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사람
2025년 04월 28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4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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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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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정이현 작가 인터뷰
죽도록 열심히 살 필요는 없다고 가르친 건 부모님이었다. 요만한 위장을 달고 나왔으면서 미련하게 그걸 모르네. 저러다 짜구 나지. 옆집 개를 두고 엄마와 아빠가 사이좋게 흉보는 동안 일곱 살의 나는 납작한 배를 남몰래 손바닥으로 눌러보았다. 허튼 데 힘 빼지 말고 생긴 대로 대충 행복하게 살다 가면 된다는 것. 그것이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의 보편적 세계관이었다.(7~8쪽)
“82동이라니까. 이건 정말 레어한 기회야.”
우재에게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일까, 기회를 놓치기 아깝다는 마음이 나에게도 있었다. 강력한 소망에는 강력한 전염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당직을 바꿔달라고 동료에게 부탁해야 했다. 고향의 엄마가 편찮으시다는, 누구도 믿지 않을 만큼 진부해서 도리어 거짓말 같지 않은 거짓말을 했다.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잠깐이라도 누워 있고 싶었다. 혼자뿐이지만 침실로 가서 방문을 꼭 닫았다. 침대에 가만히 누웠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조차도. 이 고요함 속에서 비로소 조금 마음이 놓였다. 지금 사는 곳은 방 하나, 거실 겸 주방 하나, 욕실 하나로 이루어진 실평수 아홉 평짜리 집이었다. 몇 발짝 걸으면 욕실, 몇 발짝 걸으면 주방, 몇 발짝 걸으면 침대였다. 그러나 각 공간은 벽과 문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나누어져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했다.(22~23쪽)
스무 살에 처음 서울에 왔을 때 기숙사에 살았었고 그 뒤엔 여성 전용 고시원에 살았다. 처음 제대로 된 원룸을 구해 이사했을 땐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뻤다. 하지만 침대와 싱크대와 다용도 테이블이 한 공간 안에 다닥다닥 붙은 원룸 생활자로 몇 해를 지내고 나니 최소한의 공간 분리에 대해 진지한 염원을 가지게 되었다. 때론 ‘나로부터 나를 분리’하고 싶은 날도 있는 것이다. 종종 내가 칸이 나뉘지 않은 도시락 반찬 통에 담긴 계란말이 같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반찬통의 뚜껑을 열어보면 배추김치와 메추리알 간장조림과 계란말이가 영향을 주고받아 서로에게 스며든 상태. 김치 양념이 묻은 계란말이를 그대로 먹어야 하는 이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과는 진짜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23~24쪽)
“여기서 통하면 대한민국에 안 통하는 데가 없을걸.”
그 말은 무슨 뜻일까. 나는 알 듯도 모를 듯도 했다. 우재가 이 이상한 연극 놀이에 대해 무척 심취해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이 무대에 오르려는 그의 목표는 아무래도 ‘통하는’ 것인 듯했다. 서울 시내 최상급지의 부동산을 당장 계약할 수 있는 남자의 배역을 맡아 자신의 연기가 이 세상에 제대로 통하기를 바라는 것. 우재는 출근복과 별다르지 않은 내 수수하고 평범한 차림새가 영 탐탁지 않은 눈치였다.
“모르는 남의 집 가는데 청바지는 좀 그렇지 않나.”(44~45쪽)
“정리 안 하고 옛날 물건들까지 죄다 쌓아두고 사는 게 우리 엄마집이랑 다를 바 없더라. 근데 뭐 얼마라고? 참, 말이 돼?”
그래서 짜증이 난다고 했다.
“똑같은 척하는데 사실은 다른 거, 그게 제일 싫어. 억까 당하는 것 같아서 불쾌해.”
나는 살사 소스의 맛이 남은 혓바닥을 가만히 움직여 작게 따라해보았다. 불쾌해.(48쪽)
“아니, 돈이 있어야 집을 보여준다는 거야? 말이 돼? 우리가 뭘 훔치려는 거야? 그런 거야?”
그는 화가 났다기보다 기가 막혀 있는 상태에 가까웠다. 자꾸 질문만을 반복했다.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거야? 응? 그런 거야?”
