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나라
2025년 03월 06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1월 0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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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92655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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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다정한 스튜어트 / 25
마녀 포포포 / 45
이 닦아 주는 침대 / 63
작가의 말 / 82
작품 해설 / 84
“나도 햇살 나라에 가 보고 싶다. 하지만 난 요정이 아니니까…….” 세아는 섭섭한 얼굴입니다. “넌 공주니까 갈 수 있어.” 햇살 요정이 말했습니다. ‘공주? 할머니도 날 공주라고 불렀는데…….’ 세아는 생각했습니다. “햇살 나라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공주고 왕자야.” 세아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참말 그런 곳이 있을까요? (본문 17쪽)
무섭게 퍼붓는 비가 길에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고인 물은 빠르게 불어나더니 턱을 넘어 세아네 집 계단으로 넘쳐 내렸습니다. 마치 작은 폭포처럼 빗물이 지하로 쏟아졌습니다. 이미 세아네 창문은 물에 잠겼습니다. 그 창문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창문이기 때문입니다. 창틀 사이로 빗물이 줄줄 흐르며 들이치기 시작했습니다. 현관문 틈으로도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집 안의 불은 모두 나가 버렸습니다. 세아는 울며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물은 세아의 무릎까지 차올랐습니다. 귀를 찢는 천둥소리 사이로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습니다. 창문 밖에서 손전등 불빛이 왔다 갔다 했고, 사람들은 창문을 부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세아는 알지 못했습니다. 물은 빠르게 높아졌습니다. 얼음보다 차가운 물에 세아는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세아는 엄마를 불렀습니다.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우리 세아, 배고프지? 무섭지 않았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본문 21쪽)
집 안 가득했던 흙탕물은 어느새 맑디 맑은 냇물이 되었습니다. 싱그럽고 달콤한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바로 햇살 나라였습니다. 세아는 물이 목까지 차오른 것도 잊었습니다. 이제 춥지도 않고 눈물도 멈추었습니다. “나랑 가자.” 아줌마가 말했습니다. 세아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면 우리 엄마는 어떡하죠?” 세아의 투명한 눈동자가 흔들렸습니다. 하늘 여신 아줌마는 세아의 눈을 들여다보고 빙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너는 햇살 나라의 공주니까 언제든지 엄마에게 올 수 있단다. 햇살은 사라지지 않지.” (본문 22쪽)
준이네 집에는 다섯이 삽니다. 네 명의 가족과 준이입니다. 네 명의 가족은 엄마, 아빠, 동생 그리고 나비입니다. 엄마, 가정주부. 소리를 지르지 않지만, 언제나 비꼬아 말함. 아빠, 회사원. 비꼬아 말하지 않지만, 소리를 지름. 동생, 소이. 자주 움. 나비, 고양이. 소리를 지르지 않고, 비꼬아 말하지도 않고, 울 지도 않음. (본문 29쪽)
이제 집 안에 준이에게 다정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학습지를 풀 때면 맨살에 닿는 의자의 철제 다리도 너무 차가워 다정하지 않고, 샤워를 할 때면 오십을 셀 때까지 찬물만 나오는 오래된 샤워기도 다정하지 않았습니다. 부엌 바로 옆에 있는 준이의 방은 밖의 소리가 너무 잘 들렸는데, 식탁에서 전화를 하며 준이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는 엄마의 말을 매번 듣게 하니 준이의 방도 다정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우리 강아지’라고 부르는 동생 소이는 진짜 강아지가 아닌데도 엄마의 강아지여서 준이보다 힘이 세었고, 소이는 또 그걸 알아서 준이를 무시하니 다정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 나비마저 자기가 소이 다음이라는 듯 준이에게 오지 않고 거만하게 구는 걸 보면 다정하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종종 잠든 준이를 물끄러미 보고 방을 나간다는 걸 알지만, 준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도 잡아 주지 않으니까 다정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엄마가 준이를 괴롭히는 걸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두니까 진짜 다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다정하지 않은 것은 엄마였습니다. (본문 35쪽)
