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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풍월당

2023년 07월 24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7월 2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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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78.55MB)   |  약 73.2만 자
ISBN 9791189346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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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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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펴내며 의도하는 바는, 음악 애호가들이 바흐 예술의 본질과 정신에 관해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또한 그것을 바르게 연주하는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숙고하도록 자극하자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나는 일반인도 바흐를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어떻게든 쉽게, 누구나 이해하게끔 쓰려고 노력했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바흐는 진실을 말하는 위대한 설교가다. 그의 칸타타와 수난곡은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고, 그 감동 속에서 우리는 우리 모두를 하나 되게 하는 진실한 것을 받아들이며 우리를 분열시키는 사소한 것들을 초월하여 더 숭고하게…바흐는 이렇게 인간성의 예술적, 종교적 영역을 장악함으로써 과거의 위대한 정신의 도움이 없이는 과거가 쌓아 놓은 벽을 스스로 허물지 못하는 현시대에 대한 사명을 완수하였다. 이제 우리는 다 함께 감동하고, 다 함께 존경하고 이해하면서 모두 하나가 된다.
- 1907년 10월 20일, 파리 샤를 마리 비도르






우리도 이제 이 책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바흐 관련 저작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히고 가장 영향력이 큰” 책이다(크리스토프 볼프, 2005). 이 바흐 평전이 오래 공을 들여 번역되어 우리 독자 앞에 놓인다.
이 책은 ‘바흐의 음악언어 사전辭典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음악의 의미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이 책은 헤집고 파고드는 분석의 논서가 아니다. 다만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본래의 의미에 또 하나의 의미를 얹어 준다. 이 책을 통해 슈바이처는 심오한 바흐 음악에 숭고함을 더해 주었다.
많은 이들은 이 방대한 책의 저자가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임을 알고서 놀란다. 우리는 그를 “밀림의 성자”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1952)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삶의 후반만을 본 것이다. 그는 일찍이 "서른 살까지는 신학과 음악을 위해 살고, 남은 30년은 남을 위해 봉사하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대로 살았다.
젊은 날의 슈바이처는 오르가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바흐 음악의 권위자였다. 목사 아들이었으니 그에게 바흐의 교회음악은 일용의 양식과 다름없었다. 연주가이면서 신학교수였던 그가 6년여에 걸쳐 써낸 이 바흐 평전은 그의 삶의 전반부를 빛내 주는 역작이 되었고, 바흐 음악 부흥을 이끈 세기의 명저가 되었다.
이 바흐 평전은 출간되자마자(1908)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바그너 열기가 가시지 않은 그때, 당시의 시대적 관점으로 바흐를 본 이 책이 나오자 유럽 음악계는 크게 반겼다. 단숨에 화제의 중심이 된 이 책은 곧 영어로 옮겨지고, 각국에 연이어 번역되었다. 일본어판은 1950년에, 중국어판도 2017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이 이렇게 세기世紀를 넘어서도 널리 읽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슈바이처 이전의, 그리고 그 이후의 어느 누구도 바흐 음악의 본질을, 그 음악에서의 언어와 음악의 관계를 이렇게 소상하게 밝혀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또한 바흐의 전 작품을 해설한다. 물론 이 책은 불가피하게 교회음악에 무게가 실렸지만 중심을 잃은 것은 아니다. 그는 기악음악에 나타나는 성격적 음형의 의미도 교회음악의 같은 음형에 비추어 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슈바이처는 바흐 음악의 연주법도 알려준다. 그는 먼저 쳄발로, 감바 등 옛 악기의 복원을 촉구한다. 합창은 성부당 4명으로 족하며, 중후한 편성을 피하고 콘티누오를 보강하라고 말한다. 그는 오늘날의 역사주의 연주의 선구자다.
슈바이처의 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그의 집필 목적이 그렇듯이 바흐 음악 연주가의 필독서가 되었다. - 강해근
저자의 말 7
머리말 10
I. 바흐 예술의 뿌리 25
II. 코랄 가사의 성립 33
III. 코랄 선율의 성립 49
IV. 예배에서의 코랄 65
V. 바흐까지의 코랄전주곡 87
VI. 바흐까지의 칸타타와 수난곡 103
VII. 아이제나흐에서 라이프치히까지 165
VIII. 라이프치히의 바흐 189
IX. 모습, 기질, 성격 241
X. 음악 여행, 비평가, 친구 271
XI. 예술가 바흐와 선생으로서의 바흐 297
XII. 죽음과 부활 347
XIII. 오르간 작품 409
XIV. 오르간 작품의 연주 449
XV. 클라비어 작품 485
XVI. 클라비어 작품의 연주 523
XVII. 실내악 작품과 오케스트라 작품 575
XVIII. 《음악의 헌정》과 《푸가의 기법》 623
XIX. 바흐와 미학 641
XX. 시적 음악과 회화적 음악 653
XXI. 바흐 음악에서 가사와 음 681
XXII. 코랄의 음악언어 725
XXIII. 칸타타의 음악언어 753
XXIV. 아른슈타트, 뮐하우젠, 바이마르와 811
XXV. 1723~1724년 라이프치히의 칸타타 849
XXVI. 《마니피카트》와 《요한수난곡》 875
XXVII. 1725~1727년의 칸타타 905
XXVIII. 〈애도송〉과 《마태수난곡》 929
XXIX. 1728~1734년의 칸타타 969
XXX. 세속칸타타 1007
XXXI. 모테트와 노래 1059
XXXII. 오라토리오 1073
XXXIII. 미사곡 1089
XXXIV. 1734년 이후의 칸타타 1115
XXXV. 칸타타와 수난곡의 연주 1181
참고문헌 1297
칸타타와 코랄 목록 1300
옮긴이의 말 1323
인명 찾아보기 1328

