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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과 인간

메리 미즐리 지음 | 권루시안 옮김
위고

2025년 02월 28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1월 0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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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5.80MB)   |  약 38.5만 자
ISBN 9791160895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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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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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과 인간』은 매우 중요한 책이다. 과학이나 철학의 전문용어를 동원하지 않으면서 그 실체를 꼼꼼하게 다룬 이 두꺼운 책은 생생한 논의를 광범위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과학자에게도 철학자에게도, 전문가에게도 일반인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 개념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철학적 문제를 짚어가면서 미즐리는 과학과 철학 사이에 시급히 요구되는 다리를 놓았다.
_아이리스 머독(철학자, 소설가)

『짐승과 인간』은 철학자 메리 미즐리의 첫 저서이자 대표작이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탐구한 이 책은 철학, 윤리, 심지어 과학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그의 주요 주제와 사상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인간이 다른 종들과 구별되는 성질에 집중했다. 미즐리는 철학의 장에 동물행동학 연구를 가져와 인간과 다른 종의 유사성을 탐구한다. ‘인간 행동의 동기는 무엇일까?’ 미즐리는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넓은 관점에서 볼 때 인간 또한 늑대와 곰과 코끼리와 같은 동기로 행동한다고 말한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동물 쪽을 간과하면 인간 행동의 풍부하고 복잡한 면모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요지이다.
그는 콘라트 로렌츠, 니코 틴베르헌, 제인 구달을 비롯한 동물학자들의 동물행동 연구를 언급함으로써, 플라톤에서 실존주의에 이르는 전통 철학이 동물 본성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고,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얼마나 왜곡했는지 드러낸다. 그와 동시에 리처드 도킨스나 에드워드 윌슨 같은 과학자들의 유전적 결정론을 기초로 한 환원주의적인 세계관을 비판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 과학과 윤리의 관계,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과학과 진화론의 발전이 갖는 의미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인간 본성에 대한 보다 통합적인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시대의 한계를 넘어선다. 첫 출간 20년 후 개정판이 나오고 21세기의 생명윤리학적 논쟁에 더욱 타당하다고 인정받으며 출간 시점보다 더 유효하게 읽히는 지금의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개정판에 붙이는 머리말
머리말

1부 어느 유별난 종의 개념적 문제

1장 우리에게 본성이 있을까?
동기 이해하기 | 우리가 가진 개념에 대해 할 수 있는 질문 | 사람이 백지가 될 수 있을까?

2장 동물과 악의 문제
전통과 현실 | 내면의 짐승 |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짐승

3장 본능, 본성, 목적
닫힌 본능과 열린 본능 | 종의 본성이란 무엇일까? | ‘생물학적 결정론’의 의미 | 목적에서 출발하는 추론

2부 심리학에서 기예와 과학

4장 지휘자 없는 지휘
과학적이라는 것 | 유전자 떠받들기 | 장기적 시각의 필요성 | 개인을 잊는 어리석음

5장 동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행동에는 동기가 포함된다 | 묘사라는 것 | 소통과 의식

6장 이타주의와 이기주의
이기심의 다양한 관념 | 이기주의의 용도와 오용 | 이타주의를 오해하는 방법 | 불가사의한 무의식적 이타주의자 | 동기 연구 전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법

3부 이정표

7장 위와 아래
진화의 사다리라는 것이 있을까? | 생존만으로는 불충분하다 | 높이라는 은유 이해하기

8장 진화와 실천적 사고
진화가 타당한 자리 | 신경학이 도덕철학을 대체할 수 없는 이유

9장 사실과 가치
좋음과 바람 | 지식 활용에 관하여 | 본성은 하나의 전체다 | 우리는 이곳의 여행객이 아니다

4부 인간의 표식

10장 말을 비롯한 인간의 뛰어난 특징
단순한 구분의 유혹 | 데카르트-이성과 언어 | 언어와 도덕 | 언어는 무엇일까? 그 밖의 구조적 속성 | 기계 모델이 통할 수 없는 이유 | 언어의 기능 이해하기 | 표현 동작의 기능 이해하기

