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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만화 트리비아

전쟁을 겪고 독재를 지나 계엄의 늪을 건넌 만화의 역사
서찬휘 지음
생각비행

2025년 08월 15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8월 0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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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91.01MB)   |  약 17.2만 자
ISBN 9791192745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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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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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하게 되살아난 기록, 만화에 이런 일이!”

《키워드 오덕학》,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덕립선언서》 등으로 한국의 만화와 서브컬처를 기록해 온 만화비평가 서찬휘가 1945년 해방기부터 2025년 현재까지 대략 80년의 한국 만화 역사를 정리했다. 《한국 만화 트리비아》는 전쟁을 겪고 독재를 지나 계엄의 늪을 건넌 만화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작가는 한국 만화의 여러 시기와 사건을 통사적으로 서술하기보다는 저널이 다루듯 미시적으로 토막 내고 각기 떨어져 있는 사건 같지만 연결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묶어냈다. 객관을 가장한 딱딱한 박제가 아니라 생생한 느낌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전쟁, 독재, 계엄과 같은 특수한 사회 현실 속에서 한국 만화가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투쟁해 왔는지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들어가며

만화의 날이 11월 3일인 까닭은?
-오프라인 만화 시장을 박살 낸 청소년보호법 사태

한국의 대표 만화 출판사가 생명공학회사가 된 사연
-만화계 대표 출판사, 우회상장에 활용되다

만화가의 집 주소를 공개하던 때가 있었다?
-터미네이터 전화번호부 뒤지던 시절

일본 만화가, 한국을 만화로 공격하다
-야마노 샤린의《만화 혐한류》

만화 보고 자살했으니 만화를 금지하자?
-정병섭 자살 사건과 만화 화형식, 그리고 전체주의 사회의 망령

만화가들이 자선공연을 하다
-러브콘서툰

독자들이 직접 만화상을 만들다
-독자만화대상

남자가, 순정만화를 그렸다고?
-성별 이분법적인 장르 규정의 편견을 넘어

정치인이 되고자 한 만화가
-현실 정치 속에서 역할을 하려 한 사람들

한국 만화의 가치 투쟁
-공짜 취급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난한 싸움

그가 진짜로 본 것은 ‘등짝’이 아니야
-초월 번역과 오역 사이의 어딘가

전쟁이 만화에 끼치는 영향들
-해방공간의 프로파간다 만화와 피난지의 떼기 만화, 전방의 삐라 만화

만화방 주인,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다?
-〈7번 방의 선물〉의 소재가 된 사건

일본에서 만화화한 한국 TV 드라마들?
-감회가 남다른 한류의 영향

법안명에 만화 사이트 이름이 오르다?
레진코믹스 차단과 레진코믹스법 발의에 얽힌 설왕설래

웹툰판 카우치 사건: 고교생 하나 때문에 네이버가 넙죽 엎드린 날
-귤라임의 아동 성폭행 만화, 네이버 웹툰을 없앨 뻔하다

네이버 도전만화, 동성애 혐오 프로파간다 창구로 활용되다
-〈동성애 옹호 교과서의 문제점을 알아보자〉가 지닌 문제

독재자의 후손은 만화를 좋아해?
-《보물섬》의 박근혜와 시공사의 전재국

만화와 연을 맺은 정치인들
-가연 또는 악연

떠난 만화가에게 헌정된 단 한 번의 뮤지컬
-고우영 1주기에 펼쳐진 막내아들의 헌정 무대

50년을 이어온 만화가 친목 모임이 있다
-낚시 모임 심수회

〈고바우 영감〉조차 박물관 건립이 무산되는 나라
-시민의 승리 아닌 문화의 패배

출판사가 직접 영상 만화에 도전하다?
-대원씨아이의 튜브툰

그때는 환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구글 인앱결제 강제, 독과점 콘텐츠 마켓의 통행세 요구와 그 파장

