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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우정은 첫사랑이다

릴리 댄시거 지음 | 송섬별 옮김
문학동네 출판사SHOP 바로가기

2025년 04월 25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4월 1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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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22.45MB)   |  약 14.3만 자
ISBN 9791141610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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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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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 제이미슨, 카먼 마리아 마차도가 극찬한 에세이스트, 릴리 댄시거의 우정에 관한 에세이 『여자의 우정은 첫사랑이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내밀한 경험을 줄기 삼아 여자들의 우정에 내재한 다양한 감정과 모양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여자의 우정은 첫사랑이다』는 어릴 때부터 절친처럼 서로를 아꼈던 사촌 동생 사비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사비나가 스무 살이 되던 해 한 남성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댄시거는 우정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사비나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깊은 상실감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서야 저자는 오랜 애도의 결과물로서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에세이들에는 사비나에 대한 회고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 큰 흔적을 남긴 친구들, 유년 시절의 소꿉친구 브리트니와 셜리, 일탈의 공모자였던 학창 시절 친구 헤일리와 헤더, 연애 상담을 해주거나 슬플 때 서로의 어깨를 빌려주던 친구 리아와 리즈 등, 저자와 한 시절을 공유하는 여자 친구들에게 바치는 사랑 고백이 가득 담겨 있다.

“건물 벽 옆으로 위태롭게 튀어나온 화재 비상구는 딱 우리를 위한 곳처럼 느껴졌다. 포치만큼 쉽게 다가갈 수 없고, 저 아래서 걷는 사람들은 존재조차 알아차리기 힘든 곳이었다. 우리는 세상과 그 안에 담긴 걱정으로부터 아주 높이 올라간 곳에, 나무우듬지에 앉은 까마귀들처럼 앉아 있었다.”(30쪽)

이 책은 시대와 배경은 달라도 각자가 간직하고 있는 유년의 추억 한 조각을 소환한다. 다른 한편, 십대 소녀들의 관계를 둘러싼 편견에 날카롭게 펜을 들이대 정체성과 욕망에 대한 문화적 고정관념에 균열을 낸다. 또한 실비아 플라스, 아나이스 닌 등 저자가 작가적 감수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여성들이 서로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릴리 댄시거는 데뷔작 『네거티브 스페이스(Negative Space)』 출간 당시 “이 시대 최고의 회고록 중 하나” “모든 문장이 강렬하다”와 같은 작가들의 찬사와 함께 독자의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한국에도 소개된, 여성 작가 22인의 분노에 대한 에세이집 『분노하라』를 통해 여성의 심리와 목소리의 새로운 전달자로서 인정받은 릴리 댄시거. 자신의 경험을 섬세한 문장으로 직조한 결과인 이 책은 그의 또 다른 매력과 필력을 온전히 전한다.
첫사랑
베스트 프렌드 포에버
프리즌 브레이크
공범
여자들과 키스하기
연기 자욱한 카페를 찾아서
슬픈 소녀들
애도하는 친구를 지지하는 법
파도처럼 밀려오는
화재 비상구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주술
장미 타투
서로에게 엄마 되기
초상 사진 프로젝트
살인사건 회고록에 관하여

감사의 말
옮긴이의 글
참고 자료

낭만적 사랑에는 한 번에 하나의 사랑만 한다는 기대가 담겨 있다. 그러나 자매애는 다수를, 겹침을, 맞물림을 허용한다. 사랑의 기준이 되는 첫사랑은 그뒤를 따르는 모든 다른 사랑들 곁에서 계속된다. 「첫사랑」 29쪽

나는 모든 것을 지워버릴 사랑, 나 자신도 완전히 잃게 만들 사랑을 원했었다. 나라는 단일한 정체성에서 느끼는 고독을 버리고 내가 속할 장소를 얻고 싶었다. 그건 나보다 큰 무언가의 반쪽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원했고, 어쩌다보니 기적적으로 찾았다. 한동안은 그게 내가 꿈꾸는 모든 것인 줄로만 알았다. 내 안에서 피어오르는 모든 감정을 다 받아줄 헤일리가 있었기에, 그 어떤 생각, 의심, 두려움도 홀로 감당할 필요가 없었다. 남은 감정이 있더라도 헤일리에게 받은 감정들로 씻어냈다. 나의 욕망, 불안, 앙심을 그애의 것들로 대체했으니까.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그저 헤일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공범」 60~61쪽