사진 속의 여자는 노파 같아 보였는데 커다란 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하고, 가느다란 입매는 야비해 보였으며, 시커멓게 벌린 입은 더없이 추했습니다. 무엇보다 사진 속 여자는 무척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 봤자 종이 여자이니까요. “이게 엄마예요.” 준이의 목소리는 단단했습니다. 엄마는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준이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준이의 얼굴은 어찌 보면 웃는 것 같고, 어찌 보면 우는 것도 같았습니다. 준이의 새까만 눈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다만 그 사진 속 여자를 아무리 미워해도 결국 다시 사랑하게 되니 더없이 슬퍼 보일 뿐이었습니다. (본문 41쪽)
사실 포포포에게 단 하나의 특별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빗자루였습니다. 포포포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 수 있었습니다. 아, 하늘을 날 수 있다니요! 그것은 포포포 또래의 마녀에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포포포는 다른 아이들이 자전거를 탈 때 이미 빗자루를 탔습니다. 포포포가 다칠까 봐 엄마는 빗자루를 숨겨 두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빛나는 재능일 뿐 아니라 가장 위험하고 숨겨야 할 재능이기도 했습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사냥꾼의 총에 맞아 떨어지거나, 마을 사람들의 두려움 때문에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르니까요. (본문 50쪽)
“나랑 가자!” 포포포는 남자아이를 우우치 마을까지 데려다줄 것입니다. 만약 동생이라면 절대 이런 산속에 혼자 보내지 않을 테니까요. ‘보리는 착한 아이였어요. 용이 나타난 것도, 그래서 보리가 아홉 살 생일을 앞두고 세상을 떠난 것도 보리의 잘못은 아니에요. 그러니 오늘 나는 마법을 쓸 거예요!’ 포포포는 하늘을 날기로 결심했습니다. (본문 58쪽)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포포포는 바람을 뚫고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산을 넘었습니다. 산의 정상을 넘자 거짓말처럼 바람이 약해졌습니다. 포포포가 겨울바람을 이겨 낸 것입니다! 포포포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세상 그 무엇과 싸워도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것이 용이든 전쟁이든 무엇이든 말이지요. 포포포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사랑과 용기가 있어야 마법을 부릴 수 있단다.” (본문 60쪽)
“저희 핀천 침대는 ‘이를 잘 관리하는 사람이 인생에 성공한다’는 핀천 회장님의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젊은 매니저가 말했습니다. “네? 무슨 비유인가요?” 엄마는 여전히 의심했습니다. 매니저는 고개를 저으며 들고 있던 패드를 톡 건드렸습니다. 그는 ‘치아 건강과 수입의 관계’나 ‘치아 건강이 성공에 미치는 영향’ 등의 연구 자료를 보여 주었습니다. 시우는 거품을 물고 이를 닦으며 춤 연습을 하는 아이돌을 떠올렸습니다. (본문 66쪽)
“우리 애들이 어떻게 우주 시민이 되겠어? 우리한테 받을 유산이 있어, 그렇게 큰돈을 벌 능력이 있겠어?” 시우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시우 꿈이 뭔지 몰라? 우주인이 된다잖아. 우주인 되면 어쩌려고?” “아이고, 퍽이나. 저렇게 몸도 약하고 공부도 안 하는 애가? 어차피 우주 시민은 꿈도 못 꾸는데, 이 잘 관리하고 여기에서나 잘 사는 게 나아. 설마 애들 살 동안 지구가 끝장나겠어?” 그 말이 송곳처럼 시우의 가슴을 뚫었습니다. 시우는 몸에서 무언가가 피시식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시우를 꽉 채우고 있던 밝은 즐거움과 힘찬 용기 같은 것들이요. 지구를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은 시우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시우는 지구가 오염되고 기후가 무섭게 변해서 우주인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우는 늘 별들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던 것입니다. 시우는 버림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부모로부터, 먼 미래로부터. (본문 76쪽)
눈물에는 소독력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깊고 슬픈 동화
「햇살 나라」, 「다정한 스튜어트」, 「마녀 포포포」, 「이 닦아 주는 침대」 네 편의 단편에는 어김없이 약자가 등장한다. 가난한 어린이, 학대받는 어린이,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어린이, 존중받지 못하는 어린이. 이 어린이들에게는 ‘힘’이라는, ‘폭력’이라는 자원이 없다. 약자인 어린이의 힘은 약하고 목소리는 작으며 주어진 갈등과 문제를 감당하기 위한 능력은 아직 어설프고 서툴다. 그렇다면 이 어린이들은 이 세상과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 이반디 작가는 약자만 접근 가능한 대안적 사고, 새로운 개념, 힘 있는 자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약자에게만 보이는 세계를 드러냄으로써 이 아이들의 손에 무기를 쥐어 준다.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세상을 배워 나가는 모습은 그래서 슬프고 깊고 시종일관 눈을 떼지 않고 응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슬픈 데서 그치지 않는다. 눈물에는 소독력이 있다 하지 않는가. 세상에서 가장 깊고 슬픈 이야기 끝에는 지금껏 보지 못한 밝음과 기쁨이 자리한다.
독립과 보호, 모험과 안정, 성장과 비성장, 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까?