광고 스타가 된 만화가
-당대 아이콘의 증명

윤석열 시대의 시작과 끝, 만화와 덕질이 만든 장면들
-〈윤석열차〉, 윤석열 퇴진 시위 속 깃발과 응원봉 그리고 이준석의 AI 생성 만화 홍보물

P. 005
나는 한국 만화의 한 시기에 스스로 사관이자 전기수의 역할을 해 왔다고 감히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입장에서 한 시기의 내가 ‘여기서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생각한 이야기 중 중요한 장면 몇 가지를 꼽아 본 것이다. 책에서는 서술자의 역할에 충실했지만, 상당수 건에서는 내가 관찰자 또는 발언자로 끼어 있기도 하다. 원고를 쓰면서 내가 그 시간을 관망자로 흘려보내지는 않았노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곤 했다.

P. 022
1997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3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기간 중이었던 8월 21일 18시 30분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SICAF ’97 만화인의 밤’에서 범만화인 비상대책위원회가 11월 3일을 ‘만화의 날’로 선포했다. 이날은 한 해 전 여의도에서 ‘만화 심의 철폐를 위한 범만화인 결의대회’가 열린 날이다.

P. 048
한국은 윤석열 정부기에 정치가 굴종적으로 후퇴하였으나 대중문화 면에서는 일본 대중문화에 비교적 너그러워지고 있다. 그건 일본 대중문화가 우월해서거나 친일파가 늘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단순하게 잡아먹힐 일이 없거니와 K-POP과 영화 등 일본 쪽에 비해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적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P. 148
삐라에 만화가 적극적으로 쓰인 시기는 한국전쟁 때로, 해방공간에서는 특히 이념성을 강하게 띤 신문들에서 만화를 이용해 대중 선전전을 펼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방공간의 혼란을 비집고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인 정치결사만 해도 1945년 10월경 100여 개에 달했고, 3상 회의 이후 대립 구도가 격화할수록 유리한 쪽으로 대중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는 강박이 강해졌기에, 그 수단으로 만화는 매우 유용한 도구였다.

P. 258
《보물섬》 창간 자체가 사실 거대한 특혜였다. 창간 시점을 보면 1982년, 다시 말해 1979년에 박정희가 부하인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은 뒤 전두환이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틀어쥔 채 이듬해인 1980년 광주에서 학살을 벌이고 난 뒤다. 박정희에 이어 절대 권력을 틀어쥔 전두환은 1980년 언론 통폐합이라는 조처를 단행해 잡지사, 방송사, 신문사 들에 그야말로 된서리를 내렸다. 박정희 시기부터 만화는 한없이 ‘불량한 것’이어서 대여용 외에 판매용 단행본으로는 나오지 못하던 터였고, 만화를 부록으로 제공하는 어린이 교양잡지 외에 만화 전문 잡지가 나올 수 없는 시절이었다.

P. 390
시간이 가면 갈수록 너나 할 것 없이 일사불란하게 박자를 맞추는 수많은 깃발, 그리고 사이사이 광장을 뒤흔든 구호들은 그 자체로 지난 시기 독재자들에게 억울하게 쓰러져 간 이들을 향한 해원굿이자 현재와 미래가 독재자와 그 찬동자들의 것일 수 없음을 선언하는 명확한 메시지였다. 물론 이 시기의 메시지는 비단 윤석열만을 향하지 않았다. 젊은 페미니스트들과 성 소수자들이 중심이 되어 발산한 차별 반대와 다양성 존중에 대한 목소리는 그간 우리 사회가 놓쳐 왔던 지점들을 날카롭게 겨냥하고 있었다. 이 시기의 깃발과 응원봉, 그리고 K-POP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에 자리한 덕질 문화를 생생히 증명하고 있다는 점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전쟁이 만화에 끼친 영향들”