내가 여자와 키스하고 싶었던 건 제3의 남성을 즐겁게 하거나 흥분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침없는’ 모습 또는 자유분방한 모습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키스하기 위해서였다. 「여자들과 키스하기」 74쪽

아나이스 닌이 묘사한 파리는 그가 창조한 세계였다. 그가 함께하기로 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과 나눈 대화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당연히, 파리 전체가 그런 모습이던 시절은 존재한 적이 없지만, 내가 갈망하던 파리(그리고 뉴욕)는 그곳을 바라보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다가갈 수 있는 모습으로 줄곧 존재했다. 아나이스 닌과 그의 글이 지닌 마법은 그가 살았던 세계뿐 아니라 그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 그리고 그렇게 바라보겠다는 그의 마음가짐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연기 자욱한 카페를 찾아서」 92쪽

십대 시절 헤더는 단연코 실비아 플라스 유형의 소녀였다. (…) 우리는 그저 1960년대 이후 수도 없이 등장한, 강렬하면서도 폭력적인 시편들로 이루어진 『에어리얼』과 플라스가 경험한 최초의 신경쇠약 발작, 자살 시도, 입원을 소설로 재구성한 『벨 자』에 대한 사랑을 선전포고한 여러 소녀 가운데 둘일 뿐이었다. (…) 자신이 플라스와 닮았다고 주장하는 건 십대 특유의 슬픔을 보잘것없고, 당연하고, 클리셰인 것에서 문예적이며, 비극적이고, 낭만적인 것으로 격상하기 위함이었다. 21세기 초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 불안을 장엄하고 중대한 역사와 엮으려는 시도였다. 「슬픈 소녀들」 97쪽

나는 대체로 슬프다기보다는 화가 나 있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랬다. 나는 가까이 오면 가시로 찌르겠다고 을러대는 고슴도치 같은 소녀였다. (…) 표면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슬픔을 느끼는 건 오로지 혼자 있을 때뿐이었다. 반면 헤더의 슬픔은 환히 드러나는 곳에, 그애의 입에 매달려 그애의 과장된 몸짓과 함께 움직이는 담배와 마찬가지로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슬픈 소녀들」 100~101쪽

슬픈 소녀 미학이 보여주듯이 슬픔은 적절한 형태로, 적절한 여성에 의해 수행되는 경우에 유약하고 유순한 이상적 여성성으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 그렇기에 슬픔이라는, 이른바 전복적인 에토스는 종종 그저 주류 패션이나 영화 산업에서 바람직하다 간주하는 협소한 기준을 강화하는 데 그친다. 올바른 유형의 슬픈 소녀란 ‘곤경에 빠진 여성(damsel in distress)’이라는 닳고 닳은 여성 모티프의 반복이다. 슬픈 소녀는 여전히 사랑스럽다, 구원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너무 늦어버리기 전까지는. 「슬픈 소녀들」 110~111쪽

애도에는 지도가 없다는 걸 잊어서는 안 돼. 그애의 애도는 네 애도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라는 사실, 그리고 그곳에서 길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애 자신이라는 걸 잊지 마. 네가 그런 것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는 사실이 바보같이 느껴질 거야. 네가 네 존재 외에 다른 무언가를 그애한테 내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사실 말이야. 네가 길을 안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저 그애의 뒤를 따라가. 「애도하는 친구를 지지하는 법」 137~138쪽

건물 벽 옆으로 위태롭게 튀어나온 화재 비상구는 딱 우리를 위한 곳처럼 느껴졌다. 포치만큼 쉽게 다가갈 수 없고, 저 아래서 걷는 사람들은 존재조차 알아차리기 힘든 곳이었다. 우리는 세상과 그 안에 담긴 걱정으로부터 아주 높이 올라간 곳에, 나무우듬지에 앉은 까마귀들처럼 앉아 있었다. 「화재 비상구」 150~151쪽

우리는 서로가 돌봄을 받는다고 느끼게 할 만한 건 어떤 일이라도 기꺼이 하는 사이가 되었다. 어쩌면 이 돌봄이야말로 지금 내가 말하려는 바의 핵심인 듯하다. 누구에 관해 신경쓰는(care about) 것을 넘어, 그 사람을 위하고(care for), 돌보는(take care of) 일. 「서로에게 엄마 되기」 191쪽