10~11쪽
1899년 어느 날, 둘이서 바흐의 코랄전주곡을 공부하던 중에 나는 그에게 이 음악은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다고 고백하였다. “프렐류드와 푸가에서는 이 대가의 논리가 그렇게도 명료하고 정연한데, 코랄 선율만 나오면 그만 모든 게 모호해진다”고 털어놓았다. [...]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라며 나의 제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코랄은 그 가사로 풀지 않으면 해명되지 않는 게 많거든요.”
나는 가장 골칫거리였던 코랄전주곡들을 제자 앞에 펼쳐 놓았다. 그는 그 곡들의 가사를 프랑스어로 외워 낭송해 주었다. 그러자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다음 날부터 며칠 동안 우리는 오후 내내 코랄전주곡 전곡을 살펴보았다. 슈바이처는-그가 바로 내 제자다-한 곡씩 설명하고, 그 설명을 들으며 나는-바흐의 존재에 관해서는 겨우 어렴풋이 상상만 하고 있었는데-한 사람의 새로운 바흐를 알게 되었다. 나는 단번에 깨달았다. 바흐는 내가 거대 입상처럼 우러러보았던 위대한 대위법의 대가 그 이상으로, 이 토마스칸토르의 예술에는 시의 이념을 표현하고 가사와 음을 일치시키려는 그의 욕망과 능력이 드러나 있음을 본 것이다.

27~28쪽
예술가에는 주관적 예술가와 객관적 예술가가 있다. 주관적 예술가의 예술적 기반은 그들 자신의 개성이다. 그들은 그들이 속한 시대에 예속되지 않고 거의 자유롭게 창작하며, 그들 스스로 법이 되어 시대의 흐름에 맞서 새로운 형식을 만들고, 그것으로 자신들의 사상을 표현한다. 리하르트 바그너가 그러했다.
바흐는 객관적 예술가다. 객관적 예술가들은 전적으로 자신들이 사는 시대에 속해 있으며, 오로지 그 시대가 제공하는 형식과 사상만으로 작품을 만든다. [...] 이 객관적 예술가의 작품은 비개성적이 아니라 초개성적이다. 그는 자신 앞에 놓인 모든 것을 유일무이한 완벽함으로 다시 한번 그리고 최종적으로 표현하고픈 열망만 가진 듯이 보인다. 이렇듯 그의 내부에는 그가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신이 살고 있으며, 지난 세대와 현세대의 모든 예술상의 모색과 욕망, 창작과 동경, 그리고 방황이 그 안에서 한데 어우러져 힘을 발한다.

73쪽
루터가 가장 좋아한 작곡가는 프랑스 왕 루이 12세의 궁정악장 조스캥 데프레(1450~1521), 그리고 하인리히 이자크의 제자로 빈과 뮌헨 궁정에서 활동한 루트비히 젠플(1555년경 사망)이었다. 조스캥에 대한 루터의 발언은 유명하다. “그는 음표의 대가다. 음표는 그가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고, 다른 작곡가는 음표가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98~99쪽
어느 분야든 어떤 것의 발전 원인을 캐내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어느 시대든 그 시대의 지식에는 그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는 어떤 한계가 있다는 것을 더 뚜렷이 인식하게 된다. 이 한계는 특히 포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이는 순간에, 더 높고 최종적인 지식에 도달하기 위해 한 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더욱 강고해 보인다. 자연과학과 철학과 종교의 발전사, 아니 인문학 자체의 역사는 바로 이 불가해한 정지停止의 역사이고, 어느 특정 시대에는 모든 여건이 최적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도달이 허용되지 않은 지식의 역사이며,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 자체가 어떤 신비로운 명령에 의해 금지되었던 생각들의 역사다. 이처럼 예술의 실제 역사는 보이지도 않고 넘어설 수도 없으며, 때가 왔을 때에야 허물어지는 경계의 역사다.

