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2025년 03월 19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2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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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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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10월 14일, 한나 아렌트가 태어났다. 그보다 7개월 앞선 3월 19일, 아돌프 아이히만이 세상의 빛을 봤다. 동갑내기 두 사람은 유대인 학살을 둘러싼 피해자-가해자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주인공 삼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썼다. 아이히만 역시 자신을 주인공 삼아 『다른 이들이 말했고, 이제 내가 말할 차례다!』를 썼다.
아렌트는 1961년 예루살렘 재판을 참관한 뒤 이 책을 썼지만 후대의 학자들은 문서고에서 굽은 등을 하고 아이히만이 남긴 자료를 추적하며 읽고 해석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을 쓴 슈탕네트가 그중 한 명이다. 아이히만이 악필로 쓴 원고를 잇는다면 길이가 총 240킬로미터에 달하는데, 그녀는 이 자료들을 손에 넣는 대로 읽었다. 그러고는 “아렌트가 너무 성급하고 무엇보다 위험”했다고 평가한다. 아렌트 책 출간 이후 50년 만의 반박이다. 이런 평가는 아렌트의 저술 이후 수십 년간 연구가 누적됐고, 자료가 계속 수집됐으며, 통계 데이터가 산출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제 고쳐 말하자면 아이히만은 “악의 평범성”의 상징이 아니라, 매우 노련하고 체계적으로 유대인을 학살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은 예루살렘 법원에 서기 전 아이히만의 생을 쫓는다. 아렌트의 책은 현재적 가치를 여전히 갖는다. 다만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광적인 칸트 애호가로서 쓴 상세한 기록물은 물론이고, 급진적 신학자 윌리엄 헐과 종교철학을 두고 논쟁한 사실도 알지 못했다. 또한 법정에서 아이히만이 자신의 최후 진술을 대부분 칸트의 말로 채웠다가 변호사에게 제지당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철학도처럼 보이려 한다는 점은 간파했지만, 이것이 어리석은 허영심과 철학 지식의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렸다.
아이히만이 망명지 아르헨티나에서 가졌던 대담의 녹음테이프와 녹취록의 존재는 오랫동안 알려져왔지만, 그 품질이 좋지 않아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슈탕네트는 이 테이프들을 해독하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자료들과 함께 정리해 아이히만에 대한 완전한 분석을 제공하려 한다.
850쪽이 넘는 이 책의 전반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이히만의 모습과 전후의 도주생활을 조명한다. 그는 신분증 위조, 여러 개의 가명, 도주 경로에 대한 거짓말 흘리기 작전 등으로 도피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 정착해서는 자신을 숨기지 않았다. 이름과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고, 유대인 1030만 명이 아니라 600만 명밖에 죽이지 못한 것이 통탄스러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족을 아낀 그는 도주 기간에 아내와의 사이에서 넷째를 출산하기까지 했다.
아이히만은 아렌트가 언급했듯이 “참으로 적당한 정신적 재능”과 “판단 능력의 부재” 및 “자기표현에 무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에서 아이히만을 300시간 동안 심문했던 아브너 레스는 그를 “충분한 지식을 갖추었고, 매우 지적이며 노련하다”고 묘사했다. 아이히만은 모든 텍스트를 자신의 쓸모에 따라 왜곡하는 지적 체계를 가졌지만, 어쨌든 그는 칸트 외에도 니체, 플라톤, 쇼펜하우어를 인용하고 심지어 유대인인 스피노자의 텍스트까지 끌어들여 자기 변론을 하던 사람이었다.
