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2025년 04월 25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4월 0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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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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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여행기를 시작으로 플라멩코 수업, 배리어 프리 전시, 바리스타 자격시험, 성형외과 상담 등 조승리 작가가 처음 해본 일들이 유쾌하게 드러난다. 다방면으로 호기심을 갖고 시도하는 작가의 모습과 감정 변화가 생생하다. 그 경험 가운데 등장하는 가족, 친구, 동료, 마사지 숍 손님들과의 대화도 남다르다. 장애 여부와 무관하게 본래 냉소적이라는 작가의 기질과 하고 싶은 말은 기어코 하고 마는 시원한 성격이 개성 있는 대화와 장면을 만들어낸다. 신파는 질색이라며 어두운 현실에서도 결국 승리하는 것은 유머와 해학이라는 그의 신념 아래, 이야기는 무겁지 않고 오히려 재치 있고 유쾌하게 흘러간다. 부정적이면서도 낙천적인, 냉소적이면서도 다정한 그의 모순적인 매력과 기질이 책 전반을 관통하며 독자에게 특별한 울림을 전한다.
제목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은 이 책의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동명의 소제목에서 따왔다. 시각장애로 앞이 보이지 않는 그에게 축제의 화려한 불꽃은 이제 색을 잃었다. 고단한 생계로 기진맥진했던 어머니와의 일화를 떠올리면, 모녀를 놀리기라도 하듯 시끄럽고 빠르게 스쳐 간 차 한 대가 떠올랐다. 작가는 자신의 현실을 불꽃과 차에 빗대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슬픈 현실마저 색감과 이미지로 비유하여 자신이 감각하는 세계를 언어화하는 작가의 시도가 돋보인다. 더불어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회상과 모녀의 삶에 대한 태도가 돋보이는 소재로, 책의 짙은 여운을 만든다.
전맹으로 살면서 때때로 마주하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 절망하고 슬퍼하기도 하지만, 조승리 작가는 “세상이 너무도 보고 싶어서” 기를 쓰고 자신이 느낄 수 있는 것에 마음을 쏟는다. 비록 그것이 아름다울 때도 있고 엉망진창일 때도 있지만 말이다. 안정적이지만 무감각한 삶보다, 차라리 엉망이 되더라도 세상을 구경하고 호기심 가는 것을 경험해내고 마는 작가의 열의가 인상적이다. 감각과 감정의 최대치를 마주하고 느끼는 그의 용기와 에너지가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프롤로그 나는 이렇게 봅니다
1장 세상이 너무도 보고 싶어서
허기진 혼령들의 축제
끝없는 벌판
나의 용사님
두만강 앞에서
1,442개의 사연
진정한 클라크
사랑과 도박은 한 끗 차이
여름날의 재즈 연주
베트남, 그 비린 기억
뜨거운 차별
최고의 샌드위치
2장 덥지도 않은데 열이 난 순간들
공허함을 채우는 필러 1cc
눈먼 바리스타의 숫자 세기
악마와 함께 춤을
모네의 정원을 걷다
벚꽃을 느끼는 방법
봄 손님
어른이 되는 순간
덥지도 않은데 열이 났다
여전히 비겁했다
수박은 눈물 맛
나프탈렌 냄새가 밴 지폐 한 장
추노
당신의 길을 따라 걷다
3장 우리는 어떻게든 살고, 살아갈 것이다
의문의 일 패
저런 사람
불의에 맞서는 방식
꿈이 피어나는 순간
뺨 석 대의 추억
엉터리 현자들
집에 화분을 들였다
각자의 연민
고향이 되어줄게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에필로그
“지금 뭘 먹고 있는지 알아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차가운 질문이었다. 나는 입속 음식물을 삼키고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도대체 방금까지 내 입속에 있던 건 뭐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멍하니 그를 쳐다보자, 그는 조금은 따뜻하면서도 엄격함이 섞인 목소리로 지시했다.
“이제부터 천천히 먹는 거예요. 오래 씹고 음미해요. 식감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요리인지 말해봐요.”
나는 왜 그래야 하냐고 물었다. 그는 식사가 단순히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 맛을 느끼고 풍미를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여태껏 한 끼 때우는 것에 거창한 의미가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미스터 리가 내 앞접시에 채소볶음을 덜어주었다. 나는 천천히 집어 입에 넣고 씹었다. 매콤하고 아삭한 콩 줄기가 느껴졌다.