전쟁은 사람의 인생과 사고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만화도 예외는 아니다. 일상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만화가 전쟁을 만나면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1945년 해방기에 만화는 헤게모니 쟁탈전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유용하게 활용된 도구였다.
당대 복잡한 현실 속에서 우리네 상황을 비교적 일상의 감각으로 포착한 작가는 4컷 만화 〈코주부〉를 그린 김용환이다. 그는 한국의 완전한 독립, 분단에 대한 우려, 언론의 자유를 틀어막으려 드는 미군정에 대한 비판, 갈라진 여론에 대한 우려, 미소공동위원회가 잘 굴러가게끔 좌우 갈등을 다스리고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수준 높은 만화로 표현했다.
1950년 한국전쟁 시기에 만화가들은 이데올로기 선전에 동원되기 일쑤였다. 삐라와 같은 선전용 유인물에 쓰인 만화는 상대편 체제를 비난하며 ‘우리 편으로 넘어오라’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삐라는 심리전의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동원된 물량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한국전쟁기에 항공기와 대포 따위로 살포된 삐라는 남북 양쪽에서 28억 장에 달한다. 40억 장으로 추산하는 경우도 있으나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당시 미 육군부장관이었던 프랭크 페이스(Frank Pace Jr.)가 남긴 “적을 삐라로 파묻어라(Bury the enemy in paper)”라는 말은 이 시기의 혼란함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유엔군은 인쇄한 삐라를 대량으로 살포한 반면 북한군은 펜글씨로 만화 형식 삐라를 제작해야 했기에 대량으로 살포하기 어려웠다. 형태는 달랐지만 만화가 지닌 전달력을 선전 수단으로 활용한 것은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였다. 자기네 체제에 있으면 행복하지만 반대편에 속하면 불행하다는 것을 시각적 대비로 알기 쉽게 보여 준다는 점이 삐라 만화에서 주목할 대목이다. 대한민국 국방부 정훈국은 군 미술대와 종군화가단을 운영했다. 전쟁 시기 《만화승리》라는 이름의 만화 신문을 발행하여 전후방에 배포했다. 북한도 시사만화 잡지 《화살》을 발행해 선전전에 활용했다.
전시 상황으로 인생이 꼬인 만화가도 많았다. 서로 죽고 죽이는 위치에 선 남북한 양쪽 중 한편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 것이다. 처음에는 반공만화를 그리다가 인민군이 밀고 들어올 때 도망치지 못해 인민군 부역자 취급을 받아 신변이 위험해진 만화가도 있었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고바우 영감〉의 작가 김성환도 한국전쟁기에 ‘고바우’를 구상했다. 쌀이 떨어져 서울에서 개성 친지 댁으로 곡식을 구하러 다녀오던 길에 다리가 아파 잠시 머문 곳에서 잠 못 이루다 떠올린 캐릭터가 고바우였다. 김성환은 인민군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집 다락방에 숨어 지내던 시기에 이를 구체화했다고 한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만화를 찾았다. 이 시기 길거리 노점에서 만화를 늘어놓고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한국 만화사의 초반을 서글프게 장식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만화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도 했다. 베끼기로 출발한 노점의 만화는 점차 창작 이야기만화로 진화했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문방구 만화와 만화방(대본소) 만화 영업의 원형이 된다. 전쟁 후 1960년대 이후를 주름잡은 만화방 중심의 만화 유통의 시작점이 부산 피난지 만화였다는 사실은 전쟁이 남긴 뼈아픈 현실이다.


