초래했다.
혁명이 무너진 직접적 원인으로는 무엇보다 클라크가 강조한 지정학적 차원이 있다. 혁명의 도화선이 점화된 곳은 스위스였는데, 스위스의 연방 헌정은 빈 체제의 산물이었다. 이 체제에서는 국가 간의 조약과 각국 국내의 헌정 합의가 서로 뒤얽혀 있었던 까닭에 특정 국가의 헌정 위기가 ‘유럽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져 국제적 대응을 불러왔다. 혁명기의 급진파와 자유주의파는 국경을 넘나들며 놀라운 초국적 네트워크를 구축했지만, 그런 네트워크는 수평적이었기에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수직적 구조와 자원을 결여하고 있었다. 당시의 지정학적 구도에서 반혁명 진영의 ‘수직파’ 세력들이 국제적으로 힘을 결집했을 때, 혁명 진영의 ‘수평파’ 세력들이 패하는 것은 불가피한 귀결이었다. 결국 국내 관계와 국제 관계에서 현실주의로의 방향 전환을 가져온 혁명의 결말을 클라크는 이렇게 요약한다. “탑이 광장을 이겼다. 위계제가 네트워크를 물리쳤다. 권력이 이념과 논변에 승리했다.”
1848년 혁명 이후 유럽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1848년에 시작된 혁명은 2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그 힘을 잃었지만, 클라크는 혁명 이후 유럽이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장소가 되었다고 강조한다. 혁명으로 권력을 잡았을 당시 자유주의자들이 세운 제도들은 이후에도 대부분 살아남았고, 보수주의자는 헌법 및 의회를 받아들이고 공존하는 법을 배웠다. 즉 현대적 대의정치로 나아가는 중요한 진전을 이루어낸 것이다.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서로 절충하며 상품, 대중교통, 화폐, 법규, 정교한 치안 조치 등을 이용해 새로운 자본주의적 질서를 세워나갔다. 하지만 이러한 절충은, 혁명을 가능케 했던 서민층을 계속 정치적으로 배제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민주적 정치를 주변화하면서 작동했다. 사회주의자들은 혁명 진압 이후 개혁적 다수파와 혁명적 소수파로 분열되었다. 특히 힘을 내세운 반혁명의 강력함을 목격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혁명기의 ‘진보’, ‘평등’ 같은 이념의 무력함을 지적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게 된다.
클라크는 혁명이 지정학적으로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한다. 1859~1871년 이탈리아와 독일 민족국가의 등장은 1848년 혁명의 결과였다. 혁명의 영향은 두 국가의 판이한 정치 구조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독일에서는 1848년 혁명 이후 연방의 대다수 국가들이 근대화 국가 건설 프로젝트에 착수했고, 그 결과 독일 통일 전쟁들로부터 등장한 제국은 단일 국가가 아니라 국가들이 저마다 주권과 의회를 보유하는 ‘제후들의 동맹’ 형태가 되었다.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자유주의 엘리트층을 받아들이고 경제적으로 앞선 북부의 피에몬테-샤르데냐 왕국이 그렇지 못한 남부의 교황령과 양시칠리아 왕국을 흡수하는 형태로 통일이 이루어졌다. 이 불편한 해결책이 낳은 새로운 긴장과 비대칭의 여파는 이탈리아에서 오늘날까지도 감지되고 있다. 루마니아 민족국가가 탄생한 것, 크림전쟁 발발 등 러시아와 서유럽의 분열이 심화된 것도 1848년 혁명의 여파였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
1848년 유럽의 격동에서 오늘을 읽다
“사회 불안정에 대한 매우 만연한 의식과 사회 결속력의 약화에 대한 집착은 1840년대의 암울한 진단을 떠올리게 한다. … 혁명이 다가온다면 그것은 1848년의 혁명과 비슷해 보일 것이다. 다시 말해 형편없이 계획된 혁명, 분산된 혁명, 조각보 같은 혁명, 모순으로 가득한 혁명으로 보일 것이다. 역사가라면 무릇 과거의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려는 유혹에 저항해야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쓰면서 1848년의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그들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겠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 〈결론〉에서
클라크는 1848년 혁명가들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역설한다. 노동, 불평등, 차별, 의회 안의 느린 정치와 의회 밖의 빠른 정치, 자유주의적 제도의 기능성, 사회 정의의 요구 등과 관련해 1848년 당시 혁명가들이 노동할 권리, 노동과 자본의 균형, 노동하는 빈민층의 곤경, 불평등의 심화, 도시의 사회적 위기, 인종과 젠더 평등과 관련해 제기했던 문제들이 그렇다. 그들이 직면했던 구조적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시위, 트위터, 플래시 몹, 의회 밖 운동의 빠른 정치와 의회의 느린 정치를 어떻게 동기화할 것인가? 폭력이 정당화된다면 어떤 정치 형태일 때 그러한가? 어떻게 자유주의적 제도의 기능성을 최적화하면서도 사회 정의의 요구, 또는 기후 변화의 도전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심대하지만 잠재적으로 인기 없는 변화의 요구를 수용할 것인가?
