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와인 이야기
2025년 06월 17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6월 1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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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정보 ePUB (78.98MB) | 약 11.4만 자
- ISBN 9791194096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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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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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 대제는 와인의 정치적 가치를 간파했다. 그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했으나 불안정한 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주류 종교였던 ‘기독교’와 매혹적인 알코올음료 ‘와인’을 전략적으로 이용했다. 그 연장선에서 대제는 로마 교황의 보호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으며, 왕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교회 세력을 포섭해 지배 거점으로 삼았다. 그 교회들을 중심으로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을 독려하고 와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 결과 포도 농사와 와인 양조, 유통에 혁신이 일어났고, 일자리가 창출되었으며, 경제가 활성화되었다. 카롤루스 대제에게 선택받고 당대 가톨릭의 양육을 받은 와인은 유럽사와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이 책은 ‘고대 로마제국의 기독교가 와인으로 인해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세 유럽의 가톨릭교회 수도사들이 와인 양조에 모든 열정과 노력을 쏟아야 했던 까닭’, ‘한때 와인을 사랑했던 무함마드가 갑자기 와인을 엄격히 금지하고 와인 문화를 말살하려 한 이유’, ‘와인 때문에 민족의 영웅 잔 다르크를 붙잡아 잉글랜드군에 넘긴 부르고뉴군 이야기’, ‘소련과 공산권 국가들의 와인 문화를 철저히 파괴한 원흉 고르바초프 이야기’ 등 인간의 욕망과 충돌하고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흥미진진한 와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① World History of WINE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를 추동한 알코올음료 와인
쌀로 술을 빚어 마신 역사보다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 마신 역사가 훨씬 오래되었다? | 와인이 유대교와 기독교를 상징하는 음료이자 도구로 사용된 의미심장한 이유 |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고대 그리스 철인들은 왜 ‘물을 탄 와인’을 즐겨 마셨을까 | 아테네 등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민주정치를 추동한 놀라운 알코올음료 와인 | 로마 건국자 로물루스는 왜 와인을 엄격히 금지할 수밖에 없었나 | 참나무통에 와인 보관하는 법을 갈리아 정복 과정에서 피정복민인 갈리아인에게 배운 로마인 | 로마의 영토 확장 과정은 와인 문화권 확장 과정이었다? | 가톨릭교회 수도사들은 왜 그토록 와인 양조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을까 | 와인으로 인해 치명적 타격을 입은 로마제국의 기독교
② World History of WINE
와인을 정치에 교묘히 활용한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
독일과 이탈리아반도의 와인 문화를 쑥대밭으로 만든 게르만족 대이동과 수많은 전쟁 | 와인이 중세 시대 가톨릭교회가 수익을 창출하고 경제력을 키우는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은밀한 이유 | 유럽의 패권자였던 카롤루스 대제는 왜 와인 양조에 온 힘을 기울였을까 | 독일 라인가우의 요하니스베르크를 와인 명산지로 탈바꿈시킨 두 주인공, 카롤루스 대제와 베네딕도회 수도사들 | 사과주를 좋아한 카롤루스 대제가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궁극적 이유 | “랭스의 힘은 포도밭에서 나온다”라는 말의 의미 | 와인을 무기로 부르고뉴의 봉건 영주들을 주무르고 교황청에까지 영향력을 휘두른 베네딕도회의 클뤼니 수도원 | ‘가난한 자연인’을 표방한 시토회 수도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와인이 비싸고 화려한 부르고뉴 와인의 모태가 된 역사의 아이러니 | 시토회 수도사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명품 와인을 만든 원동력은 ‘예수’였다?! |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비호를 받으며 독일을 세계 최대 와인 생산지로 탈바꿈시킨 에베르바흐 수도원 | 한때 와인을 사랑했던 무함마드는 왜 갑자기 와인을 엄격히 금지하고 와인 문화를 말살하려 했을까
③ World History of WINE
와인 명산지 보르도의 기반을 닦은 잉글랜드 왕 존
무능한 잉글랜드 왕 존이 세계적인 와인 명산지 보르도의 기반을 닦은 아이러니한 역사 | 잉글랜드 왕들이 수백 년간 부여한 ‘보르도 특권’이 보르도를 명품 와인 산지로 만들다 | 필리프 4세가 일으킨 아비뇽 유수 사건의 나비 효과로 더 튼튼한 반석에 오른 보르도 와인 | 보르도 출신 교황의 입맛마저 사로잡은 부르고뉴 명품 와인 | 부르고뉴 군주들이 가메 품종 포도를 그토록 싫어하고 뿌리 뽑으려 한 절박한 이유 | 보르도는 왜 백년전쟁 기간 내내 프랑스가 아닌 잉글랜드 편을 들었을까 | 부르고뉴군이 잔 다르크를 붙잡아 잉글랜드군에 넘긴 결정적 이유는 ‘와인’ 때문이었다?! | 15세기 서유럽에서 포도 농사와 와인 산업이 크게 번창한 이유는 ‘예수’ 때문이었다?!