주요 등장인물
서론
1장 “제 이름은 상징이 됐죠”
1. 공적 삶으로의 길
2. 전후의 이력
3. 익명성 혐오
2장 막간극
근동으로의 가짜 흔적
3장 아르헨티나의 아이히만
1. “약속의 땅”에서의 삶
2. 고향 전선
3. 우정의 작업
4장 이른바 사선 인터뷰
1. 작가 아이히만
2. 대화하는 아이히만
5장 안전하다는 착각
6장 역할 변경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7장 막후극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아돌프 아이히만과 같은 범죄자들을 정확히 어떤 위치에 놓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의견이 크게 갈린다. 일부 학자는 그가 평범한 사람인데 전체주의 체제에서 사유 능력 없는 살인자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일부 학자는 그를 절멸 의도를 가진 과격한 반유대주의자로 보았다. 또 다른 어떤 학자들은 나치 정권을 이용해 그저 자신의 사디즘을 위한 구실을 마련했던 정신병자로 그를 간주했다. 그 결과 아이히만에 대해 여러 모순된 이미지가 마구 생겨났다. 그것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를 둘러싼 논쟁에서 더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제껏 논의에서 빠진 관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여론이다. 다시 말해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현상’ 그리고 생애 여러 시기의 아이히만의 이미지에 대한 시각이 빠졌다._26쪽
그런 방식의 삶에 속아 아이히만을 정치적으로는 다소 천박하지만 학문에는 관심 많은 문예 애호가로 오인하기 쉽다. 특히 카페에서 잡담하고 텍스트를 작성하며 발표하거나 동료들과 전문 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와중에도 유대인을 고발하기 위해 꼼꼼히 일하면서 반유대주의 선전 작업을 수행하고 게슈타포와 함께 체포하고 조사한 일들이 사료에 드러나지 않았다면 그러기 쉽다._48쪽
하찮은 명령 수행자라면 아마도 허약한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친위대 중령 아이히만이 동요했다고? “그럴 리 없었다.” 아이히만은 상징이었다._88쪽
고통과 굴욕, 상실을 경험한 사람은 그저 그런 상대의 희생자가 되고 싶지는 않은 법이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우리에게 권력을 행사했다는 생각보다는 강력한 인물이 우리에게 권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더 견딜 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인지 방식은 가해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은 상징이 만들어지는 역동성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판단력을 축소·제한함으로써 권력 행사의 여지를 높인다._90~91쪽
아이히만의 권세는 아주 높았다. “총통의 특명”으로 출장을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관계가 중요한 체제에서 실제 영향력은 권력자와의 개인적인 접촉에서 생겨난다. 제국 내무부와 협의할 때 총통청이 지원하면 강렬한 인상을 남기겠지만, 힘러에게 개인적으로 알릴 수 있다는 언급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거리를 갖고 보면, 아이히만이 1943년부터 자주 한 위협, 즉 협의에 진전이 없으면 힘러에게 날아갈 것이라는 말은 “엄마한테 다 말할 거야”라는 말처럼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총통 체제이자 동시에 사적 의존 체제에서 그런 말이 지닌 위협은 무시할 수 없다._101쪽
아이히만은 감각의 전부를 살아남는 데 집중했다. 숲속은 고요했고 먹을 것은 충분했다. 안정적인 일상을 되찾자 그는 안도했고 자기 삶을 되돌아볼 시간도 가졌다. 아르헨티나에서 아이히만은 “1946년에 저는 기억나는 것을 글로 옮겼고 당시 아직 머릿속에 뚜렷이 남아 있던 통계 수치들을 적어두었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당시 상황과 나중에 글쓰기 욕구가 폭발한 것을 염두에 두면 그런 행동을 특별히 명상적이라고 말할 이유는 없다. 당시 사무실 책상만 없었다 뿐이지 아이히만의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이해하려는 노력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가 그동안 업적으로 간주했던 일이 범죄라고 지탄받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아이히만은 진실을 찾는 데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재판을 받을 경우에 대비해 자신을 잘 변호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_147~148쪽
그런 도주를 선택한 이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체계적인 연구가 나오지 않고 있다. 당시 그 길이 지닌 장점은 그곳에서는 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오토 헤닝거는 그냥 갑자기 사라지지도 않았고 밤도둑처럼 도망가지도 않았다. 그는 밀린 집세를 지불하며 알텐잘츠코트의 이웃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런 이유로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았고 경찰에 알리지도 않았다. 주민들의 기억에 그는 4년 동안 거주했던 괜찮은 손님이자 이웃이었을 뿐이다. 그의 조용한 성품이나 바이올린 연주를 그리워하는 이들은 결혼식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_173쪽
