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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가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말들

방방곡꼭 2
김상혁 , 김잔디 지음
난다

2025년 04월 08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9월 1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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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39.75MB)   |  약 7.8만 자
ISBN 979119417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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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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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발음 [방방곡꼭]. “방방(坊坊) 뛰고 곡곡(曲曲) 걸으며 꼭꼭(ㆍ ㆍ) 눌러쓴 난다의 우리 도시 이야기.”(시인 오은) 그 두번째로 찾아간 도시는 “너른 길과 낮은 건물들이 마음의 온도를 높여주는”(11쪽) 경기도 파주이다. 시인 김상혁, 김잔디 두 저자가 ‘파주’라는 한 지역에 함께 살며 사랑하며 각자 써내려간 기록을 한데 모았다.

파주의 아름다운 길 이름을 중심으로 원고를 분류했고 사슴벌레로부터 안개초길까지 서른 개의 길과 동네를 골라 에피소드를 펼친다. 아이가 태어나는 기념으로 책을 내자고 한 때로부터 흐른 팔 년이라는 시간이 원고를 차곡차곡 물들이고 있다.

김잔디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말한다. 다행인 건 우리가 파주에 산다는 것이라고. 다른 곳보다 차게 부는 바람과 늦게 피는 꽃, 더 높거나 깊어 보이는 눈송이들이 너무 가벼워지려는 생각들을 지그시 눌러준다는 걸 이제는 안다고 말이다.
프롤로그 다행인 건 우리가 파주에 산다는 것이다ㆍ010

1. 사슴벌레로
짧은 눈물 자국이 있는 중형견 빽구ㆍ014
2. 성동로
성당에 사는 신이 교회에 사는 신과 다른 것도 아닌데 말이지-참회와 속죄의 성당ㆍ018
나는 유적을 거닐 듯 유아숲을 걷는다-탄현 유아숲체험원ㆍ024
3. 하늘소로
책과 꽃은 많았으면 좋겠다ㆍ030
4. 요풍길
정을 주었던 고양이의 죽음을 모르게 되는 게 더 무섭다ㆍ034
5. 소라지로
멸종위기종 1급 수원청개구리가 맞았을까?-공릉천ㆍ038
6. 청석로
누구의 선심까지 내다버리고 나니ㆍ044
7. 와석순환로
사랑은 이상한 것이지, 더러운 게 더러운 줄도 모르고-운정건강공원ㆍ050
8. 풍뎅이길
시큰둥하게 칭찬을 받아먹으며ㆍ056
9. 평화로
잘못되어서 싫다는 뜻은 아니다-통일동산입구ㆍ062
10. 얼음실로
인사도 하면 안 돼요?-헤이리 7번 GATEㆍ068
살다가 흙에 묻혀 땅이 내민 배가 되는 것-동화경모공원ㆍ072
11. 살래길
이 글을 읽으면 같이 가줄까ㆍ076
사람이 꽃도 모르고-고려통일대전ㆍ081
12. 헤이리마을길
동물원에 가자는 이야기를 더는 하지 않는다-석죽재물고기나무ㆍ086
13. 방촌로
내가 낯선 사람일 때ㆍ092
14. 서영로
그래도 냉장고는 뭐,-서영대학교 파주캠퍼스ㆍ098
15. 임진각로
아픈 할머니에게 그걸 먹였던 하루-임진각 평화누리ㆍ104
16. 지목로
정확하고 예쁜 말ㆍ110
문 닫으면 안 되는데……-시골향기ㆍ114
17. 장릉로
그가 달린 곳은 장릉이었다-파주 장릉ㆍ120
18. 필승로
자기 삼촌이 최용수인데 아느냐고-NFCㆍ128
강아지를 데려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파주 프리미엄 아울렛ㆍ132
19. 약산로
웃다 마는 사람ㆍ138
20. 회동길
그래도 좀 작은 게라면-파주출판도시ㆍ144
아빠는 취해서도 내 텐트였다-밀크북ㆍ148
숀 펜 알지?-지혜의숲ㆍ153
공간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피노지움ㆍ157
레이스 달리면 어때서-롯데 프리미엄 아울렛ㆍ161
21. 금정24길
엄마를 따라 장에 가면 좋았다-금촌전통시장ㆍ166
22. 금릉역로
당신의 시간은 안녕하십니까?-경의중앙선 금릉역ㆍ172
23. 책향기로
그냥 널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ㆍ178
둘이 있으면 그럴 수 있다ㆍ182
이 동네도 좋네요ㆍ187
저는 사람이 싫어서 파주로 왔어요-책향기어린이공원ㆍ194
산수냉면에 앉으면 말이 많아진다-산수냉면ㆍ200
24. 순못길
동그라미를 조금 작게 그리면 된다ㆍ206
25. 해바라기길
편의점 9월중 입주 예정!-달맞이공원ㆍ212
26. 숲속노을로
무엇이 되고자 품는 마음들이 모여-교하도서관ㆍ218
아이까지 키우게 될 줄은 몰랐지-교하도서관ㆍ222
누구도 누구를 침범하지 않으면서-교하중앙공원ㆍ226
나는 내가 아는 그 어른처럼은 살고 있지 못하다-두일마을ㆍ231
27. 노을빛로
너와 나 둘만 남는다ㆍ238
28. 기산로
더 탈래요-마장호수 출렁다리ㆍ244
29. 문발동
글월 문(文)에 필 발(發)ㆍ250
30. 안개초길
아빠 같은 어른은 힘들 것 같아-문발공원ㆍ258