109~110쪽
해당 주일 복음에 따른 독일어 설교가 태양이라면, 그 옆에서 독일어 성가가 음악적 설교로서 햇무리처럼 떠오른다. 그리고 이 빛의 영역 밖의 음악들은 모두 그늘에 가린다. 음악가들은 가사가 고정된 미사곡을 거듭 작곡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과제가 있음을 문득 깨달았다. 이제는 그들에게 매년 네 복음서를 바탕으로 한 새 창작시에 음악을 붙이는 임무가 부과된 것이다. 그들은 이 자유로운 교회음악에 매료되어 예배의 한 부분인 규정된 음악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끔찍하게 비음악적인 니케아 신앙고백을 지겨워하며 거듭 음으로 “옮기기”보다는 새로운 모테트 가사를 작곡하는 일에 더 끌렸고, 완결된 미사곡 하나를 작곡하기보다 오히려 1년분의 설교음악 작곡을 선호했다. 바흐는 심지어 설교음악은 5년분이나 작곡하면서도 완결된 미사곡은 단 한 곡만 썼다. 그는 미사 음악이 필요하면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미사곡이나 자신의 칸타타를 빌려 왔다. 이론상으로만 말한다면, 역으로 미사곡이 아니라 칸타타를 빌려다 썼더라면, 그는 완전한 미사곡을 10곡 정도 창작할 수 있었겠고 그 대신 예배음악은 1년분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16세기 이후 개신교 교회음악을 부추기며 이끌어 온 어떤 본능에 따라 자신이 하던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118쪽
여기서 결국 음악의 역사 전체를 지배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대두된다. 몬테베르디 이후 곧 오페라가 쇠퇴하기 시작하여 점차 구성이 산만하고 드라마틱하지 않은 아리아-오페라로까지 전락하게 되었다면, 그 잘못은 음악이 아닌 문학에 있다. 문학은 음악에 합당한 재료나 형식은 제공하지 않은 채 자체의 길을 가면서, 마치 먼 옛날 성베드로가 버찌를 주워 먹었듯이, 초췌해진 음악이 허리 숙여 주워 먹도록 가끔 먹을 것을 던져 주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흐까지의 종교음악 역사도 전적으로 가사의 역사로서 오페라 역사와 짝을 이루고, 따라서 또한 슬픈 역사이기도 하다.

130~131쪽
음악이 교육제도 안에 워낙 단단히 묶여 있어서 당시 음악인들의 교육 수준은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대 예술가들의 경력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대학 재학 중에, 혹은 대학 졸업 후 음악을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독일의 법학계는 17세기와 18세기 초까지만 해도 최고의 음악가들을 배출했다고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쉬츠, 발터, 마테존, 헨델, 에마누엘 바흐를 비롯해서 많은 유명한 이름이 이 명단에 올라 있으니 당연히 자랑할 만하다.
“작곡가에게 대학 공부가 꼭 필요한가?” 요한 베어라는 사람이 1719년의 한 논문에서 제기한 질문이다. 그는 이 물음에 단호하게 그렇다고 대답한다. 당시 음악가들의 교양 수준이 실제로 어땠는지 알려면 미하엘 프레토리우스의 『음악이론집성』부터 에마누엘 바흐, 게르버, 아들룽, 마르푸르크 등의 저술까지 두루 살펴보면 된다.
역으로, 예술과 교육이 워낙 긴밀해서 지식인들도 어느 정도의 음악 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며, 음악 덕분에 대학 공부가 가능했던 사람들은 고위직에 오르고 나서도 음악에 충성했다. 이런 예술교양의 보편화가 오늘날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당시의 교회음악에 관한 공공의 관심을 설명해 준다. 당시 개신교 도시에서는 예술적인 예배가 마치 고대 그리스 시민들의 극장과 같은 의미, 즉 예술과 종교의 장소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161~162쪽
고트체트와 레싱 이전의 독일문학에는 이렇듯 현대적 의미의 언어감각이 없었다. 다름 아닌 이 음악과의 결합이 당시의 시예술에 해를 끼쳤다. 이 결합을 의식하여 시는 오로지 아이디어를 가장 생생하고 다채롭게 표현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고민은 하지 않은 채 과격한 형상과 격정적 표현을 학보하려고 자꾸만 감정 과잉에 휘말려 들고 말았던 것이다. 고트체트와 레싱을 통해 문학이 음악으로부터 안전거리를 확보해 독립하면서 비로소 문학은 자신을 되찾게 된다. 그러나 바흐는 쇠퇴의 시대에, 음악이 시를 홀리고 시가 음악을 현혹시킨 시기, 카이저 같은 진정한 재능인도 파멸의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과도한 다작과 산만한 예술의 시기, 영구적인 것이 아닌 소모적인 것만 만들도록 운명 지워진 듯 보이던 시대에 등장했다. 다른 시대 다른 장소의 독보적인 거장들이 비록 희미하지만 꺼지지 않는 별들 사이에서 특별한 빛을 발하는 단 하나의 별이었다면, 바흐는 그 시대가-그 자신마저도-별빛으로 여긴 도깨비불에 둘러싸여 거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시대에 작곡되어 감탄을 자아낸 수많은 칸타타 가운데 바흐의 칸타타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 칸타타들조차 형식과 가사를 보면, 스스로 겨우 빠져나온 그 덧없음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이 오류의 시대에, 그리고 이 오류와 함께하면서도 불멸의 예술을 창조했다는 사실만큼 바흐의 위대함을 증언해 주는 것은 없다.

