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에 지는 달
2025년 06월 27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1월 06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22.66MB) | 약 8.7만 자
- ISBN 9791174470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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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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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에 지는 달 011
감밭댁 집문서 067
기둥을 갉아 먹은 쥐 089
족쇄 찬 건물주 113
뜨거운 어느 하루 143
돌 꽃 피다 161
생일 185
감밭댁 집문서
1. 달을 담는 여인
감밭 댁 속바지에는 주머니가 하나씩 달려있다. 속바지나 팬티를 사면, 입기 전에 촘촘히 박음질해서 주머니를 만든다. 그것은 비상금이나 비밀문서를 간직하는 은밀한 장소다. 주머니 입구는 옷핀으로 꼭 집어 단단히 마무리했다.
주머니 속에 있는 비상금을 꺼낼 때는 시장통이나 읍내 차부고 가릴 것 없이 우선 치마를 훌렁 걷어 올린다. 바지는 아래로 반은 내려야 속바지 속이나 팬티에 만들어놓은 주머니 입구에 옷핀의 고리를 딴다.
때가 꼬질꼬질 묻은 손수건으로 꼭꼭 싸맨 물건을 양파껍질 벗기듯이 벗기고 나면 누런 봉투 속에 넣어 간직한 돈을 꺼냈다.
주머니 속에는 수시로 들어갔다 나오는 비상금도 있지만 들어갈 때는 골판지처럼 빳빳했던 종이가 오랜 세월 동안 감밭 댁 손길에 짓물러서 창호지처럼 보들보들해진 부적 같은 문서가 있다.
싸락눈이 언제부터 내렸는지 제법 쌓여서 걸을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난다. 자정이 지나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싸리문을 닫기 위해 걸음걸음 걸을 때마다 자욱자욱 발자국이 생긴다.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이런 눈길은 미끄럽지 않아서 좋았다.
사방이 논인 들판 한가운데 사막 속에 신기루 같은 동네는 논농사만 짓는 부자 동네다. 감밭 댁이 시집올 때는 이 마을에서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시댁은 논이 50마지기 정도로 마을에서도 부자 축에 들어가는 집안이다.
그러나 무순 영문인지 슬하에 아들도 딸도 없어서 먼 친척 아들인 감밭 댁 남편을 양아들로 호적에 올리고 장가를 들인 것이다.
양아들은 키가 훤칠하게 크고 미남형에 말솜씨도 좋았다. 그러나 감밭댁은 야무지게는 생겼지만, 키가 작아서 오종종하고 학교라는 곳은 문 앞에도 못 가 봐서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누가 봐도 기우는 혼사였다.
“양아들은 양부모 재산 지키기 어렵고, 데릴사위는 처가 재산 지키기 어렵다”라는 속설이 있어서 근동에 아는 사람들과의 혼사는 이루어질 것 같다가는 깨지고, 사주단지가 오고 가고 혼사 날까지 잡아놓고 깨지기도 했다. 이런 일을 감밭 댁은 시집오고 한참을 지나고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다가 우연히 알았다. 안다고 해도 되돌릴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렇게 할 힘도, 용기 또한 없는 일이다. 시골도 시골 나름이라 산골에서 밭농사를 많이 짓는 곳은 계절 상관없이 할 일이 많지만, 논농사만 짓는 시골은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농한기라 한가하다.
감밭 댁은 요즘 집을 나가면 밤을 새우고 새벽에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시부모님 앞에서 주눅이 들고 안절부절못했다.
점심을 먹고 나간 남편은 저녁을 해서 시부모님과 먹고 천천히 설거지했다. 겨울밤은 길기도 하다. 시부모님 방에 군불을 때고 나서도 돌아오지 않는다.
땅거미가 지고 가물가물 들판 끝에 섬처럼 보이던 선장장터도 어두움이 덮어버렸다. 시부모님 방이 아랫방이고, 감밭 댁 방은 윗방이라 보통 주고받는 말소리는 꼭 들으려고 노력 같은 걸 안 해도 자연스럽게 들린다.