아이히만도 여러 기관, 특히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의 지시로 움직이는 전문 중재자들의 도움을 받는 조직 네트워크를 활용했다. 아르헨티나는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될 독일인 전문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로 인해 독일인들의 도주를 돕는 것은 의미 있는 투자로 여겨졌다. 지식 전이를 위해서라면 전후 유럽은 터전이 좋았다. 망가진 유럽 땅에서는 모두가 새로 기회를 찾지 않을 수 없었고 적당한 일자리가 생기면 끌렸다. 잘 훈련된 인력을 이민자로 수용하려는 국가가 아르헨티나뿐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심지어 아이히만 같은 범죄자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였다._177쪽
아이히만은 평생 범죄로 출세하면서 공적 이미지를 자기에게 이롭게 잘 활용할 줄 알았다._285쪽
아이히만은 수천 마리의 닭과 하얀 털의 토끼에게 바이올린 선율을 들려주었다. 그래도 수입은 아주 좋았다. 아이히만은 4500페소스, 즉 1000마르크 정도를 벌었다고 말했다. 당시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져 가족들은 돈이 급했다. 베라 아이히만이 다시 임신했던 것이다. 5년 뒤 아이히만은 그때의 감정을 특별한 말로 표현했다. “넷째 아들을 얻음으로써 우리는 최고로 행복했다.”_297쪽
아이히만은 논쟁 놀이, 말의 힘, 그리고 자신의 조작 능력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히만의 글에는 영향을 미치려는 욕구, 즉 독자를 제 뜻대로 이끌어 자신의 사고 구조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들려는 욕구가 항상 나타나 있다._401쪽
★독일 NDR 도서상★
★『뉴욕타임스』 2011 최고의 책★
★유대인 전국 도서상 최종 후보★
★컨딜 역사문학상 최종 후보★
삼림감시원, 양계장 주인, 토끼 사육자, 벤츠 노동자로서의 아이히만
아이히만은 유대인 문제 담당관으로서 보안국을 운영했고, 1942년 반제회의 이후 독일의 유대인 말살 정책을 계획·실행했으며, 특히 헝가리 유대인 4분의 3이 사망한 데 대한 책임이 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는 15년간 자유로운 삶을 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전후에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정보가 아직 불충분했다. 이런 무지 덕분에 나치 인사들은 큰 처벌은 받지 않았고, 게다가 정보기관과 경찰의 무능, 무관심, 공모까지 더해졌다. 공모는 여러 수준에서 이뤄졌다. 이들은 정치적 전복 계획을 세웠고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연결망을 구축했으며, 나치의 찬란한 세계관을 옹호하기 위해 문서들을 위조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바로 아이히만이 있었다.
아이히만은 전직 나치 조직의 도움을 받아 오스트리아로 이주하면서 오토 헤닝거라는 새 이름과 집토끼 사육사라는 직업을 얻었다. 취미로 바이올린을 켰던 아이히만은 이 시기 악기 연주로 현지 여성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이 히틀러 아래에서 경력을 쌓은 것은 우연일 뿐, 사악한 것은 나치 정권하의 다른 사람들이었다고 주장했다. 1950년 오토 헤닝거는 돌연 유럽에서 종적을 감췄다. 대신 아르헨티나에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인물이 출현했다. 브로커들이 새로운 이름과 신분을 만들어준 것이다. 클레멘트는 수력발전소 프로젝트에 들어가 측량팀을 이끌었다. 또 그는 말을 타고 팜파스 지역을 유랑하며, 아콩카과산 등정을 할 만큼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 아이히만의 사망신고를 했던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이쪽으로 건너와 남편과 재회했다. 헤어져 산 지 7년 만이었다. 부부는 금슬이 좋아 곧 넷째 아들을 얻었다. 그렇게 평생 클레멘트라는 이름으로 살면 아이히만은 꼬리가 밟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 문제 담당관으로 존재감을 발휘했던 그는 전원생활에 만족 못 하고 활동반경을 점점 넓혔다. 그리고 타국에서 나치 인사나 극우 언론인과 만나 자신의 신분을 드러냈다. 이 책에서 주요 자료가 되는 사선과의 대담은 1957년에 시작되는데, 두 사람이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나치 전력을 가진 독일 이주민 사회와 깊이 연루된 사실을 숨기려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이히만은 언론인 사선에게 끌렸는데, 이유는 사선이 저술가이기 때문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사선은 모던한 문체를 썼고, 독자를 사로잡는 비법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극우 잡지 『길』을 통해 아르헨티나에서뿐만 아니라 전후 독일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었다.
