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와 베끼기
2025년 03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25년 02월 17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9.63MB) | 약 5.6만 자
- ISBN 9791193591321
- 지원기기 교보eBook App, PC e서재, 리더기, 웹뷰어
-
교보eBook App
듣기(TTS) 가능
TTS 란?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술입니다.
- 전자책의 편집 상태에 따라 본문의 흐름과 다르게 텍스트를 읽을 수 있습니다.
- 이미지 형태로 제작된 전자책 (예 : ZIP 파일)은 TTS 기능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쿠폰적용가 12,150원
10% 할인 | 5%P 적립이 상품은 배송되지 않는 디지털 상품이며,
교보eBook앱이나 웹뷰어에서 바로 이용가능합니다.
카드&결제 혜택
- 5만원 이상 구매 시 추가 2,000P
- 3만원 이상 구매 시, 등급별 2~4% 추가 최대 416P
-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추가 최대 200원
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낭비와 베끼기
감사의 말
부록 - 나는 이런 대통령을 원한다(조이 레너드)
옮긴이의 말 -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만의 지금 이 순간의 감각
노동계급 출신의 퀴어 예술가와 같은 반사회적 존재들의 불결함과 변칙성은 표백된 정상성 자본의 옆자리에서 더욱 역동적으로 가시화되기 마련입니다. 낙차에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시와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러한 낙차를 동력으로 세계에 투신하고, 유희하며, 우리(‘노동계급 출신의 퀴어 예술가’에 대한 거리 있는 접근처럼 글을 쓰려다가 실수로 우리라고 말해버렸지만 지우지 않겠습니다)를 위한 놀이터를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박탈의 경험은 언제나 공간을 전제로 할 뿐 아니라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또!)가 대안적인 장소의 발명가들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_11~12쪽, 〈서문 - 불결한 삶을 베껴 쓰기〉
저항하고, 교란하며, 질병처럼 끝없이 재발하는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을 베껴 쓰는 손이 있습니다. 기호는 언제나 포획할 수 없는 대상을 재현하려 한다는 혐의를 품고 있지만 ‘쓰기’라는 행위로 시선을 옮겨본다면 그 일은 아일린 마일스의 말처럼 정말이지 종교적이고 수행적인 어떤 것입니다. 모방을 금지당한 삶을 모방하는 형식의 쓰기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저는 자신의 쓰기를 ‘베껴 쓰기’라고 주장하는 아일린 마일스의 태도를 무척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쓰기 역시 모종의 베껴 쓰기들이었음을 실감하면서요. 그리고 그러한 베껴 쓰기의 실천이 저를 얼마나 보호해왔는지 다시금 떠올려 보았습니다.
_17~18쪽, 〈서문 - 불결한 삶을 베껴 쓰기〉
작가가 되려면 정말 많은 시간이 들고, 그렇기에 시간을 굴릴 줄 알아야 한다. 내 경험은 그랬다. 마치 해변으로 밀려와 죽은 물고기를 굴려대는 개처럼 말이다. 아니면 마구간 속 말의 몸뚱이 아래 똥 무더기에 선 채로 (벌벌 떨며) 경이로움을 느끼는 한 마리 개(내 개)처럼. 똥이 너무 많고, 말이 너무 많아서다. 그러나 시시각각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전부인 이런 일로 인생을 살아가려 한다면, 대단한 일이다. 나는 시인으로 살아가며 기꺼이 시간을 낭비하기로 했기에 장갑을 던져 도전에 응했고, 그 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내가 작업하는 장소가 바로 그 무無다.
그 이유는 나중에 이야기하겠다. 나는 문학이 낭비된 시간이며,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도덕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저 지극히 심오한 시간 낭비일 뿐이다. 나는 모든 방면에서 그 모험을 샅샅이 탐구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모험을.
_29~30쪽, 〈낭비와 베끼기〉
그것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다가 펼치면 커지는, 작게 접힌 문학이다.