에필로그 나는 아름다운 파주를 주장했던 것이다ㆍ264

● 프롤로그

다행인 건 우리가 파주에 산다는 것이다

우리집 사십이 개월 아기는 종종 이런 인사를 건넨다. 안녕? 나는 김문채야. 나는 지구에서 왔어. 지구에서 건네는 지구인의 안부에 길을 가던 많은 지구인이 안녕? 하고 웃어주었다. 문채는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아이인데, 여러 차례 건네는 인사를 끝내 외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저 지구인이 나를 놀렸어, 나를 싫어하나봐. 이 아이에게 인사는 관계 맺기의 시작이자 끝이다. 설령 상대가 인사를 받지 않더라도, 인사를 건네는 순간 아이는 그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친구가 나를 놀렸어, 친구가 나를 싫어하나봐. 아이의 이해는 이런 식이다.
김잔디와 김상혁 역시 지구에 살고 있다. 좀 특별한 곳에서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가 파주에 산다는 것이다. 너른 길과 낮은 건물들이 마음의 온도를 높여준다는 걸 우리는 안다. 다른 곳보다 차게 부는 바람과 늦게 피는 꽃, 더 높거나 깊어 보이는 눈송이들이 종종 너무 가벼워지려는 생각들을 지그시 눌러준다는 것도. 어느 겨울 자유로를 달리는 동안, 갈라진 얼음덩이 위에서 진흙처럼 녹아가는 눈의 두께를 바라보며 이곳이 지구의 전부 같다고 여기기도 했다. 강아지 살구를 위해 이사 온 여기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살게 되었다. 파주가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말들. 그런 것을 인사말 삼으면 더 많은 지구인과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이가 태어나는 기념으로 책을 내자고 합정 얼띵앤키친에서 민정 선생님을 만난 게 벌써 팔 년 전이다. ‘걸어본다 파주’를 부부가 함께 쓰게 되었다는 기쁨이 컸다. 파주의 길 이름들이 아름다워 도로명을 중심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썼던 에피소드는 아이를 담게 된 우리의 책에 어울리지 않아 지운 게 많다. 이후 유희경 시인의 제안으로 2021년 위트앤시니컬 블로그에 연재를 하면서 겨우 원고가 모이기 시작했다. 풍뎅이길을 우리 동네로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을 만큼 살았고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도 익숙해졌을 때다. 민정 선생님이 건넨 바통을 상혁과 내가 자꾸만 떨어뜨리자 유희경 시인이 보다못해 트랙 안으로 뛰어들었고 그게 두번째 기회가 된 것이다. 연재 원고로도 분량이 부족해 2023년 이사 후 우리가 합쳐 열댓 편의 글을 더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문채는 누구에게나 인사를 잘하고 우리는 파주에 산다. 기쁜 인사를 모아둔 이 책이 당신을 어느 앞날, 파주로 뛰어오게 하면 좋겠다.