11장 합리적인 동시에 동물적임에 관하여
본성의 통일성 | 충돌과 통합 | 자기 통제-인간의 해법 | 공통의 해법

12장 문화가 필요한 이유
문화는 본성적이다 | 언어로 본 문화 | 습성과 상징 속에 있는 인류 이전 문화의 뿌리 | 관습적 상징의 자리

5부 공통의 유산

13장 삶의 통일성
감정적 구성 | 가족과 자유 | 지성이 본능을 대체하지 않는 이유 | 의인화는 무엇일까? | 이기주의자의 막다른 골목 | 세계 전체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

감사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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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당사자들 사이에서 다리를 놓으려 애쓰는 동안 양측 모두로부터 계속해서 화살이 날아든다면 굳이 그럴 가치가 있을까? 『짐승과 인간』(Beast and Man)이 처음 출간된 1978년 이후 내가 해온 일이 그랬다.
내 책이 세상을 바꿔놓지 못했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편을 갈라 대립하며 논쟁을 벌이는 것은 인간의 매우 깊은 습성이며, 화해를 위한 노력이 잘 먹혀들지 않는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반목의 골이 너무나 깊기 때문에 다리를 놓는다는 관념은 완전히 버리고 논쟁을 벌이는 양극단 중 해를 덜 끼칠 쪽을 지지함으로써 균형이나 잡으려 노력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체념한 듯)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반목이 더할 나위 없이 지독한 와중에도 일부 사람들은 실제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격렬한 논란이 한동안 이어져 양측이 터무니없이 극단적 입장으로 치닫고 나면 피로와 환멸이 찾아오는데, 이럴 때 이따금 화해 시도가 반가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 일어난 일이다. (p. 13)

존재하는 모든 동물 종은 나름의 본성을, 나름의 본능 위계를 가지고 있다. 어떤 면에서 나름의 미덕을 가진 것이다. 우리나 늑대 같은 사회적 동물의 경우 애정과 소통을 중시하는 성향을 타고나는 것이 분명하고, 또 우리는 진화 과정에서 무기를 갖추는 데 실패하기는 했어도 혼자나 무질서하게 살기보다 사회적으로 교류하며 사는 데 훨씬 어울리는 것이 명백하다. 우리의 직업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 사회적 직업이다. 루소나 홉스가 말하는 자연 상태는 지성이 있는 악어가 있다면 그들에게나 괜찮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근거 없는 환상이다. (pp. 127-128)

그래서 이제 동물행동학자는 다른 여느 종들을 대할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인간을 연구해야 한다. 먼저 행동을 있는 그대로 살펴본 다음, 그런 행동의 원인과 연관성을 찾는 것이다. 이 연구는 행동학자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다른 종에 속하는 존재로서 이곳에 관찰자로 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쉬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센타우루스자리 알파별 출신이라고 생각하고 센타우루스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 센타우루스인은 수백 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를 관찰한 기록을 활용할 수 있다. 그에게 인상적인 것 하나는 이 동물이 종종 고의로 자기 종의 다른 개체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다는 점이다. 물론 항상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이 행성에서 사는 다른 동물들보다는 훨씬 더 자주 그렇게 한다. 그는 백년전쟁, 칠년전쟁, 삼십년전쟁을 비롯한 모든 전쟁과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의례적 살인, 식인, 사형, 고문, 민족 학살, 유대인 대학살에 관한 확실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다른 종들에 관해서는 그런 기록이 없다. 그가 볼 때 이 모든 것은 이 종에게서 뚜렷이 나타나는 여타 특징만큼 매우 특이하며, 그래서 그는 사회학자 인간(편의상 존스라고 부르기로 한다)에게 설명을 청한다. 대화는 다음처럼 진행된다. (p. 143)

