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레지스탕스 위조범의 생애
2025년 03월 15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3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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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98796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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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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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레지스탕스 위조범의 생애
-이야기를 마치며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17-18쪽]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구석 자리에서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경찰 검문에는 오래전부터 익숙했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다.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다. 냉정을 되찾고 표정 관리를 했다. 무엇보다, 감정이 드러나선 안 된다. 오늘은, 지금은 안 된다. 숨가쁘게 치닫는 상상의 선율에 감응해 다리가 후들거려선 안 된다. 이마에 구슬땀이 흘러서는 안 된다. 혈관으로 밀려드는 피를 멈추어야 한다. 펄떡대는 심장박동을 늦춰야 한다. 천천히 숨을 쉰다. 공포를 억누른다. 불안을 감춘다. 의연하게. 다 괜찮다. 나에겐 완수해야 할 임무가 있다. 불가능은 없다.
[58쪽] “내가 방법을 가르쳐주면 비누보다 위험한 물건을 만들어볼래?”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을 뿐, 그런 제안을 해주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잘 들어, 이건 까다로운 작업이야. 양을 아주 정확히 조절해야 해.”
그날부터 나는 비누, 양초, 소금 말고도 철로를 부식시키고 녹슬게 하는 위험물질과 소형 폭약을 만들었다. 방해 공작에 가담하면서 어머니와 친구 장의 죽음으로 인한 철저한 무력감에서 처음으로 벗어났다. 적어도 내가 복수는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부심도 느꼈다. 나는 레지스탕스의 일원이었다.
[95쪽] 나는 늘 피곤했기 때문에 행여 방심해서 실수를 할까 봐 두려웠고, 그렇다 보니 신경이 예민하고 편집증적인 인간이 되었다. 밖에서는 늘 미행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일부러 골목을 몇 바퀴 돌면서 저 행인이 경찰이나 첩자가 아닌지 확인한 다음 작업실에 들어갈 때가 많았다. 헌책장수, 정육점 주인, 빵집 주인도 수상해 보였다. 저기 저 벤치의 연인들, 혹시 나를 훔쳐보다가 들킬 것 같으니까 키스하는 시늉을 하는 거 아닐까? 그러면 다시 방향을 바꾸어 딴 길로 갔다.
[109쪽] 나는 작정해서 위조 전문가가 된 게 아니었다. 군인은 더더욱 아니었다. 내가 지난날 해온 일들은 인간의 의무였지 선택이 아니었다. 지도 제작을 끝내면 다시 전쟁용 문서를 위조해야 할 텐데, 이 전쟁은 내 가치관에 맞지 않았고 (모든 전쟁이 그렇듯) 무고한 희생자들을 낳을 터였다. 일 자체가 싫어서가 아니라 나의 윤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그러한 명령을 따를 수가 없었다. 인도차이나 사람들이 저항에 나선다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했던 일과 무엇이 다를까?
[159쪽] 나는 알제리에서 식민지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발견했다. 사람들의 ‘급’이 나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 나는 공공연한 인종주의, 차별, 모욕을 목격했다. 알제리인들에게는 반말을 찍찍 갈기면서 프랑스인들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예사였다. 마음이 불편한 상황을 여러 번 겪다 보니 내가 백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프랑스가 부끄러웠다.
[197쪽] 1961년 6월. 며칠 전 집에 들어오는데 어떤 남자가 건물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얼굴 인상이나 옷차림이 아무래도 경찰 같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는 태도가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 회색 레인코트, 여우처럼 날카로운 눈빛. 나는 그의 눈에 띄기 전에 얼른 돌아섰다.
[220쪽] 비밀의 삶은 지울 수 없는 부작용을 남긴다.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아로새겨지기 때문에 손바닥 뒤집듯 쉽게 떨쳐낼 수 없다. 언제나 두려움을 안은 채 자유와 목숨을 내놓고 사는 법을 배웠으니까. 아찔한 위험과 낭만의 맛을 보아버렸으니까. 언제나 긴박한 상황에서 순수한 대의에 자신을 바칠 각오로 살았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사회로 돌아가기는 너무 힘들다.