대립되는 가치가 동시에 진실이 되는, 양가적 의미가 풍성한 새로운 동화
우리는 한 작가가 만들어 내는 여러 텍스트에서 일관된 맥락, 소재와 스타일의 일관성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인간 개성의 일관성 때문에 한 작가가 쓴 텍스트들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상당 부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반디 작가의 신작 『햇살 나라』에서는 이전 작품들보다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다. 네 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 모두 양가적 의미가 풍성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동기를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시기라고 규정짓기 때문에, 보편적인 동화는 어린이들의 독립 욕구에 초점을 맞추거나, 보호 장치를 잃은 데 대한 두려움에 초점을 맞추곤 한다. 독립과 보호, 모험과 안정, 성장과 비성장 등 대립적인 성질로 이루어진 것들을 서로 갈등 관계에 놓고, 둘 중 하나가 명백히 더 바람직하다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반디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그러나 꼭 이런 결론에 도달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선택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는 작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작품 「햇살 나라」에서는 가장 깊은 슬픔이 어떻게 가장 순수한 밝음을 길어 올리는지를, 두 번째 작품 「다정한 스튜어트」에서는 가정의 안락함과 모험의 위험을 동시에 원하는 어린이의 욕구를, 세 번째 작품 「마녀 포포포」에서는 순수하면서도 경험 많기를 바라는 어린이의 욕구를, 네 번째 작품 「이 닦아 주는 침대」에서는 성장하면서도 성장하고 싶지 않은 어린이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다. 네 편의 이야기에서 대립되는 가치는 동시에 진실이 된다.
이렇듯 이반디 작가는 대립되는 두 가지를 흥미롭게 결합한다. 겉으로 보기에 대립되는 가치들을 어떤 균형 잡힌 결론으로 매듭 짓는 것은 그야말로 위대한 지혜이다. 한쪽 가치에만 집중한 이야기가 좀 더 접하기 쉬운 현실이기에, 둘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이번 작품이 더욱 귀하고 반갑다.
어린이가 그곳이라고 말하면 거기까지 반드시 같이 가는 동화
“나는 『햇살 나라』가 이반디 문학의 전과 후를 나눈다고 생각한다.
햇살 나라로 간 아이들은 꼭 살아서 되돌아올 것이다.”
_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
『햇살 나라』는 동화집에 잘 어울리는 포근한 이름을 가졌다. 그러나 책을 읽기 시작하면 서서히 허리를 바로 세우게 된다. 한 편 두 편 읽으면서 점점 책 앞으로 바짝 다가앉고야 만다. 읽다가 네 번은 고개를 들어 창밖의 하늘을 보았던 것 같다. 반쪽이었던 거울이 나머지 반쪽을 만나 하나가 되는 것처럼 이 책에 실린 단편 동화들을 통해서 이반디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동화의 모습을 온전히 그려 보게 되었다. 작가는 그동안 보여 주지 않았던 어린이의 방, 가장 깊은 구석을 공개한다. 나는 『햇살 나라』가 이반디 문학의 전과 후를 나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그동안 이반디 작가는 또래 어린이들의 말과 마음을 낱낱이 잘 짚는 저학년 단편 동화의 강자였다. 첫 책 『꼬마 너구리 삼총사』부터 『도레미의 신기한 모험』, 『꼬마 너구리 요요 1』, 『꼬마 너구리 요요 2』, 『누가 올까?』로 이어지는 성실한 작업에서 그는 오직 일곱 살에서 열 살 무렵의 어린이 독자만을 바라보고 그들 곁을 걸었다. 마치 바람 잔잔한 날의 바다처럼, 겉으로는 별일 없어 보이지만 안쪽으로 깊게 출렁이는 어린이 마음에 가만히 배를 띄웠다. 느긋한 태평스러움은 이반디 동화가 만들어 온 아름다움이었다. 이번에는 그 이야기의 배가 독립적 항해를 시작했다는 것이 다르다. 항해는 반드시 풍랑을 만난다. 성장하는 어린이가 위기를, 모험을 피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작가는 어린이가 가리키는 풍향계를 보며 끈질기게 노를 저어 태풍의 눈에 들어간다. 더 외로운 어린이가 홀로 있는 좁은 해협 사이로 배를 몰고 다가간다. 과감하게 잠수한다. 어린이가 바로 그곳이라고 말하면 밑바닥까지 손잡고 내려간다.
작가는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작품을 통해서 “내가 네 아픔을 알고 있다.”는 어린이 문학 고유의 믿음을 다시금 전한다. 마음을 품어 주는 것이 어린이 문학의 일이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더불어 그가 새롭게 시도한 점은 어린이에게 열쇠를 준 것이다. 그 열쇠는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문을 여는 열쇠다. 어린이가 바꿀 더 나은
현실을 향한 열쇠다. 아마도 그것이 햇살 나라의 감춰진 의미다. 햇살 나라로 간 아이들은 꼭 살아서 되돌아올 것이다.