시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기 전에“쿵”하고 콧방귀를 먼저 뀐다.
“쿵, 저 뭐시야, 그, 그러니 깨, 쿵, 땅문서 남은 거 잘 감춰” 간간이 목구멍에서 가래 끓는 소리와 섞여서 조용조용 시어머니에게 당부하는 말 같기도 하고, 확인하여 묻는 말 같기도 한 소리가 들린다.
감밭 댁 남편은 지난해 초겨울에도 가을 추수가 끝나고 집을 나가면 새벽에 들어오는 것은 보통이고 며칠씩 안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시부모님이 친척 집 잔치가 있어 하룻밤 집을 비운 사이 대추나무 장롱 속에 있던 땅문서를 가지고 나가 보름 만에 논 20마지기를 노름판에서 날려 먹었다.
그나마 땅문서를 두 곳에 나누어 두었기에 다행이지 한곳에 두었다면 더 큰 일 날 뻔했다며 장가라도 들이면 맘 잡고 노름판에 혹시 안가지 싶어서 혼사를 서둘렀다.
그러나 사정을 아는 근동 사람은 아무도 딸을 주지 않았다. 그곳에서 삼십 리쯤 떨어진 산골동네 사는 감밭 댁 의붓아버지는 눈엣가시 같던 딸을 중매쟁이 술 한 잔에 데려가라고 허락했다.
시집살이가 뭔지 몰라도 자신 때문에 어머니의 마음이 늘 불편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시집을 온 것이다. 그 동네에서는 친정 동네 이름이 감밭이라 자연스럽게 감밭 댁이라고 불렀다.
시집와서 제일 좋은 일은 때가 돼도 끼니 걱정이 없는 것이다. 참기름 바른 것처럼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쌀밥을 삼시 세끼 다 먹을 수 있다. 가마솥에 짚을 때서 밥이 뜸 들을 때는 밥 냄새가 너무 좋았다. 마음대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으니 시집온 것은 참 잘한 일이다.
그 맛난 밥을 먹다가도 꽁보리밥도 늘 부족해서 양을 늘리기 위하여 그때 그때 계절에 따라서 산이나 들에서 나는 나물과 가을에 김장이 끝나면 무청 시래기 콩나물 밥이나 무밥 감자를 넣은 감자밥을 먹는 어머니와 동생들 생각이 나면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여 먹던 수저를 놓았다. 가까우면 밥 한 사발 뚝 떠서 바가지에 담아, 앞치마 속에 넣고 달려가서 친정집 부뚜막에 슬쩍 놓아주고 싶다.
시부모님은 인자하고 좋은 분들이다. 먹을 것이 풍족해서 좋은 분인지, 따뜻하고 인품이 좋아서 먹을 것이 많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편이 집 나가서 안 들어오는 일만 없으면 더없이 좋은 곳이 시집이다.
며칠 전부터 저녁 먹고 나가면 새벽에 들어오고 하루건너 들어오는 날은 잠만 자다 또 나갔다.
감밭 댁은 불안하다.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고 바늘방석이다. 자신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남편이 밖으로 나도는 것 같아서 시부모님 보기가 죄송하다. 간간이 들리는 시아버지의 기침 소리 와 시어머니의 한숨 소리다. 양아들이 이 시간까지 집에 안 들어와서 불길하고 불안한 마음에 잠 못 들기는 시부모님이나 감밭 댁이나 마음은 같다.
첫닭이 울고 먼동이 트는데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남편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더 누워 있다고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다행히 안방에 시부모님은 잠이 드신 것 같다. 감밭 댁은 살그머니 부엌에 들어가 똬리를 머리에 올리고 그 위에 물동이를 이였다. 눈은 밤새 내려서 지난 저녁 싸리문을 닫을 때 찍어놓은 감밭 댁 발자국을 덮어버렸다. 걸을 때마다 푹푹 발목까지 빠진다.