④ World History of WINE
와인 대국 독일의 포도밭을 초토화한 30년 전쟁
한때 대표적 와인 대국의 하나였던 독일의 포도밭을 초토화한 30년 전쟁 | 리슬링 와인은 어떻게 독일 와인 부활의 신호탄이 되었나 | ‘검은 술’로 불리는 보르도 와인 오브리옹은 당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초콜릿, 커피와 치열한 경쟁 결과 탄생했다는데?! | 자갈투성이 황폐한 메독 지구를 세계적 와인 명산지로 바꿔놓은 주인공, 네덜란드인들 | 루이 14세 등 부르봉 왕가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오늘날 세계 최고 명품 와인의 반열에 오른 부르고뉴 와인 | 17세기 후반 영국인들이 아니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샴페인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샴페인의 대명사, 돔페리뇽 | ‘낮은 진입 장벽’과 ‘짜릿한 자극’을 무기로 신흥 강대국 군주들을 단번에 매료시킨 샴페인 | 로마네콩티 포도밭을 두고 콩티 공과 퐁파두르 후작 부인이 벌인 자존심 대결 이야기 | 영국과 프랑스의 극심한 대립 과정에서 탄생한 보르도 와인 대용품 포트와인 | 무슬림 국가인 오스만 제국은 실제로 와인을 엄격히 금지했을까 | 오스만 제국이 헝가리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헝가리 명품 와인 토카이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 한때 헝가리군이 합스부르크군과 벌인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큰 공을 세운 토카이 와인 | 18세기, 프랑스 와인 세계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와인 입시세
⑤ World History of WINE
프랑스혁명의 기폭제가 된 와인 입시세
와인이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다는데?! | 부르고뉴의 로마네콩티 포도밭 몰수 임무를 수행한 군인이 나폴레옹이었다고? | 나폴레옹은 정말로 샹베르탱을 사랑했을까 | 나폴레옹이 가장 사랑했던 술은 샴페인이었다? | 최고급 샴페인을 무기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프랑스를 구해낸 탁월한 외교가 탈레랑 | 독일 와인을 세계 명품 수준으로 끌어올린 인물,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
⑥ World History of WINE
프랑스 와인을 세계 최고 반열에 올려놓은 나폴레옹 3세
작가 빅토르 위고가 제안한 와인 입시세 폐지안이 의회 표결을 거쳐 통과되다 | 시대를 한참 앞서간 나폴레옹 3세의 보르도ㆍ메독 지구 와인 등급제 |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부르고뉴 와인 | 프랑스 와인 풍경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철도 부설 사업 | 유럽 와인의 원조격인 이탈리아 와인은 왜 19세기 초까지 정체기를 겪었나 | “와인의 왕, 왕의 와인”이라는 찬사를 받는 피에몬테 지방의 바롤로 와인 | 볼품없는 키안티 와인을 명품 와인 키안티 클라시코로 거듭나게 한 통일 이탈리아 총리 베티노 리카솔리 |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최고 황금시대 샴페인에 취한 유럽
⑦ World History of WINE
보르도ㆍ부르고뉴 절대 신화를 무너뜨린 캘리포니아 와인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에서 ‘승리의 술’로 찬사받은 와인,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 소련과 공산권 국가들의 와인 문화를 철저히 파괴한 장본인, 고르바초프 |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 와인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미국의 부유한 소비자들 | 캘리포니아 와인이 ‘보르도ㆍ부르고뉴 절대 신화’를 무너뜨린 역사적인 사건 ‘파리 심판’ | ‘버라이어털 와인’으로 보르도ㆍ부르고뉴 명품 와인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진 신흥 와인 강국 미국 | 로버트 파커로 대표되는 미국의 와인 지배가 세계 와인 문화의 ‘양날의 검’일 수밖에 없는 이유 | 1970년대부터 시작된 부르고뉴 와인의 개성화 프로젝트 | 1970년대 후반 이후 이탈리아 와인의 존재감이 커진 이유 | 플라자 합의가 일본인들이 프랑스 명품 와인 등에 눈뜨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된 이유 | 『소믈리에』 『신의 물방울』 등의 만화로 전 세계 와인 문화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본 | 일본이 보졸레 누보를 가장 사랑하는 국가가 된 흥미로운 이유 | 21세기 와인 세계는 어디로 향하는가
참고문헌