저자가 되려 하고 독자를 포섭하려는 욕망, 그리고 극우 사상에 대한 집념은 아이히만과 사선의 공통점이었다. 특히 사선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유대인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는 책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와 증언을 아이히만에게서 얻어내려 했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 홀로코스트 범죄의 윤곽이 점점 드러나면서 전 나치들의 은신처로 숨통이 조여오기 시작한다. 1959년 2월 먼저 요제프 멩겔레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됐다. 그는 곧바로 파라과이로 숨었다. 대중이 대량학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자 이제 신문에 아이히만의 이름이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해 3월 20일에도 아이히만은 옛 나치 동료의 도움으로 벤츠에서 창고 노동자 자리를 얻었다. 아이히만은 사교적이어서 벤츠에서도 친구들을 금세 사귀었다. 매일 왕복 네 시간 걸려 통근하던 그는 주말이면 아들들과 함께 본인 소유의 작은 땅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 시기 아이히만은 많이 읽고, 종종 바이올린도 켰다.
가해자, 기록자, 저술가로서의 아이히만
전후 아이히만의 주 무대는 아르헨티나다. 이곳은 전후 나치 인사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나라 중 하나다. 이들이 향수에 젖을 수 있게 이곳에는 최신 신문과 책들이 갖춰져 있었고, 정치적 입장과 직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회합을 가졌다. 아이히만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집을 구했는데, 나치의 핵심 인물들을 도피시키고, 직업을 알선하고, 부동산 중개까지 해주는 나치즘 신봉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전직 나치 정책의 실행자는 역사의 현장을 증언해줄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아르헨티나에서 아이히만과 쌍벽을 이룬 사람은 빌럼 사선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친위대 종군 기자인 그는 고유의 문체를 가진 필자로 활약했다. 그는 이른바 ‘사선 서클’을 이끌면서 매주 아이히만을 초대해 이야기를 듣고 논쟁을 벌이며, 이 모든 내용을 녹음했다. 이 책의 후반부는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머문 지 7년째인 1957년 4월경부터 시작해 10월 중순까지 이어진 레코딩 작업이 주를 이룬다. 거기서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이 독일의 이익을 위해 역사적으로 필요한 정책이었다면서 자신의 활약상을 자랑스레 떠벌인다.
사선은 아이히만과의 대화를 녹음함과 동시에 보조원들에게 타이핑하도록 했다. 오늘날 아이히만에 관한 주요 자료는 녹음 원본 파일, 타자화된 녹취록, 녹취록 사본, 아이히만의 저술, 그리고 아이히만의 방대한 메모들이다. 녹취록은 1300쪽 분량이고, 녹음테이프는 29시간 분량에 달해 신뢰할 만한 1차 사료가 되며, 이로써 우리는 사선의 집 거실을 들여다볼 수 있다.
여기 참석한 멤버들은 친위대 대원, 나치당 지구당 위원장, 나치 외무부 ‘유대인과’ 직원, 작가, 독일군 공군 조종사, 괴벨스 언론 담당 부관, 독일 외무부 장관 아들 등이었다. 집단 총살, 죽음으로 이끄는 강제노역, 굶주림과 가스실을 통한 살인 모두를 조망할 수 있는 인물로 아이히만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이히만은 명성을 스스로 만들어내 이들의 시선을 끌면서 그에 소속되는 입장권을 얻어냈다.
모임의 분위기는 마치 세미나 같았다. 잡담은 일절 없고 종이 바스락대는 소리와 배려로 가득 찬 존중만 있었다. 참석자들은 매번 여러 시간 역사이론을 논하며, 문서와 전문 서적을 지칠 때까지 읽고 토론했다. 사선은 다음 모임 때까지 읽을 과제를 나눠주면서 준비를 잘해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4년 후 예루살렘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사선 서클에서 드러낸 본모습을 은폐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 민족사회주의자가 아니고 지난 15년간 품행을 가다듬으며 정치와는 거리가 먼 조용한 시민으로 지내왔고, 또 반유대주의 같은 일체의 적개심을 버린 지 오래라는 방어 전략을 폈다.