나는 살인 이야기를 쓸 준비를 하면서 사비나의 사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욕망이 솟아나기를 기다리면서 수년을 보냈다. 그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오지 않았다. 마침내 사비나에 관해 쓰려고 자리에 앉았을 때 흘러나온 이야기는 살인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다. 사랑 이야기였다. 「살인사건 회고록에 관하여」 279쪽

서로가 있어 세상에 맞서 싸울 수 있었고,
서로가 있어 불안 속에서도 살아낼 수 있었던 순간들

“평범한 삶에는 흥미가 일지 않는” “고조된 순간들”만을 찾아다니며 “단조로움, 따분함”은 곧 “죽음”이라 여기던 십대 시절의 친구들. 그 친구들은 나의 가장 여린 자아로 초대해 감수성을 키워나갔던 영혼의 단짝인 동시에, 각자 가지고 태어난 좁은 울타리를 넘으려 함께 발버둥치던 “공범”이었다. 댄시거는 사춘기 시절을 같이 통과했던 헤일리를 추억하며, 서로의 말에 수없이 “나도”라며 동의를 표했던 기억, 똑같은 옷차림을 하고 쉼없이 걷고 말하고 웃고 취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런 접촉이 “우리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얇은지를 보여주는 확실한 방식”이었다고 고백한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기 위해 서로에게 무섭게 달려들던 그 시기를 지나, 각자의 길로 걸어들어가면서 연락이 뜸해지고, 심지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모질게 관계를 끊어내는 이야기는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틀렸다고 믿게 만드는 어떤 일이 인상적인 것이고, 또 낭만적인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을 이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는 중독성이 있다. 도저히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나라는 이유로 완전한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처럼 수용되고 용서받는 기분이다.” (48쪽)

이러한 다정함과 잔인함이라는 우정의 양가성을 이해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고 미안함과 후회로 가슴 한편이 아릿해지는 친구의 얼굴을 떠올릴 수도 있을 테다. 댄시거는 사촌이자 절친이었던 사비나의 죽음, 또 길고 긴 우울의 터널을 통과하며 혼자 힘들어했을 헤더의 죽음 이후, 우정에도 사랑처럼 타이밍이 있음을 절절하게 깨닫는다. 댄시거는 “함께 슬픈 시를 쓰고 슬픈 노래를 부르”던 친구 헤더와의 기억을 글로 쓰면서, “혼자보다는 함께 고통을 겪을 때 드러나는 힘을 발견”했던 시절을 가슴 아프게 돌아본다.
시간이 흘러, 방황했던 시기를 회상할 때 느끼는 우정의 질감은 이전과는 또 다르다. 댄시거는 결혼 후 아이를 키우거나 비출산을 선언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돌봄은 부모와 자식 관계에만 한정되지 않는, 우정의 중요한 특성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우정은 “누구에 관해 신경쓰는(care about) 것을 넘어, 그 사람을 위하고(care for), 돌보는(take care of) 일”이라는 인식이다. 실제로 사비나를 잃은 슬픔에 스스로를 돌볼 수 없던 때, 주변 친구들이 자신을 먹이고, 위로하며 곁을 지켜주었던 건 그야말로 엄마 노릇이었다고 댄시거는 말한다.

“그저, 꼭 누군가의 실제 엄마여야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타인에게 자양분을 주고 돌보는 일, 그 사람에게 다정함을, 그리고 대체로 그 사람에게 일말의 신경조차 쓰지 않는 세계에서 정서적 쉼터를 내주는 일. 사랑받는 사람이 그 사랑이 자기 삶을 지탱한다고 느낄 만큼, 세상에서 혼자가 된 기분이 절대 들지 않을 만큼, 맹렬하게, 무한하게 사랑을 쏟아붓는 일. 가장 친한 친구들이 내게 해주는 일이자 내가 그들에게 해주고자 하는 일은 바로 그런 것이다.”(194쪽)

그때 함께 시간을 보낸 공간 역시 우정을 떠올릴 때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이 책에 종종 등장하는 ‘화재 비상구’는 저자의 비유대로 “우리의 삶에서 문자 그대로 걸어나가, 함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서로를 위로”하는 유일한 피난처였다. ‘화재 비상구’는 내밀한 우정에 대한 완벽한 공간적 은유로, 독자로 하여금 친구들과 기뻐하고 슬퍼하고 서로의 비밀을 나눴던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실비아 플라스, 아나이스 닌 등
여성 예술가들의 우정을 엿볼 수 있는 특별한 기록