162~163쪽
재능 있는 사람들이 시대의 착오 속에서 착오를 범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지만 천재들이 그 착오에 얽혀 들면 수 세기에 걸쳐 대가를 치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그가 위대했기에-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을 향해 가던 그리스 자연과학의 발전을 저지했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적 형식과 공식을 등에 가득 진 바흐는 무한한 힘을 의식하며 거의 무모하게 독일 음악이 나아가는 길을 막아섰다. 이 길은 그때 벌써 독일 음악을-종교음악 영역에서-후대의 바그너가 극음악에서 구현하는 그 예술로 인도해 갈 수도 있었다.


168~169쪽
포르켈에 의하면, 큰 음악가 집안인 바흐 가문 구성원들은 “서로 애틋하게 사랑”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가 한데 모여 살 수 없으니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모두 만나기로 하고, 하루 날을 잡아 정해진 장소에 다 모였다. 가문의 구성원이 크게 늘어 튀링엔 이외에 오버작센과 니더작센 혹은 프랑켄 지방 등 곳곳으로 퍼져 나간 후에도 그들은 이 연례모임을 계속했다. 모이는 장소는 대개 에르푸르트, 아이제나흐 또는 아른슈타트였고, 이 모임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 또한 실로 음악적이었다. 그들 모두가 칸토르거나 오르가니스트 또는 시市악사로서 예외 없이 교회에 관계하고 있었던 데다 당시에는 어떤 행사든 종교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관습이었으니, 그들은 다 모이면 일단 코랄을 불렀다. 그 모임은 이렇듯 경건하게 출발하지만 이내 경건을 심하게 해치는 농담으로 바뀌기 일쑤였다. 즉 때로는 익살맞고 때로는 야한 내용의 민요들을 즉흥적으로 섞어 함께 노래했던 것이다.

170쪽
그런데 형이 보기에 요한 제바스티안은 배움에 지나치게 적극적이었다. 언젠가 그는 형에게 프로베르거, 케를, 파헬벨과 여러 작곡가들의 클라비어 음악이 실린 곡집을 보여 달라고 했지만, 형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그는 격자형 문이 잠긴 책장 안으로 작은 손을 넣어 그것을 꺼내 달빛 아래에서 베꼈다. 여섯 달 만에 겨우 사보를 끝냈는데, 이를 눈치 챈 형한테 그만 그 사본을 빼앗겼다고 한다.

174쪽
그는 성공적인 교육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규율을 지킨다는 게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그는 어떤 일이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조급해했고-그러면서 일만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용기를 잃고 끝내 그냥 방치하고 말았다. 합창단원이나 합창을 지휘하는 학생과도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그의 이런 성정은 그가 뤼베크로 떠나기 전에 가이어스바흐라는 학생과 심각하게 충돌한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가이어스바흐는 바흐에게 욕설로 모욕당했다면서 길에서 몽둥이를 들고 바흐에게 달려들었다. 바흐도 단도를 꺼냈지만 다행히 다른 학생들이 뜯어말려 싸움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178쪽
궁정악단 단원은 약 20명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당시 어디서나 그랬듯이 하인이나 요리사 또는 사냥꾼직을 겸하고 있었다. 특별한 경우에 그들은 시종 복장을 하고 주인을 기다렸는데, 바흐도 아마 그런 유니폼을 입고 일했을 것이다.

182~183쪽
이들의 결혼생활은 어느 면에서나 완전한 행복 자체였다. 안나 막달레나는 자상한 아내였고,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보살폈으며, 남편의 창작을 이해하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훈련으로 잘 가꾼 아름다운 소프라노 음성의 소유자였다. 바흐는 아내의 이 재능을 향상시키는 것이 자기 의무라고 생각했다. [...] 아내는 남편의 악보 정사를 도와주고, 이로써 자신을 위한 남편의 수고에 보답했다. 일련의 아름다운 바흐 작품 악보들은 그녀가 사보한 것이다. 그녀의 사보 솜씨는 해가 가면서 남편의 필체를 닮아 가 나중에는 거의 구별 못 할 만큼 비슷해졌다. 주말이 다가오는데도 새로 작곡한 칸타타의 파트보 사보가 미처 끝나지 않았을 때, 집안일을 돌보면서 사보까지 해내느라 그녀는 얼마나 분주했겠는가!
그녀는 아이들에게도 사보 일을 가르쳤다. [...] 서투르고 뻣뻣하게 기보된 음표들은 아무리 보아도 그녀가 쓴 게 아니다. 다행히 그 성부 끝에 있는 꼬부랑글씨 세 글자 ‘WFB’가 사보를 실제로 누가 했는지 알려 준다.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다! 이 칸타타가 1724년에 작곡되었으니, 프리데만이 열네 살 때였다. 그러니까 이것은 소년 빌헬름이 처음으로 완성한 악보인 셈이다. 이 아이가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한번 그려 보라. 복도에 햇볕이 든다, 어머니는 주변을 바삐 서성이며 아들의 사보 작업을 살핀다, 아들은 방금 악보의 아래쪽에 ‘끝Il Fine’이란 단어를 써넣었다, 그런데 그 글씨가 어머니 눈에는 별로 예뻐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크고 점잖은 글씨로 다시 한번 같은 단어를 쓴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오신다.