그는 이스라엘 첩보 요원에게 납치돼 예루살렘 감옥에 수감되자 자기 변론을 준비하며 사선 서클에서 연습했던 토론과 대화 기술을 모두 활용하게 된다. 즉 그 대담은 결과적으로 아이히만에게 재판 예행연습이 되어준다.
아이히만은 감옥에서도 끊임없이 읽고 기록하면서 저자가 되려는 욕망을 버리지 않았다. “책의 장정과 표지는 진주색이나 비둘기색 한 가지로 유지되어야 하며, 명확하고 직선적이고 매력적인 서체가 사용되어야 한다.” 재판 후 평결을 기다리면서 그는 표지 색깔, 글꼴뿐 아니라 잠재적 편집자나 기증본에 대한 의견까지 덧붙였다.
아이히만의 심문 내용은 총 3564쪽에 달했다. 이 자료가 공개되리라는 것은 자명했기에 아이히만은 이때부터 최종 텍스트를 수정하는 데 몰두했다. 맞춤한 변명들이 보태졌기에, 이때의 진술을 1957년에 기록된 『아르헨티나 문서』와 비교해보면 미묘하게 모순되는 점들이 드러난다. 결국 예루살렘에서 아이히만이 남긴 기록은 원고, 진술 기록, 편지, 개인 서류, 이념적인 글, 개인적 메모, 여백에 적은 수천 개의 메모 등 총 8000쪽에 달한다.
***
아이히만은 자기 연출에 능했다. 따라서 슈탕네트는 아이히만의 진정한 광기가 1945년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나치의 패배 이후 가면을 쓴 그는 예루살렘 법정에 서기 전 15년간 모두를 속일 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1957년에 기록된 『아이히만 문서』의 저자는 아이히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슈탕네트는 이 문헌들을 읽으려는 이들에게 주의를 준다. 여기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직접 얻길 기대해서는 안 되는데, 아이히만처럼 오로지 이해관계만 생각했던 사람이 신뢰할 만한 목격자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문서에서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아이히만의 사고방식’이다. 왜냐하면 거짓말은 그 자신이 진실이라 여기는 심연 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은 바로 그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다.
★추천사★
아이히만은 죽었지만 그를 둘러싼 철학적, 심리적 이해관계는 여전히 긴급하게 제기되며,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_『뉴욕타임스』
철저한 조사와 설득력 있는 논증, 흥미로운 글쓰기. 저자는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에 중요한 새로운 증거와 미묘한 통찰을 대입해 이 논쟁을 재평가하도록 해준다._티머시 라이백, 역사학자
앞으로 어떤 논의도 이 책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아이히만 현상과 그 광범위한 정치적 함의를 제대로 논하지 못할 것이다._스티븐 아슈하임, 『뉴욕타임스』
저자는 압도적인 증거를 통해 명확하고 결단력 있는 글을 썼다. 그는 아렌트가 보도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는 전혀 다른 초상화를 그렸다. 이 어려운 작업의 중요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잊힌 논문, 잃어버린 인터뷰, 묻힌 증거로 가득한 저자의 연구는 아이히만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다._『퍼블리셔스위클리』
이 책의 충격적인 이야기는 아이히만의 냉소주의, 비인간성, 도덕적 자기기만의 전모를 드러낸다. 슈탕네트는 아렌트의 주장에 반대하며, 아이히만이 재판 과정에서 자신을 신중한 관료로 묘사하는 계산적 면모를 보이면서 광적인 면을 의도적으로 숨겼다고 지적한다._리처드 에번스, 『가디언』
아이히만의 뛰어난 가면극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겉모습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지에 대해 엄격하게 기록된 필독서다._『커커스리뷰』
저자는 탐사 저널리스트처럼 여러 대륙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기록보관소의 기록을 추적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게다가 재판 전의 아이히만에 대한 우리의 그림에 새롭고도 놀라운 세부 사항들을 숱하게 추가한다._『월스트리트저널』
놀랍다. 아이히만은 자신을 나치 전쟁 기계에서 ‘작은 톱니바퀴’라고 불렀지만, 슈탕네트는 최근 공개된 문서를 바탕으로 그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_『뉴요커』