이 마을 입구에는 공동 우물이 있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여름에 홍수가 나도 물이 더 많이 나오지도 않는다. 이 우물물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물이 나온다. 사시사철 언제나 같은 양의 물이 나와서 30여 가구의 마을 사람들이 넘치거나 부족함 없이 먹기도 하지만 빨래터도 있어서 동네에 모든 애경사와 대소사 이야기는 이곳에서 시작해서 이곳에서 끝났다. 보통의 우물은 두레박으로 줄을 내려 퍼 올리는데 이곳은 바가지 우물이다. 이 우물은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숨구멍이 있어서 그곳은 얼지 않는다.
숨구멍에 바가지를 대고 자근자근 두드려서 살얼음을 깬다. 물속에 달이 떠 있다. 감밭 댁은 바가지에 달을 떠서 물동이에 담았다. 그냥 시름없이 담았다.
“달 한 바가지 달 두 바가지” 동이에 물이 채워지고 막 머리에 이려고 하는데 물동이가 가볍게 위로 올라간다. 담배 냄새가 ‘확’ 코를 자극한다. 물동이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남편이다. 똬리만 손에 들고 남편이 걸어간 발자국만 따라 집으로 간 감밭 댁은 그 우물과 마지막이었다.
2 새벽 도주
물동이를 부뚜막에 놓고 감밭 댁 남편은 숟가락 2개에 냄비 하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도 아무 말 없이 간단하게 옷 보따리를 싸서 들고 감밭 댁에게 따라 나오라고 손짓하며 도둑처럼 집을 나와서 선장역을 향하여 성큼성큼 걸었다.
선장역은 예산에서 오는 기차가 온양으로 가서 서울역이 종점인 장향선의 간이역이고, 이 근동에 제법 큰 장이 섰던 장마당이다.
감밭 댁 친정에서도 선장은 10리 거리에 있고, 온양이나 예산은 30리 되는 장이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장은 선장 장을 보았다.
감밭 동네 사람들은 초등학교만 나오면 중·고등학교는 예산이나 온양으로 가야 한다. 통학하는 학생은 5리만 걸으면 버스 정류장이 있지만, 기차보다 비싸서 버스를 포기하고 오리를 더 걸어서 기차 통학을 했다. 형편이 좋으면 하숙을 하고, 방을 얻어서 2명 3명 어울려서 자취를 하기도 했다.
감밭 동네에는 여학생은 한 사람도 없고 남자도 성씨네 아들과 이장 아들 둘뿐이다. 초등학교 근처에 정미소 하는 손자 그리고 문방구 집 딸과 국밥집 막내아들이 교복을 차려입고 갈티재를 넘나들었다.
그중에 공부 잘하는 남학생은 철도고등학교에 합격만 하면 기숙사에 들어가고 교복, 책가방, 운동화까지 준다. 철도고등학생이 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기차를 공짜로 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졸업과 동시에 철도국에 취직이 되어서다. 그래서 그 학교 들어가길 원했지만, 감밭 동네에서는 한 사람도 철도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
선장 장에는 아버지 따라 솔방울 가마니를 머리에 이고 장사를 하러 왔던 기억은 있지만, 기차를 타는 것은 처음이다. 새벽 기차표를 사고 나니 시간이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간이역 긴 나무막대 의자에 앉아 밖을 보았다. 먼동이 터 오는 아침 공기는 쌀쌀했다.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는 아마도 도고산이 분명하다. 저 산 밑에 옹기종기 어린 동생들과 어머니가 아침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아, 어머니가 보고 싶다.” 눈물이 소리 없이 흘렀다.