고대 그리스에서 와인은 왕이나 귀족 등 지배 계급만을 위한 음료가 아니었다. 평민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와인을 마시며 와인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다.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떻게 신분과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와인을 즐겨 마시고 수준 높은 와인 문화를 발전시켰을까?’ 여기에는 ‘지리’, 즉 고대 그리스의 독특한 지형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고대 그리스는 입지 조건 면에서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와 확연히 달랐다. 이 지역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티그리스강ㆍ유프라테스강이나 이집트의 나일강 같은 큰 강이 없을 뿐 아니라 비옥한 평야도 거의 없었다. 그 대신 산이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독특한 지형에 달마티안의 검은 점처럼 좁은 평야가 드문드문 흩어져 있어 왕, 귀족 등의 지배 계급이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토지를 독점한 채 폭력을 행사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좁은 평야를 소유한 평민 계급의 농민들이 천민이나 전쟁 포로를 노예로 부리며 농사를 지어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 바로 그 풍요로운 농민 계층의 사람들이 포도나무를 심고 수확해 와인을 양조하고 즐겨 마시며 와인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켰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그중에서도 특히 아테네에서는 민주정치가 발달했다. 지형 특성상 절대군주가 존재하기 어려운 구조였기 때문에 아테네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피타고라스, 히포크라테스 등 걸출한 철학자, 수학자, 의사를 배출하며 전대미문의 위대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이런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학자들은 하나같이 와인을 좋아했다. 실제로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그 누구 못지않게 와인을 좋아하고 즐겨 마셨다고 전해진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로도 유명한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와인을 약으로 썼는데, 해열ㆍ소독ㆍ이뇨ㆍ피로 회복 등 다양한 용도로 구분해서 사용했다.
- 본문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고대 그리스 철인들은 왜 ‘물을 탄 와인’을 즐겨 마셨을까」 에서 (34~35pp.)
여기에 더해 가나안 혼인 잔치 일화는 후세의 와인 생산과 제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유럽 중세 시대에 와인의 품질 향상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이들은 프랑스 부르고뉴에 본거지를 두고 있던 가톨릭교회 수도회 중 하나인 시토회였다.
예수가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물로 모든 하객이 감탄할 정도로 훌륭한 와인을 만들어낸 사실을 전제로 생각해보자. 예수가 기적을 일으켜 품질이 뛰어난 와인을 만들어냈다면, 무릇 예수의 뜻을 따르는 이들 역시 품질 좋은 와인을 생산해야 한다. 따라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믿고 따르는 이들은 예수를 본받아 좋은 와인을 양조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런 정신이 훗날 시토회 수도회에 깃들어 수도사들은 와인 품질 향상에 모든 힘과 시간, 지식과 경험을 쏟아부었다. 시토회 수도회의 종교적 열정의 연장선에서 오늘날 세계 최고 와인 생산지 중 하나인 부르고뉴의 위대한 포도밭이 개척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본문 「가톨릭교회 수도사들은 왜 그토록 와인 양조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을까」 중에서 (52~54pp.)
기독교의 수호자이자 당대 유럽의 패권자였던 카롤루스 대제는 활발한 정복 활동을 펼치는 한편으로 자기 왕국 안에서 와인 양조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는 왕국 전역에 세워진 교회에 토지를 하사하고 와인 양조를 독려했다.
카롤루스 대제는 직접 발 벗고 나서 와인 양조 방식까지 세세하게 지도하는 등 철저히 관리하고 감독했다. 또 포도를 발로 밟아 으깨어 과즙을 내는 방식을 금지하기도 했다. 당시는 포도 압착기가 없어 이 명령에 따르지 않는 농가도 많았기에, 그의 명령은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가는 비현실적인 조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명령은 와인 양조에 ‘위생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해 와인을 신성한 음료로 거듭날 수 있게 한 획기적인 조치였다. 또한 그는 위생을 고려해 와인을 가죽 부대에 저장하는 관습도 금지했다.
카롤루스 대제는 와인 유통에도 손을 댔다. 그는 와인 생산자가 여행객에게 와인을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또한 와인 산업 활성화 조치의 하나로, 와인 생산자는 여행객이 와인 판매점임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나뭇가지를 간판처럼 내걸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오스트리아 빈(Wien)의 선술집 호이리게(Heurige)에서는 지금도 간판 위에 소나무 가지를 걸어 와인을 판매하는 곳임을 알리는 방식으로 손님을 끌고 있다.
- 본문 「유럽의 패권자였던 카롤루스 대제는 왜 와인 양조와 유통에 온 힘을 기울였을까」 중에서 (68p.)
