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인간의 역사

근대 이전 한국 사례를 중심으로

김정민 , 이진아 지음

키미 2025년 03월 14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20세기까지만 해도, 인간의 역사를 이해함에 있어서 환경의 힘은 주요한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다. 역사에 대한 환경의 영향을 중시하는 태도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하는 ‘결정주의’determinism라는 비판적인 시선을 받기도 했다.
20세기 말에서부터 21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기존에 인식하지 못했던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에 대한 보다 정교한 이해가 가능해지게 되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인지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식과 데이터가 급증하고 그것을 정교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기후변화’는 이러한 인간 인식의 확장을 잘 보여주는 키워드 중 하나이다. 주로 과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객관적 데이터로 나타나는 지구의 거시적 환경 변화에 주목하는 기후변화에 관한 지식은 최근의 학술적, 교육적, 대중적 담론 속에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해가고 있다. 경제, 에너지, 자원,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연구와 정책적 모색이 진행되는 가운데, 인간 역사의 전개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기후변화 관점을 통합하여 재분석함으로써 새로운 이해가 제시되고 있다.
기후는 이제 더 이상 인간 활동의 결과에 따라 변화하는 수동적 산물, 혹은 인간 역사의 전개에 있어 배경에 깔리는 부수적 요인으로 간주되지 않게 되었다. 역사 기록의 생산과 관리에 관계되는 권력 및 이해관계로부터 중립적인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기후라는 변수는 역사의 해석에 있어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증거가 될 뿐 아니라, 역사의 전개에 있어 결정적 요인을 제공했던 숨은 주역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 책은 기후변화라는 요인을 역사의 종속변수가 아닌 독립변수로 두는 적극적인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역사의 전개과정에 관한 기후변화의 영향력을 재평가하며, 그와 관련된 사회문화적 대응 양상을 고찰하려 한다.
우선 2장에서는 이 책에서 다루는 기후변화의 범위가 정의된다. 이 책에서 사용되는 기후변화 개념은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보다 확장된 의미를 갖는다. 즉 ‘기후변화’ 현상은 지금까지 흔히 그랬던 것처럼 ‘지구온난화’를 바로 의미하는 것 뿐 아니라 ‘지구한랭화’ 현상 및 ‘이상기후’ 현상까지를 포괄하는 폭넓은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지진, 화산폭발, 홍수, 가뭄 등 지금까지 자연재해의 영역으로 구분되었으며, 기후변화의 결과인 것처럼 간주되었던 자연현상들까지도 기후변화와 함께, 보다 상위 개념인 ‘지구시스템 격변’ 현상으로 보려 한다. 지구 외부로부터의 요인이 자연재해를 더욱 심화시키는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지구자기장 밀도 변화’ 등 우주환경학적 요인에도 주목할 필요성도 생겨났다.
우주 환경의 변수에는 지구자기장 밀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성에 영향을 주는 요인, 외부 우주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패턴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이 책에서는 주로 ‘지구자기장 밀도 변화’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최근 과거 지구자기장 밀도 변화를 복원해내는 기술의 발달로, 기후변화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지구자기장 밀도 변화에 대해서도 상당히 연구 성과가 축적되어 있어, 그 자료를 기후변화와 통합하여 과거 환경의 변화를 확인하는 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둘째, 이런 과거의 거시적 지구환경 변화 추이는 인류 역사의 전개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를 보다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 역사변화에 작용하는 근본적인 영향력으로서 지구환경 변화를 고찰하여, 인간의 행동과 통합하여 분석하고자 하는 이 책의 목표에, ‘과거 지구자기장 밀도 변화’ 관련 데이터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제3장에서는 제2장에서 규정한 거시환경의 변화들이 지구상의 생명체의 역사와 어떤 상호작용을 해왔는지 개괄적으로 고찰했다. 기후변화와 지구자기장 변화라는 두 가지 중요한 거시적 환경 요인이 상호작용하면서 지구의 환경을 조성하고, 이에 따라 지구상 생명체의 존재 양상이 변화해 왔다. 지구의 온난기와 한랭기가 교차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지구환경 거시적 조건의 급격한 변화는 지구상 생명체에게는 포괄적인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지만, 어떤 생명체들에게는 큰 기회가 되어 왔다.
4장에서는 부여, 가야, 백제, 고구려, 신라 등 고대 5개국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기후변화 기타 지구시스템 변화의 거시적 흐름이 어떻게 한국 역사 국가들에게 영향을 미쳐왔는지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인류 역사의 전개 과정은 지구의 거시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 집단이 급격한 기후변화를 포함한 지구시스템 격변 과정에서 똑같은 행동 양상을 보였던 건 아니다. 그리고 한 사회 내에서도 특정 계층의 집단만이 피해를 입거나 혹은 가해를 했던 것도 아니다.
지구시스템 격변으로 인한 사회적 역경을 돌파하려는 전략은 각 사회마다 조금씩 달랐다. 그 역경의 책임을 사회경제적 위계 질서의 제일 밑바닥에 있는 약자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사회경제적 위계 질서의 제일 상층부인 최고 권력자가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사회도 있었다.
고대와 근대의 한국 역사 국가들의 관행은 급격한 기후변화 및 자연재해 등 지구시스템 격변에 따른 흉년과 역병이 계속될 때 사회경제적 위계질서의 최상층부인 통치자(왕)에게 그 책임을 묻는 관행을 갖고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바로는 이 관행은 서기전 4세기에서 서기 5세기까지 존재했던, 한반도 북부 만주평원의 한국 역사 국가인 부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부여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백제, 고구려, 그리고 가야에 이어졌으며, 이후 성격이 많이 바뀌기는 했어도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이어졌다.
엄연히 역사기록에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독특한 역사를 재조명해서 과거 한국 역사의 기후변화 기타 지구시스템 변화에 대응해왔던 전략을 되살려보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표이다.

