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2025년 03월 28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3월 2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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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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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터친은 세계 모든 대륙에서 발생한 수백 건의 위기 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복잡계 이론에서 성공했던 방법론을 적용하여 ‘왜 사회가 반복적으로 위기에 빠지는지’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한다(이를 역사동역학이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네 가지의 구조적 요인이 위기를 추동한다. 엘리트 과잉생산, 대중의 궁핍화, 국가 재정과 정당성의 약화, 지정학적 요인이 그것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추동 요인은 엘리트 과잉생산인데, 엘리트 내부의 경쟁과 갈등 및 엘리트 진입에 실패한 자들의 불만으로 표출된다.
이와 함께 왜 어떤 위기로부터의 탈출은 끔찍하고(수많은 사람의 죽음, 엘리트층 혹은 지배계급의 절멸이나 몰락 등), 어떤 위기로부터의 탈출은 상대적으로 순조로운지를 이해하고자 시도한다, 앞의 사례들에서는 지도자와 국민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까? 뒤의 사례들에서는 무엇을 잘한 걸까? 최후의 사회적 합의라고 할 수 있는 법원의 정당성마저 취약해진 오늘날 한국 사회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그 답의 단편이라도 찾기를 희망해 본다.
1부. 권력의 역사동역학
1장. 엘리트, 엘리트 과잉생산, 위기로 가는 길
2장. 한 걸음 뒤로: 역사의 교훈들
2부. 불안정을 추동하는 요인들
3장. “농민들은 혐오스럽다”
4장. 혁명군
5장. 지배계급
6장. 왜 미국은 금권정치인가?
3부. 위기와 여파
7장. 국가의 와해
8장. 근미래의 역사들
9장. 부의 펌프와 민주주의의 미래
감사의 말
부록
A1. 새로운 역사과학
A2. 역사 매크로스코프
A3. 구조동역학적 접근법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오늘날 너무 많은 ‘엘리트 지망자’들이 정치와 경제의 상위 계층에 존재하는 정해진 수의 지위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우리 모델에서는 이런 상태를 두고 엘리트 과잉생산elite overproduction이라고 부른다. 대중의 궁핍화와 엘리트 과잉생산, 그리고 이로 인해 생겨나는 엘리트 내부의 충돌이 점차 우리의 시민적 응집성을 훼손하고 있다. 이런 국민적 협력 의식이 사라지면 국가는 내부에서부터 순식간에 썩는다. 점증하는 사회의 취약성은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 수준이 무너지고 공적 담론을 지배하는 사회규범-과 민주적 기관의 기능-이 해체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_14쪽, 서론
엘리트는 누구인가? … 엘리트는 그저 더 많은 사회 권력을 가진 이(권력 소유자)들이다. … 당신이 미국인이고 순자산이 100~200만 달러 범위에 속한다면, 대략 상위 10퍼센트 … 이 범주에 속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주변에 지시를 내릴 다른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에서는 특별히 권력이 많은 이들이 아니다. 하지만 몇 백만 달러의 부(와 대체로 이런 부와 관련되는 더 높은 소득)는 이 10퍼센트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많은 통제권-권력-을 준다. … 그들은 확실히 ‘불안정성’에서 벗어났다.
_19~20쪽, 1장 엘리트, 엘리트 과잉생산, 위기로 가는 길
프랑스에서는 잇따라 혁명이 일어난 반면(1789년, 1830년, 1848년…), 잉글랜드는 1830년에 ‘혁명적 상황’에 진입했으나 어떻게든 국가 와해를 피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는지는 무척 흥미로운 주제다.