진화 시각의 어마어마한 변이 범위에 비하면 인간 종은 (윌슨이 보여주듯) 그다지 놀랍지 않다. 다양한 능력을 전문화한 갖가지 종 가운데 잘 배우는 능력과 지성을 개발하는 쪽으로 전문화한 사회적 종이, 열린 본능을 사용해 여타 종보다 더 다재다능한 사회를 만든 사회적 종이 없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매우 단순하게는 촘촘하게 연결된 산호충 군체부터 훨씬 더 복잡하고 독립적인 개미와 벌, 그리고 각종 조류와 포유류에 이어 우리 인간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종의 복잡성은 이미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각 종에는 나름의 특수성과 나름의 특별한 구조가 있고, 각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상속된 특별한 성향 묶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윌슨이 기여한 부분은 우리의 시각을 바로잡는 것과 관계가 있다. 그는 유전적 원인을 생각하지 않으면 시야가 제한된다고 지적한다. 그것을 고려하기를 거부하면 사회적 행동 양식에 너무 가까이 다가서게 되어, 사실은 우리 사회를 지나치고 있을 뿐인 특징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근원적 구조인데도 거기 쉽게 맞춰 넣을 수 없으면 상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우리 자신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이 실수를 고집한다면 진화는 실제로 우리를 원숭이로 만들 것이다.(pp. 198-199)

유전자는 작은 인간이 아니다. 우리는 매우 복잡한 과정을 묘사하고 있고, (번식 단계만이 아니라) 과정 속의 모든 단계가 동등하게 전체에 기여하도록 진화를 통해 다듬어졌다. 전체 주기에서 개인의 만족은 필요한 요소다. 불만이 깊은 동물은 번식할 수 없다. 갇혀 있는 동물에게서 그 예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번식만 만족에 달린 것이 아니라, 먹기, 씻기, 둥지 짓기 등 종의 생존에 필요한 다른 모든 활동도 그렇다. 사실 우쭐해진 개인을 상대로 윌슨이 충고하듯 우쭐해진 유전자를 상대로 생존법에 대해 충고해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한다면, 그는 윌슨과 매우 비슷한 맥락으로 유전자에게 진화 주기에서 자신이 유일한 요소인 양 행동하지 말라고 타이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유전자 여러분의 안녕은 여러분의 화신인 개개인의 안녕에 달려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여러분은 그들이 계속 살아갈 보람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우울하게 만들거나 불가능한 문제를 안겨주면 그들은 죽어버릴 것이고 그러면 여러분도 함께 죽습니다. 자업자득이죠.” 이처럼 건전한 충고를 들을 위치에 있는 유전자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유전자는 결정을 내리지 않으며, 따라서 충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 같은 이유에서 유전자는 도덕을 가질 수도 없다. 유전자가 트롬본을 연주하거나 사회생물학에 관한 책을 쓰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p. 194)

어떤 의미에서 진화에 방향 또는 목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가 있기는 할까? 창조주를 지목하지 않는다면 그런 목적을 누가 부여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렇지만 어떤 의미에서 ‘진화’라는 낱말은 일어나고 있는 일, 또는 적어도 그 많은 부분을 순리로서 받아들인다는 말이 된다. 진화한다는(evolve) 것은 펼친다는 뜻이다. 두루마리가 펴지거나 꽃봉오리가 벌어져, 그 안에 잠재되어 있던 것이 발휘된다는 의미가 전형적이다. 나타날 것의 가능성을 크게 제한하는 어떤 명확한 잠재력이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었다는 뜻이자, 확실히 일어날 수 있었던 수많은 변화 중에서도 지금까지 일어난 변화가 어떤 의미에서 올바른 내지 적절한 후보였다는 뜻이다. 벌레에게 먹힌 싹은 그 잠재력을 얼마간 실현한 셈인데, 잠재적으로 언제나 벌레의 먹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싹 본연의 가장 중요한 잠재력을 실현한 것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진화가 다른 길을 따라갔다면 실패했거나 부족했거나 비껴갔을 거라고 말해야 할까? 만일 예컨대 새나 개미나 뱀이나 사람이 애초에 발달하지 않았다면 뭔가가 잘못된 것일까? (p. 271)