24쪽, 〈허기진 혼령들의 축제〉 중에서
아라이 부부가 도쿄 타워로 이동하기 전에 점자 도서관에 들러보자고 했다. 내게 의미가 있을 거라면서 말이다. 사실 고백하자면 그때 나는 점자를 읽지 못했다. 장애인 학교에 다닐 때 점자 교육을 받았으나, 저시력이었기 때문에 손이 아닌 눈으로 점자를 읽었다. 또 모든 교과를 확대 문자로 공부했기 때문에 점자를 굳이 익힐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점자 도서관 같은 곳에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거절할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잠자코 따라갔다.
39~40쪽, 〈나의 용사님〉 중에서
의사 선생님은 목소리만 들어도 공부를 잘할 것 같은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상담받고 싶어 내가 원하는 시술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내 실명 원인과 병명을 묻더니 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어머니는 2년 전 망막박리로 실명하셨단다. 현재는 집에만 계시는데 어떻게 재활 훈련을 시켜드려야 할지 고민이란다. 효자 아들은 본인의 업무 따위는 관심 없는지 계속 일흔 살 노인이 다닐 만한 복지관이나 재활교육 시설에 대해 물었다. 그러면서 내게 눈 감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드냐며 위로했다. 병원 과목이 성형외과에서 정신과로 변경됐다. 나는 본래의 목적인 성형과 미용 시술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자 그는 상담은 나가서 상담실장과 하면 된다고 말하며 계속 눈먼 삶은 어떤지, 가족들이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를 질문했다. 나는 쏟아지는 질문 세례를 피해 도망치듯 진료실을 나왔다. 접수 직원이 전문의 특진비라며 내게 만 원을 결제하라 했다. 나는 뾰로통해져 특진비는 내가 받아야 할 노릇이라고 구시렁대며 카드를 긁고 나왔다.
121쪽, 〈공허함을 채우는 필러 1cc〉 중에서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무대 위 플라멩코를 미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고. 공연 내내 그들의 열정을 질투했노라고. 강사님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나 결국 남는 사람들은 그 분야에 미친 사람들뿐이에요. 미쳐야지만 끝까지 남을 수 있거든요.”
그날 강사님은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했다. 예술을 반대하는 부모와의 갈등, 생계의 불안함, 그럼에도 놓지 못하는 플라멩코를. 나는 강사님의 독백을 듣고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이 있어도 반드시 행복하지만은 않음을 알았다.
강사님이 내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관중은 눈이 먼 나뿐이었다. 마룻바닥을 내려치는 발소리는 현란했다. 손바닥으로 몸을 북 치듯 내려쳐댔다. 그녀의 몸짓이 서글펐다. 나도 신발 끈을 꽉 조여 맸다. 그리고 플로어로 나갔다. 강사님 옆에서 발을 구른다. 어설픈 위로처럼.
136~137쪽, 〈악마와 함께 춤을〉 중에서
그날 일을 기억해 낸 것은 엄마의 장례가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그날 그 자리에서 함께 그 이야기를 들었던 육촌 오빠가 넋 나간 목소리로 기억을 환기시켰다. 순간 발뒤꿈치부터 소름이 끼치기 시작해 목덜미까지 닭살이 돋았다. 우연치고는 절묘한 현실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줬다. 다만, 결국 내가 눈이 멀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맞히지 못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두 친구는 엄마가 쉰다섯에 돌아가신 사실만 듣고 그곳에 다시 찾아가자며 호들갑을 떨었다. 내 의도는 우연을 운명으로 혼동하지 말자는 뜻이었다.
나는 타고난 운명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해진 운명대로 살지만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명리학을 공부하며 내가 얻은 것은 운명에 결코 순응하지 말고 맞서라는 가르침이었다. 나는 과거의 기록을 통해 피해야 할 때와 나아가야 할 때를 조언받는다. 그것이 진정한 명리학이라 생각한다.