『여자의 우정은 첫사랑이다』 속 우정 이야기의 재료는 릴리 댄시거 개인의 체험이지만, 회고록과 문화비평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오가는 그의 글솜씨는 독자를 우정의 깊숙한 영역까지 사유하도록 이끈다. ‘슬픈 소녀’에 대한 문화적인 해석,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여성 작가를 둘러싼 오해, 성적 친밀감을 동반한 우정과 동성애의 관계 등, 여성 간의 우정에서 고유하게 포착할 수 있는 복합적인 감정과 현상을 파고들어 한층 더 다양한 층위에서 우정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그 시절 십대 소녀들은 실비아 플라스, 아나이스 닌과 같은 여성 작가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어디서든 노트를 가지고 다녔으며, 특별한 우정의 증표로서 자신의 사적인 기록을 단짝과 교환하기도 했다. 세상에 대해 품는 분노만큼이나 사랑하는 마음도 컸던 그때, 실비아 플라스의 시를 낭독하고, 아나이스 닌의 파리를 상상하는 일은 따분한 일상을 견디게 해준 판타지이자 우리를 더 먼 곳으로 이끈 보이지 않는 날개였다.

“서로 책을 돌려 읽었고-실비아 플라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밸러리 솔라나스, 오드리 로드-서로에게 소설, 편지, 시를 써주었고 새벽 세시에 노래를 지었다. 서로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타로카드 점을 봐주고, 안전핀으로 귀와 얼굴에 피어싱 구멍을 뚫어주었다. 우리는 으르렁거렸고, 발끈했고, 몸을 부풀렸고, 이를 드러냈지만 그건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우리가 서로를 위해 만든 부드러움을 지키기 위해서였다.”(37~38쪽)

또한 댄시거는 눈물로 얼룩진 젊은 여성의 사진으로 유명한 ‘슬픈 소녀’ 밈과 보호라는 명목으로 자유를 박탈당하고 권력관계에서 취약한 십대 여성의 위치를 슬픈 여성들의 계보로써 연결 짓는다. 실비아 플라스, 재니스 조플린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예술가로서 당당했던 여성들인 동시에 슬픈 소녀들이었다. 그들의 비극적인 죽음은 생전의 시와 노래 구절들에 비극성을 더했고, 대중 매체는 그 비극성을 단순히 전시함으로써 슬픔에 잠식된 젊은 여성의 이미지를 강화해왔다. 하지만 댄시거는 이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평면적인 설명에 반기를 들며, 그들의 투쟁과 좌절, 성취와 실패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작품과 한 인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것은 친구 헤더, 그리고 SNS 속 슬픈 소녀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댄시거는 스스로에게 일깨운다.

“십대이던 헤더와 내가 큰 소리로 우리의 고통을 떠든 건 우리가 무리로부터 소외되었으며 사회적 표준에서 거부당했다는 걸 알리는 일이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숨기려 들지만 우리는 모든 것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충분히 알 만큼 세상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는 걸 선언하는 일이었다.”(128쪽)

「여자들과 키스하기」에서는 반문화와 하위문화가 범람하고,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분위기였던 1990년대 미국의 대도시에서조차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양성애를 다룬다. 댄시거는 또래의 영향을 받으며 자아상을 확립하는 청소년 시기, 여자들의 키스를 “욕망보다는 성적 모험심을 수행하기 위해 ‘오버하는’ 방법 중 하나로만 취급”했던 분위기를 돌아본다. 동성애는 진짜일지 몰라도 양성애는 가짜라는 편견이다. 댄시거는 십대 소녀들의 내면에 흐르던 욕망을 다시 들여다보고, 여자 친구들과 신체를 맞대던 일, 동성에게 성적 긴장감을 느꼈던 경험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여성들의 우정이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어디부터가 진정한 욕망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매력을 느껴 키스한 여자들과, 딱히 이유 없이 아니면 구경거리가 되고 싶었거나 그도 아니면 친구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키스한 여자들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어 구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열넷, 열다섯, 열여섯 살 나로서는 키스한 남자들에 대해서도 그런 선을 그을 수 없었을 것이다.”(80쪽)