_34쪽, 〈낭비와 베끼기〉
왜 글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내가 세계에 존재하며 느끼는 이 깊은 편안함/불편함, 그리고 전념이라는 선택지와 관련 있을 터다. 내가 온종일 가만히 앉아 베끼기만 한다면 그것이 내게 주어진 최선의 선택지일 것이다. 그건 항우울제도 아니고, 그렇게 짜릿한 일도 아니고, 유산소 운동도 아닌, 그저 일종의 주문을 읊는chanting 행위인데, 나는 종교적인 이유로 그 일을 하고 또 한다. 그러니까 그게 내 기본자세라는 뜻이다.
_46쪽, 〈낭비와 베끼기〉
쓰기와 그리기, 그리기와 쓰기, 베끼고 베끼고 베끼기. 신이여. 신이란 이런 반복에서 발생하는 그 무엇이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말이다. 나는 그것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그 언어를 사랑해야 한다. 그게 내가 세계와, 또 신과 맺은 계약이다. 신이여.
_55쪽, 〈낭비와 베끼기〉
나는 장르에 대한 개념을 전혀 믿지 않는데, 전부 이렇듯 날조된 것뿐이다. 그러나 글, 예술, 음악의 면면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들은 삶과의 관계 속에 놓여 있고 그 일, 내 경우에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 내가 하는 생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_64쪽, 〈낭비와 베끼기〉
우리에게는 가난한 사람들, 대안적인 사람들, 엉망진창인 사람들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말이다. 툭 터놓고 말하자면, 우리한테는 부자보다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가난한 자들은 삶에 목적을 주니까. 그들이 삶의 목적을 가시화시키니까.
_79쪽, 〈낭비와 베끼기〉
내가 만화가들에게서 제일 좋아하는 점이 그들은 만화, 즉 세계 속에 글씨를 써내려간다는 것이다. 세계는 숨결에 따라 팽창하고 수축하는 풍선이며, 우리는 살아 있음과 숨쉬기라는 그 곡선을 기록할 수 있을 정도로 풍선 표면이 커졌다고 느낄 때 글을 쓴다.
_86쪽, 〈낭비와 베끼기〉
중요한 건 지나치게 긴 삶을 대비하며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느릿느릿 영원을 향해 다가간다는 점이다. 속절없이.
_86~87쪽, 〈낭비와 베끼기〉
나는 지금까지 쓴 모든 시를 기억한다. 암송할 수는 없지만 그것들은 파도처럼 돌아온다. 모두 내 뇌의 일부니까. 그것들이 내 뇌를 이룬다. 내 뇌는 안팎이 뒤집혀 있다. 시가 나를 증명한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조금도 알 바가 아니다. 일전에 시인 애덤 피츠제럴드가 망각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아마 루이스 하이드식 이야기였던 것 같다. 망각은 잃어버리는 것처럼 구체적인 게르만적인 것, 그리고 덮이거나 덧씌워지거나 보이지 않게 되는, 사라지는 것에 더 가까운 그리스적인 것으로 나뉜다.
_92쪽, 〈낭비와 베끼기〉
내 생각에 글을 쓴다는 건 기껏해야 늘 그렇듯 글쓰기 속으로 훅 내달리는 것이다. 그 실행의 지평으로.
저 바깥을 향해. 비록 글의 주제가 ‘나’라고 해도 똑같이 느껴진다. 나는 사라진다. 필연적으로.
_123쪽, 〈낭비와 베끼기〉
그렇기에 내가 이 일을 하는 방식 전체에는 그 산물 안에 아주 많은 세계를 담고자 하는 야망이 실려 있다. 그 세계가 좀 보잘것없이 어수선하고 불결하도록, 그래서 사람들이 건물 안에 들어가듯 진입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건물은 공공건물이다. 작품을 끝내는 순간 여기 온 사람들의 것이니까. 내가 가장 먼저 그 속으로 사라지겠지만 그 뒤에는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_131쪽, 〈낭비와 베끼기〉
사진 속에서 시인은 나무를 안은 채 눈을 감고 있다. 나무를 끌어안아본 사람은 나무의 주름진 살갗이 꺼끌꺼끌한 동시에 부드럽다는 사실을 안다. 나무를 안는다는 것은 나무와 일시적으로 결합하는 일이다. 사람과 나무가 마주 닿을 때 접촉면은 누그러지고 용해되며 우리의 일부는 섞인다. 같은 기사에 실린 또 다른 사진 속에서 시인은 확성기를 입가에 대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공원에서, 지금 이 나무를 끌어안고, 지금 이 말을 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을 본다.