243~244쪽
특히 그는 부정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의 공정함은 널리 알려져 있었고, 이는 그가 참여한 여러 오르간 검사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그가 어떤 오르간 검사를 맡으면 그 관계자들은 늘 두려워했는데, 그가 엄격한 데다 어떤 잘못도 그의 날카로운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포르켈에 따르면, 오르가니스트직을 위한 오디션에서든 새로 설치한 오르간 검사에서든 그가 얼마나 양심적이며 엄정하게 처신했는지, 바흐는 그런 일을 하면서 친구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248쪽
누가 그에게 어떻게 하면 그런 높은 예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지 물으면, 바흐는 늘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노력해야 했습니다. 누구라도 나처럼 노력하면 이만큼은 할 수 있습니다.

249~250쪽
바흐는 개인적 허영심을 다 버리고 위대해 보이는 모든 것에 감탄했다. 이 태도는 헨델을 대하는 그의 생각에서 이미 확실하게 증명된다. 위대한 동시대인 헨델과 개인적으로 상면하지 못한 것은 바흐 탓이 아니었다. 영국에서 살던 헨델은 고향 할레를 통틀어 세 번 방문했다. 첫 방문은 1719년경이었다. 바흐는 당시 할레에서 불과 6.5km 떨어진 쾨텐에 살고 있었다. 그는 그 유명 예술가를 만나려고 즉각 할레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도착했을 때는 헨델이 이미 그곳을 떠난 후였다. 헨델은 1729년에 다시 고향을 방문했는데, 그때 바흐는 이미 라이프치히로 옮긴 뒤인 데다, 크게 앓고 있었다. 그는 큰아들 빌헬름 프리데만을 헨델에게 보내 라이프치히의 자기 집으로 정중히 초대했지만 헨델은 올 수 없노라며 유감을 표했다. 헨델이 세 번째 할레에 왔을 때는 바흐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251쪽
바흐는 “손님 대접하기를 소홀히 마라”라는 격언을 충실하게 지켰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외지인이든 내국인이든 누구라도 그의 집을 방문할 수 있었고, 항상 따뜻한 접대를 받았다. 이러한 대인관계에서 행한 인덕과 예술가로서 얻은 큰 명성이 더해져서 그의 집에는 손님이 끊긴 적이 거의 없었다”고 포르켈은 기록하고 있다. 널리 흩어져 있던 친척들이 학업을 위해 라이프치히에 와 있을 때 바흐를 방문하면 그는 그들을 언제나 정성스럽게 대접했다.

252~253쪽
바흐는 돈 문제에서 매우 정확했다. 그가 대학교회 일로 괴르너와 싸울 때도 돈 문제를 내세웠었다. 에르트만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는 1729년에 사망자 수가 적어 수입이 준 것에 불만을 털어놓으며, 그해에 라이프치히 사람들이 별로 죽고 싶어 하지 않아 결국 장례식 수입이 100탈러나 줄었다고 불평하고 있다. 〈프로이센 푸가〉 한 부를 부탁한 슈바인푸르트의 사촌 엘리아스 바흐에게는 이 푸가가 지금 절판되었으니 몇 달 후에 다시 한번 문의하고…… 그리고 그때 악보 값도 함께 보내 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261~262쪽
바흐의 얼굴 표정은 오래 쳐다볼수록 점점 수수께끼 같아진다. 평소의 이 얼굴이 어떻게 예술가의 얼굴로 변했을까? 바흐가 음악에 빠져 있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의 음악 곳곳에서 반짝이는 멋진 유쾌함은 그 얼굴에 어떤 표정으로 반영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바흐라는 사람은 정말 수수께끼 같다. 우리에게는, 그의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이 완전히 하나로 결합되지 않은 채 병존하면서 어느 한쪽 인간이 다른 쪽에 관여