김잔디


****

한동안 아이는 ‘길들이다’가 가지고 싶다고 했다. ‘길들이다’를 꼭 구해달라고 하는데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아? 문채에게 물으면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어린 왕자 뿐이었다. 아이가 그 어려운 이야기를 접했을 리도 없지만, 접한다고 그 방향으로 관심이 뻗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에 뿌리내린 장미를 떨칠 수 없어 나는 ‘길들이다’ 속에서 한참을 더 헤맸다. 장미 같은 우리 아이, 이 아이의 까탈스러운 표정 하나하나 모두 헤아리고 척척 해결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길들이다’가 머리는 사자이고 몸은 독수리인 캐릭터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의 이름은 ‘길다’였다. 만화에서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고 악역에 가까워 아이가 눈여겨보며 그 이름을 기억해두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이가 무얼 좋아할지 미리 알아채기 어렵다고 늘 생각한다. _「인사도 하면 안 돼요?」 부분

사방이 탁 트인 드넓은 공원을 걷다보면 이런 평화와 고요는 죽음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몸의 감각이 무엇을 잡으러 떠났다가 돌아오는 데 실패하는 느낌이다. 거둘 것이 없을 때 귀는 빛 속에서도 어둠을 감지하고 피부는 바람을 물살처럼 선명하게 느껴 결국은 마음을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눈앞의 푸른 하늘, 푸른 잔디는 헛것이고 생각의 일렁임 속으로 걸어들어갈 것만 같다. 평일 대낮의 평화누리를 걸으며 그런 감각 속에서 할머니 생각을 했다. 할머니는 오래 아팠다. 치매로 누워 계시는 동안 나는 그를 잊고 지냈다. 바로 옆방에서 말이다. _「아픈 할머니에게 그걸 먹였던 하루」 부분

못 먹는 음식이 많을 땐 차라리 소식하는 사람으로 나를 소개하는 게 편하다. 새우도 딱 한 마리, 게장도 딱 한 숟가락, 움직이는 낙지도 딱 한 점만 먹고 말면 되니까. 그거 조금 먹고 어떻게 살아? 다른 사람과 외식하면 자주 듣는 말이다. 사람들은 편식쟁이를 어린애 보듯 한다. 그것도 못 먹느냐는 잔소리보단 왜 먹다가 마느냐는 타박이 듣기에 낫다. 초탈한 시인이라서 소식하느냐는 이야기도 들어봤으니 역시 이쪽이 나아 보인다. 그래도 음식 앞에서 깨작거리는 건 잔디 아닌 다른 사람과 먹을 때뿐이다. 잔디와 둘이 있는 자리에서는 최고로 마음껏 먹는다. 둘이 있으면 그럴 수 있다. 다른 욕구는 여기저기서 잘도 드러내는데 식탐만큼은 죽어도 들키고 싶지 않다. 오빠, 천천히 좀 먹어, 생각도 하면서. 잔디야, 그만 먹고 싶으면 안 먹어도 돼. 식탁에 둘만 있으면 서로 너무 많이 먹는다고 걱정이다. 많이 먹지 말라기보다는 너무 먹다가 아프지 말라는 뜻이다. _「둘이 있으면 그럴 수 있다」 부분

민폐 끼치지 않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웃음도 조용했고 말도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실은 매일매일 엄청나게 까불고 싶었다. 살면서 한 번쯤 아주 개차반처럼 살아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세 들어 살거나 엄마 친구네에 얹혀사는 동안에도, 캐나다 이모 집에 머물며 양자 수속을 밟는 기간에도, 전처의 부모님 집에서 데릴사위처럼 지내던 시기에도 나는 시끄럽게 존재할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남이 하는 칭찬에 반발심이 생기는 까닭을 모를 리 없다. 모든 칭찬이 싫은 게 아니라 내가 남한테 잘한다는 칭찬이 싫은 것이다. 가령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은 온전히 나를 향하고 있기에 언제 들어도 좋다. 하지만 타인에게 선하고 친절하다는 칭찬은 듣고 싶지 않다. 나는 감정적으로 얽히기 싫어서 타인에게 잘한다. 나는 다른 사십대에 비해 노동을 덜 하고 있어서 가족을 향해 미소 지을 시간과 체력이 남는 것이다. 나는 남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_「저는 사람이 싫어서 파주로 왔어요」 부분