[230-231쪽] 때로는 그런 희생이 지겨웠다. 곡예 부리듯 허다한 일을 해내고,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허구한 날 밤을 새우거나 두 시간씩 쪽잠을 자고,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미행이 붙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내 아이들도 자주 못 보고, 나를 사랑하는 여자들을 힘들게 하고, 지켜야 할 비밀로 인해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내 손에 달린 이들의 목숨을 생각하면 자기 연민 따위는 사치였다.
[245쪽] 나는 이미 기성세대였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언제나 현역이었다. 나는 혼자였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이들은 많았지만 내 영역에는 거의 아무도 없었다. 필요할 때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이 있을 때마다 나는 위조문서를 만들었다. 똑같은 질문이 항상 나를 괴롭혔다. 내가 일을 그만두면,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누가 내 뒤를 이을 것인가?
[263쪽] 나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 즉 위조 기술과 지식, 기발한 사고, 흔들림 없는 이상으로 나 나름의 투쟁을 30년 가까이 이어갔다. 우리에게는 상황을 바꿀 힘이 있다는 확신을 품고 그저 손 놓고 있기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현실,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는 현실과 맞서 싸웠다. 더 나은 세상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믿었기에 가능한 한 힘을 보탰던 것이다. 그러한 세상이 오면 더 이상 위조범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런 세상을 꿈꾼다.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위조범”
여권과 신분증, 각종 서류를 위조해
1만 명을 살려낸 전설의 레지스탕스
염색공, 위조범, 사진가, 그리고 레지스탕스
2023년 1월 10일 『르몽드』, 『리베라시옹』,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유력 신문들은 아돌포 카민스키가 파리의 자택에서 97세를 일기로 영면했다고 보도했다. 카민스키는 2차대전 당시 쥘리앵 켈레르라는 가명으로 레지스탕스에 가담해 여권과 신분증, 문서를 위조하여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살려냈다. 이렇게 살아난 이들은 대부분 어린이였다.
카민스키 가족은 타의에 의해 여러 차례 삶의 터전을 옮겼다. 러시아에서 프랑스에서, 프랑스에서 아르헨티나로, 아르헨티나에서 다시 프랑스로.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인간이 ‘권리들을 가질 권리’를 가지기 위해서는 정치적 공동체에 속해야 하며 가장 확실한 증거는 적절한 서류를 소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정치적 공동체에도 속하지 못하고 적절한 서류도 갖추지 못한 이들은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고향을 떠나자마자 노숙자가 되었고 국가를 떠나자마자 무국적자가 되었다. 인권을 박탈당하자마자 무권리자가 되었고 지구의 쓰레기가 되었다.”
카민스키 가족을 비롯한 동유럽 유대인은 누구보다 아렌트의 통찰을 뼈저리게 느꼈다. 카민스키의 아버지 살로몽이 러시아 유대인 사회주의 조직인 분트에서 활동했기에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 정부는 이 가족을 추방해버렸다. 카민스키 일가는 아르헨티나로 떠났다가 나중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려 했지만 기약 없는 난민 신세가 됐다. 한 달이나 배를 타고 프랑스에 도착했지만 입국을 거부당했고 입국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터키에서 막막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고작 다섯 살 어린 나이에 카민스키는 ‘서류’라는 단어의 의미를 확실히 알았다. 합법적으로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려면 신원을 입증하는 자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카민스키 가족처럼 수십 년 동안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쫓겨 다닌 사람들은 그런 자료를 손에 넣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그랬으니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쫓기고 내몰린 수많은 사람들은 카민스키에게 결코 남일 수가 없었다.