바흐 연구사에 새 장을 연 권위 있는 고전
1908년 출간된 슈바이처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오늘날까지도 바흐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기본 연구서이자 안내서다. 출간 후 백 년을 훌쩍 넘겼음에도 독일에서 여전히 중쇄를 찍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이 음악가들과 애호가들 사이에서 얼마나 널리 읽히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타르」에서는 바흐를 공부할 때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으로 이 슈바이처의 저작이 언급되기도 한다. 그만큼 전세계의 음악가들 사이에서 굳건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니콜라우스 포르켈이 남긴 최초의 바흐 전기(1802), 필리프 슈피타의 방대한 바흐 전기(1873~1880)의 뒤를 잇는 이 역작은 음악가 슈바이처의 최대 업적 가운데 하나다.
슈바이처가 이 책을 출간할 때만 해도 바흐의 음악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멘델스존과 슈피타 등의 선구적인 노력이 있었음에도 바흐는 소수 음악가들만 아는 ‘진귀한’ 음악에 가까웠다. 그러나 구 바흐 협회가 반세기 노력을 기울여 1899년, 46권 분량의 바흐 전집을 완간하면서 잊혔던 바흐의 세계가 빛을 보게 되었다. 구 바흐 협회는 임무를 완수한 뒤 해산하였고, 이후에는 “바흐의 음악을 일반에 알리자”는 목표로 신 바흐 협회가 창설되었다. 슈바이처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바흐 페스티벌이 열리는 등 그의 음악이 일반에 서서히 알려지면서 여러 가지 질문이 제기되던 바로 그때, 그야말로 ‘적기에’ 출간되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슈바이처 박사의 의료 봉사를 가능하게 한 책
많은 사람들은 알베르트 슈바이처를 서아프리카 가봉의 랑바레네에서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다간 의사요, 1952년 노벨 평화상의 수상자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칸트 철학과 성만찬 연구로 명성을 얻은 철학 및 신학박사였고, 바흐 오르간 연주로 명성을 얻은 탁월한 오르가니스트였다. 슈바이처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출간 직후부터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유지하며 그에게 명성과 물질적 보상, 그 외 강연이나 연주 등의 기회를 안겨주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슈바이처의 봉사의 삶은 많은 부분 이 책을 비롯한 그의 음악 활동으로 인해 가능했다. 말하자면 음악이 서아프리카의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린’ 것이다.
예수와 칸트와 바흐는 슈바이처의 세 스승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배움 너머의 실천을 강조했던 사람들이었기에 슈바이처 또한 그렇게 살았고 아프리카에서의 의료 봉사는 그 필생의 귀결이라 볼 수 있다. 음악으로 생명을 살린다.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의 힘을 나타내는 말이다. 슈바이처는 매일의 빵과 같은 바흐의 음악을 통해 ‘빵’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일깨웠다.

고음악의 선구자, 유럽의 오르간을 구하다
슈바이처는 음악가로서도 실천적이었다. 의술로 아프리카인들을 구했던 그는 음악에 관한 지식으로는 유럽의 ‘늙은 오르간’들을 구했다. 단순히 연주하기 편리하고 음량을 크게 하려고 악기를 ‘현대적으로’ 개량하는 관행에 슈바이처는 제동을 걸었고, 실버만 오르간이나 발커 오르간 등 옛 시대의 귀중한 오르간을 그대로 보존하는 이른바 오르간 수호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 책에는 바흐 시대의 방식으로 ‘정음’된 옛 오르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와 바흐 음악의 성격을 잘 살려내는 연주법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오늘날에는 이른바 원전 연주 붐이 일어나 시대악기로 르네상스 및 바로크 시대의 작품을 연주하는 일이 거의 보편화되었지만, 슈바이처 생전에는 후기 낭만주의풍의 대형 오케스트라로 바흐 음악을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이 책에서 바흐의 음악은 베토벤 이후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뿌리에서 출발했다고 강조하며 상대적으로 작은 편성의 역사주의적 연주를 옹호하는 입장에 선다. 20세기 초라는 이 책의 출간 시점을 고려할 때 매우 선구적인 시각이다. 영국의 지휘자 존 버트John Butt의 말대로 슈바이처의 언어는 오늘날의 고음악 연주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바흐 시대의 운지법과 강약법 연주 및 예배의 관행 등 연주자들을 위한 실제적인 조언들이 빼곡하게 담겨있다. 바흐를 다룬 전기적 저서들 가운데 이 책만큼 연주의 실제를 포괄적이고도 깊게 다룬 책은 아직까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코랄과 칸타타. 바흐 음악의 신비를 여는 열쇠
슈바이처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스승 샤를마리 비도르의 질문 때문이었다. 왜 그토록 논리정연하던 바흐의 코랄 프렐류드에 갑자기 그와 무관한 엉뚱한 음형들이 등장하는가. 악보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그 숙제에 대해 슈바이처는 바흐의 코랄 가사에 그 답이 있다고 말했다. 코랄 가사에 등장하는 이미지와 지배적인 감정을 일종의 ‘음 상징’으로 만들어 표현했다는 것이다. 바흐 음악에 대한 새로운 혜안을 열어주는 제자의 대답에 고무된 비도르는 그를 격려하여 바흐 음악에 나타나는 음악과 코랄의 관계에 대해 책을 쓰게 했다.
슈바이처는 발걸음, 뜀박질, 추락과 가라앉음과 같은 움직임, 파도, 배, 날개, 바람 등과 같은 동적인 심상, 기쁨, 슬픔과 같은 감정이나 그와 관련된 웃음, 한숨, 신음, 흐느낌 같은 동작들을 음악적 모티프로 만들어 칸타타와 수난곡, 코랄 프렐류드 등에 일관성 있게 활용했다. 그러므로 바흐를 연주하는 음악가들에게 코랄 텍스트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다. 또 코랄의 가사를 모티프화하는 바흐만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슈바이처는 이전까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바흐 음악과 가사의 관련성을 처음으로 강조함으로서 음악가 바흐에 대한 상을 제대로 정립시켰다. 그는 그저 ‘연주의 달인’이나 주어진 주제를 장인처럼 다루는 ‘음악 기술자’가 아니라 시의 이념과 심상을 음악으로 옮겨낼 줄 아는 ‘시인 음악가’이자 ‘음악의 화가’였던 것이다.