_66쪽, 2장 한 걸음 뒤로: 역사의 교훈들
역사(와 ‘위기DB’)를 살펴보면, 고학력 프레카리아트(또는 역사동역학의 용어로는 좌절한 엘리트 지망자 계급)가 사회 안정에 가장 위험한 계급임을 알 수 있다. 고급 학위를 가진 젊은이의 과잉생산은 1848년 혁명에서부터 2011년 아랍의 봄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격변을 추동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공산당 선언》은 “프롤레타리아는 족쇄 말고 잃을 것이 없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예전의 마르크스는 틀렸음이 입증되었다. 궁핍해진 프롤레타리아는 성공적 혁명을 작동시키는 주체가 아니다. 정말로 위험한 혁명가는 좌절한 엘리트 지망자들로, 그들은 자신이 가진 특권과 교육, 연줄 덕분에 충분히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_123쪽/142쪽, 4장 혁명군
2022년 현재 우리는 분명 국가[미국]가 다수의 반엘리트 도전자 집단에 직면해서 이데올로기적 풍경을 계속 통제하려고 분투하는 위기 전 단계로부터 수많은 경쟁자들이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다음 단계로 이행하는 중이다. 여전히 중용과 엘리트 간 협력을 강조하는 구체제의 가치를 고수하는 정치인들은 은퇴하거나 더 극단적 견해를 지닌 도전자들에게 선거에서 패배하고 있다.
_140쪽, 4장 혁명군
흑인 미국인을 협약에서 배제한 것은 FDR 행정부의 전술적 선택이었다. 노동계급에게 조금도 양보하면 안 된다며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대기업 엘리트들(전미제조업협회)의 저항에 맞서 입법을 밀어붙이기 위해 남부의 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보면, 흑인 노동자를 포기한 이 결정 덕분에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 린든 존슨 같은 다음 세대의 지도자들이 새로운 민권 운동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이 시대는 마침내 남부 엘리트들이 남북전쟁과 남부 재건의 실패 직후에 세운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를 쓸어버렸다.
_191쪽, 6장 왜 미국은 금권정치인가
국가 와해의 사례들을 차례로 검토해보면, 모든 사례에서 위기 전 엘리트-남북전쟁 전 노예정치에 속한 이들이든, 프랑스 앙시앵레짐의 귀족이든, 1900년 무렵의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든-의 압도적 다수가 이제 막 자신들을 집어삼키려 하는 재앙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음이 드러난다. 그들은 스스로 국가의 토대를 뒤흔들고는 국가가 허물어지자 깜짝 놀랐다.
_199~200쪽, 6장 왜 미국은 금권정치인가
국가 붕괴의 과거 사례들에 대한 이 분석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주된 교훈은 무엇일까? 복잡한 인간 사회를 통치하는 정치적 권위는 피상적으로 힐끗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 한 사회를 통치하는 권력 네트워크가 갑작스럽게 해체되는 국가 붕괴는 역사 속에서나 현대 세계에서나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배계급은 종종 전쟁이나 전투에서 압도적인 세력에 패배한 결과로 물러난다(그리고 때로는 몰살당한다). …하지만 (외부 침공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가 붕괴하는 가장 빈번한 원인은 지배 네트워크가 내파하는 것이 다. …
모든 복잡한 사회는 엘리트 과잉생산이라는 해체적 힘에 취약하며, 이런 사회가 모두 정기적인 사회 와해를 겪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된 문제는 자신의 개인적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금권정치인들이 부의 펌프가 작동하는 데 유리한 제도적 체계를 창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부의 펌프는 한편으로는 대중의 궁핍화를, 다른 한편으로는 엘리트 과잉생산(더 많은 부유한 금권정치인을 창조함으로써)을 증대한다. 다시 말 해, 부의 펌프는 인류가 아는 한 가장 안정을 해치는 사회적 메커니즘으로 손꼽힌다.
_234~236쪽, 7장 국가의 와해
이런 극단주의자들이 나머지 인구에 비해 소수라면, 그들은 체제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 못한다. 쉽게 고립되어 경찰에 진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다수가 되면, 극단주의 조직으로 뭉치기 시작해서 지배계급에 확실하게 도전할 수 있다. … 극단화 과정은 질병처럼 작동한다. 서서히 퍼지면서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 사회적 전염의 이런 동역학을 모델화할 필요가 있다. 역학자들이-가령 코로나 바이러스 발발의 동역학을 예측하는 데서-사용하는 방정식과 무척 흡사하다.