상실의 끝에서 사랑을 기억하기 위하여,
비극 속에 스러진 이를 애도하기 위한 글쓰기의 윤리

『여자의 우정은 첫사랑이다』는 애도의 글쓰기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저자에게는 하나의 시도이다. 살해당한 사촌 동생 사비나에 대해 글을 쓰고자 마음먹은 후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살인사건 회고록’이라는 장르였다. 그러나 댄시거는 잘 알려진 살인사건 회고록을 읽어나가면서, 살인사건을 다루는 작가들이 독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피해자의 사생활을 자극적으로 드러내고 가해자의 서사에 공을 들이는 함정에 빠진다는 점을 깨닫는다. 이 탐구의 과정을 지나며 저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비극적인 실화를 다룰 때 작가와 독자가 지녀야 할 윤리적 태도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비나를 그저 남성의 폭력을 다룬 이야기 속 죽은 소녀로 축소하지 않고 그애에 대해 쓸 수 있을까?” 댄시거는 사비나에 대해 쓰기 위해 진실을 파헤치기보다는 그를 얼마나 아꼈는지 더 세세하고 입체적으로 쓰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사비나를 잃고 13년이 지나 결국 써내려간 이야기는 “살인 이야기”가 아닌 “사랑 이야기”였다.

“살인은 이미 한 사람을 사라지게 위협하는 일이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괴로운 일이기에, 살해당한 이를 애도하는 우리는 기억 속에 그 공포스러운 죽음이 한때 그들이 살아 있던 시절의 모습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려고 기를 쓰며 노력해야 한다.”(258쪽)

이 책은 여러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다. 한 사람이 겪어온 우정의 연대기를 다룬 에세이이기도 하고,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을 건너온 이의 회고록이기도 하다. 또한 여성의 우정에 대해 반복 생산되는 문화적인 통념을 비틀고 외연을 확장하려 시도하는 문화비평이며, 바로 자신이 쓰게 될 거라 확신했던 살인사건 회고록 장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메타비평이기도 하다. 이렇게 한 편 한 편 잘 세공된 이야기가 서로를 만화경처럼 비추며 여성의 우정에 내재한 다양한 면면을 보게 한다.
‘손절’이 흔해진 시대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힘들 때 어깨를 내어주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를 늘 간절하게 원한다. 번역가 송섬별은 「옮긴이의 글」에서 우정에는 “끊임없이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선을 확인하고, 시험하고, 계속해서 실패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썼다. 『여자의 우정은 첫사랑이다』는 그러한 용기에 불을 지피며 ‘여자 친구와의 우정’이라는 소중한 관계, 각자의 삶에 닻이 되어준 순간을 환히 밝혀줄 것이다.

작가정보

(Lilly Dancyger)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뉴욕타임스, 애틀랜틱, 워싱턴포스트, 『플레이보이』 『엘르』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댄시거가 쓴, 아버지의 죽음과 애도의 여정을 담은 회고록 『네거티브 스페이스(Negative Space)』는 소설가 카먼 마리아 마차도가 선정한 산타페 작가 프로젝트 문학상(The SFWP Literary Awards)을 받았으며, 우리말로도 번역 출간된, 여성 작가 22인의 분노에 관한 에세이를 모아 엮은 『불태워라』는 2019년 출간 당시 『퍼블리셔스 위클리』 〈시카고 리뷰 오브 북스〉 등 여러 매체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미술 작가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댄시거는 어릴 때 부모의 이혼을 겪고 열두 살에는 헤로인중독으로 오랫동안 분투하던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다. 고등학교 중퇴와 마약, 술로 점철된 십대 시절을 지나, 대학 입학 후 교내 신문사에서 일하며 작가로서의 길을 다져갔다. 여러 매체의 객원 편집자 및 칼럼니스트, 배럴하우스북스 부편집장, 미디어 플랫폼 〈내러티블리〉의 회고록 편집자 등을 거쳤고, 현재는 컬럼비아예술대학과 랜돌프대학 석사과정에서 논픽션 글쓰기를 가르친다. 2023년 뉴욕예술위원회/뉴욕예술재단(NYSCA/NYFA) 논픽션 부문 아티스트 펠로가 되었다. 현재 뉴욕에서 남편,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닿고 싶어서 읽고 쓰고 번역한다. 여성, 성소수자, 노인, 청소년이 등장하는 책을 좋아한다. 고양이 물루, 올리버와 함께 지낸다. 옮긴 책으로 『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 『내 어둠은 지상에서 내 작품이 되었다』 『괴물을 기다리는 사이』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젠더를 바꾼다는 것』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 『페이지보이』 『자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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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여자의 우정은 첫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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