_157~158쪽, 〈옮긴이의 말 -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만의 지금 이 순간의 감각〉
할 수 있는 말은, 나 역시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는 것이다. 나는 치료받지 못한 잇몸에서 피를 흘리는 대통령을, 퇴거당해본 대통령을, 집이 없다는 것이 한 사람의 생에 얼마나 엄청난 위기인지 아는 대통령을 원한다. 학살과 폭력을 무관심으로 용인하지 않는 대통령을 원한다. 눈앞의 일들을 베껴 쓰는 일을 다른 중대한 과제의 뒤로 미루지 않는 사람을, 아름답고 정돈된 것이 아니라 무더기로 쌓인 쓰레기를 베끼는 사람을 원한다. 그 사람 곁에서 나무를 끌어안고 있다가 같이 끌려 나가기를 원한다.
_161~162쪽, 〈옮긴이의 말 -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만의 지금 이 순간의 감각〉
미국 현대시단과 퀴어문학의
유일무이한 컬트적 존재이자 록스타 시인
아일린 마일스의 국내 첫 책 출간
문학은 낭비와 베끼기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으로써,
당신의 삶과 정치에서 이끌어낸 진짜 글을 쓰라
미국 현대시의 유일무이한 컬트적 존재이자 ‘록스타’ 시인으로서 정치적, 미학적 최전선의 글쓰기를 온몸으로 밀고나간 아일린 마일스의 국내 첫 책이 출간되었다. 그는 반세기 가까운 전방위 글쓰기를 통해 타협하지 않는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시인이었고, 일흔 살이 넘는 지금도 어느 때보다 정열적인 뉴욕의 작가이자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다. 1992년에는 노동계급 퀴어예술가로서 빌 클린턴과 조지 H. W. 부시가 맞붙었던 대선에 뛰어들어 미국 전역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고, 당시 아일린 마일스의 출마에 응답하는 헌시 〈나는 이런 대통령을 원한다I Want a President〉(조이 레너드)는 삼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전 세계 진보적 예술가들과 퀴어 커뮤니티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핵심은 베끼기copy다. 모든 예술은 삶과 관련하여 창조되며, 우리는 그 삶에 감동받고, 글쓰기는 그러한 경험을 ‘베끼는 것’이다. 이는 어떤 존재를 원래의 장소에서 그대로 다른 맥락과 조건으로 옮겨옴으로써 생성되는 낯섦의 미학, 혹은 데페이즈망(전치)의 기법으로도 볼 수 있다. 마일스는 이러한 글쓰기를 항우울제나 유산소 운동처럼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줄 도구가 아니라, 끝없이 주문을 읊는 하나의 수행으로 지속한다. 자본으로 환원되지 않는, 순전한 시간 낭비로서 자기 삶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베끼고 그 허위를 폭로하는 일이야말로 문학적 구원의 길이 된다. 그러므로 아일린 마일스의 글쓰기 스타일은 정치적 조건들과 밀접하면서도, ‘문학은 지극히 심오한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상반된 태도 사이에 존재한다. 그 사이에서 명멸하는 광증과 같은 글쓰기는 가난한 이들을 밀쳐대며 나아가는 대도시 뉴욕의 실체를 은유로서 그려낸다. 그리고 ‘대도시 뉴욕’은 ‘지금 여기의 도시’에서 반복되고 변주된다.
한국어판에는 저자와 자신을 기꺼이 ‘우리’라고 부르며 ‘대안적인 장소의 발명가’들이라고 밝힌 김선오 시인의 서문을 수록했다. 책 뒤편에는 조이 레너드의 헌시 〈나는 이런 대통령을 원한다〉 원문 도판과 번역을 실었다.