진실은 진화의 사다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동물은 분화한다. 각기 나름의 삶의 방식을 향해, 각기 특유한 종류의 성취를 향해. 그러면 사다리가 아니라 큰키나무라고 해야 할까? 사람들은 이 그림을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큰키나무는 분명하게 수직축이 있고, 우리는 여전히 우듬지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 말고 누가 꼭대기에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묻는 것은 바로 이 수직축의 의미다. 중심 줄기도 없고 따라서 주된 성장 방향도 없는 떨기나무를 생각해보자. 이 떨기나무의 꼭대기를 특별히 중요하게 취급할 이유가 있을까?* 또는 옆으로 뻗어나가는 딸기처럼 수직 방향으로 성장하지 않는 어떤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는 아예 수많은 방향으로 수많은 종류의 생물을 만들어내는 생물권 자체도 가능하다. 이것은 진화를 나타내는 더 나쁜 그림일까? (p. 289)

이 책 전체에 걸쳐 나는 특정한 본성을 지닌다는 것은 불운이 아니며, 우리가 정말로 귀중하게 여기는 의미의 자유는 완전한 불확정성을 의미하지도 않고 전능은 더더욱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것은 우리가 각자 가진 능력을 발휘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될 기회를 뜻한다. 인간의 범위는 모두 겹치기는 하지만, 각자가 가진 재능이나 취향이나 감정적 가능성의 범위는 다르다. 개별성을 타고난다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누린다는 장점은 무한히 유연하지는 않다는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다른 성별이 아닌 한쪽 성별에 속한다는 것은 이 장점의 한 측면일 뿐이다. 만일 우리가 모두 표준 모델로 이 세상에 왔다면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빈곤하고 빈약할 것이다. 깜짝 놀랄 정도로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게 세상에 반응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마주치는 것은 활발한 인간적 삶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인간의 가능성이 지니는 전체 범위는 개인으로서는 누구도 다 품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넓기 때문에, 그 범위를 망라하려면 더없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인간이 가진 소리 전체를 내려면 전원이 합창대에 올라가야 한다. 나아가 우리 각자에게는 그 자체로 매우 복합적인 본성이 있고, 우리는 거기 속하는 더 많은 요소를 발견함으로써 끊임없이 기쁨과 경외를 느낀다. 문화는 활동적인 사람과 사색적인 사람, 늙은이와 젊은이, 남자와 여자 등 명백하게 부류가 다른 사람들에게 별도의 역할을 맡김으로써 이런 풍요로운 혼란을 어느 정도 단순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이는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pp. 541-542)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단과 목적이라는 언어를 버리고 그 대신 부분과 전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인간은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자신을 능가하는 구성원들이 있는, 자신보다 훨씬 큰 전체의 일부분을 이룰 필요가 있다. 인간은 그 안에서 살도록 적응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감옥에 갇혀 있다고 느낀다. 자아가 그 출구를 무겁게 눌러 막는다.
황조롱이가 활동하는 세계, 황조롱이가 바라보는 세계는 우리로서는 지금이나 앞으로나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온통 그런 세계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 우리 세계의 본질이다. 황조롱이의 존재를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은 황조롱이는 인간의 목적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는 의미일 뿐이다. 황조롱이는 그런 외부적 의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황조롱이는 어떤 의미에서-확실히 연구할 가치가 있는 의미에서-그 자체로 목적이다. (pp. 588-589)

● 『이기적 유전자』 vs 『짐승과 인간』

“이기적이라는 말은 그 의미가 거의 전적으로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상한 단어입니다. 이 말은 ‘신중하다, 자신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뜻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증진하지 않는다’, 또는 사전에 표현된 대로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제하고 자신의 이익에 전념하거나 관심을 갖는다’를 의미합니다. […] 모든 것이 흰색이라면 흰색이라는 단어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항상 이기적이라면 이기적이라는 단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기심은 보편적인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__『가디언』 인터뷰에서

1976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출간되었다. 유전자가 자연선택의 기본 단위이고, 유기체는 유전자의 ‘수단’으로 볼 수 있으며, 유전자는 이기적 복제를 통해 진화를 주도한다고 주장하면서, 출간 당시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진화생물학의 최신 이론을 접목해 주목을 받았다.

