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 경주, 그리고 메텔에 관한 이야기

김영 장편소설

김영 지음

북랩 2025년 04월 02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4월 02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1985년 경주를 배경으로 한 이 유쾌하고 발칙하고 통쾌한 소설은, 그때 그 시절에 청소년 시기를 보냈던 많은 독자에게는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과 향수를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어느덧 40년이 지난 2025년 현재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많은 청소년들과 MZ세대는 마냥 고리타분하고 꼰대 같은 어른처럼 보이는 우리의 엄마, 아빠(혹은 삼촌, 이모) 세대에게도 한때 빛나는 청춘과 지금의 청소년들 못지않은 방황과 우울과 재기발랄함과 많은 고민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이 두 세대 간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갈등과 서로에 대한 몰이해를 다소나마 줄이고 서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유익한 도구로 쓰일 수 있다면 이 책을 쓴 저자로서 더할 수 없이 큰 영광이고 보람이겠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재미있게 보셨다면, ‘응답하라, 1985’ 버전인 이 유쾌·상쾌·통쾌한 성장 소설도 꼭 한 번 읽어보시길!
- 작가의 말

목차

episode 1
episode 2
episode 3
episode 4
episode 5
episode 6
episode 7
episode 8
episode 9
episode 10
episode 11
episode 12
episode 13
episode 14
episode 15
episode 16
episode 17
episode 18
episode 19
episode 20
episode 21

책 속으로

1985년 12월 12일.
나는 아직도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리 아름답거나 자랑스러운 기억은 아니지만 그날은 내 열여섯 인생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시험이 있던 고교 입시 날이었으니까. 그랬다. 그날은 그해 중3이었던 내가, 전국의 많은 중3들과 함께 ‘고입선발고사(혹은 연합고사라고도 불리었다)’란 걸 치른 날이었던 것이다.
1교시 시험이 끝난 후, 나는 1층에 있는 상고의 변소로 천천히 내려갔다(그때 모인 애들은 모두 2층에 있는 교실에서 시험을 치렀다). 딱히 똥이 마렵다거나 오줌이 마려운 건 아니었지만 나는 쿤타랑 함께 담배를 피우며 수다나 좀 떨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대충 예상했던 풍경이긴 하지만, 상고의 변소 앞은 벌써 담배를 피우러 온 녀석들로 북새통이었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얼추 한 20~30명쯤 되는 녀석들이 상고의 변소로 몰려와 미친 듯이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노는 레벨에 따라, 출신 중학에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 삼삼오오 둥그렇게 무리를 지어서 말이다.

p. 8



확실히 그녀는 내가 본 여자 중에서 가장 예쁘고 매혹적인 여자라고 봐도 무방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좀 더 정확하고 자세히 보기 위해서 그녀의 모습을 계속 힐끗힐끗 훔쳐봤는데, 그녀는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의 아름답고 세련된 여자였던 것이다.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또 머리 스타일이면 머리 스타일……. 그녀는 대충 스무 살이나 스물한 살쯤 되어 보이는 묘령의 여인이었는데, 나는 그녀의 모든 외모며 이미지 같은 게 그동안 내가 꿈꿔왔던 이상형의 여인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청순가련형의 희고 갸름한 얼굴에, 패션모델처럼 날씬하고 후리후리한 키, 그리고 또 거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 같은 것들이 모두 다. 외모뿐만 아니라 패션도 아주 근사하고 멋있었다. 그녀는 어디 장례식장에라도 다녀오는 길인지 아래위로 모두 검은색의 옷(치마 정장에 롱코트를 입고 있었다)을 입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녀가 어딘지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메텔’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은하철도 999의 메텔처럼 노란 금발에 벨벳류의 의상을 입고 있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녀는 꼭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메텔과 비슷한 외모와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하던 은하철도 999의 광팬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는 세상 그 어떤 여자보다 메텔이란 인물을 좋아하고 사랑했다. 만화 영화 속의 인물을 현실 속의 인물보다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게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때껏 이 세상에서 메텔보다 더 멋지고 아름다운 여자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p. 302



세상 어떤 것보다 뜨겁고 에너지가 넘치는 찬란한 태양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메텔의 그 가슴 따뜻하고 희망찬 격려 때문이었을까? 나는 갑자기 내일에 대한 희망과 미래에 대한 설렘 같은 것으로 두근두근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 나는 아직 새파랗게 젊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어린 청소년이었다. 무엇이든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되려고만 하면 될 수 있는, 앞길이 구만리같이 창창하고 밝은 어린 청소년. 그런데 이제 겨우 열여섯, 아니 열일곱밖에 안 된 녀석이 뭘 그렇게 세상을 다 산 것처럼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자포자기하듯 세상을 막 살아갈 필요가 있단 말인가?

p. 494

작가정보

저자(글) 김영

1970년 경주에서 태어났으며 신라중학교를 졸업했다. 1987년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1989년 2월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 판정을 받았다. 이후 10여 년의 병원 생활과 요양 생활을 하다가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고 『나쁜 친구들』이란 제목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자 2007년 대한민국 영화진흥위원회가 주최하는 시나리오 마켓에 출품한 『16세…』가 심사위원 추천작으로 추천받았으며, 2009년 『제니 정과 요한이 아빠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로 대한민국 장애인 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않고 게스트 하우스 운영과 몇 가지 다른 일들을 하다가, 현재는 건강이 좋지 않아 모든 일을 정리하고 조용한 곳에서 요양하며 다시 한번 재미있는 소설과 시나리오를 쓰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