난생처음 기차를 타고 끌려가는 죄인처럼
“왜 집을 나왔냐. 어디로 가느냐?”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기차 안은 복잡했다. 사람마다 여자는 머리에 이고, 남자는 등에 지고 양손에 들고 차에 오른 짐으로 사람 반, 짐이 반이다. [홍익회]라고 쓴 손수레를 끌고
“심심풀이 땅콩이 있어요. 자-아 오징어가 있어요. 따끈따끈한 삶은 달걀 왔어요. 천안 명물 호두과자가 왔어요. 김밥, 김밥도 있어요.” 하면서 지나가는 손수레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삶은 계란 3알과 사이다 한잔으로 시장만 면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정신이 나가서 배가 고픈지 아픈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좋은 일은 아니고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도망가는 것만은 분명했다. 기차는 온양, 평택, 영등포, 노량진을 지나서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에 내리니 줄지어 서 있다 떠나고, 서 있다 떠나는 버스에서 “청량리 중량교가요. 청량리 중량교가요.” 차장 아가씨가 소리소리 지르는 모습이 보였고, 그중에 한 버스에 올랐다. 차가 움직일 때마다 훅훅 코로 들어오는 기름 냄새에 차멀미가 나서 “차라리 죽는 게 나요. 차라리 죽는 게 나요.” 하는 소리로 들렸다.
버스는 차장 아가씨가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타실 손님 안 계시면 오-라-이” 하는 것을 신호로 출발했다. 남대문 옆을 지나서 명동을 거쳐 종로 동대문을 지나서 청량리역에서 잠시 머물다 출발하여 중량교를 건너 한 시간도 넘게 차에 올랐다 내렸다 을 반복하며 차장 아가씨는 정류장마다
“동대문 내리셔요.” “청량리 왔어요.” “중량교다리 내리셔요.” 목이 아프게 일일이 안내도하고 돈이나 토큰을 받았다. 청량리를 지나서 손님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버스에서 내려 요금을 안 내고 그냥 가는 손님에게
“손님! 요금 주셔야지요?” 안내양 아가씨가 손을 내민다. 그 아저씨는
“나는 안 내도 돼” 차장 아가씨
“아저씨가 누군데요?” 다시 물었다.
“너는 몰라도 돼”하면서 씩씩하게 걸어간다. 그 손님에게 달려갈 수도 없고 그냥 차에 탈 수도 없어 어쩔 줄을 몰라 하니 운전수 아저씨가
“그냥 타” 소리를 버럭 지른다.
그렇게 타고 간 버스는 손님이 거의 다 내리고 흙먼지가 날리는 한쪽은 포도밭이고 한쪽은 공동묘지가 보이는 면목동 종점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차멀미로 속이 울렁거리고 구토가 났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잠시 구토도 하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버스 종점에서도 공동묘지와 포도밭 가운데 길을 따라서 20분 정도 걸어서 포도밭 가운데 있는 붉은 벽돌을 만드는 공장 사택으로 들어갔다. 사택은 불량이 나서 상품 가치가 없는 붉은 벽돌로 창고처럼 일자로 똑같이 지은 집이다. 널빤지로 짠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연탄을 쌓아 놓은 부엌이 있다. 연탄아궁이 부뚜막이고, 부뚜막이 주방이고 방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다. 주방이 4평정도 되고 방이 6평 정도로 총 10평이 집 전부다.
1동이 12칸이고 2동으로 똑같은 집이 24집이다. 1동과 2동 사이 앞면에는 공동우물이 있고 뒤쪽으로 공동변소가 있다. 변소는 땅을 파고 시멘트를 쳐서 커다란 통을 만들고 그 위에 널빤지를 가로세로 걸쳐 놓고 중간마다 가마니로 칸막이를 했다. 집집마다 요강이 있어서 소변은 각자 집에서 해결했지만, 어린이는 대변도 요강에다 처리했다.
어른들도 술 먹은 걸음으로 그 공동변소를 사용하다 발을 헛디디면 속절없이 똥통에 빠지는 사고가 종종 발생했다. 똥독에 빠지면 죽는다는 속설이 있어 무당을 불러 굿을 하기도하고 떡을 해서 나누어 먹기도 했다.