“독재의 강을 지난 만화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11월 3일은 만화의 날이다. 공교롭게도 일본 또한 11월 3일이 만화의 날이지만 연원은 다르다. 일본만화가협회가 정한 만화의 날은 일본에서 ‘만화의 신’으로 추앙받는 데즈카 오사무가 태어난 날이라는 의미가 있다. 반면 우리네 만화의 날은 만화가들이 국가 권력의 탄압에 항거해 거리로 몰려나온 날이라는 점에서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996년 9월 5일 문화체육부는〈청소년 보호를 위한 유해 매체물 규제 등에 관한 법률(안)〉을 추진했다. 당시 정부와 여당이던 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만화가와 관련 단체들의 항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법 제정을 추진했다. 이 법은 1997년 3월 7일 국회 단일안 제안 절차를 거쳐 ‘청소년보호법’, 통칭 ‘청보법’이라는 이름으로 제정되었다. 발효일인 1997년 7월 1일부터 만화계에 광풍이 몰아쳤다. 언론에서 학교 폭력 피해자가 만화방에서 피해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부각했고, 7월 2일 신한국당 대표가 학교 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7월 4일 내무부 합동단속대책이 발표되자 7월 5일부터 소매상, 만화방, 도서대여점 등이 압수수색 영장 없이 단속을 당했다. 7월 8일엔 김영삼 대통령이 학원폭력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7월 9일엔 만화방 업자와 출판 업자 142명이 불량만화 유통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청소년보호법으로 벌어진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이현세 재판, 이른바 〈천국의 신화〉 사태다. 만화가 이현세가 한국의 역사를 상고사에서부터 그려내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천국의 신화〉가 졸지에 음란물로 낙인찍힌 것이다. 이 사건은 5년 만인 2003년 1월 24일에야 법원이 검찰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작가의 승리로 끝났다. 미성년자보호법 불량만화 조항이 위헌으로 판결 나면서 근거 조항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비록 이현세는 이겼지만 많은 상처를 입었고, 한국 만화 또한 자체적인 동력을 크게 상실하고 말았다.
느닷없이 만화가 공공의 적이 된 이유는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 만화가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중학생들이 셀프 포르노 비디오 〈빨간 마후라〉를 만든 사건도 군불을 때는 데 한몫했다. 정치권은 폭력적이고 음란한 문화를 노출하는 일본 만화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를 앞세우며 만화계를 탄압했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이유 말고, 내부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해당 시기는 김영삼 정권이 말기로 접어들던 때다. 안 그래도 개발독재 시기부터 쌓여 온 모순과 불안 요소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 시작한 김영삼 정부는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대구 도시철도 가스폭발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KAL 여객기 괌 추락 사고 등의 인재에 시달려야 했다. 금융 위기도 경제 상황에 빨간불을 켜고 있었다. 집권 초반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실시로 얻은 김영삼의 인기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고, 그가 정치적 야합이라는 욕을 먹으면서까지 정권 창출의 틀로 선택한 당은 독재 유전자를 고스란히 유지하던 곳이었다.
