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속에서 젓가락까지

박하린 지음

루미너리북스 2025년 03월 04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도시를 짓는 여성의 손끝에서, 젓가락의 섬세함이 피어난다. 박하린은 강철과 시멘트의 세계를 살아가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작은 우주를 발견한다. 콘크리트가 굳어가는 시간을 지켜보는 이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세부가 다르게 보인다. 타워크레인이 휘두르는 거대한 팔과 젓가락으로 짚는 작은 김치 한 조각 사이에서, 그녀는 동일한 정밀함과 균형을 본다. 건설 현장의 분주함과 한지공예의 고요함, 안전모를 쓴 채 외치는 지시와 우쿨렐레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 사이에서 하린은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간다. 이 책은 그 리듬의 기록이다.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공간이라 여겨지던 건설 현장에서 하나뿐인 여성 관리자로 서 있는 순간들. 폭설로 고립된 현장에서 보낸 사흘,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대접한 한정식, 밤샘 작업 후 바라본 서울의 새벽빛까지. 하린의 시선은 거친 현장의 먼지 속에서도 놀라울 만큼 맑고 따뜻하다. 타워크레인의 그림자가 드리운 일터에서, 그녀는 전통 젓가락의 철학을 발견한다. 콘크리트 양생 시간을 확인하는 그 정확함으로 베이킹을 하고, 건축 도면을 그리던 손으로 한지공예를 접는다.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세계들이 그녀의 일상에서는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러시안 블루 고양이 '바다'의 눈동자에서 강릉 바다를 떠올리는 감성,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출근하며 도시의 구조를 새롭게 읽는 관찰력, 계량스푼의 정확함에서 삶의 철학을 찾아내는 통찰까지. 하린의 글은 일상의 가장 작은 세부에서 의미를 발굴해낸다. 어느 날은 완공된 아파트에 처음 입주하는 가족들의 환한 미소에서 보람을 찾고, 또 어느 날은 칼림바의 첫 음을 찾아 헤매는 자신의 모습에서 초심을 되찾는다. 33년의 삶을 통해 그녀가 모은, 철근만큼 단단하고 젓가락만큼 섬세한 38편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있다.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 모음이 아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재료로 지어진 하나의 건축물이다. 표면적으로는 건설 현장의 일상과 취미, 관심사를 오가는 파편적 기록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그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단단한 구조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젓가락 수집에서 시작된 문화적 호기심, 한지공예를 통해 배운 전통의 가치, 태풍 전야의 안전점검에서 느낀 책임감, 친환경 건축의 꿈까지. 그녀의 세계는 언뜻 보기에 서로 동떨어져 있는 관심사들이 정교하게 연결된 하나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철근과 시멘트 사이에서 태어난, 너무나 인간적인 이야기.

목차

1. 철근과 시멘트 사이의 철학
2. 첫 타워크레인, 첫 전율
3. 젓가락 하나로 세계를 읽다
4. 한지에 스며든 시간
5. 안전모 속 여성의 목소리
6. 폭설 속 고립된 사흘
7. 야간작업과 도시의 불빛
8. 첫 월급과 부모님의 미소
9. 바다, 그 고양이의 눈동자
10. 계량스푼의 정확함
11. 콘크리트가 굳어가는 동안
12. 작사노트에 흘려보낸 감정들
13. 우쿨렐레 줄의 울림
14. 태풍 전야의 안전점검
15. 다이어리 속 시간의 지도
16. 강릉에서 온 편지
17. 칼림바의 첫 음을 찾아서
18. 서핑보드 위의 균형감
19. 도면 속 미래의 공간
20. 백팩에 담긴 두 세계
21. 친환경 건축의 꿈
22. 주말 계획표의 여백
23. 웹툰 속 건축의 상상력
24. 동전지갑의 무게
25. 팬레터, 존경의 언어
26. 스케이트보드와 도시의 리듬
27. 오빠네 조카의 블록놀이
28. 싱가포르 연수의 이틀 밤
29. 1인 미디어, 기록의 가치
30. 입주민의 첫 미소
31. 제주 해변의 밤 산책
32. 어린이들의 안전모
33. 다큐멘터리 속 건축의 역사
34. 태현이형의 조선소 이야기
35. 돈가스의 바삭함에 대하여
36. 공동구매의 공동체성
37. 순두부찌개와 매운맛의 철학
38. 미완성 도면 위의 정체성

작가정보

저자(글) 박하린

박하린. 건설 현장 관리자. 1990년 11월 16일생. 서울 상계동 거주. 평소에는 고양이 '바다'와 스케이트보드 타는 건설 현장 관리자로 살아간다. 국내 유일무이 젓가락 수집가이자 우쿨렐레 연주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건설 전문가다. 작업용 안전모에 한지공예로 만든 꽃을 달고 다녀 '꽃안전모 여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베이킹할 때만큼은 콘크리트 배합보다 더 정확한 계량을 고집하며, 퇴근 후에는 건설 현장 일상을 담은 1인 미디어 '철근 일기'를 준비 중이다.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서울 생활 7년 차에도 아직 바다 냄새가 그립다고 말한다.