_242쪽, 8장 근미래의 역사들
한층 더 우려스러운 상황은 서구 민주주의가 ‘계급에 기반한 정당 체계’에서 ‘다수의 엘리트 정당 체계’로 이행하는 것이다. 앞서 이 책(8장)에서 우리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이런 이행에 관해 논의했다. 뉴딜 시기에 노동계급의 정당이었던 민주당은 2000년에 이르러 고학력 10퍼센트의 정당이 되었다. 경쟁 당인 공화당은 주로 1퍼센트 부유층을 위해 일하며 90퍼센트는 무시해버린다 … 정당들이 노동계급을 저버리면, 사회 안에서 사회 권력이 분배되는 방식에 대대적인 변화가 생기게 된다.
_292쪽, 9장 부의 펌프와 민주주의의 미래
우리는 세계사에서 특별한 격동의 시기로 들어서고 있는 게 분명하다. 향후 몇 년간 기후변화와 팬데믹, 경제 불황, 국가 간 충돌, 대규모 이민 흐름 등을 통해 각 나라의 회복력이 심각하게 시험될 것이다. 불평등 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용인하지 않은 나라들[프랑스, 덴마크, 오스트리아]이 이런 충격들에 맞서 더 큰 회복력을 보일까?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싶다.
_295쪽, 9장 부의 펌프와 민주주의의 미래
‘역사는 절망적으로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다’고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말한다. 그들의 말이 맞다면 우리 모두는 다가오는 무수한 재앙에 무력한 채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피터 터친은 복잡계 연구에서 이미 성공한 방법론을 적용하여 역사를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새로운 과학을 개척했다. 독자들은 그가 예측하는 미래와 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_재레드 다이아몬드(《총 균 쇠》 저자)
피터 터친은 과학을 역사에 접목했다. 이 책에 담긴 설득력 있는 그리고 소름 돋는 분석에 모두 주목할 필요가 있다.
_앵거스 디턴(201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피터 터친의 오랜 작업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_니얼 퍼거슨(《둠: 재앙의 정치학》 저자)
피터 터친은 자연 법칙과 과학적 발견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적용할 수 있는 명료하고 우아한 이론을 제시한다.
_월스트리트 저널
트럼프 또는 그와 유사한 인물의 부상을 예측했던 피터 터친. 사회가 위기에 빠지는 이유와 위기에서 부드럽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데이터 기반의 설명이 놀랍도록 명쾌하다.
_가디언
엘리트 내부의 경쟁과 갈등, 엘리트 진입에 실패한 반엘리트,
대중의 궁핍화가 반복적인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온다
스티븐 핑커는 《지금 다시 계몽》에서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으며, 과학과 이성적 사고가 사회를 진보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면 세상이 반드시 나아지리라 낙관하기 어렵다. 피터 터친에 따르면 모든 복잡한 인간 사회는 반복적인 정치적 불안정의 파고를 겪었으며, 이는 현대에도 예외가 아니다. 터친은 나폴레옹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모든 대륙에서 발생한 약 300건의 위기 사례를 확인하고, 왜 사회가 위기에 빠져드는지를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네 가지의 구조적 추동 요인이 순환적인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온다. 대중의 동원 잠재력으로 이어지는 궁핍화, 엘리트 내부 충돌로 귀결되는 엘리트 과잉생산, 쇠약한 재정 건전성과 국가의 정당성 약화, 지정학적 요인이 그것이다. 가장 중요한 추동 요인은 엘리트 내부의 경쟁과 갈등인데, 이는 위기가 다가옴을 보여주는 믿을 만한 예측 지표다. 오늘날의 미국이나 규모가 큰 강력한 제국들의 경우에 지정학적 요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아널드 토인비에 따르면 제국은 살인이 아니라 자살로 죽는다).
