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심연

조재프 콘래드 지음 | 언어의 숲 옮김

해밀누리 2025년 04월 22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문명의 탈을 쓴 야만, 인간 존재의 심연을 응시하다

20세기 현대문학의 서막을 알린 걸작,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이 새로운 번역과 함께 다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겉으로는 아프리카 콩고강을 따라 떠나는 한 남자의 여정을 그리고 있지만, 실상은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제국주의의 폭력과, 인간 본성의 어두운 밑바닥을 파헤치는 깊은 철학적 성찰의 여정이다.

1899년 발표된 이 소설은 단편적인 이야기 구조와 상징, 모호한 인물 묘사,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체로 인해 단순한 모험소설을 넘어 모더니즘 문학의 결정적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마를로라는 항해자가 벨기에 식민주의의 실체를 목격하며 ‘커츠’라는 상징적 인물과 마주하게 되는 과정은, 독자에게 “과연 누가 야만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어둠의 심연』은 20세기 내내 수많은 작가, 철학자,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이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의 원작이기도 하다.

목차

1장
2장
3장

책 속으로

근데 사실, 이 기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런 식이었어. 16명에서 20명쯤 되는 ‘순례자들’. 다들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리고 어찌나 느긋하던지, 내가 보기엔 병밖에 오질 않겠는데, 그들은 그 기다림 속에서도 편안해 보이더라고. 그들은 서로를 헐뜯고, 음모 꾸미고, 대놓고 멍청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 기지 전체가 뭔가 꾸미는 냄새로 가득했는데도,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었지. 말 그대로 허상이었어. 회사가 내세우는 자선 같은 위선, 그들의 말, 통치, 일하는 척하는 모습까지 전부 다 말이야. — 1장

그가 짧고 지느러미 같은 팔을 뻗었고, 그 제스처는 숲과 시내, 진흙, 강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지. 그 손짓은 마치 햇살 아래 펼쳐진 이 땅의 얼굴 앞에서 배신에 가까운 손놀림으로,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과, 숨겨진 악, 그리고 그 심연 깊은 곳의 어둠을 향해 유혹하듯 부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 2장

인생이라는 건, 정말 우스운 구석이 있어. 의미라곤 하나도 없는 목적지를 향해 냉혹한 논리로 짜인, 그 신비롭기 짝이 없는 체계 말이야. 그 안에서 우리가 겨우 바랄 수 있는 최대치는—자기 자신에 대해 약간 알게 되는 정도겠지. 그런데 그마저도 너무 늦게 찾아오고, 결국엔 지워지지 않는 후회들만 남는 거야. —3장

출판사 서평

이야기는 항해자 마를로가 템스강 위에서 자신의 과거 경험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는 아프리카 콩고강 상류로 배를 타고 올라가면서, 그곳에 파견된 무역회사 요원 커츠를 만나러 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외형상은 커츠의 행방을 찾는 탐험이지만, 그 과정에서 마를로는 문명이라 불리는 유럽의 식민 제국이 현지에서 어떤 비인간적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커츠는 이상과 이상주의에 사로잡힌 인물로 등장하지만, 점차 그는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무너뜨린 존재로 변모하며, 마를로는 커츠의 최후를 통해 인간 본성의 깊은 심연과 마주하게 된다.

결국 커츠가 남긴 마지막 말, “끔찍해! 끔찍하다! (The horror! The horror!)”는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며,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암시로 남는다.

『어둠의 심연』은 ‘문명과 야만’, ‘빛과 어둠’, ‘진보와 파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뒤집으며, 인간 존재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가장 탁월한 문학적 성찰로 꼽힌다.

콘래드는 식민주의를 단순한 정치적 문제로 다루지 않고, 그것을 가능케 한 인간의 본성, 욕망, 자기기만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 책은 철학, 정치, 심리학, 문학을 넘나드는 상징과 레이어로 구성되어 있어, 독자에게는 하나의 ‘해석하는 여정’이자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정신의 항해’가 된다.

『어둠의 심연』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제국은 사라졌지만, 인간의 탐욕과 위선, 폭력은 여전히 이름을 바꾸어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단지 고전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꿰뚫는 ‘살아 있는 질문’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조재프 콘래드

1857년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 귀족 가문 출신으로 태어났으며, 성인기 대부분을 영국에서 활동한 세계 문학사상 가장 독창적인 작가 중 한 명이다. 영어가 그의 세 번째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특유의 시적 문체와 깊은 상징성, 인간 심리의 복잡한 묘사를 통해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로드 짐』, 『노스트로모』, 『비밀요원』 등이 있으며, 대부분의 작품에서 인간 존재의 모순과 제국주의의 폭력성, 윤리적 혼란, 도덕적 딜레마 등을 깊이 있게 다루었다. 『어둠의 심연』은 그의 사상과 문체가 가장 응축된 작품으로, 세계 문학사의 변곡점을 만들어낸 문제작이다.

번역 언어의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