음악 애호가의 바흐 사랑에 불을 지필 책
연주를 위한 실천적 팁이 많이 들어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도 이 책은 매력적이다. 단순한 전기적 사실을 뛰어넘는 인간 바흐에 대한 통찰 - 특히 그를 형성한 신앙, 세계관, 직업윤리 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 - 은 악보를 읽을 수 없는 독자들에게도 깊은 감화를 줄 것이다. 우리말 번역 기준으로 거의 1,400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이지만, 슈바이처의 서술은 딱딱하지 않다. 때로는 비판적으로, 때로는 냉철하게 주제를 이끌어가면서도 가족과 일상사, 희로애락의 곡절 등 바흐의 삶 안쪽을 들여다볼 때는 더 없이 애정 어린 온기가 녹아 있다. 바흐의 삶에 대한 아름다운 장면들을 포착할 때는 슈바이처는 마치 시인으로 변하여 아름다운 언어로 가버린 망각의 시간을 현재로 불러낸다. 이처럼 바흐에 대한 슈바이처의 사랑은 어쩌면 이 저작을 이끌어가는 근원적인 힘이었으리라. 우리말 역자 강해근 또한 그에 준하는 사랑으로 언어를 만지고 벼렸다. 그 결과 인간 바흐와 예술가 바흐는 백여년 시간을 넘어 오늘 우리 독자에게 더없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우리말 번역, 값진 성과.
슈바이처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이미 여러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영어권에서는 어니스트 뉴먼의 뛰어난 번역(1911)이 오늘날까지 통용되고 있고, 체코와 폴란드의 경우는 국가 주도의 번역 지원 사업을 통해 독일어판의 자국어 번역을 완수했다. 한편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독일어 평전 대신 이 저서의 절반 정도 분량인 프랑스어 버전인 『J. S. 바흐. 음악가 시인』(1905)을 번역했다. 그밖에 일본어, 중국어, 핀란드어, 덴마크어, 네덜란드어, 히브리어 등으로도 번역되었다. 풍월당에서 펴내는 이번 번역을 통해 우리도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우리 음악가들이 국제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오늘날(한국 클래식 연주자들의 약진을 일각에서는 소위 ‘K-클래식’이라 부르기도 한다), 서양 음악의 뿌리요,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바흐 음악의 핵심에 우리의 독자들, 우리의 음악가들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좁게는 국내 음악계에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고, 넓게는 우리의 클래식 감상 저변에, 서양 문화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기여할 책이다.
역자 강해근은 나진규, 장견실 등과 함께 20여년의 노고를 기울여 이 역작을 번역했다. 이번 우리말 번역은 서양음악에 대한 내실, 곧 보다 깊은 지식을 필요로 하는 우리 음악계와 계속 성장해온 우리 고음악계를 생각할 때 우리의 경우에도 적기에 출간된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구성
이 저작은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바흐를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관점을 명시한다. 슈바이처는 바흐를 우선 객관적인 음악가로 규정한다. 바흐는 자신을 표현하는 대신 자기 시대의 과업을 정리하고 발현시키는 예술가로서 이전 시대를 집대성하는 ‘하나의 끝’이었다는 것이다. 모든 시대의 발전상과 과제를 자기 안에서 구현한 그를 슈바이처는 “단독적 개성이 아닌 보편적 개성”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바흐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바흐 이전까지의 발전사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어지는 2~6장까지는 바흐 이전의 코랄, 코랄전주곡, 수난곡과 칸타타 등의 발전사를 약술한다. 바흐의 음악이 존재하게 된 토대로서 슈바이처는 코랄의 가사(문학적 측면)을 음악만큼이나 비중 있게 다룬다. 이후 드디어 바흐가 등장한다. 슈바이처는 7~8장에서 먼저 연대기적으로 바흐의 인생사를 약술한다. 여기에는 바흐와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들이 간략하게나마 빠짐없이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바흐의 전기적 서술에서 더욱 값진 것은 9~12장에 이르는 주제별 내용들이다. 이 부분에는 마치 인간 바흐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문학적 필치로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수백년 전에 살았던 한 인물의 성격과 됨됨이, 세계관과 개성이 그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과 더불어 선명하게 묘사되어 음악인과 일반인 모두를 매료할 만하다. 특히 12장에서는 슈바이처 당대까지의 바흐 수용사를 다루고 있어 바흐에 관한 저평가와 몰이해, 오해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서술한다.
12장까지의 내용이 주로 음악사적 서술이라면 13~35장까지는 바흐 음악의 작품론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론은 다시 첫 부분과 둘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첫 부분은 13~18장이다. 여기에서는 각각 오르간, 클라비어, 오케스트라와 실내악, 최후기의 걸작들을 다루되, 작품 자체만이 아니라 연주의 실제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작품론 둘째 부분인 19~35장에서는 바흐 음악의 핵심인 코랄, 칸타타, 수난곡 등을 다룬다.
슈바이처는 이를 위해 바로 작품 분석으로 들어가지 않고 19~21장에 이르는 세 개의 장에서 특별한 미학적 논의를 펼친다. 이 저작의 핵심적 주장이 담겨 있는 이 부분에서 슈바이처는 바흐 음악의 회화적 면모, 표현적 면모를 강조한다. 곧 바흐는 감정을 묘사하는 바그너 등의 ‘문학적’ 작곡가와 달리 떠오르는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그려내려는 ‘화가’ 유형의 작곡가였으며, 코랄 가사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회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다양한 모티브를 만들어냈다. 자연히 코랄 및 칸타타와 직접 연관되는 이러한 모티브의 의미를 알면 바흐 음악을 더 깊이 있게 누릴 수 있게 된다. 이후 슈바이처는 22~23장에서 코랄과 칸타타의 음악언어를 정리한 후, 24~35장까지 연대기순으로 칸타타, 수난곡, 미사곡 등의 성악 음악 전반을 해설한다. 특히 35장은 바흐 연주에 관한 실제적인 지침을 상세하게 다룬다.