어떤 작품은 어수선하고 불결한 세계들이 모인 공공건물이다
작품을 끝내는 순간 여기 온 사람들의 것이니까
작가가 가장 먼저 그 속으로 사라지겠지만, 그다음은 독자들의 차례다
리베카 솔닛, 캐시 박 홍 등 유수의 작가들이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던 예일대학교 제정 윈덤캠벨문학상의 2019년 시상식에 아일린 마일스가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그는 패티 스미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등이 ‘나는 왜 쓰는가’라는 주제로 이어왔던 이 강연에서 사십 년 넘도록 살아온 아파트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그를 작가로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뉴욕의 아파트 임대 정책이라며, 자신의 글쓰기가 가능할 수 있었던 정치적, 사회적 조건들을 특유의 조소와 유머로 펼쳐 보인다. 자기 삶의 내력을 현미경과 같은 언어로 폭발하듯 발설하며, 번뜩이는 시적 문장들로 삶의 순간들이 글로 체화되는 과정을 비유한다. 이를 통해 작가의 마음은 어떤 조건에서 작동하는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으로써 글쓰기란 무엇인지 파고든다.
이 책의 아름다움은 이러한 포스트모던적 글쓰기 스타일의 해부에 그치지 않는다. 아일린 마일스는 삶의 조건들에서 글쓰기가 촉발되는 잉태의 과정을 계속해서 선회하며, 자신의 글쓰기를 정의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호하게 팽창시키고 삶의 순간순간들을 글쓰기로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순간들은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 대안적인 사람들, 엉망진창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장소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들이야말로 삶의 목적을 가시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일린 마일스 글쓰기의 형식이 ‘베끼기’에 있다면, 그 동력은 ‘불결하고 변칙적인 반사회적인 존재’ 자체로서 ‘표백된 정상성’의 사회에 계속해서 뛰어들려는, 그가 세계를 사랑하는 방식에 있다.
“노동 계급 출신의 퀴어 예술가와 같은 반사회적 존재들의 불결함과 변칙성은 표백된 정상성 자본의 옆자리에서 더욱 역동적으로 가시화되기 마련입니다. 낙차에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시와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러한 낙차를 동력으로 세계에 투신하고, 유희하며, 우리(‘노동 계급 출신의 퀴어 예술가’에 대한 거리 있는 접근처럼 글을 쓰려다가 실수로 우리라고 말해버렸지만 지우지 않겠습니다)를 위한 놀이터를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박탈의 경험은 언제나 공간을 전제로 할 뿐 아니라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또!)가 대안적인 장소의 발명가들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자랑스러운 일입니다.”_〈서문-불결한 삶을 베껴 쓰기〉(김선오)에서
삶과 문학 사이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일거에 펼쳐낸 이 책은
한 편의 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전체가 한 편의 시이기도 하다. 순순히 해독을 허락하지 않지만, 간결한 메시지로 통합할 수 없는 삶과 문학 사이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일거에 펼쳐 보여주기에 그것은 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뉴욕의 아파트 이야기 그리고 텍사스주 마파에 뉴욕의 아파트를 재현한 장소를 만들어가는 또 다른 이야기. 두 줄기의 분절되고 파편화된 이야기가 이리저리 모였다가 흩어지며 나아간다. 그 사이사이로 문학과 글쓰기의 본질을 불현듯 되묻게 하는 시적 통찰이, 마치 사족처럼 붙어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남다른 글쓰기 비책을 정리해주지 않지만, 전혀 다른 것을 줄 수 있다. 미국 현대시의 대가가 실제로 자기 삶에서 글쓰기로 나아가는 아주 사사롭고도 솔직한 과정 그 자체다.
편집자 레터
글쓰기가 고통스러운 어느 편집자의 변명 혹은 알리바이
편집회의를 앞두고 아일린 마일스의 글쓰기가 도대체 무엇인지 산뜻하게 한번 정의해보려고 아침부터 사무실 앞을 서성이며 많은 꽁초를 생산한 결과, 어쩌면 어떤 글쓰기의 고통은 (그것이 편집자 레터든 뭐든 간에) 자신만의 현재에 도달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건 아닐까, 라는 조금 개인적인 질문에 당도했다.