248쪽, 〈엉터리 현자들〉 중에서
불꽃 소리는 연신 들리는데 내 시야에 들어오는 빛은 없었다. 당연했다. 내 남은 시력으로는 밤과 낮만 겨우 감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눈에 힘을 주었다. 더 높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갑자기 미치도록 불꽃이 보고 싶었다. 발로 창틀을 짚고 올라섰다. 방충망을 열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하늘을 훑어봤다.
장애를 잊고 살다 불현듯 실감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랬다. 세상이 너무도 보고 싶어서 눈가가 빨개질 때까지 두 눈을 비벼댄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한다. 어리석다 자책하면서도 이 순간은 기적을 믿고 싶어진다.
275쪽,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중에서
안정을 누리면서 공허하기보다는
엉망이 되더라도 열정적이고 싶어 경험한 것들,
조승리 작가만 쓸 수 있는 남다른 여행기
낯선 경험을 가장 많이 맛볼 수 있는 행위, 바로 여행이다. 취미가 여행인 조승리 작가는 바쁜 일상 속 틈을 내어 떠난다. 베트남 나트랑과 하노이, 말레이시아 페낭, 일본 도쿄, 홍콩 마카오, 필리핀 클라크, 백두산 천지 등. 동행인을 구하느라 쉽지 않았지만 결국 떠난 여행지에서 조승리 작가는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고 서술한다. 건강식품과 라텍스 쇼핑에 끌려다니다가 잠시 나온 베트남의 뜨거운 벌판에 서서, 응우옌 응옥 뚜의 소설 『끝없는 벌판』을 떠올리고 모진 삶을 살아갈 희망에 대해 사색한다. 마침 중원절이던 말레이시아 페낭에서는 고된 삶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허기를 자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그는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 나름대로 풍광을 감상하는 법이 있”다며 자신이 듣고 맡고 맛보고 만진 모든 것을 상상하고 머릿속에 그린다. 공기 중에 느껴진 물 냄새로 비가 올 것을 예견하고, 비릿한 냄새로 베트남 여행의 따스한 추억을 떠올리는 등 그의 공감각적 표현들은 독자에게 새로운 글맛을 선사한다. 그의 서술이 너무도 생생해서, 책을 읽다보면 관찰이 시각에 의존한다는 통념은 와장창 깨진다. 그가 책에 쓰는 ‘보았다’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늘히 불어오는 바람이 눈앞에 푸른 캔버스를 밀어다 놓습니다. 시리게 내리쬐는 햇살이 캔버스 위에서 부서지며 빛의 입자로 채색합니다. 저는 눈동자 속에 푸른 하늘과 하늘빛으로 빛나는 호수를 그립니다. 저는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생동감으로 기억하고 감상합니다. 천지 앞에서의 냄새, 웅성이던 사람들의 소리, 피부에 닿았던 공기의 질감. 낯선 감각은 새로운 자극이 되어 넓은 사고와 깊은 사유로 저를 이끕니다. 시력을 대신할 감각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에 저는 감사합니다. _10쪽, 〈프롤로그〉 중에서
그렇게 떠난 여행이 원활하고 아름답기만 하면 참 좋을 텐데, 얄궂은 현실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누군가와 함께할 수밖에 없는 형태의 여행인지라 여타 여행자들보다 더 많은 사람과 부대끼기에 그렇다. 이때, 조승리 작가는 기민한 시선으로 온갖 인간 군상을 포착한다. 물건 구매를 압박하는 패키지 여행 가이드, 현지 가이드에게 무례한 여행객, 기대 이상의 친절을 베풀어준 현지 운전기사, 예상치 못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 일행들. 그들과 함께하며 조승리 작가의 감정은 위아래로 꿈틀거린다. 일상에만 머물 때보다 입체적인 감정이 빚어진다. 특히 “대가 없는 선한 마음을 믿지 않았다.”라며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을 의심하다가도 그의 순수한 마음을 알아챈 뒤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며 고마워하는 작가의 마음 변화는 재미있으면서 뭉클하게 다가온다. 누구든 외국 여행에서만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크고 작게 타인의 도움을 받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나는 당신이 사기를 당할까 봐 걱정됩니다. 택시가 필요하면 내게 이야기해줘요. 안심할 수 있는 기사를 소개할게요.”