이슬람교도들은 사산조 페르시아(226~651)를 멸망시키고 비잔틴 제국을 압박하며 거대 이슬람 제국을 건설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랍어권 전역에서 와인이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여기서 궁금한 점 한 가지, 무함마드는 처음부터 와인을 싫어하고 적대시했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무함마드도 이슬람 세계를 건설하던 초기에는 와인을 용인했다. 그런데 왜 그는 와인을 싫어하고 적대시하는 것을 넘어 없애버리려 했을까?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형제 종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비슷한 점이 많다. 이는 이슬람교가 유대교와 기독교의 가르침을 흡수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와인을 사랑하고 중시했듯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도 와인을 좋아하고 귀히 여기던 시기가 있었다. 이슬람교 경전 『쿠란』에는 “과일 중에는 종려나무 열매와 포도나무가 있어 이 나무들로부터 마실 것과 일용할 양식을 얻나니 실로 그 안에는 지혜로운 백성을 위한 증표가 담겨 있노라”라는 구절이 있다. 게다가 실제로 무함마드는 신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자주 술자리를 갖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술자리에서 어떤 사건을 겪으며 무함마드의 생각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술 취한 메카의 신도와 메디나(야스랍)의 신도가 무함마드 앞에서 서로 주먹다짐을 벌였다. 화기애애하던 술자리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는 현장을 목격한 무함마드는 와인이 지닌 잠재적 해악에 눈뜨게 되었다. 그 후 무함마드는 “도박과 중독, 우상 숭배, 활쏘기 내기는 악마가 발명한 불경한 것이니 이들을 금하라”라고 말하며 와인을 엄격히 금지했다.
- 본문 「한때 와인을 사랑했던 무함마드는 왜 갑자기 와인을 엄격히 금지하고 와인 문화를 말살하려 했을까」 중에서 (94~97p.)
잉글랜드 안에서 존왕은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아온 런던의 귀족들과 시민들이 들이민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에 강제로 서명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마그나 카르타’는 영국 입헌정치와 세계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었으나 당사자인 존으로서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왕이라는 징표와도 같은 것이었으므로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라는 속담은 존왕의 관점에서 보면 다행스럽게도 적용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프랑스에서 가스코뉴 와인을 대량으로 사들이면서 보르도의 중계무역이 나날이 번창했기 때문이다.
존왕의 정책 덕분에 보르도의 경제는 번영의 길을 달렸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프랑스 안의 영토를 시나브로 잃어가고 있었다. 재위 기간에 프랑스 왕 필리프 2세에게 프랑스 안의 잉글랜드 영토를 도미노 무너지듯 차례차례 빼앗긴 결과, 아키텐 공국의 보르도를 포함한 일부 영토밖에 남지 않게 된 탓이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베리아반도의 카스티야 왕국이 보르도를 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당시 보르도는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잉글랜드 왕 존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카스티야 왕국의 침략에 맞서 싸웠다.
- 본문 「무능한 잉글랜드 왕 존이 세계적인 와인 명산지 보르도의 기반을 닦은 아이러니한 역사」 중에서 (106~107pp.)
부르고뉴 공국은 샹파뉴의 급격한 성장에 위기감을 느꼈다. 부르고뉴인들은 랭스와 그 주변 지역의 명성이 나날이 높아지는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랭스에 집중되는 것이 탐탁지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그 시점에 샤를 7세가 랭스에서 대관식을 올리는 바람에 온 프랑스인의 관심이 쏠렸다. 샤를 7세의 대관식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잔 다르크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부르고뉴 공국 입장에서는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을 해방한 상황도 불편하고 마뜩잖았다. 오늘날 오를레앙에는 포도밭이 대부분 사라지고 없지만, 중세 시대에는 또 하나의 와인 명산지로서 부르고뉴와 치열하게 경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잔 다르크의 행동이 부르고뉴 와인의 강력한 경쟁자의 명성을 높여주고 입지를 강화하는 짓거리로 비쳤을 것이다. 잔 다르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부르고뉴가 와인 판매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그런데 잔 다르크로 인해 한창 잘나가던 당시 판세를 단숨에 뒤집어엎을 지경에 이르자, 부르고뉴군은 잔 다르크에게 괘씸죄를 물어 잉글랜드군에 전리품으로 넘겼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부르고뉴 공국의 의도와 달리 샹파뉴 지역의 와인 품질은 나날이 향상되어 급기야 부르고뉴 와인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그 탓에 부르고뉴의 고심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 본문 「부르고뉴군이 잔 다르크를 붙잡아 잉글랜드군에 넘긴 결정적 이유는 ‘와인’ 때문이었다?!」 중에서 (130~131pp.)