우리 아이는 늙어서 할머니가 되고 싶어한다. 누나들처럼 아름다워지길 기대하고 친구들과의 놀이 시간엔 엄마 역할을 맡길 원한다. 너는 남자고, 남자는 여자가 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 짝꿍과 싸워서 자리를 바꿨다. 남잔데 왜 치마를 입어? 왜 머리핀을 해? 왜 엄마를 하려고 해? 자꾸 묻는 친구들에게 자기는 커서 여자가 될 것이고, 그건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다가 함께하고 싶은 놀이에 끼지 못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엄마는 여자가, 아빠는 남자가 하는 게 맞다고 이야기하였고…… 아이는 서러워서 울었다고 했다. 선생님이 잠재워주려한 혼란한 마음들 가운데 우리 아이 마음은 없었다. _「무엇이 되고자 품는 마음들이 모여」 부분

현재란 과거의 여러 사건이 돌처럼 쌓여 만들어진 탑의 꼭대기 같은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 잘 세워진 나의 돌탑은 몇 개의 밑돌이 빠져야 비로소 흔들리거나 무너져, 다른 탑이 될 가능성을 얻게 될까? 열 번 넘게 던졌는데 도무지 공이 림 안으로 들어가질 않았다. 역시 운동은 자기 몸에 익은 걸 해야 꾸준히 하는 법이라며 값비싼 농구공부터 사둔 것인데, 이내 지쳐 벤치에 앉아 있다보니 잡생각만 들었다. 왕년에 농구 좀 했으니까 뭔가 보여주겠다며 아내를 공원까지 데려와놓고, 숨차고 손 시리고 공은 안 들어가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11월 오전 열한시 문발공원, 바닥을 구르는 농구공을 이리저리 쫓다 지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사십대 중반의 모습이, 인생의 돌탑 꼭대기에 내가 가장 최근에 올려놓은 기억할 만한 돌멩이인 것이다. _「아빠 같은 어른은 힘들 것 같아」 부분

오백 원짜리 동전만한 청개구리를 빈 유리병에 담아 어찌어찌 공릉천 방향으로 차를 몰고는 있었는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 옆자리를 슬쩍 쳐다보았다. 잔디가 개구리가 담긴 딸기잼 병을 두 손으로 너무나도 소중히 쥐고 있었다. 자기도 어디가 어딘지 몰라 불안했는지 연신 창밖 여기저기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청개구리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 게 아닌가? 개구리야, 우리가 꼭 좋은 자리 찾아줄게, 조금만 참아.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말을 보태고 말았다. 어어 그래야지, 데려다주고말고! _「멸종위기종 1급 수원청개구리가 맞았을까?」 중에서

거대한 재단판 위에 수백 겹의 천을 쌓는 단순하고 지루한 작업을 지켜보면서 아빠가 가진 쓸쓸함과 외로움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재단판 한쪽 끝에 서서 반대쪽으로 넓은 천을 던지고 긴 자로 천 위를 가만히 쓸어 평평하게 만드는 일. 깔린 천과 새로 덮이는 천 사이로 공기가 빠져나가며 들썩이는 모양이 꼭 파도 같아서 아빠의 일은 감정과 육체를 함께 쓰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_「아빠는 취해서도 내 텐트였다」 부분