한국 만화의 역사는 독재 정권의 탄압을 견딘 기록이기도 하다. 2013년 개봉해 12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7번 방의 선물〉은 박정희 정권이 만화를 탄압하는 계기가 된 ‘춘천 강간 살인 조작 사건’과 연관이 있다. 경찰청장 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살인범으로 몰린 주인공의 이야기가 1972년 9월 27일 발생한 ‘춘천 역전 파출소장 딸 살해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만화가게 주인 정원섭의 실제 이야기에서 따온 소재이기 때문이다.
1972년 10월 17일은 국회 해산과 헌법 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박정희의 10월 유신이 선포된 날이었다. 박정희가 그에 앞서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으라고 명령하자 당시 내무부 장관 김현옥이 10일 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문책하겠다고 지시하는 내용이 언론 기사로 뜬다. 궁지에 몰린 경찰들은 만화방 종업원 등을 닦달하여 허위 증언을 끌어내고, 고문으로 정원섭에게 거짓 자백을 받아 사건을 해결하고 만다. 박정희는 이 사건 해결에 왜 그토록 집착한 것일까? 박정희는 10월 유신을 앞두고 1971년 12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헌법을 뒤엎고 반대파를 쓸어내 종신 집권을 하기 위한 밑 준비를 진행해 놓은 상황이었다. 1972년 9월은 유신체제가 들어설 막바지였다.
당시 박정희는 마음이 급했다. 자신이 구축한 독재체제 속에서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했지만 그 이면의 문제점이 하나둘 터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상황이 불안했고 박정희의 리더십 또한 흔들리고 있었다. ‘춘천 역전 파출소장 딸 살해 사건’은 권력을 다잡을 필요가 있었던 박정희의 10월 유신 계획 직전에 민심이 불안으로 흔들릴 가능성을 내포한 사건이었다. 이를 빌미로 박정희 정권은 만화계를 옥죄며 사회적 불안 요소를 척결하려 했다. 10월 유신 이후 한국 만화는 극도로 심한 규제를 받았다. 만화는 한없이 불량한 것이어서 대여용 외에 판매용 단행본으로는 나오지도 못하던 터였고, 만화를 부록으로 제공하는 어린이 교양잡지 외에 만화 전문 잡지가 나올 수 없는 엄혹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무리수를 두던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지자 1980년 정권을 잡은 전두환 일파는 이전 정권의 기조를 이어받아 9월 5일 ‘만화 정화 방안’을 내놓았다. 이로 인해 만화계는 엄청난 족쇄에 시달려야 했으나 육영수의 딸이자 훗날 제18대 대통령이 되는 박근혜는 만화잡지 《보물섬》의 발행인으로서 엄청난 혜택을 누렸다. 독재자 전두환의 아들 전재국이 출판사를 설립해 만화잡지를 출간하며 만화와 연을 맺기도 하고 신촌에 리브로 코믹이라는 브랜드로 만화 전문 매장을 연 것도 이 시기였다.
독재의 강을 어렵게 건넌 만화계가 문민정부 시절 표현의 자유를 위축할 ‘청소년보호법’ 제정에 맞서 투쟁한 날을 기려 11월 3일을 ‘만화의 날’로 선포한 것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만화가 현실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명확하게 깨달은 만화가들의 단결된 행동은 이후 만화진흥법 제정과 더불어 독재 성향의 정권이 준동할 때마다 촛불을 든 시민사회에 조응해 사회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만화가들의 등장에도 영향을 끼쳤다.