보르도에 발을 디딘 네덜란드인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와인을 대량으로 확보하고 싶어 했다. 그들이 오늘날 메독 지구의 늪지대 간척을 시작한 것은 그런 필요성 때문이었다. 원래 바다가 자주 넘치는 저지대에 살았던 네덜란드인들은 메독 지구를 성공적으로 간척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네덜란드인들의 성공적인 간척 사업에 힘입어 메독 지구에서 포도 재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포도 재배보다 귀족과 대상인들의 저택 건설이 먼저 이루어졌다. 보르도 지역의 귀족과 거상들은 간척사업으로 새롭게 생긴 땅에 별장을 지었다. 그 당시 지은 웬만한 성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위풍당당한 대저택이 바로 ‘샤토’다. 그들은 대저택 주위로 밭을 만들고 자신과 가족이 마실 와인을 양조할 포도를 재배했다. 당연히 자기 입에 들어갈 것이니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와인을 생산하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 당시에는 누구도 메독 지구의 자갈투성이 땅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품질의 포도와 와인을 생산하는 ‘황금의 땅’이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자갈의 깊이가 3미터에 달하는 이 땅은 배수성이 뛰어나고, 자갈이 온기를 저장해 보온 역할을 하는, 그야말로 축복받은 땅이었다. 메독 지구는 저렴한 와인을 원했던 네덜란드인들의 의도와 거의 정반대로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으로 세계 와인사에 한 획을 그었다.
- 본문 「자갈투성이의 황폐한 메독 지구를 세계적 와인 명산지로 바꿔놓은 주인공, 네덜란드인들」 중에서 (147~148pp.)
세기의 대결인 ‘파리 심판’은 프랑스가 자랑하는 명품 와인과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을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로 맛과 향기, 품질을 겨룬 뒤 평가자들의 채점을 통해 어느 쪽이 나은지 결정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참고로, 파리(Paris)를 뜻하는 영어 단어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파리스(Paris)’의 이름 철자가 같아서 말장난처럼 ‘파리스의 심판’이라는 별칭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이 대결에서 보르도의 샤토 무통 로칠드와 샤토 오브리옹 등이 프랑스산 레드와인으로 제공되었다. 부르고뉴의 명문 와이너리는 화이트와인을 선보였다.
테이스팅 심사위원으로는 모두 프랑스인이 초빙되었다. 미슐랭 별 세 개 레스토랑 오너와 소믈리에,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저명한 와이너리 경영자급 인사 등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와인 업계 거물들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대결에서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세계 최고 명성을 자랑하는 보르도와 부르고뉴를 제치고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모두 캘리포니아산 와인이 1위를 차지했다. 말하자면, 프랑스 와인에 통달한 프랑스인 심사위원들이 자국의 명품 브랜드 와인보다 당시 존재감이 거의 없던 무명 캘리포니아 와인에 더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캘리포니아 와인의 승리는 당시 미국을 달군 와인 열기의 승리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와인 열기가 뜨거워진 1960년대에 프랑스 와인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와인 애호가들이 직접 포도 농사를 짓고, 와이너리를 세우고, 와인을 양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본문 「캘리포니아 와인이 ‘보르도ㆍ부르고뉴 절대 신화’를 무너뜨린 역사적인 사건 ‘파리 심판’」 중에서 (243~244pp.)
고대 그리스 민주정을 탄생시킨 와인에서부터 민족 영웅
잔 다르크를 잉글랜드군에 팔아넘기게 한 와인까지
천의 얼굴을 가진 매혹적이고도 위험천만한
와인 세계사 이야기
▣ 세계사를 바꾼 첫 번째 명장면 - 고대 그리스 민주정을 탄생시킨 와인 이야기
‘와인이 고대 그리스 민주정을 탄생시켰다’라고 말하면 ‘과연 그럴까?’ 하며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어떤 맥락에서 그러한지 살펴보자.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와 와인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지리’, 즉 이 나라(들)의 독특한 지형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는 땅의 생긴 모양이나 형세 면에서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와 확연히 달랐다. 즉, 이 지역에는 티그리스강ㆍ유프라테스강이나 나일강 같은 큰 강도 비옥한 평야도 없고, 산이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듯한 독특한 지형에 평야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좁은 농토가 드문드문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왕, 귀족 등의 지배계급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토지를 독점한 채 폭력을 행사하기 어려웠다. 이 맥락에서 고대 그리스의 평민계급 농민들은 좁은 농토를 소유한 채 천민이나 전쟁 포로를 노예로 부리며 농사를 지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풍요로운 평민계급 농민들이 자신이 소유한 땅에 포도나무를 심고 수확해 와인을 양조하고 더불어 즐겨 마시며 수준 높은 문화를 창조했으며, 그 비옥한 문화 풍토 위에서 활발하게 토론하고 정치의식을 고취하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고대 그리스 세계를 대표하는 아테네는 그 연장선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피타고라스, 히포크라테스 등의 걸출한 철학자, 수학자, 의사 등을 배출하며 위대한 문명을 이룩했다. 이것이 바로 와인이 바꾼 세계사 이야기 첫 번째 장면이다.