출판사 난다에서 새로운 시리즈 방방곡꼭을 론칭합니다. 방방곡곡. 발음 [방방곡꼭]. “방방(坊坊) 뛰고 곡곡(曲曲) 걸으며 꼭꼭(ㆍ ㆍ) 눌러쓴 난다의 우리 도시 이야기.”(시인 오은) 그 두번째로 찾아간 도시는 “너른 길과 낮은 건물들이 마음의 온도를 높여주는”(11쪽) 경기도 파주입니다. 시인 김상혁, 김잔디 두 저자가 ‘파주’라는 한 지역에 함께 살며 사랑하며 각자 써내려간 기록을 한데 모았습니다. 파주의 아름다운 길 이름을 중심으로 원고를 분류했고 사슴벌레로부터 안개초길까지 서른 개의 길과 동네를 골라 에피소드를 펼칩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기념으로 책을 내자고 한 때로부터 흐른 팔 년이라는 시간이 원고를 차곡차곡 물들이고 있습니다. 김잔디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말합니다. 다행인 건 우리가 파주에 산다는 것이라고요. 다른 곳보다 차게 부는 바람과 늦게 피는 꽃, 더 높거나 깊어 보이는 눈송이들이 너무 가벼워지려는 생각들을 지그시 눌러준다는 걸 이제는 안다고요.
시인 김상혁은 묻습니다. 파주의 무엇이 그토록 매혹적이었을까? 유독 청량한 대기, 빼어난 경관 그리고 눈에 띄게 여유롭고 선량한 이웃들…… 같은 것은 실재하지 않는데, 어쩌면 좋은 시집을 골라 읽을 때처럼 아름다운 파주를 주장했던 건 아닐까? 하고요. 그의 화법은 보통의 것과 조금 다르게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분에 넘치게 행복해서 되레 현실감이 없었고 행운처럼 주어진 이 좋은 환경이 영 내 것 같지 않은” 감각(50쪽). ‘좋은 아빠, 잘해주는 남편’이라는 유의 칭찬에 그런 사람 아니라는 정황을 기어이 찾아서 내놓아야 하는 억하심정(194쪽). 어린 시절 목표는 “민폐 끼치지 않는 아이가 되는 것”(198쪽)이었던 그는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 문채를 통해 가늠하기도 어려운 사십오억 년이라는 지구의 나이를 상상해봅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 기나긴 선 위에다 ‘우리 가족’이 함께할 시간을 하나의 티끌처럼 올려두는 상상에 이르면 세상의 모든 사랑과 수고가 멍청한 농담 같아진다고요. 그러나 시간은 기나긴 선이 아닐지도요, 우리가 나누는 농담의 질감은 어쩌면 프롤로그에서의 아내 김잔디의 말처럼 이곳 파주가 지구의 전부 같다고 여기게 해주었던 어느 겨울, 자유로를 달리는 동안, 갈라진 얼음덩이 위에서 진흙처럼 녹아가는 눈의 두께 같은 것일지도요. 이들 부부에게 파주는 그렇게 ‘평범’하지만 아름답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일상에 최선을 다하며 점점이 다른 무늬를 얻어가는 “새로운 세계”(11쪽)입니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언제로 가고 싶으세요?라는 유진목 시인의 질문에 그러다 지금 내 아이가 안 태어나면 어떡해요, 저 죽어요, 하는 마음에 닿기까지(135쪽) 이들은 얼마나 많은 겹겹의 파도를 쓸어 평평하게 만들었을까요. ‘사소한 걸 아무리 이겨도 큰 싸움에서 진 것 같은’(129쪽) 우리의 삶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건 이렇듯 용케도 한 방향으로 걸어보는 일 아니겠는지요. 본문에서는 두 사람의 원고를 구분하고자 두 사람의 팬톤 별색(김상혁 2707U, 김잔디 7401U)을 각기 지정했습니다. 본문에서 총 서른 번 만나게 되는 속표지의 색은 이 두 사람의 색을 하나로 합했을 때의 빛깔로, 누구에게나 인사를 잘하는 따뜻할 문(炆), 채색 채(彩), 여덟 살 문채의 색깔이기도 합니다. “안녕? 나는 김문채야. 나는 지구에서 왔어.”(10쪽) 이 기쁜 인사에 안녕? 하고 웃어줄 당신을 기다립니다. 문채네 가족이 살아가는 파주에 어서 오세요.