월급이 아니고 간주라고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일한 만큼 금액을 적어서 회사에서 발행하는 간주 전표를 돈 대신 받았다. 이것을 회사에서 지정해준 연탄 가게, 쌀집, 송방에서 돈처럼 사용하거나 우체국이나 농협에 가서 돈으로 바꾸기도 했다.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어 벽돌은 만들기만 하면 팔려나갔다. 일거리가 있고 먹고 잠잘 곳이 있어서 전국에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몸만 올라오면 비, 바람 피할 곳이 있는 이곳은 감지덕지다.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살아가는 이웃은 나름대로 정도 들고 의리도 있었다. 그렇게 자리를 잡아가는 어느 날,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전보가 날아왔다.
[ 부친 사망 급래 요망 ]
전보는 글자 수대로 돈을 받았다. 10자가 넘으면 과태료가 붙는다.
감밭 댁은 임신을 해서 배가 남산만 하다.
작은 체격에 임신해서 산달이 되니 공처럼 굴러다닌다. 도저히 갈 수 없는 몸이 이럴 때는 차라리 고마운 일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새벽 도주 할 때 논 30마지기는 놀음해서 날아가고 살고 계신 집만 남았다. 아들 며느리가 사라진 뒤에 땅문서를 살펴보니 봉투 속에 백지만 들어 있었다.
그 충격으로 쓰러진 시아버지는 해소 천식이 도지는 바람에 1년을 못 견디고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모시고 감밭 댁 남편은 서둘러 시부모님이 사시던 집을 팔았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이 돌아왔을 때는 사택 사람들의 도움으로 딸을 출산하고 7일이 되던 날이었다.
3 서울 살림
말이 서울이지 시골만도 못했다. 시골에서는 겨울 빼고는 봄에는 도고산만 올라도 산나물이 지천이라 부지런하기만 하면 먹을 것이 많았다. 산도라지 더덕 칡뿌리도 먼저 캐는 사람이 임자다.
찔레 순이나 싱아는 먹기 싫어서 못 먹었다. 여름에는 여름대로 머루랑 다래랑 따 먹고, 가을에는 도토리, 상수리, 산 밤,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먹고도 남았다. 오죽하면 가을 산에 들어가는 것이, 못사는 친정에 가는 것보다 좋다고 했다.
이사 온 벽돌 공장 주소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이지만 포도밭 한가운데 있는 벽돌공장 오른쪽에는 중량천이 있고 왼쪽에는 망우리 공동묘지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잘 때까지 돈을 주고 사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다.
유일하게 돈 안 주고 먹을 수 있는 것은 여름에 중량천에서 송사리나 가재, 붕어 피라미 이름도 모를 민물고기를 잡아서 벽돌공장 공터에 심어놓은 호박잎이나 풋고추를 넣어서 만든 매운탕은 별미 중의 별미다.
시어머니는 아들 며느리가 새벽에 달아나고 30마지기 논문서 먼저 찾아 살펴보니 가을에 문을 바르고 남은 창호지를 편지지처럼 오려서 봉투에 넣어둔 백지다.
부자가 망해도 삼 년 먹을 것은 있다고 시어머니는 집 팔고 여기저기 꾸어준 쌀이랑 돈이랑 받아 비상금도 챙겨서 가지고 오신 돈으로 삼 년 정도는 먹을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노름이라는 병은 약도 없는 고질병이라 잊을 만하면 도지고 살만하면 돈을 들고 나가서 밤을 새우고 영혼은 다 빠져나가고 비곗덩어리만 들어왔다.
어느 때는 차라리 나가서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제발 들어오지 말고 죽어버리라 고사라도 지내고 싶다가도 영혼이 빠진 비곗덩어리만 들어와도 내심 반가운 마음으로 바가지는 고사하고 숨도 크게 못 쉬고 세월만 흘렀다. 단칸방에 시어머니가 계시니 아이를 생산하는 일이 쉽지가 안았다. 옆집도 방음이 안 돼서 한 집과 마찬가지지만 소리만 안 내고 조심하면 되겠지만 한방에 주무시는 시어머니는 밤잠도 없어서 주무시기를 기다리다
작가정보
수필/소설가
1952년 충남 아산 출생.