▣ 세계사를 바꾼 두 번째 명장면 - 독일의 라인가우 지역을 오늘날 세계적인
와인 명산지로 탈바꿈시키고 자리 잡게 한 카롤루스 대제 이야기
오늘날 독일은 와인이 아닌 맥주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7세기 전반기(정확히는 1618~1648년)에 일어난 30년 전쟁으로 독일 전역의 포도밭이 초토화되기 전까지 수백 년 동안 독일은 프랑스, 이탈리아에 버금가는 와인 강국으로 자리매김해 있었다. 독일은 이런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오늘날까지 세계 최고의 와인 명산지 중 하나로 꼽히는 라인가우를 보유하고 있다. 라인가우는 어떻게 세계적인 와인 명산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이는 ‘유럽의 아버지’로 불리는 위대한 군주 카롤루스 대제의 날카로운 안목과 통찰력이 빚어낸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는 와인 명산지 라인가우에는 카롤루스 대제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포도밭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라인강 유역의 잉겔하임에 머물던 대제는 강 건너편 라인가우의 요하니스베르크 산기슭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범상치 않은 풍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당시는 초봄이었는데, 라인가우 요하니스베르크의 산기슭이 다른 곳보다 햇볕도 잘 들고 눈이 유난히 빨리 녹는 장면을 발견한 것이다. 대제는 단박에 그곳이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에 적합한 지역임을 간파하고 포도나무를 심으라고 명령했다. 역사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카롤루스 대제의 통찰력과 활약으로 오늘날 라인가우가 세계적인 와인 명산지가 되었다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유럽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프랑크 왕국 군주 카롤루스 대제는 세계사만이 아니라 와인 역사에서도 높은 위상을 차지한다. 그는 와인이 지닌 정치적 의미와 가치를 날카롭게 간파했을 뿐 아니라 활발한 정복 활동과 병행하여 왕국 안에서 와인 양조에 온 힘을 기울였다. ‘기독교의 수호자’로도 불리는 대제는 왕국 전역의 교회에 토지를 하사하고 와인 양조를 독려했다.
카롤루스 대제의 와인 사랑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와인 양조 방식까지 세세하게 지도하는 등 철저히 관리하고 감독했다. 또 그는 와인 생산자가 여행객에게 직접 와인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등 유통에도 관여했다. 그 연장선에서 그는 포도 농사와 와인 양조를 활성화하고 와인 양조를 촉진하기 위해 법을 제정하고 규정을 마련했다.
카롤루스 대제는 왜 그토록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유통에 열을 올렸을까? 그는 자신의 통치 시기에 거대한 왕국으로 성장했으나 몹시 불안정한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기독교’와 함께 ‘와인’을 정략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대 유럽의 주류 종교였던 기독교와 매혹적인 알코올음료 와인을 영리하게 결합했다. 이 맥락에서 그는 로마 교황의 보호자 역할을 자임하고, 왕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교회 세력을 포섭해 지배 거점으로 삼았다. 그는 그 교회들을 중심으로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을 독려하고 와인 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그 과정에 포도밭 개간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포도 농사와 와인 양조 및 유통에 혁신이 일어났다. 그 결과,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으며 경제가 활성화되었다.
카롤루스 대제는 교회를 이용한 와인 산업 활성화 정책을 통해 부수적인 효과도 노렸다. 성정이 거칠고 다루기 힘든 게르만족을 포도 농사와 와인 생산에 적응시켜 온순한 기질로 변화시키는 일이었다. 카롤루스 대제는 와인을 단순한 상품이 아닌, 왕국 전체의 생존ㆍ번영과 밀접하게 관련된 핵심 상품이자 경제의 동맥을 흐르는 ‘혈액’으로 보았으며, 오늘날의 찬란한 유럽 와인 세계의 튼튼한 초석을 놓고 기틀을 다졌다. 이것이 바로 와인이 바꾼 세계사의 두 번째 명장면이다.
▣ 세계사를 바꾼 세 번째 명장면 - 세계 최고 와인 명산지로 인정받는
보르도 신화를 만든 3주체 이야기
부르고뉴, 샹파뉴와 더불어 세계 최고 와인 명산지로 인정받는 보르도 신화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수백 년의 오랜 역사를 거치며 보르도 와인 신화를 만들어내고 발전시킨 3주체가 있다.