특히 1848년과 오늘날은 모두 낡은 것은 사라져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자리잡지 못한 이행기라는 점에서 닮았다. 고도 산업화의 시대, 지속적 성장으로의 도약, 대규모 정당정치 조직의 출현, 민족국가와 복지국가의 우세, 세속화의 시대, 대형 신문과 전국 텔레비전 시청자의 출현 등, 우리가 ‘근대성’이라고 부르던 것들은 이제 유동하면서 우리에 대한 지배력을 점차 잃고 있다. 기존의 우파 대 좌파 구도는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트럼프 집회,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 극우 음모론, 백신 반대 시위와 같은 새로운 운동들이 낳은 당혹감은 이런 전환의 징후다.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에서는 제멋대로 구는 폭도가 의사당에 난입했고, (이번에는 ‘좌파’가 아니라 ‘우파’가) 선거 절차를 속임수이자 거짓말로 치부했다. 이 모든 행위는 1848년의 동란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국내의 상황과도 유사하다. 그런 점에서 수차례 혁명을 기점으로 체제가 바뀌어온 굴곡의 한국 현대사를 겪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크리스토퍼 클라크
케임브리지대학 역사학 흠정교수. 유럽 근현대사, 정치사상, 지성사를 연구하며 독일사를 중심으로 시작해 유럽 전역으로 연구 범위를 확장해왔다. 시드니대학,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수학했고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학술원 회원이며 2015년 영독 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훈작사 작위를 받았고, 2019년 독일 최고의 훈장인 푸르 르 메리트 민간훈장을 받았다. 그외에도 울프슨 역사상, 독일역사학계 상, 로라섀넌 상, 퀸즐랜드 문학상, 뉴사우스웨일스 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어로 번역 소개된 책으로 1차 세계대전의 원인에 대한 표준저작으로 평가받는 대표작 《몽유병자들》과 프로이센과 독일의 역사를 다룬 《강철왕국 프로이센》이 있고, 그밖에 《카이저 빌헬름 2세: 권좌의 삶(Kaiser Wilhelm II: A Life in Power)》, 《개종의 정치: 프로이센의 선교적 개신교와 유대인, 1728-1941(The Politics of Conversion: Missionary Protestantism and the Jews in Prussia, 1728-1941)》, 《문화 전쟁: 19세기 유럽의 세속-가톨릭 분쟁(Culture Wars: Secular-Catholic Conflict in Nineteenth-Century Europe)》(공저) 등이 있다.
번역 이재만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고, 역사를 중심으로 인문 분야의 번역에 주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몽유병자들》, 《피와 폐허》, 《제3제국사》, 《옥스퍼드 세계사》, 《번역》, 《백인의 취약성》, 《포퓰리즘》, 《전쟁과 평화》, 《에릭 홉스봄 평전》(공역), 《문명과 전쟁》(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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