철저한 조사와 설득력 있는 논증을 바탕으로 한 훌륭한 책이다. 이 책이 출간된 후에야 비로소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 얼마나 완벽하게 속았는지 알게 되었다._『데일리텔레그래프』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악의 평범성’으로 묘사한 것에 대한 논쟁을 잠재울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아이히만이 예루살렘에서 쌓아온 이미지를 뒤엎는 보물 같은 문서들을 수집했다. 이로써 아렌트가 묘사한 아이히만과는 전혀 다른 아이히만을 발견하게 된다._잭 피셸, 유대인도서 자문위원회
슈탕네트는 아이히만에 대한 평가에 있어 아렌트와 전혀 다른 견해를 보여준다. 그는 아이히만의 지능이 아렌트보다 훨씬 더 높다고 본다. 또한 아렌트의 판단이 “지나치게 성급하고 위험하다”면서, 아이히만이 칸트의 사상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도용한 것을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저자가 들려주는 아이히만 추적 이야기는 좌절을 안겨주는 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이 놀랍도록 감동적인 책은 아이히만 문제가 여전히 독일을 괴롭히고 있음을 보여준다._닉 코천, 『인디펜던트』
유용하고 중요한 이 책의 중심에는 빌럼 사선이 한 놀라운 인터뷰에 대한 저자의 조사가 있는데, 여기서 아렌트가 묘사한 인물과 정반대의 아이히만이 등장한다._조너선 브렌트 바드칼리지 객원교수, 『모먼트매거진』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실제로 전체주의에 길들여진, 판단력이 마비된 관료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증언과 기록을 거의 보지 못했고, 아이히만의 활동에 대한 부분적인 증거에 의거해 결론을 내렸다. 슈탕네트의 세심한 연구 덕분에 악의 평범성이라는 아이히만의 이미지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 이 중요하고 흡입력 있는 책에서 저자는 서독 정보기관이 아이히만의 행방을 수년간 은폐했다는 사실도 폭로한다._『주이시크로니클』
중요하고 특별한 책이다. 저자는 전례 없는 세밀한 세부 묘사를 통해 아렌트가 ‘평범함’이라는 논리로 가려버린 것을 정확히 밝혀낸다. 슈탕네트 연구의 세심함과 뚜렷한 도덕적 분노는 이 여정을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그녀는 우리에게 눈을 뗄 수 없는 ‘아이히만 광경’을 보여준다._『데일리비스트』
저자는 엄격한 학술 연구와 탐사 저널리즘의 재능을 결합해 흩어져 있는 방대한 양의 기록을 추적, 선별했다. 아이히만이 세운 거울의 방과 막다른 골목에 있는 풍부한 자료를 비교, 대조, 해석하려는 저자의 노력은 대단하다. 슈탕네트는 아이히만을 아렌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게 해 다시 무대 중심으로 복귀시켰다._『하레츠』
매우 지적인 책으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다. 전후 아르헨티나에서 나치 망명인들의 활동을 묘사한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_『아이리시타임스』
법의학적인 뛰어난 기술로 저자는 이스라엘 법정에서 아이히만의 변호를 뒷받침하는 형이상학적 구성이 쓰레기 같은 것이었음을 증명한다._『헤럴드』
잘 연구된 획기적인 연구._『주이시리뷰오브북스』
작가정보
Bettina Stangneth(1966~)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함부르크에서 철학을 전공해 「이마누엘 칸트와 근본적 사악함」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논문은 『솔직함의 문화』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18세기의 반유대주의를 다룬 글을 쓰고, ‘거짓말’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2011)으로 독일 NDR 도서상(논픽션 부문)을 수상하고, 2015년 컨딜 역사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뉴욕타임스』는 이 책을 2011년 최고의 책 가운데 한 권으로 꼽았다.
이외에도 『사악한 생각』 『거짓말 읽는 법』 『추악한 안목』 『섹스 문화』 『딜레탕트 클럽』 등을 펴냈다.
강원대 일반대학원 평화학과 교수. 현재 한국냉전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Option oder Illusion?: Die Idee einer nationalen Konfoeration im geteilten Deutschland 1949-1990, 『비밀과 역설: 10개의 키워드로 읽는 독일통일과 평화』 『현대사 몽타주: 발견과 전복의 역사』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하버드C.H.베크 세계사: 1945 이후-서로 의존하는 세계』 『역사에서 도피한 거인들』 『일상사란 무엇인가』(공역), 『근대세계체제 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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