미국(나아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은 격동의 시기로 들어서고 있는 게 분명하다. 많은 이들이 그 상징으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말한다. 트럼프는 어떻게 미국 대통령이 되었는가? 정치 경험 없이 ‘슈퍼리치’로 대통령에 출마한 사람은 트럼프가 처음이 아니다. 스티브 포브스(1996년과 2000년에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탈락)와 억만장자 로스 페로(1992년과 1996년에 무소속 후보)는 출마했으나 실패했다. 이들 사이의 차이가 무엇일까? 첫째, 2016년 그리고 2024년에는 미국 대중의 궁핍화가 1990년보다 훨씬 심해졌다(앵거스 디튼의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에 따르면 2014년부터 미국인의 기대수명이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45~54세 고졸 이하 백인 노동자의 기대수명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이에 자신이 뒤처졌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지배층에 대한 불만을 트럼프에게 표를 던짐으로써 표현했다(터친에 따르면 뉴딜 시대에 노동계급의 정당이었던 민주당은 상위 1%와 10%의 정당이 되었고, 상위 1%의 정치적 수단이었던 공화당은 포퓰리즘 분파에 의해 장악되었다). 둘째, 미국의 엘리트 과잉생산 현황이 작동했다. 이는 여러 가지 지표로 확인할 수 있는데, 우선 1980년대부터 미국 슈퍼리치(1,000만 달러 이상의 자산 보유)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1983년에 6만 6,000가구였던 천만장자의 수는 2019년에는 69만 3,000가구로 늘어났다(인플레이션을 조정한 수치다). 또한 1990년대부터 연방 의원(상하원 모두)이 되고자 하는 부자들의 수가 늘기 시작하여, 2000년에 비해 2018년과 2022년에는 선거에 출마하는 부유한 지망자의 수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리고 고학력자가 양산되고 있다. 미국 대학은 석박사와 로스쿨 등 전문 학위 소지자를 쏟아 내고 있는데, 2000년대에 이르러 이들을 필요로 하는 자리가 고급 학위 소지자의 수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기본소득 담론으로 유명한 가이 스탠딩은 이 좌절한 엘리트 지망자들을 두고 ‘프레카리아트’라고 부른다).
대중의 궁핍화와 엘리트 과잉생산, 그리고 이로 인해 생겨나는 엘리트 내부의 충돌은 점차 우리의 시민적 응집성을 훼손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 사회를 지탱하던 사회계약이 약화되고 국민적 협력 의식이 희미해지고 있다. 그 결과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 수준이 무너지고 공적 담론을 지배하는 사회규범과 민주적 기관의 기능이 해체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역사는 구조적인 힘들에 의해 움직인다:
엘리트 과잉생산으로 달라진 역사적 경로
미국 남북전쟁을 촉발한 요인은 대중의 궁핍화와 엘리트 과잉생산이었다. 1820년대와 1860년대 사이에 상대적 임금(GDP에서 노동자 임금으로 지불된 액수의 비중)이 50% 가까이 감소했다(최근 50년간 벌어진 일과 비슷하다!). 이것이 보통 사람의 복리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기대수명이 8년 감소하고, 신장이 줄었다. 불만의 징후는 크게 늘어난 도시의 치명적 폭동(1855~1860년 사이 38건)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엘리트 과잉생산이 있었다. 1820년대 이후 성장의 과실 대부분이 엘리트에게 집중되며 엘리트의 수와 부가 급증했다. 특히 원래 미국의 지배층이었던 남부의 부자들과 철도, 철강, 광업에 기반한 북부의 새로운 백만장자들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충돌했다. 엘리트의 수가 급증하며 정부 공직을 둘러싼 경쟁이 심해졌다. 역사책은 남북전쟁이 노예제를 둘러싼 충돌이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노예정치’를 둘러싼 싸움이었다. 링컨도 처음에는 노예제를 폐지하려고 하지는 않았고 새로운 주로 확대하는 것만 반대했으나, 그가 당선되자 남부가 연방에서 탈퇴하며 전쟁이 촉발되었다.