뭘 써야 문학이 되는 건지 흰 종이 앞에서 절망하던 내게 마일스는 나의 현재를 쓰는 일이야말로, 이달의 상환 금액 안내 카톡의 주기적 반복으로 쇠약해진 나를, 또한 지출이 소득을 늘 초과하는 구조 속에서 달콤한 한도를 내어줌으로써 나를 세계의 ‘밧데리’로 만들려는 저들의 의도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계속해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세계 속의 나에 관해 치열하게 고심해보니 사는 동안 나는 은행의 노예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아직 닥치지도 않은 내 신용의 슬픔을 쓰는 일은, 그러니까 내가 세계에 구속되는 형식을 베껴오듯 운율에 맞추어 쓰는 일은 이상하게도 진정한 나와 지독한 현재를 분리시켜 그 모든 구속 전의 나를 발견하는 일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하여 사장님께 송구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는 가시적인 글쓰기 비책이 없고 나는 개인적인 결론을 얻어 퇴근한다. 아일린 마일스의 글쓰기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한 고민은 내가 뭘 쓰면 좋을지 힌트를 준 것 같다. 귀띔하자면 이 책은 시간 낭비하듯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법은 없어도 글쓰기의 가장 어려운 단계에서 당신을 끌어올려줄지 모르니.
부록
〈나는 이런 대통령을 원한다I Want a President〉 조이 레너드Zoe Leonard
나는 다이크 대통령을 원한다. 에이즈에 걸린 대통령을, 패그 부통령을 원하고,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 유독성 폐기물로 포화된 땅에 살아서 백혈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을 원한다. 나는 열여섯 살에 임신 중단한 경험이 있는 대통령을, 둘 중 차악이 아닌 후보자를, 그리고 전 연인을 에이즈로 잃은, 여전히 누우면 그 사람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사랑하는 이가 죽어가는 걸 알면서 품에 안았던 사람을 원한다. 에어컨이 없는 대통령을, 병원에서, 차량관리국에서, 복지부에서 긴 줄을 서본 대통령을, 실업과 해고와 성추행과 동성애 혐오와 추방을 경험해본 대통령을 원한다. 무덤가에서 밤을 지새워본 사람을, 자기 집 잔디 위에서 불타는 십자가를 본 사람을, 강간 생존자인 사람을 원한다. 사랑에 빠졌다가 상처 입어본 사람, 섹스를 존중하는 사람, 실수하고 그 실수로부터 배운 경험이 있는 사람을 원한다. 나는 흑인 여성 대통령을 원한다. 충치가 있고 태도가 불량한 사람, 역겨운 병원 밥을 먹어본 사람, 다른 성性의 복장을 하고, 약물을 사용하고 치료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을 원한다. 시민 불복종을 실천해본 사람을 원한다. 그리고 나는 어째서 이것이 불가능한 일인지 알고 싶다. 어째서 우리는 항상 어느 시점에 이르면 대통령이 광대라는 걸 깨닫게 되는지 알고 싶다. 어째서 대통령은 창녀가 아니라 항상 존인지, 노동자가 아니라 항상 간부인지, 항상 거짓말쟁이인지, 항상 도둑질을 하고 영영 처벌받지 않는 자인지.
* 이 작품은 1992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 아일린 마일스를 지지하기 위해 조이 레너드가 쓰고 만든 작품이다. 그 후 30년 넘도록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길 바라는 이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왔다. 이 책에는 저작권사 하우저앤드워스Hauser&Wirth가 제공한 작품 사본을 송섬별 역자의 번역과 함께 수록했다.
작가정보
Eileen Myles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의 명예교수로 글쓰기와 문학을 가르쳤다. 구겐하임펠로우십, 워홀/크리에이티브 창작기금, 현대예술재단 시 부문상 등을 수상했고 퀴어문학의 가장 주요한 상인 람다문학상을 받았다. 미국문학예술아카데미 회원이다.
1949년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나 스물다섯 살 때 시인이 되고자 뉴욕행 기차에 올랐다. 미국 카운터컬처의 황금기에 비트문학의 전설적 시인 앨런 긴즈버그와 교류하고 뉴욕파 시인의 영향 아래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목소리 없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기 위한 글’을 쓰고 ‘지극히 심오한 시간 낭비’로서 전방위 문학 활동을 하면서 일흔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 시대 희귀한 컬트적 존재이자 록스타 시인’으로 불린다.