그 질문은 나를 향해서가 아니라 허공을 향해 던져지고 있었다.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우재의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했다. 지금 모르는 모습은 계속해서 모르고 살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우재가 미처 모르는 내 모습을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듯이.(62~63쪽)
그랬구나, 역시. 나는 천천히 어떤 사실을 받아들였다. 뒤통수는 얼얼했다. 내가 거대한 거미줄의 한 귀퉁이에 얽혀버린 날벌레인지 아니면 둔한 공모자인지 영원히 가려낼 수 없을 것이다. 모르는 새 내가 팔아버린 것과, 내가 빼앗긴 것을, 그리고 잃어버리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오래도록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71쪽)
“똑같은 척하는데 사실은 다른 거, 그게 제일 싫어.”
현대인의 불안을 정교하게 직조하는 도시적 감수성의 대가 정이현 작가 신작 소설
모르는 새 내가 팔아버린 것과 내가 빼앗긴 것, 그리고 잃어버리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오늘의 거짓말》 《안녕, 내 모든 것》 등을 통해 세련된 문체와 날카로운 통찰로 일상의 균열과 현대인의 불안을 정교하게 직조하는 도시적 감수성의 대가, 정이현 작가의 신작 소설 《사는 사람》이 위즈덤하우스 위픽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언제나 시대의 감각을 예리하게 포착해온 정이현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과 섬세한 심리 묘사가 빛을 발하는 《사는 사람》은 또 한 번 우리를 강렬한 충격과 깊은 여운 속으로 이끈다.
주인공 ‘다미’는 “허튼 데 힘 빼지 말고 생긴 대로 대충 행복하게 살다 가면 된다”는 것이 보편적인 세계관인 곳에서 나고 자랐다. 평범하게 자라는 동안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했다. 다르게 사는 법을 알 수 없어서. 서울에 있는 학원에 보내달라는 말에 엄마는 “미쳤냐”고 비수를 날리며 “욕심이 과하면 자기 자신을 부수는 법”이라고 말한다. 도청 소재지 사립대학의 사범대 정도면 안정권이라는 담임선생님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전문대에 진학하기로 결정한다. 멀리 가면 빨리 갈 수 있다고, 빨리 가면 멀리 갈 수 있다고, 빠르게 멀리 가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이유인 것처럼.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서울로 향하고, 유명 학원의 상담실장으로 일하며 치열한 경쟁과 부모들의 과도한 교육열 속에서 살아간다.
다미는 남자 친구 ‘우재’와 함께 고급 아파트를 보러 다니는 ‘부동산 투어’에 빠져든다. “서울의 강남 4구와 마용성을 중심으로 하되 나머지 18개 자치구마다 한 개 이상의 아파트 단지를 포함시킨, 제법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작성됐지만 만든 이의 취향이 적절하게 반영되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아주 구체적인 최애 부동산 리스트를 가지고 그곳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도장깨기를 시작한다. 우재는 임장을 다닐 때면 정장 슈트에 넥타이까지 매고 자신이 상류층의 일원이 된 듯한 착각을 즐기지만, 다미는 왠지 비싼 집을 볼 때마다 불안한 마음이 더욱 고조된다.
한편, 다미는 학원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처리하는 가운데, 한 학생으로부터 시험지를 미리 보여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사람 하나 살려주신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요. 제발요.”
‘사는 사람’이라는 제목에서 누군가는 ‘구매하는 사람’을, 누군가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또 누군가는 ‘거주하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파는 동시에 사는 존재로 만드는 거대하고 복잡한 거미줄에 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현대사회의 계급과 욕망, 윤리적 딜레마 등을 현실적인 디테일과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날카롭게 보여준다. 우리는 무엇이든 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삶을) ‘사는 것’은 어쩌면 (물건이나 가치를) ‘사는 것’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사기만 한다고 해서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 진짜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
위즈덤하우스는 2022년 11월부터 단편소설 연재 프로젝트 ‘위클리 픽션’을 통해 오늘 한국문학의 가장 다양한 모습, 가장 새로운 이야기를 일주일에 한 편씩 소개하고 있다. 구병모 〈파쇄〉, 조예은 〈만조를 기다리며〉, 안담 〈소녀는 따로 자란다〉, 최진영 〈오로라〉 등 1년 동안 50편의 이야기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위픽 시리즈는 이렇게 연재를 마친 소설들을 순차적으로 출간하며, 이때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한데 묶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단 한 편’의 단편만으로 책을 구성하는 이례적인 시도를 통해 독자들에게 한 편 한 편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위픽은 소재나 형식 등 그 어떤 기준과 구분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단 한 편의 이야기’라는 완결성에 주목한다. 소설가뿐만 아니라 논픽션 작가, 시인, 청소년문학 작가 등 다양한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장르와 경계를 허물며 이야기의 가능성과 재미를 확장한다.