첫 번째 주체는 영국 역사상 최악의 군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존왕을 비롯한 여러 명의 영국 왕들이다. 영국 왕 헨리 2세는 엘레오노르 다키텐과의 결혼을 통해 보르도 지방을 아우르는 프랑스 남서부의 아키텐 공국을 자신의 영토로 보유하는 행운을 누렸다. 보르도와 잉글랜드 왕가의 관계는 헨리 2세의 아들이자 ‘사자심왕’으로 널리 알려진 리처드 1세를 거쳐 그의 동생인 존왕 시대에 이르러 더욱더 돈독해졌다. 그는 재위 기간에 프랑스 내 잉글랜드 영토의 상당 부분을 프랑스 왕 필리프 2세에게 빼앗기는 등 많은 실정을 저질렀기에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보르도의 관점에서 볼 때 적어도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라는 속담은 존왕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존왕은 아키텐 공국의 가스코뉴 와인을 대량으로 사들이면서 보르도의 중계무역이 번창했을 뿐 아니라 그의 특별한 와인 정책 덕분에 보르도 경제는 번영의 탄탄대로를 달렸다. 보르도와 잉글랜드의 우호 협력 관계는 이후에도 꾸준히 지속되었고, 보르도산 와인은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를 발판을 마련했다. 보르도는 잉글랜드와 밀월관계를 유지하며 장밋빛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은 존왕 이후 여러 명의 잉글랜드 왕들이 충성과 헌신의 대가로 보르도에 내린 혜택 ‘보르도 특권’에 의해 실현되었다.
보르도 와인은 ‘보르도 특권’으로 엄청난 면세 혜택을 누렸는데, 면세 혜택이 전부가 아니었다. ‘보르도 특권’에는 다른 지역 와인보다 보르도 와인을 먼저 출시하는 것을 보장하는 조항이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보르도 지방에서 생산된 와인은 강력한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먼 훗날 보르도를 전 세계적인 와인 명산지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장면이다.
보르도 와인 신화를 탄생시킨 두 번째 주체는 16세기에 포도밭이 거의 없고 대부분 바다에 잠긴 늪지대였던 메독 지구를 매력적인 포도밭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 네덜란드인들이다. 당대 최강대국 스페인의 폭정에 맞서 독립전쟁을 벌인 끝에 독립을 쟁취한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해양 진출을 도모했고, 그 과정에 와인이라는 매력적인 상품을 발견했다. 당대 최고의 간척 기술을 보유한 그들이 프랑스의 보르도 지방으로 옮겨와 메독 지구 간척 사업을 추진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였다. 즉, 유럽은 물론이고 바다 건너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판매할 와인을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보르도 와인을 탄생시킨 세 번째 주체는 나폴레옹 3세다. 그는 ‘두 얼굴’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을 만한데, 하나는 ‘무능한 독재자’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와인, 특히 보르도 와인을 세계 최고 반열에 올려놓은 ‘탁월한 마케팅 전문가’라는 얼굴이다. 그는 파리 만국박람회를 개최하여 이 도시를 오늘날의 화려하고 매력적인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1858년의 일이다. 이는 고도로 발전한 당대 프랑스 산업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 프랑스산 농산물의 제품 인지도와 판매력을 높이기 위한 무대였다. 당시 파리 만국박람회장 출품 상품의 하나로 선정된 것이 보르도 와인이었는데,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나폴레옹 3세는 ‘메독 지구 등급제’를 시행했다. 이렇듯 수백 년간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헌신한 덕분에 보르도는 오늘날 부르고뉴, 샹파뉴와 더불어 세계 최고 와인 생산지로 자리매김했다. 이것이 와인이 바꾼 세계사의 세 번째 명장면들이다.
▣ 세계사를 바꾼 네 번째 명장면 - ‘파리 심판’ 사건으로 보르도ㆍ부르고뉴
절대 신화를 무너뜨린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 이야기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은 ‘파리 심판’ 사건으로 보르도ㆍ부르고뉴 절대 신화를 무너뜨렸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 최대 와인 소비국으로 떠오른 미국은 우수한 와인 생산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그러던 중 누구나 미국을 프랑스 못지않은 와인 강국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한 ‘파리 심판’ 사건이 일어났다. 1976년의 일이다.