얼굴에 열이 올랐다. 선의를 의심부터 한 나 자신이 창피했다. 훈훈한 마음으로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_102쪽, 〈뜨거운 차별〉 중에서
여행기 외에도 마음 가는 것을 여럿 시도하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조승리 작가의 감각적인 경험기가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세상을 열렬하게 느끼며 운명에 맞서는 그의 모습을 접한 독자는 경험이 시각을 넘어서는 무언가의 총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의 의지와 열정으로 오늘을 살아갈 동력을 얻게 된다. ‘어차피’ ‘해봤자’라는 무기력과 체념의 말로 자신을 가두는 표현을 떨치는 힘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최근에 해본 낯선 경험이 무엇인지, 의무감 없이 그저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간 묵혀두고 외면하던 감정은 무엇인지. 이러한 물음이 모여 삶에 활기를 더할 것이다.
용기 내어 직면한 감정들의 모양과
기민하게 감지한 ‘살아 있는 온도’에 대하여
특히 이번 책에는 열에 대한 표현이 두드러진다. 일종의 ‘열감(熱感)’으로, 낯선 경험을 통해 느끼게 된 감정들이 불러일으킨 감각이자, 그간 모른 척하던 감정에서 비롯된 감각이다. 남들이 흉보던 친구가 자신을 찾는 게 부끄러워 모른 척한 학창 시절 자신에게 느낀 비겁함, 아버지와 살가운 모습을 보이는 수양 할아버지 손녀를 향한 질투심, 자신의 장애를 희롱하고 이용하려는 아주머니들이 나눈 뒷담화를 듣고 치밀어오른 분노……. 특히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는 책의 말미에서 감정의 밀도는 절정에 이른다. 덥지도 않은데 열이 오른 순간과 기민하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며 느낀 ‘살아 있는 온도’를 작가는 담담하게 묘사하며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인상적인 것은 조승리 작가 역시 처음부터 이렇게 풍부하게 경험하고 감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수전노라는 말, 지독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냉정하게 일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 가족에 대한 책임감 등 경제적 이유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여유 부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꼭 해야 할 일만 하던 시절엔 자신을 돌아볼 새가 없었고, 내적으로 점점 허기지는 자신의 상태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여행을 권한 사람은 절친한 친구 A였다. 그녀는 내가 점점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해간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며, 현실과 좀 떨어져 있으면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나는 배부른 소리라고 일축했다. 매달 부어야 하는 적금에, 가족들에게 보내야 할 돈을 모으려면 하루도 쉴 수 없다고 내 현실을 일러주었다.
“너 엄청 불행해 보여. 난 네가 자신을 제일 사랑하면 좋겠어.” _20쪽, 〈허기진 혼령들의 축제〉 중에서
친구의 조언으로 불행을 자각하고 여행을 떠났다. 그저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 다채롭고 미묘한 맛들을 천천히 맛보며 삶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전보다 생겨서가 아니라 잘 살고 있다는 감각의 필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둘 경험과 감정을 마주하고 받아들인다. 인정하고 싶지 않던, 일종의 치부와도 같던 감정과 기억을 조승리 작가는 회상하며 솔직하게 고백한다. 잊고 싶은 기억들을 켜켜이 되새기며 글로 정리하고 감정의 일부로 끌어안는다. 책을 쓰면서 분노, 서러움, 질투, 배신감과 같은 감정들이 때로는 강한 불길로 타올랐지만 동시에 고마움, 감동, 기쁨 같은 따뜻한 감정들도 열정적으로 피어났다.
조승리 작가의 글을 슬프게만 느끼는 독자도 있다. 하지만 결국 첫 책으로 많은 독자를 끌어들인 힘은, 장애나 성별을 뛰어넘어 다수의 공감을 자아낸 보편성이 그의 글에 있어서다. 이번 수필집 역시 그렇다. 상처 입고 괴로워도 무감각하지 않게 섬세하게 반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살아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얼마나 소중한지 되새기게 한다. 그렇게 조승리 작가의 내밀한 감정과 입체적인 감각 묘사는 독자들에게 삶을 진하게 음미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경리를 꿈꾸던 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안마사로 살던 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운명은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까요?”