2011년 이집트 혁명(아랍의 봄의 시발점)을 보자. 우리는 이집트 혁명이 경찰의 과잉 폭력, 시민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의 부재, 높은 실업률, 식료품 가격 상승, 저임금 등에 맞선 대규모 대중 시위의 결과라고 들어왔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하지만 표면 아래에서 움직이는 힘들이 있었다. 1990년대 이전에는 이집트 젊은이 가운데 소수 일부만이 고학력 계층에 진입했는데, 무바라크 정권은 현대화라는 목표 아래 대학 교육을 대대적으로 확대했고, 1995년 이후 대졸 학위자가 급속하게 늘어났다. 하지만 이런 학위를 보유한 젊은이를 위한 자리의 수는 거의 변동이 없었고, 일자리 없는 대졸자들이 대규모 반체제 시위에 혁명군으로 나섰다. 여기에 엘리트 내부의 갈등이 있었다. 사다트의 후계자였던 무바라크는 집권하자 아들인 가말 무바라크를 후계자로 훈련시키면서 맘루크 정권 이래 수백 년 이어져온 이집트 군사 통치의 규칙을 깨뜨렸다. 2011년 대규모 시위가 폭발했을 때, 군부는 무바라크 정권의 몰락을 수수방관했다. 이후 군부가 혁명으로 집권한 이질적인 세력들(무르시 정권)을 전복함으로써 이집트는 다시 군사 통치로 복귀했다.
1991년 벨로베즈 협정으로 소련을 해체시킨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문화가 유사하고,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동 중인 아노크라시 국가라는 점에서 같았다. 하지만 이들 중 가장 민주적인 우크라이나가 가장 가난하고 불안정한 반면, 가장 독재적인 벨라루스가 상대적으로 번영과 안정을 누리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우크라이나에서 2014년 혁명이 성공하고 2021년 벨라루스의 봉기가 실패한 이유는 지배 집단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해체 이후 국유 기업의 대규모 민영화로 생겨난 부의 펌프가 올리가르히들의 과잉생산과 그들 간의 충돌, 거듭된 국가 붕괴로 이어졌다. 벨라루스에서는 국가가 주요 산업 대기업의 소유권을 계속 보유하면서 올리가르히의 등장을 막았다. 2020년 루카셴코 정권에 반대하는 대중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으나 세간의 예상과 달리 정권은 무너지지 않았다. 루카셴코는 군사 엘리트들과 탄탄한 연계를 구축했고 변절자는 나오지 않았다. 벨라루스에서는 부의 펌프와 올리가르히 및 그들 간의 충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역사의 교훈들: 어떻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터친이 모은 위기DB 사례들은 어떤 결말을 맺었을까? 전반적인 결론은 암울하다. 인구가 크게 감소(전쟁, 혁명, 감염병 등)한 경우도 많았고, 3분의 2 정도의 사례에서 엘리트 계층이 평민 계층으로 떨어지는 대규모 하향 이동이 관찰되었다. 사회가 대대적인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채 위기를 헤쳐나간 사례는 극히 적다. 대표적인 사례로 19세기 혁명의 시기를 잘 견뎌낸 영국과 러시아, 20세기 대공황 이후의 미국을 들 수 있다.