줄거리
〔 햇살 나라 〕
“너는 햇살 나라의 공주니까 언제든지 엄마에게 올 수 있단다. 햇살은 사라지지 않지.”
“우리 세아, 배고프지? 무섭지 않았어?” “아니, 안 무서웠어.” 어린 세아와 단둘이 살아가기 위해 엄마는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세아는 반지하 방에서 머리 위로 난 작은 창문으로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하루 종일 일 나간 엄마를 기다린다. 작은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은 다리나 발뿐이지만, 세아는 지금 지나간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상상하며 자기 집이 비밀이 가득한 특별한 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무섭게 쏟아지는 비를 피하지 못하고 세아는 홀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고, 작가는 세아의 외로운 죽음을 아름다운 요정을 만나는 따뜻한 우화로 투시한다. 요정이 초자연적인 활동을 하면서 인간과 동등한 자격으로 관계를 맺고 결국 해피엔딩으로 귀결되는 옛이야기의 패턴을 따르지만, 작가가 숨겨둔 패턴의 파격을 목격하면 잠시 숨이 멎는다.
〔 다정한 스튜어트 〕
“너만의 눈으로 세상을 봐.”
열한 살 준이, 집 안에서 준이에게 다정한 것은 하나도 없다. 유일하게 준이에게 다정했던 이모는 “너만의 눈으로 세상을 봐.”라는 말과 함께 준이에게 노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주고 먼 나라로 떠나고, 준이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스튜어트’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언제나 비꼬아 말하는 엄마, 비꼬아 말하지 않지만 소리를 지르는 아빠, 걸핏하면 울어 대는 동생을 보며 준이는 이 차가운 집에서 끝까지 버텨 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스튜어트의 몸을 통과한 사진 속 엄마와 아빠의 힘없어 보이는 모습을 보고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상상을 하며 힘겨운 시간을 이겨낸다. 이토록 준이를 힘들게 하는 엄마 아빠이지만, 준이는 또한 이들을 아무리 미워해도 결국 다시 사랑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가정의 안락함과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모험의 위험을 동시에 원하는 어린이의 양면적인 욕구가 인상 깊다. 재미있는 이야기에는 필연적으로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 마녀 포포포 〕
“사랑과 용기가 있어야 마법을 부릴 수 있단다.”
어린 마녀 포포포는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아픈 엄마와 함께 어릴 때부터 살던 마을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삶을 이어간다.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다. 마을 사람들이 포포포와 포포포의 엄마가 그들과 다르게 생긴 것도, 자기들 숲에서 버섯이나 열매를 따는 것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며 싫어했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하루하루 지내던 포포포는 어느 날 자기처럼 전쟁으로 아빠를 잃고 혼자 길을 헤매는 어린아이를 만나게 되고, 빛나는 재능임과 동시에 가장 위험하고 숨겨야 할 재능이기도 한 자신의 마법으로 이 어린아이를 돕기로 한다. 2023 정채봉 문학상 본심작으로 오르기로 했던 이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이금이 작가, 이상배 작가, 김성구 샘터 대표)들은 ‘용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어린 마녀 포포포를 통해 다름에 대한 경계와 차별, 배제, 포용에 관한 이야기를 안정감 있게 풀어냈다. 삶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엿보이는 문장들이 돋보이며 세상을 바꾸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레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세계 곳곳에서는 지금도 전쟁 중이다. 환대받지 못하는 약자인 존재가 나보다 더 약자인 누군가를 환대하는 이 이야기는 전쟁이 없는 세계는 어떤 곳일지, 평화로운 세계는 어떤 곳일지 우리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 이 닦아 주는 침대 〕
시우는 늘 별들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던 것입니다.
시우의 꿈은 우주인이 되는 것이다. 지구가 오염되고 기후가 무섭게 변해 다른 행성에서 살기 위해 우주 시민 자격증을 받아 우주 시민이 되는 게 아니라, 우주 시민 자격증을 받지 않아도 그저 우주선을 조종하거나 우주 정거장에서 일하는 우주인이 되고 싶다. 시우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천장에서 빛을 내는 야광 별자리들을 보며 우주인을 꿈꿨다. 그럴 때면 시우는 늘 별들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사회는 달랐다. 엄마 아빠는 우주 시민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필요한 돈을 계산하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레 선을 그었고, 사회는 오르지 못할 나무에 오를 생각하지 말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살라는 메시지를 기묘하게 주입한다. 시우는 버림받은 기분이 든다. 부모로부터, 먼 미래로부터. 작가는 어린이에게 당연한 세계를 기준 삼아 지금 우리의 세계가 어떻게 뒤틀려 있는지를 보여 준다. 시우는 말한다. “나는 꿈이 있어요. 나는 계속 꿈꿀 거예요. 왜 그러면 안 되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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