수필/소설
2010년 ~ 2023 (사)한국문인협회 진천 지부회원
2011년 4월 스토리 문학 봄호 수필 등단
2019년 ~ 청주시문학회 부회장 소설분과위원장겸임
2019년 한국 방송 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2020년 04월 새 한국문학 소설 등단
2020년 ~ (사)한국문인협회. 충북소설가협회 입회
2021년 ~ 국제PEN한국본부 충북지역위원회 회원
E-mail. okhan0703@hanmail.net 연락처. 010-4409-2002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 화랑길 29 진천광혜원 LH 2단지 203동 209호
〈수필집〉
2011년 12월 에세이집 『에델바이스 피는 언덕』
2018년 01월 수필집 『이웃집 할매는 아무도 못 말려』
작가의 말
내가 쓴 글을 지인에게 보여드렸더니 이렇게 말한다.
“이게 무슨 소설이야. 고발장이지.”
다른 지인은 이렇게 말을 한다.
“누가 봐도 본인 살아온 글이네요. 참으로 대단하셔요.”
고발장이든, 수필이든, 소설이든 책으로 출판할 것인지 망설이는 중에 민트 오디오북에서 내 글 '감밭댁 집문서'를 낭독해 주셨다.
낭독을 듣고 책을 만들어 주겠다고 서울에서 한걸음에 달려왔다. 나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원고를 통째로 넘겨주고 출판하기로 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 내 휴대전화기나 신문, 그리고 유튜브나 방송뉴스는 온통 한강 소설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이다. 맛도 없고 영양가는 더 없는 정치인들의 정치 싸움에 여당, 야당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정치라면 신물이 나는 지금,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온 국민의 메마른 가슴에 단비 같은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문학은 꽃잎을 모아 만든 핵폭탄이다.”이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대한민국 만세! 한강 소설가 만세! 우리 문학 만만세!우리 민족은 자랑스런 민족이다. 정치만 정치적이지 않았으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지금은 5년이면 섬이 육지가 되는 세상이다. 현재는 100세 시대다. 재수 나쁘면 120살까지 산다고 한다.
남남으로 만나서 부부의 인연으로 한 가정을 살아가는 일은 이인삼각 경기와 같다. 우리 부부는 사랑도, 우정도 아닌 사업의 동업자로 10년 오르막, 10년 내리막 50년을 살았다. 이글은 부끄럽지만, 우리 부부가 그렇게 살아온 이야기다.
'감밭댁 집문서'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살던 큰언니 주변 이야기고, '무심천에 지는 달'은 청주시 모충동에 살던 넷째 언니와 지인들 이야기다. 지금은 모두 저 하늘나라에 계신 언니 형부의 명복을 빈다.
열심히 일해도 빚만 늘어가는 자영업 사장님이나 어쩌다 건물주가 되어 깡통 건물 버리지도 못하고 도망도 못 가고 빚 얻어서 세금만 꼬박꼬박 내는 체면 때문에 남이 알게 될까 봐 쉬쉬하는 수많은 사장님이 이 글을 읽고 다 포기하더라도 자신만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세상은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눈 오면 눈 맞고 비 오면 비를 맞으며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묵묵히 앞만 보고 여기까지 왔다.
성공한 사람의 어제가 초라하면 초라할수록 그 성공이 빛나고 실패한 사람의 어제가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그 실패는 더 초라하다. 그러므로 최고로 성공했다 해도 절반이고, 최고로 실패했다 해도 절반이다. 우주의 기운은 자석과도 같아서 내가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좋은 기운이 나에게 모이고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나쁜 기운이 나에게 모인다.
나는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 박노해 시인의 '길 잃은 날의 지혜'를 기도처럼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이 글은 이 땅에 신용불량자와 독거노인과 복지카드 소지자, 열심히 일해도 부채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자영업자와 족쇄 찬 건물주, 못 배워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받치고 싶다.
2024년 10월의 어느 멋진 날 한 옥 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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