시즌 1 50편에 이어 시즌 2는 더욱 새로운 작가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시즌 2에는 강화길, 임선우, 단요, 정보라, 김보영, 이미상, 김화진, 정이현, 임솔아, 황정은 작가 등이 함께한다. 또한 시즌 2에는 작가 인터뷰를 수록하여 작품 안팎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1년 50가지 이야기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펼쳐 보일 예정이다.
∥위픽 시리즈 소개∥
위픽은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입니다.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 작은 조각이 당신의 세계를 넓혀줄 새로운 한 조각이 되기를,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모여 당신의 이야기가 되기를, 당신의 가슴에 깊이 새겨질 한 조각의 문학이 되기를 꿈꿉니다.
한 조각의 문학, 위픽
구병모 《파쇄》
이희주 《마유미》
윤자영 《할매 떡볶이 레시피》
박소연 《북적대지만 은밀하게》
김기창 《크리스마스이브의 방문객》
이종산 《블루마블》
곽재식 《우주 대전의 끝》
김동식 《백 명 버튼》
배예람 《물 밑에 계시리라》
이소호 《나의 미치광이 이웃》
오한기 《나의 즐거운 육아 일기》
조예은 《만조를 기다리며》
도진기 《애니》
박솔뫼 《극동의 여자 친구들》
정혜윤 《마음 편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
황모과 《10초는 영원히》
김희선 《삼척, 불멸》
최정화 《봇로스 리포트》
정해연 《모델》
정이담 《환생꽃》
문지혁 《크리스마스 캐러셀》
김목인 《마르셀 아코디언 클럽》
전건우 《앙심》
최양선 《그림자 나비》
이하진 《확률의 무덤》
은모든 《감미롭고 간절한》
이유리 《잠이 오나요》
심너울 《이런, 우리 엄마가 우주선을 유괴했어요》
최현숙 《창신동 여자》
연여름 《2학기 한정 도서부》
서미애 《나의 여자 친구》
김원영 《우리의 클라이밍》
정지돈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죽음들》
이서수 《첫사랑이 언니에게 남긴 것》
이경희 《매듭 정리》
송경아 《무지개나래 반려동물 납골당》
현호정 《삼색도》
김 현 《고유한 형태》
김이환 《더 나은 인간》
이민진 《무칭》
안 담 《소녀는 따로 자란다》
조현아 《밥줄광대놀음》
김효인 《새로고침》
전혜진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면》
김청귤 《제습기 다이어트》
최의택 《논터널링》
김유담 《스페이스 M》
전삼혜 《나름에게 가는 길》
최진영 《오로라》
이혁진 《단단하고 녹슬지 않는》
강화길 《영희와 제임스》
이문영 《루카스》
현찬양 《인현왕후의 회빙환을 위하여》
차현지 《다다른 날들》
김성중 《두더지 인간》
김서해 《라비우와 링과》
임선우 《0000》
듀 나 《바리》
한유리 《불멸의 인절미》
한정현 《사랑과 연합 0장》
위수정 《칠면조가 숨어 있어》
천희란 《작가의 말》
정보라 《창문》
이주란 《그때는》
김보영 《헤픈 것이다》
이주혜 《중국 앵무새가 있는 방》
정대건 《부오니시모, 나폴리》
김희재 《화성과 창의의 시도》
단 요 《담장 너머 버베나》
문보영 《어떤 새의 이름을 아는 슬픈 너》
박서련 《몸몸》
금정연 《모두 일요일이야》
박이강 《잡 인터뷰》
김나현 《예감의 우주》
김화진 《개구리가 되고 싶어》
권김현영 《수신인도 발신인도 아닌 씨씨》
배명은 《계화의 여름》
이두온 《돈 안 쓰면 죽는 병》
김지연 《새해 연습》
조우리 《사서 고생》
예소연 《소란한 속삭임》
이장욱 《초인의 세계》
성해나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
장진영 《김용호》
이연숙 《아빠 소설》
서이제 《바보 같은 춤을 추자》
권희진 《일단 믿는 마음》
정이현 《사는 사람》
작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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