“내가 1시간 잠들면 아이들 30명의 목숨이 사라진다”
카민스키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 가난한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열세 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당한 후 유대인은 공장에서도 추방되었다. 카민스키는 염색업자의 견습생이 되어 마술 같은 염색과 탈색의 세계에 흠뻑 빠졌고 단순히 기법을 익히는 것을 넘어 화학의 근본 원리를 깊이 탐구했다. 전문서적을 구해 독학을 했으며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는 홀로 실습을 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이렇게 먹고살기 위해 익힌 기술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고 자신의 목숨 또한 살렸으니 얼마나 야릇한 인생의 아이러니일까.
1943년 카민스키 가족은 파리 외곽의 드랑시 수용소로 끌려갔다. 이 드랑시에서 수만 명의 유대인이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수용소로 끌려가 목숨을 잃었다. 이들 가족이 살아난 것은 순전한 행운이었다. 아돌포의 형 폴이 필사적으로 아르헨티나 영사의 청원에 매달리지 않았다면(가족의 국적이 아르헨티나였다) 그들 역시 가스실에서 죽었을 것이다. 카민스키는 사랑하는 친구들은 모두 죽은 마당에 왜 자신은 살아 나왔단 말인가, 반문하며 자책했다. 차라리 수용소에서 죽고 싶었다고 술회한다. 다시 세상으로 나오긴 했지만 가족의 처지는 여전히 위태로웠다. 신분증에 커다랗게 “유대인”이라고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카민스키의 아버지는 살기 위해서는 위조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조직에서 같이 활동했던 친구를 통해 레지스탕스에 접촉하기로 했다.
카민스키는 화학 지식을 쌓았고 폭탄을 만들 줄도 알았지만 레지스탕스는 그의 염색 기술에 더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국경을 넘는 사람, 영국에서 보낸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조직원, 추방 위기에 처한 유대인을 위해 위조 서류를 만들어야 했다. 카민스키는 놀라운 수완과 창의력을 발휘해 여권과 신분증, 결혼증명서, 세례증명서, 배급허가증 등 나치의 추적을 피하는 데 필요한 모든 서류를 감쪽같이 만들어낼 수 있었다. 파리 위조범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소식이 레지스탕스 네트워크에 퍼졌고 카민스키의 작업실은 일주일에 최대 500건의 주문을 받았다. 어느 날, 파리의 유대인 가족의 체포가 임박했으며 사흘 안에 300명의 유대인 어린이의 서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지시가 떨어졌다. 300명이면 각종 서류가 900개는 필요할 터였다.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불가능한 임무였다. 카민스키와 동료들은 한 시간에 서른 개의 위조문서를 만들어야 했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새도 없었다. 한 시간 잠들면 30명의 생명이 사라지는 상황이었다. 밤샘 작업을 마치고 카민스키는 정신을 잃고 기절해버렸다.
타인에 대한 책임감,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카민스키의 위조 작업은 나치가 패망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지만 ‘조국’을 잃어버렸기에 팔레스타인에 새 조국을 건설하기를 열망하던 유대인, 제국주의 프랑스에 맞서 싸우던 알제리인, 베트남의 전장에서 탈영한 미군 병사, 혁명의 불길이 타오르던 남미 여러 나라의 망명자, 그리고 독재에 신음하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스의 저항운동가들이 카민스키가 만든 위조 여권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렇게 30년 세월 동안 쫓기는 사람들, 내몰리는 사람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지만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돈을 받으면, 돈 때문에 그런 일을 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와 불의에 대해 올바른 주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카민스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레지스탕스’를 이어간 이유를 궁금해했다. 이제 자기 목숨이 위태로운 처지도 아닌데 왜 암살이나 투옥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자기 삶을 희생해가면서 먼 땅에서 일어나는 오만가지 투쟁을 지원했을까. 이유는, 열일곱 살 어린 나이에 죽음의 수용소에서 알아버린 타인에 대한 책임감, 친구들은 모두 죽었는데 자신은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는 이 감정을 평생 간직했기에 쫓기는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거절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어쩌다 위조범이 되었느냐고 묻자 카민스키는 “그냥, 어쩌다 보니……” 하고 답했다고 한다. 엄혹한 세월에 사람을 구한 위조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소명이자 윤리였다. 하지만 카민스키는 식민주의, 제국주의 세력에 봉사하는 것은 단호히 거부했다. 또다시 인도차이나를 정복하려는 프랑스 군대의 요청을 거부했고, 유대 국가 건설의 꿈을 품고 팔레스타인으로 건너간 동지들이 태도를 바꾸어 아랍인을 적대하자 그들과 단호히 결별했다. ‘나라 잃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데 도움을 준 일은 후회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훈장을 주겠다는 제안은 거부했고 결코 이스라엘 땅에 발을 디디지 않았다.