작가정보

Albert Scweitzer
1875년 알자스로렌의 카이저스베르크에서 태어나 1965년 아프리카 가봉의 랑바레네에서 세상을 떠났다. 슈트라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한 뒤 파리에서 샤를 마리 비도르에게 오르간을 배웠고, 1896년 처음으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경험한 뒤 바그네리안이 되었다. 1899년에는 칸트의 종교철학으로 철학박사학위를,1901년에는 성찬식에 대한 역사적 고찰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1902년에는 신학 교수자격시험에 통과했고 슈트라스부르크의 니콜라이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다.1905년에 비도르의 격려로 프랑스어로 바흐 전기를 쓴 그는1908년 이를 확장한 독일어판 단행본『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출간했다.
1905년부터 1913년까지 슈바이처는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의 선교를 목적으로 약학공부에 매진했고1913년 가봉의 랑바레네에서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그는 이때부터 저술, 강연, 오르간연주, 음반 등에서 얻은 수익으로 병원을 세우고 자비로 운영하며 “숲의 의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평생 평화주의자로 살았고, 바흐의 음악을 사랑했다.1957년부터는 라디오와 기고를 통해 반핵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1952년 노벨평화상을, 1955년 영국메리트 훈장을 받았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과 독일 뮌헨 음악대학에서 첼로를 공부했다.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교수로 재직하며 음악대학장을 역임했고,2002년부터 7년간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국제바흐페스티벌」과「바흐심포지엄」을 기획하여 2011년 까지 이끌었다. 역서로는 니콜라우스 포르켈의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2005/2020),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바로크 음악은 말한다』(2006), 마르틴 게크의 『바흐의 아들들』(2012) 등이 있고,『역사주의 연주의 이론과 실제』(2006), 『바흐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들』(2007)등의 책임 편집을 맡았다.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교회음악을,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음악학, 신학, 종교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에는 한국찬송가공회에서 전임간사로 활동하며 『21세기찬송가』(2006)의 편집 실무를 담당했으며, 장신대, 목원대, 백석대, 연세대에서 강사를, 호남신학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한국인 찬송가의 역사』(2001), 『21세기 찬송가 해설집』(2012), 『바흐의 오르간음악, 전곡해석』(2012), 『찬송가학』(2013), 『교회음악개론』(2014), 『한국가곡의 이해』(2015),『21세기 찬송가의 한국인 작품들, 분석과 해설』(2019), 『바흐의 교회음악』 (2020)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고,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 학위를받았다.가천대,서울대,성신여대에서 강사로 재직했고, 「조성 구조로 본 슈만의 연가곡 구상」,
「쇤베르크의 초기가곡」, 「모차르트 현악사중주KV 387에 나타난 그의 고전양식」등 다수의 논문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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