며칠 전이었다. 아내가 아이를 재우는데 둘 있는 옆방에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문채가 어른 되는 일이 무섭고 싫다고 말하는 모양이었다. 문채, 사실은 아빠 좋지? 응, 멋지고 착하다고 생각해(나랑 놀 때는 아빠가 제일 싫다고 말한다). 그럼 너도 아빠 같은 어른 되면 되겠네? 아니야, 아빠 같은 어른은 힘들 것 같아. 아빠는 너무 멋지고 너무 착하거든. 나한테 너무 잘해주거든. _「아빠 같은 어른은 힘들 것 같아.」

작가정보

저자(글) 김상혁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세계의문학』으로 데뷔해 시를 쓰기 시작했고, 몇 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냈다. 세종사이버대학교, 추계예술대학교 등에서 문예창작 강사로 일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학교라면 귀신 보듯 싫었는데, 대학원 다녔고, 대학 입학처에서 일했고,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으니 태어나고 지금껏 학교 밖에서 살아본 적 없는 셈이다. 희미한 꽁무니 쫓는 기분으로 사는 것 같다. 쓸쓸하고 재밌다.

저자(글) 김잔디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불행, 불운, 불안에 둘러싸여 자랐지만 상처 입은 적은 없다. 나의 현명하고 선한 부모님은 유년이 껍질일 뿐이라고 늘 일러주었다.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시를 쓰다 상혁을 만났다. 원고 교정을 보고 운이 좋을 땐 글을 쓰기도 한다. 여덟 살 문채, 열한 살 강아지 살구, 열 살 고양이 마리 요다 오리 소리 물리 꼬지의 주 양육자다

작가의 말

다행인 건 우리가 파주에 산다는 것이다

우리집 사십이 개월 아기는 종종 이런 인사를 건넨다. 안녕? 나는 김문채야. 나는 지구에서 왔어. 지구에서 건네는 지구인의 안부에 길을 가던 많은 지구인이 안녕? 하고 웃어주었다. 문채는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아이인데, 여러 차례 건네는 인사를 끝내 외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저 지구인이 나를 놀렸어, 나를 싫어하나봐. 이 아이에게 인사는 관계 맺기의 시작이자 끝이다. 설령 상대가 인사를 받지 않더라도, 인사를 건네는 순간 아이는 그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친구가 나를 놀렸어, 친구가 나를 싫어하나봐. 아이의 이해는 이런 식이다.
김잔디와 김상혁 역시 지구에 살고 있다. 좀 특별한 곳에서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가 파주에 산다는 것이다. 너른 길과 낮은 건물들이 마음의 온도를 높여준다는 걸 우리는 안다. 다른 곳보다 차게 부는 바람과 늦게 피는 꽃, 더 높거나 깊어 보이는 눈송이들이 종종 너무 가벼워지려는 생각들을 지그시 눌러준다는 것도. 어느 겨울 자유로를 달리는 동안, 갈라진 얼음덩이 위에서 진흙처럼 녹아가는 눈의 두께를 바라보며 이곳이 지구의 전부 같다고 여기기도 했다. 강아지 살구를 위해 이사 온 여기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살게 되었다. 파주가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말들. 그런 것을 인사말 삼으면 더 많은 지구인과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이가 태어나는 기념으로 책을 내자고 합정 얼띵앤키친에서 민정 선생님을 만난 게 벌써 팔 년 전이다. ‘걸어본다 파주’를 부부가 함께 쓰게 되었다는 기쁨이 컸다. 파주의 길 이름들이 아름다워 도로명을 중심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썼던 에피소드는 아이를 담게 된 우리의 책에 어울리지 않아 지운 게 많다. 이후 유희경 시인의 제안으로 2021년 위트앤시니컬 블로그에 연재를 하면서 겨우 원고가 모이기 시작했다. 풍뎅이길을 우리 동네로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을 만큼 살았고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도 익숙해졌을 때다. 민정 선생님이 건넨 바통을 상혁과 내가 자꾸만 떨어뜨리자 유희경 시인이 보다못해 트랙 안으로 뛰어들었고 그게 두번째 기회가 된 것이다. 연재 원고로도 분량이 부족해 2023년 이사 후 우리가 합쳐 열댓 편의 글을 더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문채는 누구에게나 인사를 잘하고 우리는 파주에 산다. 기쁜 인사를 모아둔 이 책이 당신을 어느 앞날, 파주로 뛰어오게 하면 좋겠다.

김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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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파주가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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