카민스키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술회한다. “위조범으로서 내 삶은 끝없는 저항의 연속이었다. 나치즘이 패퇴한 후에도 나는 불평등, 분리 정책, 인종차별, 불의, 파시즘, 독재에 저항해왔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 즉 위조 기술과 지식, 기발한 사고, 흔들림 없는 이상으로 나 나름의 투쟁을 30년 가까이 이어갔다. 우리에게는 상황을 바꿀 힘이 있다는 확신을 품고 그저 손 놓고 있기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현실,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는 현실과 맞서 싸웠다. 더 나은 세상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믿었기에 가능한 한 힘을 보탰던 것이다. 그러한 세상이 오면 더 이상 위조범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런 세상을 꿈꾼다.”
2023년 1월 아돌포 카민스키는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파리코뮌의 전사들을 비롯한 수많은 저항자들이 묻힌 페르라셰즈 묘지에서 열린 ‘반역자’의 장례식(카민스키는 알제리인들의 대의에 동의했고 알제리 독립 투쟁에 열렬히 참여했다)에 프랑스 정부에서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프랑스 주재 알제리 대사가 그의 무덤에 꽃 한 다발을 바쳤다.
“아버지의 삶을 들려주세요”
테드(Ted) 강연에서 지은이 사라 카민스키는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를 말한다. 아돌포는 사진가이자 교사였고, 자식들에게는 항상 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엄히 가르친 아버지였다. 위조범이자 레지스탕스로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 책을 쓴 딸 사라는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주변 사람들은 존경을 가득 담아 아버지를 무자이드(전사)라고 불렀고 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과 알제리 전쟁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라는 또 프랑스 정부가 보낸 서류를 보았다. 아버지가 비밀 정보부에서 복무하며 전쟁 승리에 공헌한 일에 감사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라는 전쟁은 군인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평화주의자이고 비폭력을 신봉하는 아버지가 철모를 쓰고 총을 든 모습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궁금해서 물어보았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라는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고, 이제 나이가 한참 든 아버지에게 진실을 알아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이대로 침묵하며 비밀을 간직한 채로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러내야 할 기억도, 찾아야 할 사람도, 방문해야 할 장소도 많았다. 책을 쓰자는 제안에 아버지는 바로 동의했지만 걱정이 있었다. “사라, 공소시효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니?” 공소시효, 아버지가 무엇보다 먼저 알고 싶어 한 것이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을 도울 때마다 아버지는 법을 어겨야 했고 대의에 헌신하느라 감옥에 갈 위험, 심지어 사형을 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아버지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데 그토록 오랜 세월이 걸린 이유였다.
아버지의 옛 동지들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여행을 해야 했다. 한 명은 포르투갈에, 또 한 명은 알제리에, 다른 한 명은 이스라엘에, 나머지는 스위스, 이탈리아, 미국, 중남미에 흩어져 있었다. 일부는 이미 소식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증인이 아직 살아 있을 때 가능한 한 많은 증언을 들어야 했고 아버지의 기억을 불러내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출간된 이 책은 프랑스에서 빠르게 성공을 거두었고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이스라엘, 아랍, 터키,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2009년 당시 프랑스 언론의 관심도 집중되어 카민스키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고 오랜 꿈이었던 사진전을 열었다. 독자 사인회를 열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집 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위조 신분증을 가져와 혹시 아돌포 씨가 위조한 것이 아닌지 물어보았다고 한다.
작가정보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아노말리』 『역사를 만든 음악가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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