1978년, 메리 미즐리의 『짐승과 인간』이 출간되었다. 동물과 인간의 닮은 점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재고하는 이 책은 출간 당시 많은 주목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진화생물학, 사회생물학이 주목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영장류에서 진화한) 인간의 영광에 찬물을 끼얹는 형국이었다. 진화된 유전자를 갖고 있는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같단 말인가!

1979년, 마침내 리처드 도킨스와 메리 미즐리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이른바 ‘유전자 저글링(gene juggling)’. 유전자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진화론, 인간 본성, 인간 행동에 대해 신랄한 논쟁이 벌어졌다(이 철학적 논쟁은 세 편의 글에 걸쳐 벌어졌다). 떠오르는 신성 도킨스와 첫 저서로 남성 철학자 일변의 철학계를 뒤집어버린 미즐리. 시대의 큰 조류가 도킨스를 밀고 있었지만 메리 미즐리가 호락호락 물러설 인물은 아니었다. 미즐리는 도킨스가 다윈주의의 불편한 부분을 무시하면서 과도하게 단순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기적 유전자』가 언어와 내용에서 19세기 사회다윈주의와 유사하다고 지적하며, 그것이 경제적, 사회적 정책에서 약자들을 버리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미즐리는 인간이 유전자의 조종을 받는 유기체가 아닐뿐더러, 행동의 동기에 있어 동물과 다르지 않으며, 알 수 없는 것에 둘러싸인 것이 인간의 운명이고, 그 운명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인간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몇 년간 서로 간접적으로 공격을 주고받았고, 미즐리는 도킨스의 작업을 “생물학적 대처리즘(biological Thatcherism)”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도킨스는 그의 비판을 “이해할 수 없는 초인적인 오해”라고 표현했다.

미즐리는 저명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과 DNA 공동 발견자인 프랜시스 크릭 등 20세기 과학의 거물들도 가차 없이 비판했다. 하지만 미즐리의 진정한 목표는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찰스 다윈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고, 세계에서 인간의 위치는 진화의 관점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철학은 과학적 사고를 설명하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망칠 수 있는 잘못된 (과학적) 아이디어에 대한 필수적인 치료법이었다. 그리고 그 다리의 첫걸음이 『짐승과 인간』이다.


● ‘진짜 세계’에 대한 목마름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은가?

“[지구는] 목적으로 가득 차 있으며 […] 유기체로 가득 차 있고, 모두 각자의 특징적인 삶의 방식을 꾸준히 추구하는 존재, 각자가 되고자 하는 독특한 존재를 파악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_메리 미즐리

2025년 현재, 『이기적 유전자』가 설명하는 진화생물학은 이제 많은 부분 구식이 되었다. 자연선택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유전자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생명체는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수단’으로 단순화한 나머지 적잖은 오독을 불러오고 있다. 그럼에도 도킨스의 유전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신 유전학에서는 도킨스의 주장을 반박하는 연구들이 많이 진행되었지만, 찾아보기도 어렵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이런 처절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기적인’ 사람(유전자)이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백인은 흑인보다, 남자는 여자보다,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은 여전히 공고하다. 그리고 그 부끄러운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누군가는 유전자를 슬쩍 들먹인다(내가 그런 게 아니라 유전자 때문에 그런 거야).

‘트루스니스(truthiness)’.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는 증거와는 무관하게 직관으로 파악하는 진실을 가리키기 위해 이 단어를 만들었다. 믿고 싶은 것이 진실이 되는 시대다. 그리고 그렇게 쉬운 진실이 유통되고 있다. 그렇지만 문득, 초겨울 저녁 기러기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하늘을 가르며 날아갈 때… ‘진짜 세계’에 대한 목마름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 진짜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짐승과 인간』에 있다.