1992년 미국 대선에 출마하여 화제가 되었는데, 당시 발표한 〈어떤 미국인의 시An American Poem〉와 성소수자 인권운동가인 조이 레너드가 아일린 마일스를 지지하기 위해 쓴 〈나는 이런 대통령을 원한다I Want a President〉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후자의 시를 타이핑한 작품은 뉴욕 맨해튼의 하이라인 공원에 전시되어 있으며, 2010년 스웨덴 의회에서 극우 정당의 의회 진출을 비판하는 여성 예술가들에 의해 이 시가 낭독된 일이 국내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1978년 첫 시집 《목줄의 아이러니The Irony of the Leash》를 시작으로 대표작인 《나는 아니다Not Me》 외 14종의 시집을 썼고 《첼시의 소녀들Chelsea Girls》 《인페르노Inferno》 등 5종의 장편소설과 소설집을 출간했으며 그 외 논픽션, 여행기, 희곡 등 여러 장르의 글쓰기를 반세기 가까이 해왔다.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읽고 쓰고 번역한다. 여성, 성소수자, 노인, 청소년이 등장하는 책을 좋아한다. 고양이 물루, 올리버와 함께 용감하고 다정하게 살고 싶다. 옮긴 책으로는 《자미》 《페이지보이》 《내 어둠은 지상에서 내 작품이 되었다》 《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 《괴물을 기다리는 사이》 등이 있다.
이 상품의 총서
Klover리뷰 (0)
- - e교환권은 적립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 - 리워드는 1,000원 이상 eBook, 오디오북, 동영상에 한해 다운로드 완료 후 리뷰 작성 시 익일 제공됩니다. (5,000원 이상 상품으로 변경 예정,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 -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 - sam 이용권 구매 상품 / 선물받은 eBook은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 도서나 타인에 대해 근거 없이 비방을 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리뷰
- 도서와 무관한 내용의 리뷰
- 인신공격이나 욕설, 비속어, 혐오 발언이 개재된 리뷰
- 의성어나 의태어 등 내용의 의미가 없는 리뷰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문장수집
- 구매 후 90일 이내에 문장 수집 등록 시 e교환권 100원을 적립해 드립니다.
- e교환권은 적립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 리워드는 1,000원 이상 eBook에 한해 다운로드 완료 후 문장수집 등록 시 제공됩니다. (5,000원 이상 eBook으로 변경 예정,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 sam 이용권 구매 상품 / 선물받은 eBook / 오디오북·동영상 상품/주문취소/환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구매 후 문장수집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 구매 후 90일 이내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최초1회)
- 리워드 제외 상품 : 마이 > 라이브러리 > Klover리뷰 > 리워드 안내 참고
- 콘텐츠 다운로드 또는 바로보기 완료 후 리뷰 작성 시 익일 제공
가장 와 닿는 하나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총 5MB 이하로 jpg,jpeg,png 파일만 업로드 가능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신고 내용은 이용약관 및 정책에 의해 처리됩니다.
허위 신고일 경우, 신고자의 서비스 활동이 제한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어 신중하게 신고해주세요.
이 글을 작성한 작성자의 모든 글은 블라인드 처리 됩니다.
구매 후 90일 이내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eBook 문장수집은 웹에서 직접 타이핑 가능하나, 모바일 앱에서 도서를 열람하여 문장을 드래그하시면 직접 타이핑 하실 필요 없이 보다 편하게 남길 수 있습니다.
차감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차감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선물하실 sam이용권을 선택하세요.
-
보유 권수 / 선물할 권수0권 / 1권
-
받는사람 이름받는사람 휴대전화
- 구매한 이용권의 대한 잔여권수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
- 열람권은 1인당 1권씩 선물 가능합니다.
- 선물한 열람권이 ‘미등록’ 상태일 경우에만 ‘열람권 선물내역’화면에서 선물취소 가능합니다.
- 선물한 열람권의 등록유효기간은 14일 입니다.
(상대방이 기한내에 등록하지 않을 경우 소멸됩니다.) - 무제한 이용권일 경우 열람권 선물이 불가합니다.
첫 구매 시 교보e캐시 지급해 드립니다.

- 첫 구매 후 3일 이내 다운로드 시 익일 자동 지급
- 한 ID당 최초 1회 지급 / sam 이용권 제외
- 구글바이액션을 통해 교보eBook 구매 이력이 없는 회원 대상
- 교보e캐시 1,000원 지급 (유효기간 지급일로부터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