“계엄의 늪, 그 시작과 끝”

2025년 6월 3일은 대한민국의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원래대로라면 2027년까지 이어졌어야 할 제20대 대통령 윤석열의 임기는, 그가 2024년 12월 3일 22시 28분 군을 동원한 불법 비상계엄을 시도했다가 6시간 만에 시민과 국회에 의해 저지당하고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선고를 받음으로써 종말을 맞았다.
윤석열 독재의 전조를 강하게 드리운 장면은 〈윤석열차〉 엄중 경고 사건이다. 〈윤석열차〉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2022년 7~8월 진행한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카툰 부문 금상을 받고 전시된 한 고등학생의 작품이다. 우파적 성향을 지닌 이들로부터 이런저런 문제 제기가 이뤄지자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엄중 경고’를 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윤석열차〉 엄중 경고가 일으킨 여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3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으로 갈 국고보조금을 대폭 삭감했을 뿐 아니라 2024년에 또다시 예산을 깎았다. 〈윤석열차〉는 고등학생이 그린 만화 한 편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를 참지 못하고 집요하게 괴롭히는 권력자의 모습을 가감 없이 노출했다는 점에서 훗날 일어날 일들의 예고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임기 시작 3년 차인 2024년의 겨울, 실책과 실정을 거듭하던 윤석열은 본인과 아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한 방에 뒤집을 카드로 비상계엄을 선택했다. 시민들은 12월 엄혹한 추위에 아랑곳없이 여의도, 광화문,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남태령, 그 외 전국 주요 도시에서 윤석열을 체포하고 내란을 척결하라고 외쳤다. 현실적인 공포 앞에서도 시민들은 일말의 흥과 재미를 놓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각자 좋아하는 아이돌의 표식과 색상이 빛나는 응원봉을 들고나왔다. 집회를 주관한 이들은 세대를 가로질러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여든 젊은 층의 구미에 맞는 노래를 대거 집회 플레이리스트에 올렸다. 이에 부응한 젊은이들은 형형색색으로 꺼질 줄 모르는 응원봉의 물결을 연출하며 급기야 광장을 거대한 K-POP 공연장으로 변모시켰다.
겨우내 이어진 윤석열 퇴진 집회에는 각양각색의 깃발이 모여 장관을 이루었다. ‘전국 공주 모임, 전국거북목협회, 원고하다 뛰쳐나온 로판 작가 모임회, 전국 얼죽아 협회, 제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수능 끝나면 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수능 끝난 고3영역 탄핵형’ 같은 이름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이나 취향이 곳곳에 묻어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 와중에 ‘불꽃남자 정대만’ 깃발이 눈길을 끌었다. 인기 농구 만화 〈슬램덩크〉의 주연 중 한 명을 응원하는 마음이 담긴 이 깃발은 한 시기를 만화와 함께했던 이들의 집단적 기억과 현재의 자기 의지를 연결하는 중요한 촉매로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정대만 깃발이 등장하자 이에 질세라 송태섭과 서태웅의 깃발도 등장했다.
한국의 만화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막을 뿐 아니라 정권을 향해 비판 목소리를 내는 행위를 ‘체제전복’으로 규정하는 윤석열 정권의 행태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만화가들은 정부가 독재적인 면모를 드러낼 때마다 릴레이 만화로, 만화 캐릭터 성명서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앞장서 온 바 있다. 〈윤석열차〉 사건 때 한국만화가협회와 한국웹툰작가협회는 2022년 10월 7일 성명을 냈다. 우리만화연대, 한국카툰협회 등 7개 단체도 같은 날 별도의 성명서를 냈다. 그 이틀 전인 10월 5일 전국시사만화협회는 〈‘윤석열차’ 외압 논란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거기에는 ‘자유!’라는 글자가 33회 반복된다. 이는 윤석열이 2022년 8월 15일 광복절 축사를 하는 13분 동안 ‘자유’를 33번 반복한 사실을 패러디한 것으로, 자유를 침해한 자에 대한 그야말로 통렬한 비판이었다.
비상계엄 때도 만화인들은 목소리를 냈다. 2024년 12월 9일 ‘윤석열 내란사태와 탄핵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만화인 일동’ 명의로 시국 선언문을 발표했다. 만화 관련 협회와 단체 대부분이라 할 17곳이 한데 뭉쳐 낸 이 성명서에 원로작가들은 물론 학계, 평론가, 산업계 등 566명이 연명함으로써 만화계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했다.
2024년 12월 3일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윤석열의 불법적 비상계엄 사태는 이 책이 다룬 과거사 속 독재적 맥락을 단숨에 현재화하는 역할을 했다. 한국의 현대사를 미시적으로 관통하며 박제되다시피 자리해 온 한국 만화사를 당시 대통령이 현재 우리의 이야기로 생생하게 되살려낸 모양새다. 추가한 마지막 꼭지를 2024년 말 2025년 초 춥디추운 광장에 모여 함께 민주주의 회복을 외친 이들에게 바친다.

작가정보

저자(글) 서찬휘

본명은 임채진. 자생한 한국산 2세대 오덕이자 만화 칼럼니스트로 만화와 그 주변 문화들의 흐름과 연결고리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탐색하고 정리해 왔다. 미시적 관점에서 바라본 만화계 바깥의 만화사와 만화 데이터 인문학을 화두로 삼고 있다. 1998년부터 만화 정보 커뮤니티 《만화인》을 운영했고 《한겨레》, 《일요신문》, 《인천일보》, 《국방일보》 등 다양한 매체에서 만화 칼럼과 평론, 리뷰를 썼다.
2008년부터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상지대학교, 백석문화대학교 등에 출강하며 만화 트렌드와 비평, 인문학적인 관점을 가르쳤다. 2020년 이후 아내와 함께 《베이비뉴스》에 〈PAN&AL’s 난임일기〉(〈임신하기 어렵네〉로 출간), 〈작정해도 어렵네〉를 연재하는 등 만화창작자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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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만화 트리비아
    전쟁을 겪고 독재를 지나 계엄의 늪을 건넌 만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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