목차

Prologue

1. 기후변화, 역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
2. 기후변화 개념의 확장
3. 기후변화의 역사학: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
4. 거시적 환경요인의 변화와 한국 역사의 흐름

Epilogue
[참고문헌]
저작권 및 발행 정보

책 속으로

최근 들어 환경문제, 그 중에서도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 관심을 받게 되면서 기후변화가 역사에 미친 영향에 대한 탐구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그런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현상이다.

이 책은 이렇게 지구의 환경 변화에 따라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규명하려는 시도의 흐름에 속한다. 이 책의 특징은 첫째, 인간의 역사에 작용한 두 가지 거시적 환경변화, 즉 기후변화와 지구자기장 변화의 연구 성과를 주요 분석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시스템 변화로서의 기후변화 등 지구 환경 요인을 파악하고, 그것과 인간 역사의 상호작용을 밝히고 있다. 둘째, 인간의 역사를 개관하지만 특히 한국의 경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셋째, 고천문학∙고생태학∙유전자과학∙뇌과학∙고지형학 등 다양한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성과들을 통합하여, 역사분석을 시도했다. 역사와 인간 행동의 상호작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주안점을 두다 보니 설명을 대폭 단순화한 부분도 있다.
이러한 융합적 접근방법에 따라 역사를 되돌아보는 작업을 통해 지금까지 잊혀졌던 역사의 퍼즐조각들이 맞춰지는 있었다. 지금까지 한국 역사 담론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며 단편적으로 제시됐던 소수의견들이 재조명되기도 하고,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새롭게 밝혀진 부분도 있다.

잘 확립된 학문 분야에 제시된 새로운 의견은 마치 잔잔한 호수 표면에 던져지는 돌멩이 같은 것인 듯하다. 현재는 우리 역사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의 역사학 분야에 그런 돌멩이들이 무수히 던져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제시된 분석도 작으나마 그런 새로운 물결 중 하나로서, 역사학 전체의 새로운 패턴을 형성해가는 데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정민

김정민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활동은 국제적 맥락에서 한국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지만, 환경문제에 특별한 관심이 있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숙명여자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학교 BK조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Tradition as Strategy: An Analytic Narrative of Hahoe Village’s Transition to Modernity』 , 『압축적 근대화와 저출산 문제: 환경 및 전통지식의 관점』 등의 연구논문과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 세계사』, 『GyeongGi, a Thousand Year History of Culture』 등의 역서가 있다.

저자(글) 이진아

이진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 인류학과에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1986년 생명 위기의 의미에 눈을 뜨고 1992년에서 1997년까지 시민 단체 경실련 환경개발센터에서 활동하다가 2000년부터는 환경과 생명의 문제를 좀 더 근본적으로 탐구하며 대안을 찾아 공유하려고 노력해 오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딱 1년만 자연주의로 살아보기』, 『환경지식의 재발견: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지구 위에서 본 우리 역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여성과 환경 그리고 지속가능한 개발』,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 세계사』,『제4차 지구생물다양성전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