● 책의 구성

“한쪽에는 사회과학자들과 실존주의자들처럼 인간 본성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데스먼드 모리스처럼 인간 본성은 분명 존재하며 잔인하고 저열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인간에게는 본성이 있고 둘 사이의 중간쯤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동물들은 그렇게 ‘야수적’이지 않고 그런 면에서 우리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_『가디언』 인터뷰에서

애초에 미즐리는 진화 생물학자들과 싸우려는 의도가 없었다. 그의 목표는 ‘백지 이론(blank paper)’-인간 본성이 유전되지 않으며 양육과 문화가 모든 것을 형성한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었다. 그는 이에 관해 완성된 원고를 코넬 대학교에 보냈고, 당시 획기적인 저서였던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1975)에 대한 내용을 포함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추가 작업을 거쳐 1978년 드디어 『짐승과 인간』을 출판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9세였다.

『짐승과 인간』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어느 유별난 종의 개념적 문제」에서는 인간은 다른 종과는 너무나 달라 본성이 전혀 없다고 하는 의견을 고찰해본다. 이런 견해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 묻고, 종의 장벽을 객관적으로 생각할 때의 어려움을 평가하고, 본능, 목적, 본성 같은 난감한 개념을 정리하려고 시도한다. 제대로 이해하면 우리에게 본성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에 위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미즐리의 결론이다.

2부 「심리학에서 기예와 과학」과 3부 「이정표」에서는 이 본성을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지 묻는다. 여기서 미즐리는 윌슨을 비롯한 생물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고 분석하면서 “과학을 제대로 해내려면 필요하지만 과학의 일부는 아닌, 그럼에도 그 자체로 엄정하고 체계적이며 적절하다는 뜻에서 ‘과학적’인 배경사고”가 얼마만큼 유용한지 고찰해본다. 그런 다음 ‘이기적 유전자’나 ‘포괄적 유전적 적합성’ 등 진화 생물학자들의 오류의 핵심이자 진화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방해하는 뒤엉킨 개념들을 걷어내고 정리한다. 아울러 본성에 대한 이해가 우리 삶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여기서 미즐리는 진화는 가치관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가치관은 욕구를 반영한다. 우리는 육체를 벗어난 지성체도 아니고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명확한 종에 속하는 동물이며, 이 사실이 우리의 가치관을 형성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4부 「인간의 표식」에서는 우리에게 본성이 있다는 관념이 정당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간주한 상태에서 우리 본성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의 관계를 살펴본다. 말, 합리성, 문화 등 전통적으로 인간과 결부되는 특징을 들여다보고, 우리의 바탕에 깔려 있는 다른 종들과 매우 비슷한 감정 구조를 배타적이거나 적대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성장해 그것을 완성해가는 입장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5부 「공통의 유산」은 간략한 결론으로서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제시한다. 미즐리는 생물권에 속해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가로막아온 담장을 살펴보고, 인간을 나머지 생물권으로부터 철저하게 분리하기를 고집하는 것이 우리의 생존뿐 아니라 진정한 존엄성에까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인간은 혼자서는 이해될 수도 구원될 수도 없다”는 것이 미즐리의 결론이다.

『짐승과 인간』에서 미즐리는 백지 이론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이성과 진화라는, 얼핏 상반돼 보이는 듯한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그는 어떤 이들은 이성이 초자연적인 지도자라고 주장하지만, 이성은 고유한 진화적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는 우리의 감정과 상상력이 얽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성적(합리적)’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 사람이 똑똑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상충하기도 하는 자연적인 욕구와 필요를 이 복잡한 세상에서 일관성 있게 전체로 조직했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또한 세상을 보는 것을 방해하는 (과학주의의) 분열된 시각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전문화가 우리 자신에 대한 감각을 분열시키고, 인간 지식을 폐쇄적으로 고립시킨다고 경고한다. 분열된 세계관은 환상이며, 이는 인간의 잠재력과 자연 세계의 파괴를 초래한다. 나아가 진실하고 건강한 시각은 우리 자신의 모든 측면이 온전한 인간을 이루는 구성요소이고, 우리는 분리될 수 없는 사회의 일부이자 우리를 한없이 작게 느끼게 하는 동시에 우리가 고향으로 느끼는, 살아 있는 광활한 세계의 일부라는 것이다.