19세기 중반의 영국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사회였다. 전례 없이 장기간에 걸친 경제성장이 활성화되면서 경제 엘리트들과 대학 입학자 수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1830~1867년까지의 소요 사태 및 이로 인한 연행자 수와 사망자 수 등을 이전 시대와 비교하면 영국이 겪던 정치적 불안정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은 대규모 내전, 혁명 없이 이 시기를 통과했다. 우선 광대한 제국이었던 덕분에 과잉 생산된 엘리트의 일부가 세계 각지(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로 이주했다. 그리고 중요한 제도 개혁들이 있었다. 소요가 잇따르자 영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결정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1832년에는 참정권이 확대되었고 1834년에는 구빈법이 개정되었으며, 이후 20년 동안 수많은 개혁이 추가로 이루어졌다(1846년 곡물법 폐지 등). 이런 과정을 거쳐 영국의 실질임금은 1867년 이후 50년간 두 배로 높아졌다. 한 역사학자가 말한 것처럼, 1820년대부터 줄곧 영국 엘리트들은 제도를 개혁하고, 재정-군사 국가에서 점점 복잡해지는 상업, 산업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행정 국가로 변신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사례로는 1930년대 이후 1960년대까지 이어진 대압착(증세 등 강력한 조세 정책으로 부유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소득 격차 및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가 급격히 좁아진 현상) 시기를 들 수 있다. 19세기 말 도금시대에 미국의 경제, 정치 엘리트들은 노동계급의 복리에 어떤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폭동이 잦아지고(대표적으로 1917년 세인트루이스 폭동으로 170명 사망, 1921년의 툴사 폭동으로 300명 사망)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불안감이 고조되자 엘리트들 사이에 점차 안정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입법을 통해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이 합법화되고, 최저임금제가 도입되었으며, 사회보장제가 확립되었다. 1924년에는 이민법이 통과되며 이민자 유입이 줄어 향후 수십 년간 실질임금을 끌어올리는 강력한 추진력이 생겨났다. 동시에 대공황을 거치며 엘리트 과잉생산이 일부 해소되었다(백만장자의 수가 1925년 1,600명에서 1950년에는 900명 이하로 감소).
역사동역학의 예측, 대한민국은?
터친은 역사에는 되풀이되는 중요한 양상들이 존재하며, 지난 1만 년에 걸친 역사의 범위 전체에서 이를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이끄는 이 분야를 역사동역학Cliodynamics이라고 부른다. 생태학자로 연구자 경력을 시작한 그는 1980년대 이후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동물생태학에서 복잡성 과학이 불러온 일대 혁명을 경험했다. 가령 왜 많은 동물 개체군이 개체 수 증가와 감소의 순환을 겪는지와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컴퓨터 모델링과 빅데이터 분석을 결합한 것이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이 방법론을 역사에 적용했다. 이런 점에서 터친의 분석은 보수나 진보 같은 가치와 무관하다. 마치 실험실을 외부에서 바라보듯 냉정하게 관찰하고, 사회가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칠 수도 있는 대격변 없이 안정적으로 변화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를 모색한다.
대한민국은 1980년대 이후 대학 졸업자를 양산하며 엘리트를 과잉생산한 지 40년이 넘었고, 2010년대 이후로는 불평등도 악화되었다. 이미 갈등이 최고조로 달한 상황에서 계엄과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합의라고 할 수 있는 법원의 권위마저 허물어지고 있다. 터친의 분석에 따르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이 위기에서 벗어날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작가정보
Peter Turchin
1957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으나 1977년 소련에서 추방된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후 듀크 대학교에서 동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코네티컷 대학교의 생태 및 진화생물학부, 인류학과, 수학과의 교수이며, 옥스퍼드 대학교 인류학과의 연구교수다.
터친은 이론생물학자로서 연구를 시작했지만, 그의 학문적 성과는 주로 ‘역사동역학’이라는 역사에 관한 사회과학 연구에 집중되어 있다. 역사동역학은 복잡계 과학과 문화진화를 이용하여 역사상의 제국들과 근대 민족국가의 역할을 연구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주로 ‘역사상 제국의 멸망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그리고 ‘대규모 국가와 제국이 애초에 어떻게 발달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천착해 있다. 다시 말해 인간 집단을 한데 모으는 사회적 힘은 무엇이며 이는 어떤 조건에서 실패하게 되는가라는 이러한 질문에 터친은 다수준 문화선택론이라는 이론적 틀을 사용하여 답하고 있다.
《네이처》, 《사이언스》 등의 저널에 2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2004년에는 가장 많이 인용되는 연구자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저서로 《초협력사회Ultrasociety》(한국어판 2018), 《전쟁과 평화 그리고 전쟁War And Peace And War》(2005), 《장기 순환주기Secular Cycles》(2009),
국제문제 전문 번역가. 옮긴 책으로 《에도로 가는 길》, 《팔레스타인 실험실》,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나의 팔레스타인 이웃에게 보내는 편지》, 《팔레스타인 현대사》 등이 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로 제58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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