‘파리 심판’은 세기의 대결이었다. 이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명품 와인과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을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로 맛과 향기, 품질을 겨루어 어느 쪽이 나은지 결정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대결에서 보르도의 샤토 무통 로칠드와 샤토 오브리옹 등이 프랑스산 레드와인으로 제공되었다. 부르고뉴의 명문 와이너리는 화이트와인을 선보였다. 테이스팅 심사위원으로는 모두 프랑스인이 초빙되었다. 미슐랭 별 세 개 레스토랑 오너와 소믈리에,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저명한 와이너리 경영자급 인사 등 내로라하는 와인 업계 거물들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대결에서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다. 세계 최고 명성을 자랑하는 보르도와 부르고뉴를 제치고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모두 캘리포니아산 와인이 1위를 차지했다. 놀랍게도, 프랑스 와인에 통달한 프랑스인 심사위원들이 자국의 명품 브랜드 와인보다 당시 존재감이 거의 없던 무명 캘리포니아 와인에 더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캘리포니아 와인은 천재적인 와인 제조업자 로버트 몬다비로 대표되는 생산자들이 주축이 되어 위상을 강화했다. 그들이 일으킨 변화와 혁신은 높은 인지도와 명성만 믿고 안주하며 발전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 프랑스 와인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그와 더불어 전 세계 와인 산업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파리 심판’ 사건을 기화로 한 캘리포니아 와인의 도전과 성공은 전 세계 와인 산업에 큰 변화를 일으켰으며, 와인 문화의 물줄기를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는 와인 세계사를 바꾼 네 번째 명장면이라 할 만하다.
▣ 베스트셀러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시리즈 열 번째 책!
인간의 욕망과 뒤얽힌 ‘신의 음료’ 와인,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다
교보문고 65주 연속 역사 분야 베스트셀러(『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교보문고 ‘2019년을 빛낸 역사책 100권’ 1위(『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2021년 교육청 학생교육문화원 추천도서(『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행복한 아침독서 추천도서(『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세계사를 바꾼 화학 이야기 ─ 우주 탄생부터 산업혁명까지』),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교보문고 CEO를 위한 북모닝도서(『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세계사를 바꾼 화학 이야기 ─ 우주 탄생부터 산업혁명까지』) 등 주요 온 · 오프라인서점에서 베스트&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꾸준히 판매되며 내용과 가치 면에서도 인정받은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사가 이 시리즈 열 번째 책을 출간했다. 『세계사를 바꾼 와인 이야기』가 바로 그 책.
『세계사를 바꾼 와인 이야기』는 ‘쌀로 술을 빚어 마신 역사보다 포도로 와인을 양조해 마신 역사가 훨씬 오래되었다?!’, ‘와인은 왜 유대교와 기독교를 상징하는 음료가 되었을까?’,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고대 그리스 철인들이 물을 탄 와인을 즐겨 마신 까닭은?’, ‘로마 건국자 로물루스는 왜 와인을 엄격히 금지할 수밖에 없었나?’, ‘가톨릭교회 수도사들이 그토록 와인 양조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는?’, ‘와인이 고대 로마제국의 기독교에 치명타를 입혔다?!’, ‘“랭스의 힘은 포도밭에서 나온다”라는 말의 의미는?’, ‘시토회 수도사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와인을 만든 원동력은 예수였다?!’, ‘한때 와인을 사랑했던 무함마드는 왜 갑자기 와인을 엄격히 금지하고 와인 문화를 말살하려 했을까?’, ‘부르고뉴군이 잔 다르크를 붙잡아 잉글랜드군에 넘긴 결정적 이유는 ‘와인’ 때문이었다?!’, ‘부르고뉴 와인이 세계 최고 명품 와인 반열에 오른 것은 루이 14세 덕분이었다는데?!’,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왜 로마네콩티 포도밭을 두고 콩티 공과 자존심 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었을까?’ 등 와인을 둘러싼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로 빼곡하다. 또한 이 책에는 ‘한때 헝가리군이 합스부르크군을 상대로 벌인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큰 공을 세운 토카이 와인 이야기’, ‘18세기 프랑스 와인 세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와인 입시세 이야기’, ‘독일 와인을 세계 명품 수준으로 끌어올린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 이야기’, ‘소련과 공산권 국가들의 와인 문화를 철저히 파괴한 원흉 고르바초프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와인 문화를 송두리째 바꾼 미국의 부유한 소비자 이야기’, ‘과감한 점수제를 도입하여 미국의 와인 지배 체제를 굳힌 불세출의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 이야기’ 등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흥미진진한 와인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와인 한잔을 천천히 음미하며 이 책을 읽다 보면 당신은 ‘신의 음료’ 와인이 인간의 욕망과 충돌하고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물줄기를 바꾼 인류 역사 이야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작가정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직장생활에서 접한 일본어에 빠져들어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해 출판 번역의 길로 들어섰다. 옮긴 책에『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3가지 심리실험 - 뇌과학편』『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1가지 심리실험 - 인간관계편』『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88가지 심리실험 - 자기계발편』『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81가지 심리실험 - 일과 휴식편』『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59가지 심리실험 - 위로와 공감편』『과학잡학사전 통조림 - 일반과학편』『과학잡학사전 통조림 - 인체편』『과학잡학사전 통조림 - 우주편』『과학잡학사전 통조림 - 동물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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