작가정보

Mary Midgley(1919-2018)
2018년 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메리 미즐리는 윤리학, 생물학, 인간 본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와 실천적 행동으로 주목받은 영국의 중요한 철학자이다. 그는 환원주의와 과학주의, 그리고 과학을 인문학의 대체물로 삼으려는 시도에 강력히 반대했는데, 『가디언』은 그를 맹렬히 투쟁하는 철학자이자 영국의 “과학적 허식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말했다.

1919년 영국 뉴캐슬에서 태어난 미즐리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수학하면서 철학을 전공했다. 그는 뉴캐슬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발전시켰는데, 과학과 윤리, 동물 권리에 관한 연구로 유명했으며 이후 더럼대학교와 뉴캐슬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오십대에 첫 저서인 『짐승과 인간』(1978)을 출간했고, 이후 『마음과 정신Heart and Mind』(1981), 『동물과 동물이 중요한 이유Animals and Why They Matter』(1983), 『사악Wickedness』(1984), 『생물학적 및 문화적 진화Biological and Cultural Evolution』(1984), 『윤리적 영장류The Ethical Primate』(1994), 『고독한 자아: 다윈과 이기적 유전자The Solitary Self: Darwin and the Selfish Gene』(2010), 『당신은 환상인가?Are You an Illusion?』(2014) 등 많은 책을 저술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미즐리는 당시 유행하던 과학주의에 기반한 원자론적 및 환원주의적 접근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면서 이러한 접근 방식이 인간의 자기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979년 『필로소피』를 통해 『이기적 유전자』(1976)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와 주고받은 신랄한 논쟁은 특히 유명하다. ‘유전자 저글링(gene-juggling)’으로 알려진 이 논쟁에서 두 사람은 진화론, 인간 본성, 인간 행동에 대한 유전자 중심적 관점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로 충돌했다. 도킨스는 행동을 형성하는 데 있어 유전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반면, 미즐리는 인간 행동의 동기는 사회적, 문화적 영향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공유하는 능력’과 ‘반응 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좀 더 주의 깊게 성찰하면 인간의 생물학적 재능에는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내재되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개인의 창의성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그의 후기 저작에서 전면에 등장한 또 다른 주제는 과학과 기술이 우리의 모든 질문에 답하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유토피아에 대한 예측이다. 여기서 그는 과학의 한계, 시적이고 종교적인 전망의 중요성, 그리고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원천을 인간 조건에 통합할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 이와 관련된 생각들은 『종교로서의 진화Evolution as a Religion』(1985), 『지혜, 정보, 경이Wisdom, Information and Wonder』(1989), 『구원으로서의 과학Science as Salvation』(1992), 『유토피아, 돌고래, 컴퓨터Utopias, Dolphins and Computers』(1996), 『과학과 시Science and Poetry』(2000), 『우리가 기대어 사는 신화The Myths We Live By』(2003)에서 탐구된다.
은퇴할 무렵 그의 저술들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미즐리는 동물복지 운동, 환경 운동, 무기 거래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미즐리는 또한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자주 출연하여 동물과 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과학적 자만심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쳤다. 그의 말과 글은 철학이 평범한 삶을 다룬다는 신념에 따라 직설적이고 유머러스하고 활기찼으며, 무엇보다 인간적이었다.

번역가로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독자에게 아름답고 정확한 번역으로 소개하려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이반 일리치ㆍ배리 샌더스의 『ABC, 민중의 마음이 문자가 되다』, 앨런 라이트맨의 『아인슈타인의 꿈』, 잭 웨더포드의 『야만과 문명』, 데이비드 크리스털의 『언어의 죽음』, 데일 마틴의 『신약 읽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www.ultraka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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