조승리가 기록하는 이유, 작가로서의 선언
경리를 꿈꾸다가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되었고, 이제는 작가라는 새 정체성을 갖게 된 조승리 작가. 그러나 첫 책을 낸 뒤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찾아왔다. 글을 써서 홀가분하고 기뻤지만 동시에 글쓰기가 부담스러워졌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낯선 경험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쓰고 싶은 마음을 되찾는다. 그 과정을 기록한 책이 바로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이다.
큰 소득 없는 하루였지만 왠지 흥겨운 감정이 나를 들뜨게 했다. 그날 나는 멈췄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여태껏 과거의 이야기를 했다면 앞으로는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졌다. _123쪽, 〈공허함을 채우는 필러 1cc〉
작가로서의 목소리를 내게 된 조승리의 이번 신간을 읽으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들이 많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외국 여행을 하겠어.’라는 생각을 비롯해 ‘시각장애인이니까 점자를 읽겠지.’ ‘장애인이니까 착하겠지.’ 등등 막연하고 평면적이던 장애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 된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모습도 새롭게 꿈꾸게 된다. 다만, 작가는 당위적인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그간 무심했던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며 독자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건넨다. 세계 평화, 남북문제, 민주화의 역사 등에 크게 관심 없었지만 직간접적으로 이슈를 접하고 신념을 실천하는 타인의 모습을 목격하며 깨닫는 작가의 변화가 책에 나타난다. 그는 다짐한다. “용기 내서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보겠다고.” 이번 책 곳곳에 드러나는 조승리 작가의 선언은 이 책이 너르게 읽혀야 하는 이유, 이 책의 존재 이유를 보다 뚜렷하게 만든다.
부모가 되어본 적이 없기에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장애 당사자로서 한 가지만은 알고 있다. 부모의 보호가 사라져도 우리는 어떻게든 살고,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 삶이 그 증명이다. _214쪽, 〈의문의 일 패〉 중에서
주인아주머니가 말한 ‘저런 사람’이 나를 지칭한다는 걸 알았다. 순간 나는 F를 떠올렸다. 그 단단한 삶의 태도를 말이다. 당당히 어깨를 펴고 바르게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수저질을 했다. 불쾌했지만 상처로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다짐했다.
‘당신들이 말하는 “저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써야지.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릴 거야. 그게 내가 정한 나의 사명이야.’ _223~224쪽, 〈저런 사람〉 중에서
울컥하다가 피식,
조승리 작가가 선보이는 해학과 유머의 글
조승리 작가의 이야기는 심각하고 슬프지만 웃기고 재미있다. 아무리 엉망진창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라도 결국 끝은 씁쓸함과 환멸감이 남는 게 아니라 다정함과 희망, 미소로 맺어지는 건 그의 필력에서 기인한다. 재밌어서 웃고, 어이없고 화가 나면 더 크게 웃는 작가의 성정 때문이기도 할 테다. 재밌는데 슬픈 글, 경쾌한데 무겁기도 한 글. 이번 책은 그의 모순적이고도 매력적인 기질을 닮았다.
기분도 컨디션도 최악이 되자 갑자기 웃고 싶어졌다. 그건 내 성격이었다. 나는 자포자기하면 웃음이 헤펐다. _68쪽, 〈진정한 클라크〉
섬세하게 관찰하고 글로 쓰인 그의 경험은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삶을 삶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답게 산다는 건 어떤 감각인지, 더 나아가 더불어 살아가기 좋은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이 책을 읽다보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상황과 감정을 새로이 알게 되며 생각해보게 된다. 여성, 시각장애인, 한국인 등 조승리 작가를 외적으로 규정 짓는 특정 조건들을 넘어서며 찾아오는 독서의 즐거움, 이입과 공감의 순간이다.
마음이 가는 무언가를 시도하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그가 발견하는 여러 감각을 통해 통찰력을 얻고 싶은 독자, 독특한 문체로 필력을 자랑하는 수필집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전동차 안에서 한강을 건너는 촌각에 가까운 시간, 눈으로 들이치는 붉은빛은 저를 황홀하게 만듭니다. 그 짧고 따듯하고 황홀한 순간이 불행을 견뎌낼 힘이 됩니다. (…) 그 경험은 캄캄한 미래와 맞설 용기, 꺼지지 않는 저의 열정이 되리라 믿습니다.” _285~286쪽,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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